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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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요안나 아일랜드의 한가운데 우뚝 선 산봉우리의 아래에는 다양한 시설들이 즐비해 있다. 여러 종류의 소모품들을 생산하고 또 정비하는 부품 생산 시설. 그리고 밀과 쌀, 거기에 다양한 기호식품까지 가공할 수 있는 식량 설비 시설 등등.

 이 섬은 어느새 후방 기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규모가 거대해져 수많은 인원이 거주하고 또 활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그녀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은 또 어디인가. 그것은 또 각각 소속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파견 인원들은 초소 인근에 설치된 휴게실에서, 생산 인원 중 소수는 또 개인이 준비한 거주 시설에서 하루를 보낸다. 다만 대다수 인원은 요안나 아일랜드 산중턱에 자리한 거대한 석조 건물, 통칭 중앙 건물에서 거주하고 있다.

 

뚜벅-뚜벅

 

“아. 진짜. 내가 왜 휴일에도 이렇게 일해야 하냐고.”

 

 중앙 건물의 어느 한적한 복도. 이미 대부분의 거주 인원은 건물 밖으로 떠난 텅 빈 건물 안 복도에 거친 군홧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를 내는 장본인인 분홍 머리 소녀의 낯빛은 썩 소녀답지 않은 모양새였다.

 

“대장도 대장이야. 하기 싫으면 그냥 적당히 항복하고 말면 그만이지. 애당초 누가 대장 몸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남발하겠냐고. 쯧쯧.”

 

 창틀 너머 쏟아지는 햇빛 탓에 환하기 그지없는 복도의 위를 소녀는 되려 못마땅하다는 듯 성큼성큼 군홧발 휘두르며 거칠게 나아갔다. 아마 거기에는 상황 파악을 잘 하다가도 꼭 이상한 곳에서 눈치가 없어지는 상사의 탓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그러다 그녀의 걸음이 복도 끝에 있는 계단 위로 올라섰다.

 

뚜벅-뚜벅

 

“뭐. 그래도 그건 그것대로 김빠지는 일이 되나. 하긴. 대장이 저렇게 굴러주니 우리 동네가 시끌벅적한 거지. 대장이 오고 나서부터 조용할 날이 어째 적어지는 거 같네.”

 

뚜벅-뚜벅

 

“예전에는 맨날 파견 애들 뒷담까는 것밖에 할 게 없었는데.”

 

 한 계단 한 계단 걸어 넘길 때마다 소녀의 구겨졌던 얼굴이 점차 원상태로 돌아서 이내 그녀의 얼굴은 평소와 같이 반쯤 늘어진 나무늘보와 같은 얼굴로 돌아왔다. 그 또한 그녀의 눈치없는 상사 덕이니, 병주고 약준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라고 그녀는 속으로 킥킥 대었다.

 

“얼른 대장 몽둥이나 챙겨서 합류 지점으로 가볼까.”

 

뚜벅-

 

또각-

 

 소녀의 걸음이 이내 마지막 계단 위를 오르자 그녀 앞 모퉁이에서 또 다른 걸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소녀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랐다.

 

“엥? 누가 남아 있었나?”

 

또각-또각

 

 선명하게 들리는 구두 소리에 분홍 머리 소녀, 이프리트는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어 복도 모퉁이 너머로 시야를 넓혔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햇빛이 내리쬐는 환한 복도가 아닌 검정과 분홍색으로 채워진 무언가였다.

 

“-우왓.”

 

“어머.”

 

콱-!

 

 갑작스러운 무언가에 이프리트의 상반신이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하였다. 하지만 무너지려는 그녀의 몸을 누군가가 한 손으로 어깨를 쥐어 잡아 다시 원래대로 일으켜 세웠다. 

 

“괜찮나요?”

 

“어..어어.”

 

“어디서 발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이프리트양이셨군요.”

 

 뒤로 넘어질 뻔해 정신을 잃을 뻔했던 이프리트는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서 있는 눈앞의 인물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남색빛이 맴도는 가지런한 생머리. 그리고 방금 보았던 분홍색과 검정의 무언가로 추정되는 단아한 교복과 체스트가드.

 일찍이 이 요안나 아일랜드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바이오로이드는 아직도 어벙해하는 이프리트의 옷깃을 놓아주며 고개를 살포시 숙였다.

 

“저 탓에 깜짝 놀라셨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아, 아니. 어. 그러니까..”

 

“저는 시라유리라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자신을 시라유리라 밝힌 바이오로이드의 인사에 이프리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새침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극기훈련생 중에서는 못 본 거 같은데.”

 

“네. 이번에 사령관님과 함께 이곳에 왔답니다.”

 

“역시 본대였나.”

 

‘본대에는 별의별 부대가 다 모여 있다고 들었는데. 얜 어디 소속이지?’

