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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화: https://arca.live/b/lastorigin/80358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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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이 지나, 애쉬의 상단과 우리는 헬반도 왕국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라고 일컫는 '아이오지'에 도착했다. 성문을 열고 들어가자, 유라 백작의 영지하고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거대한 성벽은 물론이고 수도에 몰려든 수많은 인파를 볼 수 있었다. 여러 지방에서 만든 물건들이 교류하고 시골 사병들과 다르게, 군율이 잡힌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애쉬는 상단의 물품들을 판매하고 올테니, 이 김에 수도를 한 번 둘러보는 것도 좋다며 내게 권했다. 사실 그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꼼꼼하게 왕국의 정보를 알아갈 계획이었다. 일단은 모험자 중앙회에 도착해, 레드 리자드 퇴치를 세운 공적을 인정받아 브론즈 메달로 모험자 증표로 바꾸고, 자잘한 보상을 받은 우리는 왕도의 대로를 느긋하게 걸어갔다.


물론 인외종을 노예로 부리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았지만... 애써 못 본 척하며 걸어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소완과 리리스도 굳은 표정으로 그 모습들을 지나쳤다. 채찍을 휘두르는 인간과 등짝에 상흔을 남긴 채 비명을 지르는 수인, 목에 구속구를 찬 채 창관 홍보를 하는, 귀가 잘린 엘프들... 특히나 내게 전단지를 보여주며 영업용 미소를 띄우는 엘프를 보자 마음이 괜스레 착잡해졌다.



"세레스티아..."

"예?"

"아냐. 가자."

"..."



세레스티아가 혹시나 살아 이 세계로 전이했다면 틀림없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으리라. 애써 무시를 하며 거리를 지켜보다 거대한 구 같은 것이 둥둥 떠있는 건물을 보았다. 그 건물에는 망토와 지팡이를 두른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익숙한 옷차림에 추측을 해보건대 마법사 같아보였다.


생각해보니, 이 세계는 기계 대신 마법이 발달한 세계였지. 아마, 우리 아이들 중 한 명을 마법학교에 입학시켜 마법을 배우게 한다면 이 세계에서 꽤 잘 활용할 것 같았다. 누가 마법학교를 가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 머릿속에선 이공간에서 소이탄을 꺼내 사출하던 메이를 떠올렸다.



"메이를 마법학교에 입학시키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그리고 흐음, 장기적으로 왕도에 있으면서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모아 줄 아이들도 필요한데."



그렇게 생각을 하던 난 이내 보수라고 받은 은화들을 생각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마법학교 학비랑 정보 요원들을 배치하며 지원하는 것도 다 돈이 있어야 하지... 지금 겨우 브론즈 메달을 달은 모험자의 수입으론 정보 수집을 위한 자금을 모으기엔 택도 없었다. 하아, 애쉬드레곤처럼 나도 장사를 해야 할까? 근데 내가 뭔 재주가 있어서... 이 세계로 전이하기 전 내가 다니던 대학의 전공도 하필 이 세계에서 제일 필요가 없는 국문과였는 걸.



"하아..."

"주인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돈이 문제야 돈이..."

"돈이요?"

"... 그래.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사령관으로 빙의해서 전이하고, 전투에서 만큼은 믿음직한 아이들과 이 세계에서 떨어진 건 좋은데, 내게 다른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가 오지 못했단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난 라스트오리진 세계의 사령관처럼 유능하지도 않는 일개 대학생이었는 걸.


하지만 암담해하지 말자. 이런다고 내 처지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내 옆에는 나를 믿고 있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함부로 우울해하진 말자.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걸어가던 그때였다. 별안간 큰 고함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몰려 웅성거리는 소리에 뭔가 싶어 슬쩍 사람들을 헤쳐가며 간 곳에는 뒷골목에서 꽤나 힘을 쓸 법한 불량한 인상의 남자들이 한 여자를 둘러 싸고 있었다.



"어이, 여자. 지금 뭐라 했냐?"

"다 큰 어른들이 겨우 아이 하나를 무자비하게 때리는 것이 말이 되냐 물었습니다."

