https://arca.live/b/lastorigin/49543871 - 시리즈 모음








이변은 갑작스러웠다. 별의 아이의 시체가 일순간에 타오르더니 그 불길이 하늘까지 치솟아 그대로 하늘의 한편을 물들여버렸다.


"이건 또 뭔데?!"

"이 녀석의 죽음, 그 자체가 적의 계획이었나보군. 타이런트,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래, 이 짜증나는 보라빛. 절대 좋은 징조는 아니지."


붉은 빛이었던 하늘은 어느새 별의 아이 특유의 보라색으로 물들어있었다. 그 기분 나쁜 빛만으로 이 상황이 누구의 계획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칸, 조심해. 별의 아이의 수작질은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니까"

"꼭 경험담처럼 말하는군. 자네 혹시… 아니 나중에 말하지."


칸이 무기를 고쳐잡고 모터에 시동을 걸었다. 평소처럼 모터는 강렬한 엔진음을 뿜어냈지만 하늘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괴성은 이를 묻어버렸다.


"끼에에에에에엑—-!!!!"

"우우우우—!"


온갖 불협화음을 뒤섞은 울음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별의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건… "

"저것들은 적당히를 모르나… 대충 50마리 정도는 되는것 같은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절망하면서도 내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입에서는 화염이, 몸에서는 미사일이 하늘로 치솟아 별의 아이들을 덮쳤다.


"키에에에엑-!"

"스피이이이---스피이이이이—-"


한마리 그리고 또 한마리, 지면에 추락하는 별의 아이의 시체는 점점 늘어났다. 그러나


"캬하하하학---캬하하학!!!"

"쿠우우우-!!!"

"끼이이이이---쿠우우우우—!!!"


하늘에서 내려오는 별의 아이의 수가 더 많았다. 그리고 그 중 대다수가 나를 노리고 있었다.


"캬아아아아아악-!!!"

"망할, 칸! 뒤로 물러나!!"


그 중 한마리가 기어코 내 화망을 뜷고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칸에게 경고하고 나도 몸을 피하려 했으나


"칸---!!!!"


칸이 수십마리 별의 아이가 쏘아대는 공포에 얼어붙어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숙여!!"

쿵-!!!!!!

콰과과과광-!!!!


칸의 앞에 서서 별의 아이의 돌진을 몸으로 맞받아친 순간, 지면이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땅을 디딘 나는 발판이 무너지자 자세가 크게 흔들렸으나 허공에 떠 있는 별의 아이는 그런 제약이 없었다.


"캬하하하-키이이이익!!!"

"끄으으으… 크아아아아악!!!"


무너진 자세를 고칠 틈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별의 아이를 순수한 힘만으로 막아내기도 잠시, 내 눈에 나를 향해 돌진하는 또 한마리의 별의 아이가 들어왔다.


"썅! 적당히 좀 해라!"


끊임없이 내려오는 별의 아이, 눈앞에 놓인 막강한 적, 턱없이 부족한 나의 힘


"칸! 이 틈에 빠져나가!!"

"크윽… 미안하다. 타이런트,  몸이 조금도 움직이질 않는다… "


그리고 내 뒤에 있는 지켜야 하는 존재


"젠장할!"


그 최악의 상황이


"나 철의 교황이 선언한다. 열어라!"


거대한 목소리와 함께 일순 멈춰섰다.





***



거대한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모든 별의 아이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건 나를 밀어내던 놈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내 존재를 잊은 듯 날 몰아붙이던 괴물은 오직 하늘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적을 코앞에 두고 한눈 팔기냐? 외계문어 새끼야?!"


무슨 이유든 역공의 기회, 곧장 영거리 사격을 가하려 했지만 이내 나도 동작을 멈췄다.

그 어떤 존재보다 압도적인 힘이 내 모든 감각에 경종을 울렸다.

하늘의 한가운데 점이라도 찍힌 듯한 모습의 검은구체, 그것이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먹어치워라"


모두가 굳어있는 정적 속에서 하늘에서 두번째 말이 들려왔다. 정적을 뜷는 그 말은 수면에 던져진 돌처럼 파장을 일으키며- 검은구체를 움직였다.