 

 오르카 1호에는 다양한 부대가 자리를 잡고 있다. 블랙 리버의 스틸라인과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삼안의 배틀 메이드와 컴패니언과 같이 유명한 시리즈부터 덴센츠와 비스마르크 등 멸망 전 모든 부대가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렇기에 이프리트는 눈앞의 이 미소녀가 본대에서 온 손님이라 해도 어디 소속인지는 유추해내지 못했다. 다만 여전히 자신을 싱긋이 눈웃음 지은 채 내려다보는 그 시선이 어딘가 그녀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본대 녀석들이라면 오늘 아침에 모두 나간 줄 알았는데.”

 

“저는 바깥에서 놀기보단 이곳 중앙 건물을 둘러보고 싶어서 남아 있었지요.”

 

“흐응. 그래? 근데 여기 3층엔 별거 없는데 왜 여기에 와 있대?”

 

 눈앞의 단아한 여성에게서 왠지 모를 께름칙함을 느낀 이프리트는 마치 심문하는 듯 팔짱을 낀 채 태도를 고수했다. 하지만 그런 이프리트의 압박에도 시라유리는 후후하고 웃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무엇이 있어 꼭 올라오는 법은 아니죠.”

 

“...끙.”

 

 간단한 압박만으로는 이 아가씨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이프리트는 입술을 삐죽이다 이내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 이번에는 자신 역시 싱긋이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너 근데 소속은 어디야?”

 

“본대 소속이라고 방금 이야기 드렸지 않았나요?”

 

“아니. 본대 어디 소속이냐고.”

 

“...흐음.”

 

 어디 소속인지를 캐묻자 여태껏 미소를 유지하던 시라유리의 얼굴에 조그마한 균열이 일어났다. 아까와 같은 사람 좋은 미소 대신 어딘가 시큰둥해졌다는 듯 전체적인 낯빛이 가라앉은 것이다. 

 

“뭐. 딱히 당신에게 숨길 필욘 없겠죠.”

 

“..오우. 그쪽 얼굴이 본 얼굴이었나 보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죠.”

 

 시라유리는 이프리트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 몸을 돌려 창틀에 몸을 기댄 뒤 고개를 까닥였다.

 

“다시 한번 제 인사를 드리죠. 저는 오르카 1호의 080기관 소속. 시라유리랍니다. 이거면 되었나요?”

 

 창밖 너머에서 햇빛을 받으며 창틀에 기대어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앳된 학생 같아 보였으나 반대로 그림자가 진 그녀의 얼굴에서는 어딘가 음습하기 짝이 없는 낯빛은 그녀가 일반 학생이 아님을 짐작케 했다.

 시라유리의 돌변한 태도에 이프리트는 자신의 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가 밝힌 소속 부대를 듣고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080기관? 거기는..’

 

“예. 당신이 생각하는 거기가 맞아요. 바로 첩보 부대죠.”

 

“...안 듣는 게 나았네.”

 

 스스로 자신이 첩보 부대라 밝히자 이프리트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그러나 시라유리는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너무 걱정 마요. 딱히 틀린 말은 안 했답니다? 정말로 여기 분위기나 건물 내 시설 확인만 하고 있었어요.”

 

“감찰 나온 게 아니라?”

 

 퉁명스럽게 묻는 이프리트에게 시라유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창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이 지나왔던 복도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느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또각-또각

 

“감찰이라뇨. 저도 여기 상황을 일찍이 알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쓰여 꼼꼼히 보고 있던 것뿐이랍니다.”

 

“알고 있었으면 뭐라도 조치를 해줄 것이지. 왜 여태껏 모른 척 했대?”

 

“저희라고 뭐든지 할 수 있는 건 아니랍니다. 본대뿐만 아니라 전 오르카 저항군에 만연히 퍼진 보급 탈취 행위는 쉬이 진정시킬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죠.”

 

뚜벅-뚜벅

 

 복도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뒤를 쫓아 이프리트 역시 걸음을 옮겼다. 시라유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령관님께 보고해 단순히 사령관님의 명령문을 모든 부대에 전달하면 그만이긴 했겠지만. 그렇게 해도 파견 부대가 당신들을 얕보는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겠죠.”

 

“...”

 

“그런 의미에서 라붕이 대장님의 작전은 참 재밌으면서도 효율적인 해결법이었어요. 역시 인간님이라 그러신가. 발상이 참 독특해요.”

 

뚜벅-뚜벅

 

“닥터가 처음에 이 작전 계획을 들고 왔을 땐 정말이지. 이렇게 막무가내식의 작전이 먹힐까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론 대장님 덕분에 이곳뿐만 아니라 전 오르카 저항군의 군기가 바싹 다시 잡혔죠.”

