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온순하고 착한 사람일수록 화가 폭발하면 무섭다는 말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껏 보아온 대원들 중, 가장 저 말에 근접하는 이는 하르페이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마침 부관 업무를 보고 있는 그녀에게 장난기가 동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그래서 처음 한 장난은 그녀를 "샬럿"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으나, 하르페이아는 가볍게 웃으며 대꾸할 뿐이다.


"음, 요즘 그렇지 않아도 나를 샬럿씨와 헷갈려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

"그래? 하긴, 닮긴 했어."

"그렇지? 나도 옷만 바꿔 입으면 사령관도 속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거든."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은 헷갈릴 수 없지만."


약간의 장난과,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톡 쏘아붙이니, 하르페이아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숨기기 위함인 듯 손부채질을 하며 말을 돌렸다. 그런 사랑스러운 모습에 피식 웃으며 더 이상 그녀를 몰아붙이는 것은 자제했다.


"그보다 요즘 업무는 어때? 아이돌 무대를 끝낸 다음부턴 꽤 바쁘게 살았다고 그랬지?"

"음~ 가끔 아이들에게 노래 교습도 하고, 같이 놀아주면서 시간을 보냈지."

"하핫, 인기 아이돌의 삶이란 참 피곤하겠어."


기분 좋은 투정을 들으며 대답하니 그녀 역시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하르페이아는 친절하고 상냥한 성격이라 아이들과 어울려 놀아주거나 함께 책을 읽어주는 등, 봉사 활동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었으니 일종의 배부른 투정인 셈이다.


지금도 자연스럽게 책을 꺼내 함께 읽을 준비를 하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타인의 겉모습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긴 건 영락없는 놀기 좋아하는 금발 거유 아가씨인데 말이지.'


그래, 저 흉부를 달고 거기에 화려하고 풍만한 금발까지 지닌 하르페이아는 겉으로만 보면 영락없는 놀기 좋아하는 금발 아가씨 같은 이미지니까. 어떻게 보면 그녀와 처음 마주쳤을 당시에, 처음 했던 상상과는 전혀 다른 그녀의 성격에 당황한 전적도 있지 않았는가.


"응? 사령관? 무슨 일이야? 나를 빤히 쳐다보고는... 아! 같이 책 읽을래?"

"아, 응! 그러자."


따가운 시선을 느낀 것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하는 하르페이아에게 자연스레 대답하고 말았다. 솔직하게 '너와 처음 마주쳤을 때, 난 너를 놀기 좋아하는 거유 금발 아가씨인 줄 알았어.'라고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직 남겨진 업무들을 뒤로 밀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품어주듯 뒤에 앉아서 그녀에게 밀착했다.


'이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인가?'


"헤헤, 그럼 페이지를 넘겨야 할 때 평소처럼 신호를 줘."

"응, 알겠어."

"아, 그리고 오는 길에 같이 먹으려고 음식을 좀 시켰거든."

"아... 그러고 보니 딱히 식사를 하지 않았구나."


그리고 타이밍 좋게 노크 소리가 들려오며 콘스탄챠가 주문 된 음식을 곁에 내려놓고 방 밖으로 나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탕수육을 바라보며, 하르페이아는 책을 살며시 내려 놓고는 어린 아이들이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받아 든 것 마냥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와~ 탕수육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네."

"이야~ 탕수육은 나도 정말 오랜만인데... 센스가 좋네, 하르페이아."


그리고 동봉 된 탕수육의 소스를 들어 맛있는 냄새로 후각을 자극하는 탕수육에 부었을 때, 하르페이아는 1억년치의 사랑이 식은 것 같은 눈빛으로 이쪽을 향해 냉랭하게 응답했다.


"야, 그걸 부어버려? 뒤질래?"




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