콰가가가가가각-!!!!!!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이 검은구체에 빨려들어갔다. 그 다음은 수십마리의 별의 아이가, 그 다음은 놈들의 시체나 잘려나간 몸통이 차례차례 구체 안으로 삼켜졌다.

그것들을 모두 삼키자 이번에는 검은구체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거대한 뱀과 같았다.


"철의 교황…!!"

"타이런트, 생각보다 힘의 성장이 빠르구나. 진심으로 놀랐단다."


마치 용처럼 하늘에 떠있는 교황이었으나 그 목소리는 내 앞에서 들리는 듯 선명했다.


"힘의 성장이 빠르다? 별의 아이를 쓸어버린 장본인이 할 말은 아닌것 같은데?"

"그리 경계할 것 없단다. 난 너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거든. 너를 도우러 왔고 겸사겸사 대화도 좀 해보려 온 것이지."


교황은 공중을 헤엄치듯 날아 내가 있는 지면까지 내려왔다.

교황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끔찍한 모습이 더 선명히 보였다. 수백개의 기계를 용접한 듯한 뱀의 몸, 목에 해당하는 부분에 달린 두개의 굵은 팔은 그 자체로 흉기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끔찍한 부분은 기계부품으로 인간의 얼굴을 흉내낸 듯한 형상이 뱀의 턱 아래 부분에 붙어있다는 것이었다.


"할 말 없는데"

"궁금한건 있지 않느냐? 나와 별의 아이가 가진 목적이나 내가 왜 갑자기 너를 돕겠다고 나서는것인지."


교황의 말에 일순 나의 기세가 흔들렸다. 교황은 그 틈을 놓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다른 차원에서 온 아이야. 너는 이제 우리의 몸을 가졌으니 우리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테지. 자 조금만 나의 심상에 귀를 기울여보렴"


그리 말하며 교황은 뱀의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생각이 시선을 타고 나에게 전해지는 듯 하는 감각이 느껴지고

내 눈 앞의 풍경이 변했다





***




'이 쇳덩이로 가득찬 벌판은 뭐야?'


다른 세계로 전이라도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까지 있던 풍경은 온데간데 없고 붉은 하늘과 검은 금속으로 된 대지만이 보였다.


'이게 철충들의 대화수단이란다. 나 자신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초대하는 것, 이 안에서는 나의 모든것을 보여주어야만 하지.'

'아 지금부터 너는 진실만 말할거니까 믿어도 된다? 웃기네. 그런다고 내가 믿겠냐?!'

'느껴질거란다. 너는 이제 우리 종족을 이해할 수 있으니. 물론 믿지 못하더라도 괜찮단다. 그저 가능성으로만 치부해도 너에게는 도움이 될테니'


교황은 어느샌가 지면에서 돋아난 막대를 쥐고 있었다. 그가 팔을 올려 막대를 뽑아내자 주변 풍경은 온통 검은색으로 변했다.

이내 막대가 다시 바닥에 꽂혔을때는 풍경이 어떤 행성을 앞에 둔 우주공간으로 바뀐 뒤였다.


'저곳이 철충의 고향이란다. 내가 태어나 별의 아이를 섬기는 교황이 된 곳이지'

'잠깐, 뭐? 별의 아이를 숭배해? 니들이?'

'그랬었지. 그리하면 그들은 자연재해를 막아주고 고도의 기술과 도덕심을 가르쳐줬단다. 좋은 스승이자 자애로운 부모와도 같이…'


교황은 그리 말하더니 내가 보는 광경을 바꿨다. 별의 아이들이 붉은 원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 붉은 원은 불타고 있는 행성이었다.


'그들의 모든 친절은 가축을 살찌우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우리의 문명이 가장 찬란히 빛나게 되는 순간, 놈들은 본심을 드러내 행성을 통째로 불태웠다.'

'행성을 통째로 불태운다고? 그게 가능해?'

'외신들에게도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지만 가능하단다. 그들은 만찬이라 부르더구나. 수많은 생명과 고도의 문명이 자리잡은 행성을 불태우고 그 영혼을 먹어 저들의 살을 찌우는 의식이지'


교황의 감정이 전해졌다. 배신감, 절망감, 공포, 그가 진실을 알았을 때 느낀 것이었다.