"그녀석은 우리가 할당한 일을 하지 못했어.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그런 일 하나 제대로 못하면 혼나는게,"

"그렇다고 하여 소매치기 따위를 시키는 겁니까?"



여자는 담담한 얼굴로 아이와 남자들의 앞을 막아섰다. 남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푸흐흡 웃으면서도 하얀 롱코드에 검은 백, 그리고 붉은 줄을 적당히 정리한 랜스를 본 여자를 보자 제각기 무기들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자의 모습을 보자 그저 평범한 양아치들의 시비려니 하고 지나가려던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검정 스타킹에 하얀 부츠, 아찔한 몸을 흰 코트로 가린 그녀는 가녀린 몸매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법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분홍 올림머리를 한 미녀, 이 세계 기준으로 봐도 아름다웠지만 내가 넋을 잃은 이유는 그녀가 아름다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정체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올리비아... 스타수어?"



남자들의 위협에 랜스를 뽑아들고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춘 그녀의 이름은 올리비아였다. 스토리 상으론 레모네이드 델타의 부하이면서도 동시에, '가구'취급을 받던 오드리 자매의 둘째... 당혹스러움이 잔뜩 머릿속에 밀려들었다. 분명 리리스와 메이의 말로는 '별의 아이에게 모두 전멸'했다던 오르카 대원이 어째서 이 세계에 있는 걸까? 설마 외형만 비슷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가 붉은 줄이 달린 랜스를 손으로 붕붕 돌리며 말했다.



"... 펙스 연합 왕국의 사자로 온 올리비아 스타수어입니다. 이 이상 제게 위해를 가하신다면 곱게 끝내진 않겠습니다."



펙스.


그리고 올리비아 스타수어.


뒤통수가 댕, 울렸다. 나도 모르게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가 그녀를 보았다. 올리비아는 경계하는 것도 잠시, 내 목에 걸린 브론즈 메달 증표를 보자 입을 열었다.



"모험자... 이십니까?"

"... 올리비아."



올리비아 스타수어. 아마 내가 자원을 50만 이상 갈아먹어가며 뽑은 바이오로이드였을 것이었다. 아름다운 외모, 하지만 내 자원을 모조리 폭사시킨 애증의 섹돌이었다. 설마, 이 올리비아... 오르카의 올리비아가 아닐까, 나는 황급히 그녀의 앞에 달려가 선 뒤 손을 꼭 잡았다.



"올리비아! 기억 안 나? 나 사령관이야!"

"누, 누구시기에 제게 손을 잡으시는 겁니까!"



그리고 올리비아는 당혹스러운 듯 손을 탁- 쳐냈다. 어라, 분명 올리비아긴 한데. 어째서 사령관인 나를 기억 못하는 거지? 머리가 복잡해져왔다. 짧은 침묵이 흐르던 그때였다. 별안간 올리비아의 붉은 동공이 커지더니 대뜸, 내 손을 잡고 뒤로 끌었다. 순식간에 뒤로 자빠졌고 갑자기 왜 미냐며 물으려던 그때였다.


챙-


소리와 함께 올리비아의 랜스가 불량배들의 칼을 막아냈다. 잠시 심호흡을 하던 올리비아는 무기들을 모두 쳐낸 후 고개를 돌려 내게 말했다.



"물러서요!"

"올리비아... 기억 안 나는 거야? 나야, 나... 사령관이라고!"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펙스 연합 왕국의 귀족. 당신같은 모험자와는 마주친 적이 절대로 없습니다!"

"... 올리비아."



그럼 올리비아는 오르카의 올리비아가 아니었던 건가? 그렇다면 올리비아가 이 세계에서의 올리비아? 아니,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도 바이오로이드가 존재하는 건가? 하지만 분명 이 세계는 라스트오리진의 세계관처럼 과학이 발달한 세계는 아닌데.


올리비아가 다시 랜스를 들어 불량배들을 겨누며 서 있던 그때였다. 별안간 허공에 그림자가 생기더니 이내, 올리비아를 가로 막고 섰다. 다름아닌 소완과 리리스였다. 그리고 두 여자 모두 익숙한 외모인 올리비아를 보자 당황해하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 올리비아씨?"

