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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화: https://arca.live/b/lastorigin/8043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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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왜 라 만차 대삼림으로 파견한 내 병력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거냐!"

"고, 고정하시옵소서, 백작 각하. 아무래도, 대삼림의 강력한 몬스터에게 모두 몰살당한 것이 아닐까..."

"끄응... 대체 무엇이 대삼림에 존재하기에 그러는 것이냐. 뭐, 소문처럼 정말 드레곤이라도 존재하는 것이냐?"



유라 백작은 몇 번이고 머리를 부여잡으며 시름에 잠겼다. 수인족 노예를 잡기 위해 파견한 소규모 병력은 2주가 지나도록 돌아 올 생각이 없었다. 만일 병력이 있었더라면 그 묘인족 여자아이의 탈출을 막았을 지도 몰랐다. 백작은 디룩디룩 살이 올라온 배를 몇 번이고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침대에서 만큼은 꽤 좋은 비명을 울리던, 유려한 몸매의 그 묘인족은 마치, 대삼림의 숲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전혀 다른 수인종 같기도 했다. 아름다운 오드아이에 부드러운 하얀 머릿결, 그리고 탐스러운 유방의 감촉을 기억하는 듯, 그의 우악스러운 손이 몇 번이고 주무르는 시늉을 했다.



"아무래도 직접 모험자를 고용하여, 숲의 탐색을 맡겨야 할 듯하다."

"... 하오나, 각하. 현재 우리 영지에서는 그러할 임무를 맡길 자금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요 며칠 전, 펙스 연합 왕국으로 많은 뇌물을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어찌할 방도가 없느냐? 싸게 굴릴 수 있으면서도 제법 실력 깨나 쓰는 브론즈, 혹은 실버 모험자가 있느냐?"



유라 백작의 질문에 집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손뼉을 짝, 치며 대답했다.



"요새, 풍문으로 듣긴 했지만 꽤나 화려한 전공을 올린 모험자들이 있다 들었습니다 각하."

"모험자 파티 이름이 무엇이더냐?"

"브론즈 메달의 모험자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수인 노예 한 명과 요리사, 그리고 남자 한 명으로 이뤄진 파티라고 하더군요... 이름이 아마."



오르카, 라고 하였습니다.


집사의 대답에 유라 백작은 귀찮은 듯 손짓하며 대답했다.



"좋다, 그러면 그 오르카인지 뭔지 하는 그 모험자 놈들을 내 앞으로 데려오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각하."

"겸사겸사, 그놈들에게 그 건방진 수인 녀석들도 잡아 오라 시키면 되겠군."



유라 백작은 희죽거리며 여전히 손을 주물럭거렸다. 그때, 백작의 집무실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 와라, 짧게 백작이 대답하자 문이 열리고, 이윽고 그녀 앞에는 거의 헐벗은 수인 여자 아이 둘이 불안한 발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 백작의 입꼬리가 미약하게 올라갔다.



"흐음... 그 묘인족 년보단 별로 꼴리진 않지만, 아무렴 좋지. 자, 어서 옷을 벗도록 해라."

"..."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냐?"

"... 집에 보내주세요... 나리... 아빠가 보고 싶어요."

"아빠? 푸하하하! 좋다. 그렇다면 너희 아빠를 한 번 보여주어야겠구나!"



유라 백작은 킬킬거리더니 집무실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집사에게 나가라는 듯 손짓했다, 약간은 역겨운 얼굴을 애써 숨겨가며 집사가 뒷걸음질 치듯 집무실에서 나갔다. 어깨를 벌벌 떠는 수인족 소녀들에게 유라 백작은 옷을 벗으며 다가왔다. 이내 그는 발기한 자지를 꺼떡거리며 그녀들에게 보여주었다.



"자, 이것이 오늘부터 너희들이 섬길 아빠다. 사랑을 다해 뽀뽀하려무나."



두 수인족 소녀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



"흐흥... 아아♥ 헤헤..."

"리리스 양. 굳이 노예인을 꼭 새기셔야 했사옵니까?"