인정하기 싫었으나 그 감정은 진실이었다. 마치 눈 앞에 놓인 물건이 사과라면 사과라 답할 수 있듯, 교황의 감정이 눈에 보였고 이것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도 있었다.


'오, 우리의 대화방식을 빨리도 이해했구나. 방금 너의 감정이 제대로 느껴졌단다.'

'드럽게 기분 나쁘네. 사자 앞에 알몸으로 내던져진 기분이야'

'그 사자가 너를 잡아먹을 일은 없을거란다'


교황은 나를 안심시키려는듯 손을 뻗었으나 나는 고개를 살짝 흔드는 것으로 그의 손짓을 거절했다.

방금 전해진 교황의 수많은 감정과 기억 속에서 또다른 진실, 교황의 학살을 봤기 때문이었다.


'됐고, 종족의 몰살을 막기 위해 다른 종족을 몰살하기 시작한거 맞지?'

'전부 봤구나. 숨길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 기계 문명은 감염시켜 군대로 만들었단다. 지성있는 생물은 멸종시켜 별의 아이가 먹어치울 영혼을 줄였고 이걸 반복하면서 힘을 키워 여왕을 타도할 계획이었지.'


교황이 어느샌가 나의 코 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존재감이 더 강하게 느껴졌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첫 행성을 정복했을 때, 그 순간 얻은 강대한 힘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지. 이 일이 금방 끝날거라 생각할 정도로.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힘의 성장이 늦어지더구나.'

'그래서, 얼마나 죽인거냐'

'연결체들의 종류 하나당 하나의 종족. 연결체들의 모습은 내가 멸망시킨 문명에 존재했던 생명체에서 본뜬것이니까.'

'이런 미친… 미친 학살자 새끼!! 별의 아이가 한 짓하고 니가 하는 짓이 뭐가 달라!!!'


머리 속에 내가 알던 수많은 연결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교황이 짓밟은 생명의 숫자가 되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교황이 마치 시체의 더미를 방석처럼 쓰며 앉아있는것같았다.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것만 같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인정하마. 나는 외신과 똑같은 학살자란다.'

'입만 살아서는… 너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싶은거야? 내 앞에는 갑자기 왜 나타난건데?!'

'설명해주고 싶은게 아직 산더미처럼 남았지만… 외신이 가까워지는구나. 대화는 빨리 끝내는게 좋겠어'


교황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얼굴을 조금 찡그리고선 막대를 다시 땅에서 뽑아내었다.


'나의 신념은 종족의 구원이었다. 구원자나 영웅이 가질 마음이라 생각했다. 허나 그것이 틀렸다. 지금 그 신념은 뒤틀리고 타락한 학살자의 신념이 되었고 나는 실패했다.'


교황의 이미지가, 말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무너져가는 교황의 심상 속, 혼돈 속에서도 그의 마지막 말은 선명히 들려왔다.


'그러니 죄악에 직면하고 이에 분노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야. 한달의 시간을 벌어주겠다. 더 강해져라. 그리고 나와 다른 신념을 가지거라'

'잠깐!! 이야기 아직 안끝났어! 내가 뭘 어떻게 하라는건데!!!'

'철충의 지배자는… 정복으로 강해지는 법이란다'


말이 끝맺어지는 순간, 교황은 사라졌고 나는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와있었다.


"젠장… 자기 할 말만 하고..!"


여왕과 교황, 두 초월적 존재의 체스말이라도 된것만 같아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나는 살겠다고 하는 발버둥이 유희거리가 된 것만 같아 굴욕감도 느껴졌다.


"자네 괜찮은가? 어디로 갔던건가? 그보다 교황은?"

"미안해 칸. 지금은 정신이 안차려지네."


나는 고개를 세차게 털었다.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교황에 여왕, 말도 안되는 괴물들이 둘이나 나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오르카로 돌아갈까. 나 대신 생각 좀 해줄 사람이 절실해서"

"알겠다"


칸은 짧게 대답하고선 몸을 돌려 오르카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돌아가는 동안 나와 칸 사이에는 적막한 기류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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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 브라우니!

빡센 부대로 배치 받아서 연재주기 더 늘어지겠지만! 완결은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