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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 속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알림. 띵-띵-띵- 쉴 새 없이 울리는 패드를 닥터가 싱글벙글 웃으며 좁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흐흐흐... 그래. 오늘 축제란 거지? 또 나만 빼고 말이야.”

 

짙게... 아니, 그런 가벼운 단어로를 표현하기 힘들 만큼 어두운 다크서클을 눈두덩이에 주렁주렁 단 채로 닥터가 입꼬리를 올렸다.

 

음, 아닌가. 언뜻 보면 올렸다고 할 게 아니라 파르르 떤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밤샘 수술 끝에 경련을 하는 거지. 언뜻 보면 모듈에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난 그런 닥터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패널 속 메시지를 확인했다.

 

[축하해. 사령관. 아빠가 된 소감은 어때?]

 

[감축드립니다. 각하. 스틸라인 모두를 대표해서 축하의 말을 전합니다. 임무가 끝나는 대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런 날 같이 있지 못하는 게 안타깝군. 사령관. 참 안타까워. 그래도 축하의 말은 전해야겠지. 후후후.]

 

“후후후?”

 

[p.s. 사령관? 지금 아스널 대장 정신 상태가 좀 이상하거든? 돌아가면 그 뭐야 침대 자리 좀 맡아놔 줘. 안 그러면... 몰라 나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메시지를 읽으며 나는 다시 눈을 닥터에게로 돌렸다. 어느새 노란 빛깔의 장발이 바닥에 닿을 만큼 길게 자란 닥터는 헝클어진 앞머리의 틈으로 내 얼굴을 힐긋 살펴 보았다.

 

“... 으휴. 모르는 게 약이라고. 세상 모르고 잤구만? 피부에서 광 나는 것 좀 봐.”

 

“편하게 쉬는 게 환자의 의무라 했잖아. 그 말대로 온 힘을 다해 푹 쉬었는데.”

 

“말은 잘 해요. 이러는 거 보면 언제 한 번 진짜 크게 아팠으면 좋겠다니까. 그래야 내 소중함을 좀 이해할 텐데.”

 

닥터는 그렇게 말하며 내 팔뚝을 마져 살폈다. 궁시렁궁시렁 투덜거리는 닥터의 입은 댓발 나와 가지고 손으로 잡으려면 충분히 잡고도 남을 것 같았다.

 

꾹-

 

“으브!”

 

결국 그 토실토실한 입술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왼손으로 콱 잡았다. 부드러운 살결에 잡은 손이 살짝 미끄덩거렸다.

 

“우리 닥터 덕분인 거 누가 몰라서 이러나.”

 

“으베베!”

 

닥터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세찬 고개질에 쥐고 있던 손이 툭 떨어져나갔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닥터는 내 손가락을 입으로 왕 물었다.

 

“아야야야!”

 

“그르니까 누가 스람 그릏게 극증시키래? 내가 증말 못 산다 진짜!”

 

한가득 투정을 쏟아낸 닥터는 내 손가락을 자기 혓바닥으로 놀리고 싶은 만큼 놀리며 짜증을 부렸다. 은밀하게 핥는 기술이 간지러워서 팔을 부르르 떨 때면 닥터는 아직 어린아이 티가 빠지지 않은, 대학생 같은 얼굴로 묘한 승리감을 뽐냈다.

 

그렇게 자기 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즐긴 닥터는 패널을 보는 팔의 반대쪽에서 링겔 주사를 뽑으며 쯧, 쯧, 혀를 차고 있었다.

 

“바이털 시그널도 안정적. 혈압, 맥박, 심박수, 이상한 점은커녕 너무 멀쩡해서 신기할 정도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도 몰라. 닥터가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말은... 농담하는 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하는 말이야. 뭐 아는 거 없어? 여태 본 적 없는 증상들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한 순간에 괜찮아질 수가 있지?”

 

“한 순간이라 하기엔 이미 시간 충분히 줬잖아.”

 

하얀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닥터가 들어오기 전 시침은 3에 가까이 가있었는데 어느새 6을 넘어 7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야 저번처럼 또 갑자기 훅 하고 안 좋아질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지금처럼 오랫동안 괜찮았던 적은 없었지? 게다가 이 정도면 나도 오래 참은 거야.”

 

내 말에 닥터가 눈동자를 아래로 내렸다. 지금 내가 있는 방은 환자의 절대 안정을 위해 전문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상태. 그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음, 진동, 방해가 될만한 것들은 전부 막아놓은 완벽한 개인실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천성에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방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얘기가 다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몇 시간을 씨름해서 내 아이를 낳아준 아내가 밖에 있으니까.