"후후... 소완씨. 너무 질투는 하지 마세요♥ 부러워하는 거 다 보이니까요."



아이오지에서 유라 백작의 영지로 돌아온 후,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의뢰를 받으며 차곡히 돈을 모으던 나날이었다. 내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애쉬드레곤이 틈날 때마다 의뢰를 맡겨 어느새 이 영지에서 생활비로 쓸 돈은 넉넉하게 모으고 있었다.


참고로 리리스는, 치골 부근...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자궁에 위치한 곳에 노예인을 새겨버렸다. 마치 패션 문신인 것처럼, 그녀는 흐뭇한 표정으로 날 보았는데



하필 그녀가 손수 창관 성인용품점에서 사온 시스루 메이드복을 입었던 터라 마치, 내가 변태 성욕을 지닌 주인 같아 보였다. 안 그래도 밑가슴 아래로 희미하게 비치는 붉은 밧줄이 너무도 신경쓰이는데 말이다. 이 옷과 자궁 노예인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 했지만 리리스는 내게, 완벽한 '주인님의 메이드'로 완벽히 신분 위장을 할 수 있다고 우겼다.



"후후... 모험자 파티 오르카에서 저는 주인님의 충실한 노예 역할이잖아요♥ 혹여 노예인은... 오메가가 세뇌 귀걸이를 저한테테 걸어 주인님을 배반 시키고자 한다면 이렇게 저항해서..."

"리리스 양. 이상한 성벽을 어떻게든 잘 포장 시키는군요. 참 천박하기 그지 없사옵니다."

"어머, 소완씨. 부럽다는 말을 참 독하게도 말씀하시군요. 그 멍청한 스토커처럼 질투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 스토커와 저를 비교한단 말씀이십니까? 모욕도 적당히 하시길, 리리스 양."



그리고 늘 그랬듯,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라스트오리진에서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을 이렇게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니 어이 없게 웃음이 나와버렸다. 어차피 말린다 해도 또 티격태격 거릴 테고. 내가 피식거리는 모습을 봤는지 소완이 먼저 고개를 숙이며 소란을 피운 것에 사과했다.



"아냐, 소완. 그냥...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좋네."

"옛날... 말씀이옵니까, 부군?"

"그래, 너희들이 오르카에서 티격태격 거리던, 그때 말이야."

"... 그때라."



소완은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더니,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참 좋았사옵니다... 그때가. 저는 주방에서 아우로라와 포티아를 이끌며 부군을 위한 식사를 준비했었지요. 가끔 오르카 인원들을 위해 요리교실도 운영하였고..."



그렇게 이야기하던 소완은 입을 다물었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활발해하던 리리스의 표정이 잠시 굳어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하긴, 리리스는 이곳에 온 뒤로 유난히, 컴페니언 자매들을 그리워했다. 내게 애써 티를 내려 하지 않았지만 노예처럼 다뤄지던 수인종들을 볼 때마다 그녀의 미간은 연신 찌푸려졌다. 



내색하지 않으려 하진 않지만 오르카에서 내가 컴페니언을 다루던 태도와는 전혀 상반된 이 세계 인간들의 태도를 그녀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흐르던 그때였다. 별안간 우리 앞에 병사 몇 명, 그리고 정장을 입은 중년의 신사가 멈춰섰다. 집사의 복장을 하고 있는 그는 걸어와 가볍게 목례했다.



"혹시, 라스트오리진 씨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유라 백작 각하께서, 라스트오리진 씨를 뵙고자 합니다."



유라 백작이라면... 이 영지의 영주 말인가? 가는 게 이득일까 잠시 고민했지만, 큰 의뢰를 받는다면 가볼만 한 가치가 있겠지. 생각보다 수중에 돈도 빨리 모일 테고. 흔쾌히 승락하자 집사는 우리를 마차에 태운 뒤 성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포석대로를 따라 쭉 달려나가자 어느 정도 고풍스러운 성이 보였다.