 

“...흐응.”

 

 자신의 직속 상관을 칭찬하는 시라유리의 태도는 언뜻 보기엔 정중했다. 하지만 이프리트는 그녀의 말속에서 무언가를 깨닫곤 양팔을 머리 뒤로 넘긴 채 입을 열었다.

 

“한 마디로 대장은 얼떨결에 여기로 전임 온 거네?”

 

“...네. 그렇죠.”

 

“딱히 여기 상황을 알고 여기를 정상화하려고 보낸 인간은 아니었단 말이구나?”

 

“...흐음. 제가 말이 조금 길었네요.”

 

또각-

 

 이프리트의 지적에 시라유리는 말을 잠깐 멈추곤 머리만 살짝 돌려 뒤를 따라오던 이프리트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진분홍빛 눈동자 속에서 한기를 느낀 것은 단순한 직감 탓이 아닐지라.

 

“..가만 보면 대장 같은 인간님이 왜 이런 후방에 보내진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딱히 알 필요는 없잖아요? 결과적으론 덕분에 우리 모두가 이득을 봤으니.”

 

“우리 모두라..흐흣. 대장도 덕을 봤다는 이야기로구만.”

 

“당신. 쓸데없는 추론은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예예.”

 

 시라유리가 건네는 짤막한 최후통첩에 이프리트는 뒤로 넘겼던 팔을 허공에 쭉 펼치며 항복 의사를 표명했다. 이 이상 캐물어봤자 그녀에게 썩 쓸모있는 이야기도 아닐지언정 시라유리 말마따나 재미도 없을 테니.

 

“..후. 당신의 연식이 오래된 건 알고 있었지만. 세월의 감이라는 건가요?”

 

“마치 날 속 시커먼 마녀 할망구처럼 말하지 말아 줄래?”

 

“자각이 있긴 한가 보군요. 자, 당신이 여기 3층까지 온 이유는 여기에 볼일이 있는 거겠죠.”

 

 복도를 가로질러 어느 방의 앞에 도달한 이프리트는 그제야 자기가 이곳까지 걸어온 목적을 상기하곤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이 방 안에 있는 물건만 챙겨 이 얼음장 같은 여성의 곁을 한시바삐 떠나려던 그녀는 방문 손잡이로 손을 가져다 올렸다. 하지만 그제야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아.”

 

“? 뭔가요?”

 

“..카드키. 받아오는 거 깜박했다.”

 

“..네?”

 

 전혀 예기치 못한 이프리트의 대답에 시라유리는 아까까지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던 포커페이스를, 일순간 무너뜨리며 문 앞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려대는 이프리트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165)

 

덜-걱

 

 녹색의 바다가 끝없이 이어진 깊디깊은 산속 어딘가. 그 대자연을 무시한 어느 이의 작은 안식처의 문을 누군가 열어 재끼곤 흙발로 들어섰다.

 

“실례한다.”

 

“실..실례..합니다?”

 

 딱히 훔쳐갈 것이 없다는 걸 표명하기 위해서인지 그 흔한 걸쇠도 없는 문을 열고 들어선 이들은 가만히 사방이 갈색빛으로 이루어진 작은 산장을 둘러보곤 후우-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에서 인기척이 안 느껴진다는 네 말이 맞긴 했네.”

 

“에? 그럼 인간은 내 말을 안 믿었단 말인가?”

 

“아니. 뭐. 어..음. 그렇게 되는구만.”

 

“...”

 

“풀 죽을 필요까지 있냐?”

 

 들어선 방문자는 둘. 그중 한 명은 디지털 패턴이 들어간 전투복 차림의 남성, 통칭 라붕이로 불리는 이며 그의 뒤를 따라 조심스레 들어온 여성은 통칭 ‘짬 타이거’라 불리는 팬텀 개체였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텅 빈 산장에 들어선 두 사람은 한껏 지친 얼굴로 곧장 산장 내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보자. 냉장고에 뭐가 좀..음. 맥주 뿐이군. 훌륭해!”

 

“이게 훌륭한 건가...”

 

“내 방 냉장고도 상황은 비슷하지 않나?”

 

“...이상한 건 나인가?”

 

 홀로 고민에 빠진 짬 타이거를 둔 채 라붕이 작전관은 시원하게 보관된 맥주 한 캔을 집어들고 곧장 거실로 보이는 곳으로 걸어가 소파 위로 몸을 맡겼다.

 

치-칵!

 

꿀-꺽 꿀꺽

 

 새하얀 거품이 캔의 열린 입구 사이로 솟아오르자마자 그는 잽싸게 입술을 가져가 캔의 내용물을 한껏 들이켰다. 그리곤 그간의 고생이 씻겨나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표현하듯 탄성을 허공에 내질렀다.