"올리비아 양... 살아 계셨사옵니까?"

"대, 대체 제 이름을 어떻게 다 아시는 겁니까? 저는 당신들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

"이 년놈들이 단체로 가족 상봉이라도 했냐!"



올리비아가 황급히 칼을 휘두르던 불량배를 랜스로 막았다. 리리스와 소완은 어쩐지 힘겹게 막고 있는 듯한 올리비아를 보자 어리둥절하며 대답했다.



"뭐야... 올리비아? 너... 인간 상대로 왜 이렇게 진심을 다해?"

"비키십시오, 왜 제 이름을 아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괜히 끼어들었다 분란에..."



그때, 리리스의 뒤를 향해 나이프를 들고 찌르기 자세를 취하며 달려드는 불량배가 그녀의 눈에 보였다. 올리비아는 다급히 나이프를 쳐내려 하던 순간이었다. 리리스는 바로 몸을 틀곤 나이프를 쥔 불량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별 일 아니라는 듯 그 불량배의 팔을 잡고,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순식간에 거구의 불량배가 떴다. 리리스는 담담히 그 불량배의 팔을 마치 휘두르듯 내지르자 골목으로 불량배가 튕겨 나갔다. 엄청난 괴력에 다른 불량배는 물론이고 올리비아까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물론 나야 리리스가 저런 허접한 공격에 당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순식간에 이목이 집중됐던 터라 그리 달갑진 않았다.



"무, 뭔데 여자이면서 저런 힘을?"

"겨우 브론즈 메달 모험자잖아?!"

"주인님, 리리스가 잘못 보지 않았더라면 올리비아가 맞지 않나요?"

"올리비아 양.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희는 물론이고 부군까지 못 알아 보신단 말이옵니까?"



소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습을 한 불량배의 팔을 잡곤 으스러뜨렸다. 비명을 지르며 칼을 떨어뜨리는 그와는 대조된, 너무나 차분한 표정의 그녀들의 시선은 모두 올리비아에게 향했다. 반면 올리비아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띄우며 나와 그녀들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소완이 불량배를 내팽개치고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질책하듯 올리비아에게 항변했다.



"부군을 일으켜 세우지도 않고 뭘 하시는 겁니까? 그러고도 당신이 오르카 대원인가요?"

"대체 당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오르카라뇨! 그게 대체..."

"그만하자, 리리스. 그리고... 소완."



확실히, 몇 번이고 부정하는 것을 보니 여기서 만난 올리비아는, 오르카의 올리비아가 아닌 것 같았디. 기억상실인지, 그게 아니면 정말 평행 세계의 올리비아인지 점점 헷갈리던 나는, 왕도에 도착하기 전 간간히 애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레모네이드 가문의 여섯 여왕이 다스리는 나라, 펙스 연합 왕국... 분명 올리비아가 이렇게 소개했다면.



"... 레모네이드, 델타?"

"무엄합니다... 어찌 여왕 폐하의 존함을 함부로..."

"올리비아씨! 대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요? 델타, 그 정신이상자를 여왕으로 부르다니!"



움찔, 순간 올리비아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내 랜스를 그녀들에게 겨누며 말했다.



"당장 참형을 해도 마땅한 발언... 한낯 모험자 분들이 폐하의 존함을 함부로 왈가왈부 할 순!"

"... 놔둬. 리리스. 그리고 소완."



나는 손을 털고 일어선 뒤 아이를 보내주곤 그녀들에게 다가왔다. 소완과 리리스가 뭐라 항변을 하려 했지만 나는 눈짓을 하곤 올리비아를 보다, 꾸벅 고개를 숙였다. 물론 리리스와 소완이 그 모습을 보며 무어라 첨언하려 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최대한 존대를 하며 대답하였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 처럼.