마차에서 내린 나와, 리리스, 그리고 소완은 집사의 안내에 따라 응접실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걸어가면서도 우리는 구속구를 찬 채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는 수인종들의 모습을 보았다. 이 나라의 귀족들 주 수입원이 노예 무역이라더니...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텅 빈 동공으로 하늘을 보며 끌려가는 수인족들을 보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씁쓸해졌다.


라스트오리진 세계에서도 인간은 바이오로이드 위에서 마치, 신마냥 군림을 했으면서.


이곳의 세계에서도 인간은 자신보다 문명이 덜 발달한 존재들 위에서 군림하려 하는구나.



"리리스."

"네, 주인님."

"최대한, 표정 관리해. 역겨운 건 알겠지만..."

"알겠습니다, 주인님..."



신체적 학대는 물론, 여자 수인족들에겐 성폭행의 흔적까지 느껴진 것을 본 소완의 표정 또한 심각하리만큼 굳어졌다. 오르카에서는 이야기만 들었던 멸망 전 인간의 잔인함과 탐욕을, 이곳에서 그녀는 느끼는 듯했다. 애써 두 바이오로이드의 굳은 감정을 다독여가며 어느새 우린 응접실 앞에 도착했다.



[꺄아아아악! 그만... 그만! 아파요, 아프다고요!]

[씨발, 가만히 있어! 내가 아직 싸지도 않았단 말이야!]

[엄마... 살려줘요... 아흑!]



채찍으로 때리는 소리와 흐느끼듯 울부짖는 소리. 집사는 고개를 차마 들지 못한 채 머뭇거리다 노크를 하곤 문을 살짝 열었다. '오르카 일행을 데려왔습니다.' 그 대답에도 불구하고 신음소리는 줄어 들 생각이 없었다. 문을 닫은 집사는 우리에게 미안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잠시 응접실에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지금 집무실에선... 백작 각하가 바쁜 용무로..."



"흥. 안 봐도 그 저질스러운 성욕을 채우는 거겠지. 수인종들을 상대로 말이야."

"리리스, 조용히 해. 집사님께 무슨 민폐,"



"고대 중국에서도, 여색을 즐긴 황제들은 적어도 낮 동안은 정사에 몰두하는 척이라도 했사옵니다. 이 자는 체면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것 같군요."

"... 죄송합니다."



솔직히 나 또한, 저 문 너머로 어린 여자 수인종들에게 성적 학대와 강간을 자행하고 있을 그 역겨운 모습이 보기 싫었지만,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솔직히 라스트오리진에서 인간들은 '테마파크'라는 것을 만들어 B, C구역에서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했고, 스너프 필름을 방불케하는 행위들을 했다는 것이 스토리에서 나왔을 땐 그저 과장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어쩌면, 라스트오리진의 테마파크처럼, 인외종들을 잡아다 그런 짓을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애써 이를 악물며 나는 응접실로 걸어갔다. 평소와 다르게 굳은 내 모습을 본 두 아이들은 침묵할 뿐이었다.


그렇게 응접실에 들어와 간단한 다과를 먹으며 기다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응접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금색 가운을 걸친 채, 디룩디룩 찐 비곗살에는 개기름이 번뜩거렸다. 머리가 다 벗겨진 그 돼지가 문신이 있으면 정말 '문신돼지육수국밥충'을 떠올리게 하는 그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그는 희죽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명성이 자자한 '오르카' 분들을 뵙습니다."

"... 바, 반갑습니다. 유라 공."



그리고 유라 백작의 시선은 동시에, 메이드 복장을 한 리리스를 쳐다보았다. 시선만으로도 불쾌했는지 그녀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는 희죽거리며 웃은 뒤 리리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오, 제법 강한 수인종을 노예로 부리시는 건가 보군요. 어떤 종류의 수인종입니까? 귀는 보이지 않는데... 혹시 귀를 자르기라도 했습."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사옵니다."



그리고 소완이 딱 잘라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리리스의 손을 애써 꾹 잡았다. 리리스의 두 호박색 눈동자가 희번뜩했다. 몬스터를 주먹으로 때려 죽일 때나 보이던 그 분노와, 그리고 그 분노가 모두 집약된 손을 애써 소완이 막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실례했습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들이 훌륭한 공훈을 세우셨다기에 믿기지 않아 제가 실례를 범했군요."