 

“-크으!”

 

“...전부 맥주뿐인가. 으으.”

 

“뭐라도 마셔둬. 안 그럼 이 더위에 열사병으로 픽 쓰러질 테니까.”

 

“더운 곳에서 알코올을 마셔대는 건 더 위험하지 않나?”

 

“몰라. 난 그런 상식은 배우지 못했다.”

 

 여성의 태클에 라붕이 작전관은 허공에 손짓을 휙휙 내지르며 다시 캔의 끄트머리로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곤 한껏 풀려 있던 눈썹을 다시금 미간으로 좁히며 생각에 잠겨 들었다.

 

‘기세 좋게 사령관을 치는 건 좋다 이거야. 근데 그러기 위한 수단이나 카드가 턱없이 모자라.’

 

탁-탁

 

 라붕이 작전관의 검지가 캔의 겉면을 두드렸다. 그러면서 그는 온몸으로 생각에 잠겼다는 걸 표출하듯 남은 왼손으로 턱을 짚은 채 허공을 빤히 응시했다.

 

‘사령관 녀석도 이 대회에 참가했다 했지. 그러면 그 녀석의 위치부터 파악해야 하는데. 아직 이 대회에 어떤 녀석들이 참가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단독행동을 하는 건 위험해.’

 

‘샛길을 알고 있는 녀석은 끽 해봐야 노움이나 이프리트 정도인데. 그중 한 명은 리리스한테 붙잡혔으니 이동하는 데에도 꽤 시간이 낭비될 거야. 그사이에 다른 녀석들한테 들킬지도 모를 상황이지.’ 

 

 생각이 어느 정도 진행된 남성은 문득 머리에서 느껴지는 갑갑함에 턱을 짚던 왼손을 정수리로 옮겼다. 그러자 부드러운 머릿결 대신 딱딱하기 짝이 없는 싸늘한 철모의 촉감이 그의 손끝에서 올라왔다.

 

‘이 헬멧만 쓰고 있으면 바이오로이드 녀석들의 추적을 피할 수야 있는데. 눈에 띄는 순간 결국 녀석들한테 붙잡히는 건 시간 문제야.’

 

‘먼저 여기 합류 지점에서 이프리트를 기다리다 녀석에게 지휘봉을 받는 게 먼저인가. 아니지. 아예 그냥 여기 근처에 몸을 숨긴 채 4시까지 버텨? 아니야. 그랬다간 이 사령관 녀석한테 한 방 먹이는 것도 물거품이 돼.’

 

“..쯧. 어쩐다 진짜.”

 

딱-딱딱

 

 일전의 극기훈련 작전 계획보다 훨씬 까다로운 상황이라고. 라붕이 작전관은 눈앞에 당면한 문제에 혀를 차며 짜증을 부렸다. 그때의 그에겐 있는 것, 그리고 지금의 그에겐 없는 것. 그것은 바로 손에 쥔 카드의 개수였다.

 

‘그땐 명분도 있었고. 협력해주는 이도 많아서 어떻게든 밀고 나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손 벌릴 곳조차 없으니. 어쩌다 이렇게까지 몰리게 된 거야?’

 

 그때의 그에겐 후방 기지를 안정화한다는 명분과 그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조력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겐 그 조력자들이 곧 위험요소, 그 자체로 돌변했으니 라붕이 작전관의 속은 타들어 갈 뿐이었다.

 

‘하아. 씨발. 그놈의 반지만..아니. 반지 그건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그 둥그런 쇳덩어리 하나 탓에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당장 자길 도우려던 아르망과 리제는 눈에 띄게 공기가 바뀌었다. 거기다 협력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당장에 자기 앞에서 위험한 냄새를 풀풀 풍기기 시작한 리리스의 경우에는 그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애들은 전면적으로 날 도왔을 텐데. 씨발. 사령관 이 새끼. 진짜..’

 

“...하아.”

 

 눈앞에서 페인트 총알 한 발로 시위를 펼친 리리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의 뇌리를 다시 한번 스쳐 지나갔다. 그건 어떻게 보더라도 정상은 아닌 모양새였다.

 

‘걔들이 갑자기 왜 그러지? 확실히 호감도가 100이 아닌 이상 그렇게까지 다가오려고 들지 않을 텐데. 내가 뭐 초콜릿 하나를 줬나, 케이크 한 판을 갖다 바쳤나. 후우..’

 

 설마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캐릭터에게 위협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라붕이 작전관은 자기 속이 점점 새까맣게 타들어 감을 느끼며 맥주를 한 번 더 입안 가득 부어 넣었다. 그러자 그의 허리춤에 달려 있던 물건들이 서로 부딪히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달그락-

 

‘...아. 맞다.’