 

“으으... 알아. 아는데 혹시나 또 오빠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닥터는 말끝을 줄이며 혓바닥을 짓씹었다. 저 표정을 보니 내가 처음 쓰러졌던 때 닥터가 지었던 표정이 떠올랐다.

 

“괜찮아. 나 이제 멀쩡해.”

 

“또 그런 말. 오빠가 그 말 하고 다시 쓰러진 게 몇 번인지 알아? 나 이제 오빠 말 안 믿기로 했어.”

 

평소 하던 것처럼 차트 위에 무언가를 잔뜩 적은 닥터는 이를 악 문 채로 올곧게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으니까 이렇게 됐지, 하나만이라도 잘못 어긋났으면 오빠 죽었어. 알아?”

 

“죽기는 무슨. 그렇게 심한 거 아니었어.”

 

“뭐? 병이 뭐였는지도 몰랐는데 심한 게 아니었어? 그걸 말이라 해?”

 

“난 알고 있었는데? 진짜 별 거 아니었어.”

 

“알긴 뭘 알아! 오빠 몸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는데! 그 장화가 내부 데이터를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제대로 시술도 못 했을 거야. 그게 효과가 먹혀 들어가는 것 같으니 다행이지...”

 

“거 봐. 내가 맞았잖아.”

 

“아니! 이번에는 오빠도 틀렸어.”

 

내 손을 꼭 부여잡은 닥터의 손이 뜨거워졌다. 아직도 심성이 여린 닥터는 이렇게 멀쩡한 나와 이야기 할 때면 금방 울먹이곤 했다. 지금 그러는 것처럼.

 

이해는 간다. 철충 대전이 끝난 이후로 오르카 호로 합류해 오는 바이오로이드는 하루에도 수천, 어쩌면 수만씩도 온다. 그런 상황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구태여 바이오로이드 하나를, 그것도 자기를 죽이려고 온 불순하기 짝이 없는 애를 보겠다 움직였으니 닥터가 볼 땐 내가 틀려도 백 번은 틀렸을 것이다.

 

“나중에 이해할 수 있게 해줄게.”

 

“또 그런 소리...”

 

“지금까지 잘 그래왔잖아. 앞으로 너희 걱정시킬 일은 절대 없게 하겠다고도 했고. 약속 꼭 지킬게.”

 

나는 빙긋 웃으며 닥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아직 아침에 머리 못 감았다고 조용히 투덜거리던 닥터는 결국 고개를 숙이며 내가 쓰다듬기 편하도록 몸을 돌렸다.

 

띠링- 띠링-

 

“오늘따라 나 인기 되게 많네. 안 그래?”

 

“... 싫으면 꺼줄까? 통신망 싹 다 닫아버릴 수도 있는데.”

 

초롱거리는 눈망울로 옷섬을 고쳐 입는 닥터가 뭉그러미 물었다. 언제 꺼냈는지 모를 닥터의 패널 액정에서는 시뻘건 버튼 하나가 화면의 절반을 채우고 있었다.

 

[저... 죄송합니다. 각하. 극비리로 관리하던 정보였는데 도중에 세어버린 것 같습니다. 일개 부대원들이 각하께 메시지를 보내게 못하도록 저희가 최대한 막을 테니 부디 조용히......]

 

뚝-

 

“...... 레드후드가 고생이 많네.”

 

하지만 저 버튼을 누를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각하? 정말 아이 낳으신 겁니까? 축하드림다! 진짜 진짜 축하드림다!]

 

[무슨 일임까? 각하? 저희도 보러 가도 됨까? 같이 축하하면 행복도 배가 된다고 배웠슴다!]

 

[배급 받은 초코파이 잔뜩 아껴놓은 거 있슴다! 그거 가지고 케이크 만들어서 갖다 드리겠슴다!]

 

[죄... 죄송합니다! 브라우니들이 괜히 방해했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바로 조용히 시키겠습니다! 나쁜 애들은 아니니 부디 처벌만큼은 재고해주시면 아... 안 될까요...?!]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신이 난 브라우니와 후임들의 미친짓을 처리하느라 보내는 레프리콘, 노움의 메시지가 한데 뒤성켜 매 초마다 수십, 수백 개의 메일이 내 패널로 쏟아지고 있었다. 

 

어디 그거뿐인가, 다른 부대에서 날아오는 메시지들까지 합치면 패널이 익어가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다. 특히 버뮤다 애들은 대체 뭘 어떻게 하는 건지 자기 메일을 실시간으로 중요 표시로 만들어서 메일 제일 상단에 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몇 초 정도 버텼을까...