"... 아닙니다."



그리고 나 또한, 내 아이들에게 욕정을 하는 듯한 백작의 모습이 역겨워졌다. 저 탐욕이 가득한 손으로 방금까지, 수인종 여자 아이들을 무참하게 짓밟았겠지. 애써 감정을 숨긴 우리 셋은 자리에 앉았고, 백작은 역시나 우리에게 의뢰를 맡겼다.


라 만차 삼림의 수인 마을로 파견된 병사들이 모두 행방불명되었는데, 이들의 흔적을 자신들의 병사와 같이 찾아달라는 부탁. 언젠가 일어날 일이긴 했지만 다시금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국 다시금, 수인 마을들을 뒤집어 엎겠단 소리구나.



"정말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유라씨?"

"예 그렇습니다. 제가 특별히 마음 먹고 고용했던 아이오지 기사단 출신 호위대장도 같이 실종이 되었지요. 요 며칠 전 라 만차 대삼림에서 마족이 나타났느니, 드레곤이 나타났느니 뭐니 그런 소식이 들렸는데... 혹시나 숲을 찾아가다 그 정체불명의 것에 습격을 받았는지도 모르겠고..."

"..."



유라 백작은 킬킬거리며 우리에게 말했다.



"저희 병사들을 인솔하여 수인 마을의 수인종들을 모두 포획해 주시고, 필요하다면 제 부대의 흔적을 찾아주십사 부탁드립니다. 보수는 넉넉하게..."

"모험자는 노예 매매에 일체 관여를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주먹을 나도 모르게 말아쥐었다. 내게 사람과 닮은 그 사람들을 잡아다 노예로 판매를 하라니. 물론 그 돼지 백작은 내 심기를 읽지도 않은 채 주저리 말을 이어갔다. 불법이긴 하지만, 수입이 제법 짭짤하게 나올 테고, 자신이 입을 다물어 줄테니 같이 일을 해보자고.


요 며칠 전, 애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나라의 귀족은 무능하면서도 탐욕스럽기 그지 없는 집단들이라고. 왜 그가 그런 평을 남겼는지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인 마을에 숨겨 놓은 나의 전력들이 자칫 잘못하면 외부에 공개가 될지도 몰랐다.



"... 알겠습니다. 제가 맡도록 하죠, 유라씨."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모험자들을 고용해 일을 벌일 생각이니, 내가 어느 정도 처리를 해야겠지. 그렇게 의뢰를 받아들이고 백작의 성을 나오는 길이었다. 여태껏 화를 참고 있던 리리스가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주인님. 어째서 그 탐욕스러운 인간의 의뢰를 받아들이신 건가요? 게다가... 그 수인마을은 지금 오르카 대원들이 있는 곳 아닌가요?"

"맞사옵니다. 물론 수중에 돈이 모자른 것은 사실이오나, 굳이 그 일을 부군께서 긁으시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내가 아니더라도, 어쨌든 백작은 계속 수색할 거야. 계속 쓸데 없는 살상만 일어날 거고... 우리는 쓸모 없는 싸움만 지속하게 될 거니까."



머리가 아파왔다.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며 성문을 나올 때였다. 몇 명의 병사가 수인종 아이를 안은 여자 수인종을 무자비하게 발로 구타하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여자가 축 늘어지자, 여자 아이를 우악스럽게 붙잡은 그들이 어디론가 그녀를 끌고가기 시작했다. 처절하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나와, 소완, 그리고 리리스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애써 돌려야 했다.


그렇게 성을 나서던 나는 여전히 수인들을 학대하며 낄낄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나라에서, 그리고 이 영지에선, 그것들이 어떠한 죄도 되지 않았다. 마치 인간이 바이오로이드를 사람이 아닌 기계로 보는 것처럼. 이곳의 인간들 또한 인간 외의 종을 절대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 라스트오리진을 즐기던 라붕이였을 때, 챈의 이용자들이 우스갯소리로 '좆간'이라 부르며 멸망 전 인류를 조롱했는데, 지금 이 세계의 인간들 또한 좆간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물론 애쉬드레곤처럼 그런 일 자체에 관심이 없거나 동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너희들이 보는 나 이외의 인간들이... 이런 모습이란 게 부끄럽네. 많이..."