 

 비어있던 왼손을 허리춤으로 돌리자 그의 손아귀에 차갑고 기다란 철제봉들이 느껴졌다. 무려 부하 하나가 자신을 희생해 그에게 쥐여준 유품들이었다.

 

‘노움 녀석. 그렇게까지 몸을 날려줄 줄이야. 후우. 훌륭한 카드를 엉뚱한 데서 소비하고 말았어.’

 

 그나마 샛길 안내 및 전투원으로서 어느 정도까진 커버가 될 줄 알았던 요원이 어이없게 아군인 줄 알았던 여성에게 붙잡힐 줄이야. 라붕이 작전관은 머리를 박박 긁으려다 이내 방탄모 탓에 자기 손톱만 깨질 거라 여기며 그저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하. 집 가고 싶다. 젠장.”

 

“으음. 그건 나도 그렇다.”

 

“...뭐?”

 

“? 왜 그러나?”

 

 어느새 곁에 다가와 양손에 얼음 컵을 쥔 짬 타이거의 붕 뜬 대답에 라붕이 작전관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로선 상상조차 못 한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너 집이 있었냐? 여기가 네가 살던 곳 아니야?”

 

“말했지 않나. 나는 조각배를 타고 여기 온 거다. 엄연히 살던 곳은 따로 있었다.”

 

“...어.”

 

 이렇게까지 말을 조리 있게 할 줄 알던 녀석이었나. 라붕이 작전관은 그녀의 고백에 떨떠름한 표정을 보였다. 생각해보니 이 녀석을 어떻게 자기들과 섞이게 할지 그것만 궁리했지 딱히 개인 서사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생산으로 태어나는 유기물이다. 그러니 나 역시 누군가 만들지 않았겠나.”

 

“...어. 그렇네. 어.”

 

“그것도 모르다니. 인간. 역시 머리가 나쁜..”

 

“기어오르면 망토 잡아다 내친다.”

 

“잘못했다.”

 

 평소 행실 덕분(?)인지 살살 자존감을 치켜세우던 여성은 단숨에 합죽이가 되었다. 다만 그런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은 어딘가 오묘한 눈빛이었다. 

 

‘만약 이 녀석을 행여나 사령관이나 본대 사람들에게 들켰다간 단박에 내 처지가 나락으로 가겠지.’

 

 당장에 신원불명의 군인, 그것도 암살용 개체를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어떤 처우를 바랄 수 있을까. 처형만 아니라면 자비를 베푼 셈이겠지.

 라붕이 작전관의 머릿속엔 어느새 밧줄에 꽁꽁 묶인 채 잠수함과 함께 가라앉는 자신을 상상하고 있었다.

 

“...나도 사령관을 욕할 자격은 없..아니지. 아니지. 그 새끼도 그 새끼지. 응.”

 

 우선 지금의 상황부터 타개하자. 라붕이 작전관은 자신이 가진, 혹은 가질 수 있는 수(手)를 최대한 머릿속에서 쥐어 짜내려 들었다. 그때, 두 명의 목소리만 울려 퍼지던 산속 목장의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똑똑-

 

“응?”

 

 가벼운 노크 소리에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라붕이 작전관의 목이 반사적으로 문 쪽을 향해 홱 돌아섰다. 이 숲속 깊은 곳에 있는 산장은 이 산장의 주인인 럼버 제인과 그녀의 악우들인 엘븐 자매들. 그리고-

 

“이프리트인가? 꽤 빨리 왔네.”

 

“응? 이..이프리트..씨?”

 

“넌 좀 앉아서 쉬고 있어. 내가 열어줄 테니.”

 

“잠..잠깐! 인간!”

 

뚜벅-뚜벅

 

 부하의 금의환향에 라붕이 작전관은 몸소 걸음을 옮겨주기로 했다. 손에 쥔 패는 얼마 없으나 어쨌거나 그 지휘봉과 만사를 귀찮아하는 부하라도 있으면 뭐라도 하겠지, 라고 라붕이 작전관은 최대한 낙관적인 생각을 하며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선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 앞에 도달했다.

 

똑똑-

 

“허. 참. 급하기는. 짜식.”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어딘가 급해 보이는 노크 소리에 라붕이 작전관은 피식 웃고 말았다. 더위를 못 참는 성격은 이 녀석도 한 성격하리라. 라붕이 작전관은 입꼬리를 실실 올리며 건너편의 토끼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그는 산장의 문고리를 잡고선-

 

달-깍

 

“이거 문이 안 잠겨있네? 애초에 열..어?”

 

“-응?”

 

“어?”

 

“응?”

 

“어어?”

 

“-씨발!”

 

쾅-!