"... 죄송합니다 올리비아 양. 제가 동명이인을 조금 헷갈렸던 것 같습니다. 또한, 올리비아 양이 모시고 있는 여왕의 존함을 부르는 무례를 한 바.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 저,"



올리비아가 무어라 말하려던 그때였다. 별안간 군마들이 달려오더니 대뜸 우리의 앞을 막아 섰다. 고급스러운 갑옷을 입은 기사. 다름 아닌 왕국의 기사단장인 홀란드였다. 그는 나를 보더니 목례를 하며 인사했다.



"아아, 여기서 또 뵙는군요, 라붕 공!"



... 들으면 들을수록 참 정감 안 가는 이름이었다.


하여튼 그는 말에서 내리더니 이내, 올리비아를 보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윽고 나와 올리비아의 자초지종을 들은 은 홀란드는 다시금 고맙다며 내게 사례했다. 잠시 바깥에 일이 있어 나갔다는 그녀가 당한 난처한 일은 자칫 잘못하면 국가간의 외교 문제로 커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해하던 그는 올리비아에게도 제차 사과했다.



"불량배들을 조만간 소탕하려 했는데, 펙스 왕국의 사신이신 올리비아님께 무례를 범하게 되어 심히 송구합니다."

"됐습니다. 어차피 이 분들이 다 구하러 와주셔서 크게 다치진 않았습니다."

"지금 아이오지 왕궁에선, 우리의 폐하이신 '쿠쿨리우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왕궁으로 가도록 하지요."



그렇게 대답한 올리비아는 붉은 눈동자로 몇 번이고 쳐다보다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함이... 라붕 공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올리비아 양, 적당히 하시고 정신 차리,"

"죄송합니다. 제 동료들의 무례를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이 올리비아는 분명, 라스트오리진의 올리비아가 아니었다. 나를 전혀 모르겠다는 태도, 그리고 경계가 가득한 눈빛. 게다가 이 세계 사람인 홀란드 기사단장에게 '사신'으로서 예우를 받는 이 세계의 올리비아였다. 분명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도저히 사령관인 나를 모르는 듯한 모습에 나는 한 발짝 물러 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더 난리를 피운다면 조용히 정보를 수집한다는 내 원래 계획에도 어긋났고. 무엇보다, '레모네이드 델타'라는 말에 그녀는 한눈에 봐도 당황스러워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레모네이드 델타' 라는 여왕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며, 그 레모네이드 델타의 문리버 인더스트리 휘하 바이오로이드인 '올리비아 스타수어'가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리리스, 소완."

"네, 주인님."

"네, 부군."

"... 아무래도 이 세계에. 레모네이드 비서들이 있는 것 같아."



그러자 두 아이들은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데, 델타는 이미 주인님에 의해 토벌되지 않았나요? 어째서 이 세계에 있는 거죠?"

"리리스 양의 말이 맞사옵니다. 분명 부군께서도 죽음을 확인하지 않으셨습니까?"



확실히, 리리스와 소완의 말은 내가, 사령관에 빙의하기 전 본 스토리였다. 분명 델타는 오르카 세력에 의해 종속되었고, 델타는 문리버 회장의 냉동보존고와 함께 폭사했다. 하지만, 어째서 이 세계에 다시 나타나게 된 걸까. 특히나 델타는 인성이 파탄난 여자지만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생명공학이 뛰어났다는 설정이 있었다면... 이 세계에서 바이오로이드를 만들었다는 가설 또한 추측해봄직 했다. 특히나, 나 뿐만 아니라 리리스와 소완 또한 올리비아를 기억한다는 것은... 확실한 올리비아였단 방증이었다.



"... 델타는 어쩌면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몰라."



델타가 이 세계에서 바이오로이드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델타도 바이오로이드. 바이오로이드가 바이오로이드를 양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분명, 라스트오리진의 세계관에서도 그렇게 언급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올리비아를 생산했다면... 내 과도한 추측일 수도 있겠지만...


바이오로이드의 생산을 명령 할 수 있던 펙스의 회장을 부활시키는데 성공 시켰을 수도.