 

펑-

 

“... 워멤메.”

 

“거봐. 굳이 끌 필요 없을 거라 했잖아.”

 

자기 인생에서 가장 격렬한 1분을 보낸 패널은 그렇게 장엄하게 산화하고 말았다.

 

“당분간 내 일거리 뺏겠다고 아르망이랑 리앤이 달려드는 건 못 보겠네.”

 

“그... 그래. 그렇겠다.”

 

죽어버린 패널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려보는 닥터를 뒤로 하고 나는 오랜만에 침대에서 일어섰다. 간만에 딛는 땅의 감촉이 기이할 만큼 낯설었다.

 

“그럼 가보자. 다들 기다리겠다.”

 

어깨 위로 대강 코트를 거친 다음, 나는 내 몸을 방 밖으로 끌어냈다.

 

 

 

*** 

 

 

 

아이가 있는 인큐베이터는 내가 있던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섹션에 위치했다. 안 그래도 한참 시끌벅적해질 정오의 병원은 내가 등장하는 것으로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사령관님? 사령관님!”

 

“사령관님? 벌써 움직이셔도 되는 건가요?”

 

“무, 무꼬? 벌써 인나도 되는 기가?”

 

“우와~! 사령관! 보고 싶었어! 몸은 어때? 몸은 어때??”

 

“주인님! 괜찮으신 건가요?”

 

임무 중에 다친 양산형 바이오로이드들과 보육 시설에 있는 어린아이들, 거기에 더해 병원 시설을 지키는 경비 대원들까지.

 

“......”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려고 했건만, 결국 그리 반갑지 않았던 예상대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말았다.

 

[삡! 삡! 환자 이송 중이니 다들 비키시게!]

 

그걸 보다 못한 AGS가 자신의 커다란 몸체에 나를 태우고 병원 바닥을 뽈뽈뽈 기어갔다. 하지만 애정과 호기심으로 불타오르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열정을 막아내기엔 고작 AGS 한 기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자신의 스피커를 찢어져라 경고음을 울려댄 펍헤드의 노력은 수많은 인파의 웅성거림 속에서 맥없이 묻히고 말았다.

 

[... 사령관. 본인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시스템 종료.]

 

“응?”

 

품속에 새로 받은 패널이 진동해서 힐긋 봤더니 나를 태우고 가던 펍헤드의 장렬한 유언이 남겨져 있었다. 이 애도 따지고 보면 여기서 보낸 짬이 꽤 될 텐데...

 

“어머, 복도가 조금 시끄럽네요?”

 

그때 복도 건너편에서 초록빛 물결이 넘실거렸다.

 

푸르른 넝쿨과 그 위에 살랑거리는 꽃들의 파랑. 세레스티아가 분만실이 있는 섹션으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나를 보고 구원의 손길을 뻗은 것이다.

 

소란스러운 인파들 사이로 신묘하게 뻗어나오는 가지들은 내 인근에서 스륵스륵 커져가며 지척으로 작은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그 덕택에 나는 무시무시하게 달려드는 아이들의 애정 공세 속에서 간신히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뭐, 뭐야? 갑자기 무슨...”

 

“자자, 대원 여러분~ 지금 사령관님께서 어떤 상태인지는 다들 아시죠? 아프신 분 괴롭히지 마시고 나중에 다시 만나도록 해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사령관님을 만날 수 있다고...”

 

“스읍!”

 

세레스티아의 호통과 함께 넝쿨 속에서 새빨간 꽃들이 요란하게 피어올랐다. 그렇게 보아도 아름다운 꽃이란 건 변함 없지만 꽃들이 움직이는 모양새에서는 왠지 모를 살기가 느껴졌다.

 

그걸 느낀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는지 주변에 있던 아이들도 주춤거리며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 나를 감싸는 넝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떠나는 아이들이 무안해하지 않도록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된 것도 참 오랜만이에요. 후훗. 조금 과격하긴 했지만 이해해주시길.”

 

“그, 그러네... 하하.”

 

내 곁으로 다가온 세레스티아가 티끌 하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었다.

 

“다음 번에는 조금 더 부드럽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아시죠? 이제 곧 사랑의 결실이 피어날 텐데 그때까지 남편을 내조하고 지키는 건 아내의 몫이라는 걸.”

 

그렇게 말하는 세레스티아의 배는 전에 봤을 때보다 확실히 부풀어 올라있었다.