 

-그대로 온 힘을 다해 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빠른 몸놀림으로 바닥에 흐드러진 나무토막을 널찍한 문고리에 박아넣고선 몸을 문에서 떨어뜨렸다.

 

쿵-! 쿵!

 

 그러자 그의 예상대로 문의 일부분이 금세 쿵-! 소리와 함께 부수어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라붕이 작전관은 그 어느 때보다 빨리-리리스 때와 마찬가지일 정도로 문의 반대쪽으로 황급히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쾅-! 쾅!

 

“FBI-OPEN UP!”

 

콰-아앙!

 

 그가 산장의 유리창을 건너 뛰쳐나올 때 즈음, 결국 산장 주인인 럼버 제인이 고생 끝에 만든 나무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때렸다. 그리고 그의 뒤로 섬뜩하기 짝이 없는, 사냥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붕이 대자아앙님? 여기에 숨어 있으셨구만! 으하하하!”

 

“걸려도-하필! 저 새끼들한테!”

 

 그가 떠난 산장에 남은 것은 마시다 만 맥주캔과 산산이 조각난 정문. 그리고 찢어진 방충망이었다.

 

166)

 

“...”

 

“...”

 

 따사로이 내리쬐는 햇볕.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푸른빛의 바다. 그런 바다를 건너 녹음이 펼쳐진 땅 위로 건너오는 시원한 바람. 그러한 자연의 선물이 함께하는 곳에 네 명의 앳된 소녀들은 멍한 눈으로 자신들이 건너온 지평선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테티스. 그래서 여긴 어디죠?”

 

“...에.”

 

“빨리 대답해. 안 그러면 이 페인트 총으로 네 머리를..”

 

“그..그러지 마!”

 

 서로 비슷한 색조의 금발 머리를 한 소녀 두 명과 주홍빛 머리가 눈에 띄는 장신의 여성이 유독 그들 사이에서 작은 체구의 소녀를 사이에 두고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그 시선에 압박을 느낀 금발 소녀는 황급히 품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 손가락으로 지도 위 곳곳을 가리켰다.

 

“그..그러니까..여기가..”

 

“...여기쯤 아냐? 엘븐 목장.”

 

“아, 아! 그..그렇네! 응!”

 

“-음머어어.”

 

“...”

 

 뒤에서 들려오는 젖소들의 환영 인사. 테티스를 비롯한 나머지 세 명의 소녀들. 통칭 호라이즌 수송부대 소속 대원들은 누가 무어라 할 것 없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땅 위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도대체 그 지도 한 장으로 어떻게 대장님을 찾으려고 들었던 건가요?”

 

“으..그..그게..”

 

“그것도 그거지만. 혹시 누구 이런 총기류 잘 다루는 사람 있어?”

 

“농. 난 무리. 기본적으로 주포나 미사일을 운용하는 우리한테 이런 총기류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있겠어?”

 

“그..나..나는 가능한데..”

 

“얼떨결에 참가하긴 했지만. 이거 정말 방송에 나가도 문제없는 거 맞아? 우리 중 얘 빼고 전원 S랭크 이상이잖아.”

 

“...”

 

 쉬지 않고 쇄도하는 질문 세례에 테티스는 할 말을 잃곤 철푸덕 소리를 내며 잡초가 무성한 땅 위로 주저앉았다. 그리곤 하늘에 대고 따지듯 고개를 들어 올려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면 어떡하라고오! 그 바보 멍청이 대장은 사령관님 왔다고 우린 뒷전이고! 기껏 오늘 좀 놀겠다 싶었는데 또 훈련장으로 도망갔잖아! 치사해! 겁쟁이! 얌생이!”

 

“...애당초 대장님은 대장님 하실 일을 하신 것뿐이잖아요. 대장님이 아니면 사령관님을 누가 환대해요?”

 

“-그..그래도! 조금은 우릴 챙겨줄..”

 

“그건 네 생떼 아니야?”

 

“...우으.”

 

 설마 가장 단순하다고 생각했던 네레이드에게서 지적받을 줄이야. 테티스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금세 생떼를 멈추곤 입술을 삐죽였다.

 

“...그..그치만. 대장의 뇌파가 이렇게 꽁꽁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단 말이야.”

 

“이 스투피드(stupide). 여긴 대장의 주거지잖아. 그 송사리 같은 대장이 숨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 산골 깊숙한 곳이라도-”

 

꽈-아앙!

 

“-엥?”

 

“엉?”

 

“응?”

 

 테티스에게 무어라 한마디를 하려던 그때, 갑작스레 산 전체에 울려 퍼지는 광활한 굉음에 그 자리에 있던 소녀들과 소들은 일제히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쉴 틈 없이-그들의 청각을 후려 패었다.

 

쾅-! 쾅! 콰-앙!

 

“-음머어어어어!”

 

“음머어어-!”