만일 이 세계가 과학 기술로 돌아가는 세계라면, 죽은 인간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한 세계지만, 마법이 존재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웹소설에서나 들을 법한 설정이었지만 '사자 소생' 마법이 존재한다면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 또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만약 그렇다면, 발전된 과학력과 마법을 결합하여, 바이오로이드를 만드는 일 또한 허무맹랑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사령관'이라는 존재로 환생한 것이 알려진다면, 필시 펙스가 만든 '펙스 연합 왕국'과 필시 적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동시에 나는, 이러한 가설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더욱 불리한 상황에 위치해있을 것이었다. 내게 있어 닥터와, 무적의 용 같은 뛰어난 바이오로이드는 이미 전사했고, 오로지 내 힘으로 그들과 대적해야 했다. 스토리를 봤다는 치트키는 존재했지만...



"... 우리가 불리해."



바이오로이드를 이미 이 세계에서 만든 기술력이라면, 그리고 그러한 기술을 뒷받침해줄 국가까지 건설했다면 레모네이드의 성향을 알더라도 불리한 게임이었다. 군사교육이라곤 군대에 갔다 왔던 이력 하나 밖에 없던 내가, 그리고 특출난 재능 하나 없는 내가, 심지어 전투하나 하지 못하는 내가 과연 상대할 수 있을까?



"... 하아..."



처음에는 그저, 내가 서약을 한 아이들과 이 세계로 왔다는 가벼운 생각, 그리고 그녀들이 겪었던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이 세계에서 별 마찰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은연 중에 바라왔다. 하지만 어떻게 이 곳에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이미 거대한 세력을 구축한, 그리고 어쩌면 회장까지 살렸을 지도 모르는 펙스 연합 왕국을 상대로 언제까지 회피하면서 지낼 수는 없었다.


결국 나도 라스트오리진의 사령관처럼 개같이 굴러야 한다는 뜻인가...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소완, 그리고 리리스."

"... 네! 주인님."

"부군, 하명 해주시옵소서."

"... 우린 어쩌면 펙스와 했던 전쟁들을... 다시 여기서 할 지도 몰라."



정신을 차리고, 나는 그들과 대적해야 했다.



**



"올리비아님, 우리 왕국에서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일을 겪으신 일에 대해 진심을 다하여 송구함을 전합니다."

"..."

"올리비아님?"



한편 왕궁으로 들어가는 큰 대로, 좋은 말을 탄 올리비아는 죄송함을 감추지 못하는 홀란드 기사단장을 멍하니 보다, 이내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 아, 예. 벼, 별일 아니었습니다. 괘념치는 않았으면 합니다."

"송구합니다. 더욱 극진히, 대접토록 하겠습니다."

"환대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시선은 홀란드에게 향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 헬반도 왕국의 화려한 왕궁을 주시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단지 허공에 향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델타의 명을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 홀란드 기사단장님께선 그 여행자 분들을 아시는 것 같으시더군요?"

"아, 하하... 그게, 사실 그분들께 몇 번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주 유능한 모험자 분들이었습니다. 기사단에 두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



올리비아는 생각에 잠겼다. 델타에 의해 만들어진 그녀는 펙스 연합 왕국, 델타의 비서에 임명될 만큼 뛰어난 전투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적어도 보통의 인간보다 뛰어난 전투력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하여 완벽히 마법을 배우고, 무술을 배운 인간을 손 쉽게 제압할 정도의 무력을 지닌 존재는 아니었다.


올리비아는 너무도 쉽게 인간을 제압했던 요리사와 구속구를 찬 노예를 떠올렸다. 델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바이오로이드라는 존재를 아득히 뛰어 넘는 괴력의 존재들. 하지만, 실험 삼아 만든 바이오로이드였던 '페로' 개체는 보통 인간보다 약간 강한 정도였다.



"... 마족?"



그녀가 델타에 의해 생산되었을 때 들었던 풍문, 이 세계에서는 재앙으로 불릴 만큼 강한 '마족'이란 존재가 나타났단 소식을 들었다. 물론 델타를 비롯한 여섯 여왕들은 콧웃음을 치며 무시할 뿐이었지만, 그 마족이란 존재가 펙스 연합 왕국을 제압할 정도로 강하다면 말이 달라졌다.