"..."

"..."



인류 재건을 위해 그 누구보다 철충과 분투했던 아이들이 넋나간 얼굴로 이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날 저녁, 소완과 리리스가 샤워를 위해 잠시 숲의 개울을 쓰겠다며 나간 사이, 나는 간이 탁자에 앉아 창문을 열고 허공을 보았다. 이미 주민들은 모두 잠든 상태였고 나는 하늘을 뚫어져라 보았다.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달빛 아래에서 무언가 날아오는 듯한 실루엣이 보였다.



내게 정기 연락을 하기로 한, 리제였다. 재빨리 파르르 날아 온 리제가 창문에 서자, 나는 손을 내밀었다. 부드럽게 손을 잡고 들어 온 리제를 맞이하며 촛불을 켜자 그녀는 역시나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리제, 잘 지냈어?"

"네 주인님! 주인님이 없어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세요?"

"하하, 미안... 어제까지 이 나라 수도를 갔다 와서..."

"주인님 숙소에 얼마나 날아왔는지 아세요? 주인님... 주인님주인님 진짜... 두 햇츙이랑만 같이 가시고, 이렇게 남겨진 제 마음은..."

"리제. 니가 지금 맡은 일도 중요한 일이야. 너가 없다면 내가 지금 다른 오르카 대원들이 뭘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리제가 하는 일도 내게 있어 중요한 일이야. 알겠지?"



솔직히 말해,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불안해하는 얀데레인 리제가 얼마나 나를 보고 싶어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최대한 그녀를 다독여줘야겠지.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을 쓰담아 주며, 꼭 안아주며 몇 번이고 등을 두드리자, 그제야 그녀가 조심스레 나를 꼭 끌어 안았다.



"주인님... 그리운 냄새... 좋았어요."

"그래, 마음껏 맡아 리제... 혹시나 나한테 보고할 게 있으면, 리제 너가 원하는 때에 해도."

"아... 아! 맞아요, 주인님. 죄, 죄송해요... 이럴 때가 아닌데..."



리제는 내 품에서 떨어졌다. 역시나 아쉬워하는 그녀의 양손을 꼭 쥐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주인님... 주인님이 밖에 계셨던 날, 꼭 보고드려야 할 일이 있었어요!"

"그래? 마을에 또 병사들이 나타난 거야? 그게 아니면 숲에 사는 인외종들?"

"아뇨, 주인님... 바이오로이드에요."

"... 바이로외드?"



리제의 말을 나는, 잘못 들은 것인가 싶었다. 혹시나, 내가 왕도에서 만났던 올리비아인가?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어안이 벙벙해지는 가운데, 리제는 잘 들으라는 듯 말을 이어갔다.



"주인님... 저 햇츙... 여동생인 페로였어요. 페로가, 우리가 있는 수인 마을에 왔다구요!"

"... 페로?"



페로라면 리리스가 가장 아끼는 컴페니언의 자매기였으며 동시에 리리스의 부관 역활까지 도맡아 했던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런데 별안간 페로가? 설마 오르카에서 이 세계로 넘어 온 페로였을까? 나의 질문에 리제는 고개를 조용히 도리도리 내저었다. 기억을 잃었던 페로라고. 하지만 현격히 전투력은 우리 멤버들과 비교하여 약한 편이란 말에 나는 불현, 리리스와 소완이 올리비아를 제지하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약했다고. 현격하게... 이 세계에 오기 전 라스트오리진에서 내가 키웠던 아이들은 말 그대로 레벨 100을 찍었던 아이들이었다. 바이오로이드의 설정이 어느 정도 현실화 됐다 치더라도 전투력은 거의 비등할 텐데... 리제가 약하다고 말했을 정도면...



"주인님... 심지어 페로는... 인간들한테 학대까지 받았었어요. 제가 치료를 해줘서 잘 알았어요..."