 

꿍-! 쿵!

 

 예고도 없던 폭발음의 연쇄에 소들은 혼란에 빠져 목장의 울타리 안 이곳저곳 헤매다 곧장 울타리에 몸을 부딪쳤다. 그 혼란 속에서 방금까지 아웅다웅 다투던 두 명의 금발 소녀는 서로를 끌어 앉은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히익-! 이..이게 무슨 소리야?! 여..여기 근처에 뭐 폭탄이라도 있는 거야?!”

 

“나..나도 몰라!”

 

“-두 분 모두! 정신 차리세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어요!”

 

“뭐..뭣?!”

 

 폭발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자세를 잡은 세이렌의 주의에 주저앉아 있던 운디네와 테티스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세이렌 곁에 서 있던 네레이드가 황급히 운디네의 어깨를 들쳐 올리며 그녀답지 않게 큰 목소리로 동료의 귓방망이를 때렸다.

 

“얼른 일어나! 저게 뭔 소린지는 몰라도 진짜 가까워지고 있다니까?!”

 

“어, 어! 다꼬흐(D′accord)!”

 

 그녀의 외침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주저앉아 있던 운디네는 자리를 털고 재빨리 일어섰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에 지천을 울리던 폭발음은 어느새 그녀들의 코앞에서까지 들려왔다.

 

쾅-! 쾅!

 

“모두 준비! 식별 불가 적이 곧 나타납-!”

 

파-삭!

 

“-으아아아악!”

 

“-니..어?”

 

 세이렌의 당찬 전투 개시 명령에 실전 아닌 놀이에서 잔뜩 긴장하고 서 있던 소녀들의 눈이 일순간 수풀 밖으로 뛰쳐나온 인물에 의해 휘둥그레졌다.

 자신들과 비슷한 옷차림에 머리에는 둥그런 헬멧을. 그리고 허리춤에는 무언가 주렁주렁 매단 남성이 자신이 빠져나왔던 수풀 뒤를 향해 무어라 소리쳤다.

 

“이 미친 년들아! 작작해! 여긴-!”

 

쾅-! 쾅! 

 

“씨바아아알-! 이 또라이 년들아아아!”

 

“...대..대장? 저거 대장..맞지?”

 

“그..그런 거 같은데.”

 

 그런 그의 등장에 4명의 소녀는 그 자리에서 꽁꽁 얼어붙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렇게 섬을 헤매며 찾아다니던 인물이 갑자기 수풀 속에서 허둥지둥 뛰쳐나오니 머리가 상황을 못 쫓아간 탓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과 반대로 남성은 재빨리 목장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곧장 그녀들이 서 있는 방향으로 내달려왔다. 그제야 그녀들의 눈에 들어온 남성의 얼굴은-가히 귀신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멋들어지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모습에 여성진은 일제히 질겁해 특히 테티스는 간신히 일으켜 세웠던 엉덩이를 다시 땅바닥에 주저앉혔다.

 

“에? 대장? 왜 여기로 오는 거야? 에? 전혀 안 반가워! 오지 마!”

 

“대..대장님? 도대체 이게 무슨..”

 

 도대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세이렌이 앞으로 나가 남성을 맞이하려 들었다. 그러나 남성은 그녀들을 향한 속도를 멈추지 않은 채 되려 돌아가라는 듯 손을 앞으로 휙휙 내저었다.

 

“-뛰어! 뛰어! 이 녀석들아!”

 

“에? 왜..”

 

“테티스! 이 멍청아! 주저앉아 있지 말고 달리라고!”

 

“-엑!?”

 

콰-아앙!

 

“휘-유! 이제야 살맛 나네! 숲길은 답답해서 다니기 싫다니까.”

 

“꺄하핫-! 폭발! 폭발! 폭발은 예술-!”

 

 남성이 자기들 앞에 거의 도착할 무렵, 드디어 이 산 전체를 뒤흔드는 소리의 주인공들이 남성이 뛰쳐나왔던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들은 다채로운 디지털 패턴이 들어간 전투복을 입은-

 

“쟤..쟤들은 분명 앵거 오브 호드의..”

 

 -앵거 오브 호드의 일원, 워울프와 하이에나들이었다. 숲길을 얼마나 해쳐 나왔는지 그녀들은 누가 무어라 할 것도 없이 전투복 위에 온갖 나뭇잎과 가지들을 얹은 채 하나둘 어두운 수풀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대..대장님. 일단 진정하시고-!”

 

“이씨! 안 달려! 이것들아! 텨! 텨! 저 미친년들한테 죽지 싫음 텨!”

 

 하지만 그녀들에게 눈을 빼앗긴 것도 잠시. 헐레벌떡 뛰어온 남성은 그녀들에게 인사치레도 하지 않은 채 되려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가녀린 소녀를 어깨 위로 단숨에 들쳐 매었다.