 

처음으로 아이를 낳은 것은 홍련이었지만 지금 아이를 배고 있는 대원들은 상당히 많았다. 세레스티아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대원들, 그중에서 어린 바이오로이드를 제외하면 나와 하지 않은 애들이 없으니까 임신한 사람이 적지는 않을 거다.

 

특히나 이터니티, 마리아, 세레스티아 같이 타고나길 모성의 화신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지금 내가 자신을 임신시킬 수 있는 상태라는 걸 알자마자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임신 확률을 높이려고 했다. 동침권을 어떻게든 싸그리 모아 며칠 연속으로 관계를 갖게 한다던가, 바이오로이드 배란 유발제라던가...

 

‘대체 이 애들에게 임신이란 건 뭘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벌써 목적지에 도착해있었다.

 

사실 목적지라는 것을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위생복을 입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평소에는 불이 들어와 있지 않았던 베이비 인큐베이터실에 밝은 불이 들어와 있던 것을 보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머, 주인님? 몸은 괜찮아지신 건가요?”

 

다른 아이들이 보였던 것과 비슷하게 이곳의 의료 지원팀은 나에게 다가와 내 몸 상태를 열과 성을 다해 확인했다. 간이용 신체 스캔 도구라던가, 혈액 검사라던가, 30초도 걸리지 않아 5개가 넘는 테스트를 완료한 아이들은 결과가 정상이라는 것을 보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다행이네요. 별 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아요. 애초에 이상이 있었다면 닥터 양이 여기로 보내지도 않았을 테지만.”

 

“걱정시켜서 미안.”

 

“괜찮아요. 사실 괜찮진 않지만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후후.”

 

두꺼운 위생복을 힘겹게 벗자 그 속에서 땀투성이의 다프네가 나타났다. 시술, 수술, 이런 바닥에서는 잔뼈가 굵은 다프네였지만 이번 일만큼은 꽤나 긴장을 했던 모양이다.

 

다프네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변에 있던 다른 대원들도 모두 옷을 벗고 한숨을 돌렸다. 천장에 보이는 경고등은 푸른 빛으로 반짝였다. 위생 상태 안전. 지금 서 있는 곳이 무균실로 변했다는 뜻이다.

 

“지금 주인님과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지만, 일단 여기 오신 이유가 저희 때문은 아니시겠죠?”

 

“그런 말을 듣고 고개 끄덕거리긴 싫은데.”

 

“후훗, 저희가 애도 아니고 이런 걸로 상처 받을까요? 자, 이곳으로 오세요. 아주 예쁜 아이가 기다리고 있답니다.”

 

넉살 좋게 어깨를 으쓱거린 다프네는 나를 데리고 내부에 있는 또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무균실 내부에 또 다른 격벽. 반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반은 불투명한 벽으로 되어 있는 구조는 마치 취조실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시술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 안전에 안전을 기해도 턱없이 부족한 환경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나 부족한 환경에서도 아주 고아한 모습의 두 천사가 편히 누워 있었다. 그 중 작은 천사는 인큐베이터 속에서 작은 숨결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아... 하아... 사령관... 님?”

 

“이제 여보라고 불러도 된다니까. 아이 낳으면 그 정도 애칭은 괜찮다 다들 동의했잖아.”

 

“하하... 그랬죠...? 그래도 아직은 어색해서...”

 

하얀 시트로 둘러 쌓인 침대 위에서 홍련이 숨을 고르며 나를 향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옷가지는 가슴께부터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평생 어떤 테러리스트가 와도 싸우고 이길 수 있게 만들어진 스페셜리스트도 이번만큼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요령 없는 초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조용히 걸어가 우선 그녀의 이마에 작게 키스를 했다. 땀에 젖어 있는 이마에서 벌어진 기습적인 입맞춤에 홍련은 부끄러워해야 할지, 당황스러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허둥거렸다.

 

결국 볼이 빨게진 홍련은 우물쭈물거리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 고, 고마워요. 여보.”

 

그 말에 심장이 꿰뚫리는 기분이었다.

 

“사, 사령관님?”

 

“아니... 계속 여보라고 해줘.”

 

레오나에게 달링이란 말은 많이 들어봤다. 하지만 대부분이 나와 서약을 하고 나서도 기존에 부르던 호칭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제야, 이제야! 마침내 저 소리를 듣게 되니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다. 내 평생 느껴본 적이 없는 기쁨에 온 말초 신경이 마비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장화는 어디 있나요? 제가 여기 있는 동안 오르카 호로 합류했단 얘기를 들었는데.”

 

몸을 고쳐 앉던 홍련이 물었다.

 

“아, 장화? 돌아갔어. 여기 있기 싫데.”