"... 학대?"

"네, 학대요..."



순간, 오늘 수인종들을 참혹하게 다뤘던 이 세계 사람들이 잠시 머리에 스쳤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 그래. 페로가 어떻게 이 세계에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보고해줘서 고마워 리제."



나는 리제를 다독이고 머리를 쓰담아주었다. 내 품안에서 리제는 행복하게 웃었다. 미소를 지으면서도 한편으론 잔인하게 리제에게 학살당하던 병사들에게 잠시나마 연민을 가졌던 때를 떠올렸다.



"리제... 미안한데, 하나만 물어도 될까?"

"네 주인님?"

"... 리제. 분명 너는 인간을 마음대로 헤해선 안 된다고 듣지 않았어? 명령이라던가, 그런 게 모듈에 심어져 있지 않아?"

"네? 아... 음, 그렇긴 하죠.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 살려달라 말하는 인간들한테, 몸이 안 움직인다거나 그런 게 없었어요."

"... 전혀?"

"주인님을 헤하려 했던 게 우선이었어요 저한텐! 주인님한테 감히! 그 더러운 손을..."



리제는 부들거리며 두 손을 꼭 쥐었다. 그러고보니 리리스와 소완도 이 세계 인간들에게 어느 정도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니 아마도, 이 세계의 인간들의 명령권은 어떠한 이유로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듣지는 않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 그녀들은 나의 말만 듣는 대원들인 셈이었다. 인간의 뇌파는 감지할 수 있지만 인간의 명령을 듣진 않는다라...


일단 그렇다면, 지금 오르카의 대원들은 물론,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나를 배신할 일은 없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의심하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 정도로, 오르카의 아이들은 잘 해주고 있지만.



"... 그래. 리제 알겠어."



그리고 이어 든 생각은, 생각 이상으로 지금 오르카의 대원들이 이 세계 인간들에게 가진 감정이 그닥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말해, 혹시라도 내가 인간을 해치워야 할 일이 있더라면 그녀들은 망설임 없이 나의 무기가 되어줄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말해, 무기를 쓰는 내가


휘두를 줄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학대를 받았다던 이 세계 페로의 상태를 보고 받은 난, 다시금 이 세계 인간들이 얼마나 더러운 존재인지 세삼 깨달았다. 심지어 더러운 눈으로 리리스와 소완을 훑는 백작의 눈빛은 경멸스럽기 그지 없었다. 쿵, 쿵... 탁자를 몇 번이고 두드렸다.


내일 나는 수인 마을의 수인종들을 노예로 다시금 그의 앞에 데려가야 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문득, 수인마을의 족장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게 하던 말을 떠올렸다. 타이런트를 '드레곤'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던 모습이 떠오른 난 테이블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것을 멈추었다.



"잠깐..."



어차피 타이런트의 최종 명령권자는 나였다. 오직 나만이 타이런트를 제어할 수 있으며, 동시에 타이런트는 기체 하나만으로도 나라를 멸망 시켰을 정도로 파괴력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ags였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숲에 큰 사건이 있었다는 건 이 나라의 빅뉴스였고, 리제가 죽인 병사들을 그 숲을 파괴시킨 무시무시한 존재가 죽였다는 것을 덮어 씌운다면...


그렇게 생각을 이어나가던 난 손가락을 튕겼다. 수인 마을의 수인들을 내 손으로 포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병사의 실종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타이런트가 꼭 필요했다. 물론 타이런트가 명령을 들어줄 지는 미지수였지만...



"리제. 내일 나, 병사들을 데리고 수인 마을로 가야 할 일이 생길 거야."

"네, 넷? 주인님?"

"... 그리고, 내가 숲에 들어가면 리제가 타이런트를 미리 대기시켜 줘."



이 세계 인간들에게, 진짜 드레곤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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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신스틸러 해피 등장 예정.


웬만해서 1만자 이하로 쓰려 하는데 뭘 쓰다보니 자꾸 1만자가 넘어버리네... 앞으론 차차 줄여갈 생각임.


읽어줘서 고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