 

와-락!

 

“-엑?! 변..변태! 내려놔! 빨리!”

 

 갑자기 남성의 어깨 위에 짐덩이 마냥 업혀진 테티스는 앙칼진 목소리로 반항했으나 남성은 그녀의 말은 무시한 채 여전히 멍하게 서 있는 남은 세 명의 소녀들에게 외쳤다.

 

“뭐하냐?! 얼른 뛰..”

 

“-어이. 라붕이 대장. 또 어디로 숨으려고? 우리가 누군지 잘 모르는 모양이네?”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워울프 탓에 남성이 시선이 소녀들이 아닌 수풀 속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앵거 오브 호드 대원들로 향했다. 그리곤 이빨을 갈며 그녀들에게 일갈을 내던졌다.

 

“모르긴 뭘 몰라! 숲 한가운데서 폭탄을 던져대는 미친년들이지!”

 

 남성의 분기탱천한 고함에도 워울프는 심드렁한 얼굴로 제 옆에 서 있는 폭탄마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폭발음의 주인공은 활짝 웃는 얼굴로 양손에 들린 폭탄으로 저글링을 선보였다. 

 

“아하하하-! 페인트탄을 개조해 만든 폭탄이야! 그러면 별문제 없잖아?”

 

“없긴 뭐가 없어! 나무에 페인트가 다 묻잖아! 이 똘게이 년아아아!”

 

“뭐가 됐든 얼른 날 풀어! 이 변태 대장!”

 

 진심으로 화가 난 듯 분노를 토해내던 남성은 곧장 자기 위에서 솜방망이 주먹으로 어깨를 토닥토닥 때려대던 테티스의 엉덩이를 한 차례 후려쳤다.

 

짝-!

 

“-꺅!”

 

 남성의 손바닥에 화들짝 놀란 동료의 비명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얼떨떨하게 서 있던 소녀들의 주의가 일순간 남성을 향했다. 그 시선을 느낀 건지 남성은 헉헉대는 와중에도 입을 열었다.

 

“달려! 니들도 꼬라지 보니까 게임에 참가한 모양인데. 이렇게 된 이상 나랑 같이 가야겠다!”

 

“아, 아! 네! 네! 대장님!”

 

“아..아이아이. 써?”

 

“네레이드! 허리춤에 달린 거. 쟤들한테 한 번 시원하게 뿌려 봐라!”

 

“응! 알겠어! 대장!”

 

철컥-!

 

 남성의 거친 명령에 주홍빛 머릿결의 소녀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여태껏 사용해 본 적 없던 화기를 들어 아직 수풀에서 다 빠져나오지 못한 여성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러자 여태껏 여유만만하게 서 있던 워울프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엥? 뭐가?”

 

투-두두두!

 

“으갹-!”

 

“우왓-! 뭐야! 이거!”

 

 앞의 상황을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던 후방 인원은 갑자기 쇄도하는 페인트 볼에 화들짝 놀라 다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건 선두를 달렸던 워울프 역시 매한가지였다.

 

“쯧. 권총만 챙겨왔더니. 이런 중거리는 사거리가 제대로 안 닿는단 말이지.”

 

“기동-! 기동 장치는?! 확 거리를 좁히면-”

 

“그건 대장이 금물이랬잖아. 전부 탈착하고 왔지.”

 

“-그럼 넌 쓸모없잖아! 무능! 쓰레기!”

 

“시꺼. 설마 저 대장한테 붙는 애들이 있을 줄이야. 예상 밖이네.”

 

 하이에나와 워울프가 그렇게 나무 뒤에서 아옹다옹 다투는 사이, 남성과 소녀들은 일제히 가파른 산길로 몸을 내던졌다. 그러자 남성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소녀의 뒤통수로 나뭇잎을 동반한 나뭇가지가 사정없이 찾아왔다.

 

파-삭! 퍼-석!

 

“꺅! 뭐..뭐야. 이거! 내려줘! 우선 내려줘! 이 변태 대장!”

 

“뭐? 내던져 달라고?”

 

“아니! 내려달라고! 아! 아니! 내려주세요! 제발! 앞으로 안 까불게에에!”

 

 폭발음이 멈춘 요안나 아일랜드의 산 중턱에서, 이번에는 소녀의 가녀린 비명이 사방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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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1회 연재, 좀 늦었다. 시간이 없어서 그랬다. 왜 시간이 없었냐고? 당연히 콜라보가 아니라 시험기간이었으니까. 씨벌.

나도..가고 싶었다. 콜라보...이 게임 4년 만에 첨하는 콜라본데..서울까지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흑..흑흑...야발...왜...취업 전에 하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