만들어지자마자, 처음 한 일은 자신과 닮은 인외종인 수인종들을 물리적으로 '분해'하여 바이오로이드를 생산할 수 있는 '영양'을 만드는 일이었다. 영양과, 철광석에서 추출한 '부품'그리고 뛰어난 펙스 연합 왕국의 고유 자원인 '전력'과 델타만이 아는 마법의 약물을 조합해 만든 존재가 자신, 그리고 페로를 비롯한 존재들이었다. 현격히 그들은 인간보다 강한 존재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강했을 뿐, 인간을 압도하진 않았다. 하지만 오늘 보았던 여자들은 너무도 손쉽게 인간을 제압했다. 자신처럼 만들어진 존재도 아니었으며, 실패작이었던 삼안의 고양이 바이오로이드와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 위에 군림하는 한 남자를, 오늘 마주쳤다. 자신의 이름을 알면서도, 어딘가 그리운 듯한 뉘앙스로 부르는 그의 모습을 올리비아는 마음속으로 그렸다.



"... 그 남자."

"... 예?"

"아닙니다. 아무... 것도."



자신보다 강한 이들을 부리는 그 남자라면... 어쩌면 자신과 닮은 생물체를 산 채로 분해기에 가는 짓 따위는 그만 둘 수 있지 않을까? 잘 때마다 환청처럼 들리는 그 비명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말고삐를 쥔 올리비아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델타가 혹시나 자신의 주변에 붙인 스파이가 있을까, 애써 그녀는 냉정해하며 그에게서 관심을 끄려 했다. 하지만, 그는 델타의 명령에 복종하는 '인형'에서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일 수도 있었다. 그가 '마족'이든, 아니면 정말 초월적인 존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를, 그리고... 언니랑 동생을 이 지옥에서 구해줄 순... 있겠지...?


올리비아는 말고삐를 꾹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기사단장?"

"예, 올리비아님."

"... 혹시, 그 남자에게 관심이 생겼는데. 자세히 제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라붕 공 말씀이십니까?"

"라붕... 공이요?"

"하하, 실력있는 모험자죠. 라스트오리진 라붕 공 말입니다."



라스트오리진... 라붕 공. 올리비아는 음미하듯 그 이름을 외웠다. 대단하다고 칭송하는 기사단장의 말과 다르게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선 순수한 그의 모습에.


올리비아는 제 볼에서 처음으로 발그레, 홍조가 피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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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뭐하다 10화까지 썼는지 몰?루.


일단 이건 내가 대충 설정 씨부리면서 창작 텝에 이런 거 쓰면 어떨까 하다가 생각한 건데, 여기 이후론 대강 머릿속에 생각해둔 터라 며칠 쉬다가 다시 연재해야 할듯...


쉬면서 마스크 티타니아 비키니 찌찌터치나 할 것 같긴 한데, 댓글로 혹시 뭐 궁금한 거나, 아님 피드백 같은 거 이야기하면 참고 할 생각임. 이 세계에 전이한 라붕이 측 섹돌들이 얼마나 강한지 설정이나 캐릭터 소개를 라오 설정으로 써달라 하는 댓글 나오면 설정 부록처럼 써볼 생각임.



그리고 델타 부관으로 얘 쓴 이유는... 얘 때매 100만넘게 쌓았던 자원 다 날리고 10만 이하까지 털렸음... 얘는 나한테 애증의 관계임... 그리고 리스트컷은 이미 사령관 쪽으로 전향했기 때문에 별의 아이의 습격에서 죽은 것으로 처리 됐고 이 세계 델타의 부관이 필요했는데 고민하다 얘를 쓰게 됨.


처음으로 글 10화 쓰면서 이래저래 말이 많아졌넮... 하여튼 읽어줘서 고마어! 비추도 신경 쓰이긴 하는데 쭉 스크롤 내리다가 마지막에 굳이 비추 다는 거 보니... 관심으로 생각하면 되겠지?


부족한 글 열심히 읽어주는 라붕이들 추천 댓글 고마어!



p.s: 이번 헬반도 수도랑 왕 모티프는 아이오지(아오지)의 국왕 쿠쿨리우스(꿀꿀이우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