 

“예? 그... 사령관님 때문에 오리진 더스트도 너무 많이 맞았다는데, 혹시 제가 신경 쓰여서...?”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다고 간 거니까. 다친 부분도 전부 다 치료해서 보냈으니 걱정할 거 없어.”

 

내 말에 홍련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타고나길 사람 좋게 만들어진 데다가 엄마가 되고 나니 안 그래도 넘치는 인정(人情)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지금에 집중하자.”

 

“하하... 그래야겠죠. 여보.”

 

붉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며 어색한 웃음을 짓던 홍련은 멋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신의 품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에 따라 나도 내 시선을 그녀의 품으로 돌렸다.

 

쌕- 쌕- 쌕-

 

“......”

 

“하하하... 드, 들어보실래요?”

 

힘겹게 이어지는 숨소리.

 

뭐라고 해야 할까.

 

복잡한 감정이 잔잔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다행이에요. 닥터 양이 난생 처음 있는 일이라 무슨 병이 유전될지 모른다 했는데 그런 것도 없다고 하고. 오히려 너무 멀쩡해서 신기하다고 하는 거 있죠? 그 얘기 듣고 얼마나 가슴을 쓸어 내렸는지...”

 

“......”

 

“... 여보?”

 

무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이런 감각을 느낌이란 잔잔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기묘한 충격이 팔 끝을 내려치는 듯했다. 온기가 신경을 가르고 꿰뚫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기분이었다. 손가락이 저릿한 게 번개에 맞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내가 제일 처음 느낀 감각은.

 

“... 버겁다.”

 

“... 네. 알겠어요.”

 

홍련은 바스락거리며 침대 위에 앉아 두 팔을 내 어깨 너머로 뻗어 부드럽게 감쌌다. 나는 그녀가 쉽게 안을 수 있도록 다리를 조금 굽혀 뒤에 있는 의자에 앉아 그녀에게로 몸을 기댔다.


그토록 시끌거렸던 밖이 단숨에 조용해졌다. 유리창 너머로 나를 보는 시선이, 약간의 부러움과 경이와 감탄, 혹은 이해하지 못할 미지를 향한 경탄이 섞인 시선이 느껴졌다.

 

품 안에서 느껴지는 숨.

 

내 지난 생은 그 모든 숨이 나의 것이었다. 나 혼자 내뿜는 숨이었다.

 

다음 생에서야 그 중 일부가 아이들의 것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라 생각했다. 그 이상이 무엇일지, 존재하기나 할지, 나는 몰랐다.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보.”

 

“응.”

 

“고마워요. 그거 말고는 아무 말도 못 하겠어요.”

 

... 다른 숨이 내 팔뚝을 스쳤다.

 

나의 것도, 너의 것도 아닌 사람의 숨이, 작고 작아서 느끼려 하지 않으면 느껴지지도 않을 숨이 그토록 강렬하게 느껴졌다.

 

지난 생을 후회하며 살았다. 살릴 수 있는 아이를 살리지 못해서 후회했었고, 죽이지 말아야 할 아이를 죽인 것 같아 후회했다. 그 모든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얻어 만회한 뒤에도 그 감각은 유리창의 남은 물자국처럼 길었다. 지우려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닦아도 결국에는 남아 있는 아침 이슬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참으로 고요했다.

 

머리가 자라고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주변으로 고요하게 어둠이 내려 앉았다. 오직 나와 홍련, 그리고 아직 이름을 짓지 못한 어린 아들만이 작은 조명 속에서 반짝이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어둠 속에서 내 모든 후회의 근원이 긴 머리카락을 끌며 나타났다.

 

‘그래. 그러하겠지.’

 

오르카 호의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병을 주고, 그 병을 거둬들일 수 있는 존재. 치사량의 수십배나 되는 오리진 더스트를 복용한 장화를 고쳐준 장본인이면서, 장화를 통해 나에게 증명해보라 했던 자.

 

별의 아이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한다. 죽음을 선택한 별의 아이만이 스스로 소멸하여 우리의 세계로부터 영원히 멀어질 수 있다.

 

그런 자들 중 유일하게 죽음을 택하지 않은 존재. 


억지로 늘린 생명 때문에 이젠 서 있는 게 고작인 나약하디 나약한 신.

 

‘참으로 기꺼운 광경이야.’

 

교황이 허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장화가 어떻게 지난화처럼 뽈뽈뽈 돌아다닐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면?


축하합니다. 복선을 알아맞췄습니다.


다음화: https://arca.live/b/lastorigin/78629316?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