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하늘 아래의 오르카호.


잠수함인 오르카호는 웬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마치 배처럼 잔잔한 물결이 흐르는 대양의 바다를 타고 둥둥 떠다니고 있다.


스틸라인의 병사들이나, 늦게까지 일하는 게 일상인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안드바리를 제외한 어린아이들은 한창 잠에 빠져있을 시간, 새벽 1시.


앵거 오브 호드의 워울프는, 그런 평화로운 바깥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갑판에 나와있었다.


이 시간이 되도록 서부영화를 본 워울프는 거진 4시간동안 열심히 달린 두 서부영화의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랭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새로운 시도였다. 랭고는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서부를 배경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제일 큰 장벽인 어린이 영화라는 편견 탓에 섯불리 도전할 수 없었다. 지금의 여운이 말해주기를, 그것은 멍청한 생각이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줄여서 놈놈놈은 대한민국의 서부영화였다. 서부극으로는 생소한 한국의 서부영화, 그 탓에 관람하기를 주저했다. 물론, 랭고처럼 그녀의 염려를 사르르 녹여줄 만큼 훌륭한 작품이었다.


'샐러맨더가 본 타짜라는 영화를 구경한 걸 제외하면 한국 영화는 처음이지, 아마.'


아다 뗐네.


"풉, 흐흐···"


마음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섹드립을 날린 그녀는, 자신의 농담에 맞장구를 치듯이 가볍게 웃었다.


'케시크나 카멜은 자고 있으려나.'


대장인 칸은 그리 늦게 자는 타입은 아니지만, 명색이 한 부대의 지휘관이기에 사령관이 처리할 필요가 없는 부대 내의 자잘한 일을 처리하느라 아무리 빨라도 새벽 2시에나 잠을 청할 것이다. 아무리 부대 특성상 자유분방하고 대장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는 해도, 한창 일하는 중인 대장을 방해하는 건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러기 싫기도 하고.'


페더는 늦게까지 딸딸이나 치고 있겠고, 샐러맨더는 타부대의 인원들이랑 크고 작은 도박판을 벌이고 있겠지. 하이에나는 몇시간 전에 폭발물로 사고를 쳤으니까 한참 혼나고 있을 것이다. 스카라비아는, 뭐···


'뻔하네.'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고는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잠시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라이터를 꺼내서 끝부분에 불을 지폈다.


'나처럼, 담배나 태우고 있겠지.'


후으읍, 숨을 들이키자 탁하고 센슈얼한 니코틴 냄새가 나는 연기가 워울프의 폐를 가득 채웠다. 워울프는 자신이 떠올린 센슈얼하다는 표현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오르카 최고 지식인이···'


순간 제 머릿속을 흝고 지나간 토모의 얼굴을 빠르게 지워버렸다. 아아, 그래! 리앤, 리앤이 있었지.


"아, 나 걔랑 안 친한데···"


"누구?"


흠칫, 갑작스레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순간 물고 있었던 담배를 뱉어버릴 뻔했다.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진정했다. 그야, 이런 모소리를 가진 남자는 한 명 뿐이었으니까. 평소에는 미려하고 우유부단하지만, 침대 위에서는 포식자건, 피식자건 자신의 역할에 상관없이 발칙한 짐승이 따로 없는 남자. 오르카호의 모든 존재가 인정하는 명실상부 최고의 워커홀릭이자, 백전무패, 인류의 마지막 인간··· 사령관.


"··· 하아아, 사령과아안."


"흐히히히."


한숨과 함께 사령관을 부르며 추욱 늘어지는 워울프, 그런 그녀를 보던 사령관은 장난스레 입꼬리를 올리고 짓궂게 웃으면서 잽싸게 다가왔다.


푸욱, 사령관은 이런 것쯤은 익숙하다는 듯이 그녀의 주변을 에워싼 탁한 연기를 무시하고 워울프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키가 머리 두 개는 차이나는 것이, 안았다기엔 품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보였지만.


'오늘은, 어디보자··· 소년이네.'


워울프는 자신에게 안겨온 사령관의 오늘의 신체를 살펴보았다. 얇고, 작은 몸에··· 빛나는 듯 마는 듯한 밝은 머리를 한 소년의 신체. 스틸라인의 지휘관, 불굴의 마리가 왜 그리도 어린 남자에게 집착하는지 알 것만도 같았다. 이런 귀여운 남자가 유혹해온다니,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서부극의 여운에 잠겨있어서 성욕 정도는 조절할 수 있어서 망정이었다.


사실 거짓말이었고, 사령관의 향수 섞인 채취를 맡은 워울프는 때마침 자궁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으음, 이번에는 오렌지 향이군. 향기만 맡았는데도 상큼하고, 침이 고이는, 아주 좋··· 좋··· 좆?


잠깐만, 이 냄새는?


킁킁.


"··· 밤꽃냄새 죽인다, 너."


"으응, 뭐? 내, 냄새 나?"


"응, 엄청. 추리 한 번 해볼까? 아스널 아니면 마리."


"가불기야 그거. 아, 힘들어··· 오늘은 동침 일정도 없었는데."


"이게 맞네. 누나 좀 치나?"


"가불기라니까."


흐흐, 뻘쭘하게 웃으면서 괜시리 그를 제 품으로 끌어당기는 워울프. 탁구공이 왔다갔다 하는 듯한 대화도 어느덧 미미하게 넘실거리는 바다의 물결에 가라앉듯 조용해졌다.


후우우.


"··· 아."


스으읍.


"응?"


후우우.


···

······

·········


"너 좀 야하다, 사령관?"


"네?"




ㅈㄴ짧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