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한껏 쌓인 침엽수림이 있었다. 한때 쓰였던 등산로는 어느덧 눈에 덮여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끝에는 등산로와 마찬가지로 애용되었던 산장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간신히 벽만 있는 폐허로 남아 두 바이오로이드의 대화처가 고작이었다.


“발키리. 킬리만자로의 눈이라고 알아?”


“200년 전의 한 작가가 쓴 단편 소설..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레오나는 언제나 철저했다. 다만 작전 외엔 부드러운 편이었다. 때로는 부관인 발키리와 시답잖은 얘기를 나눴다. 발키리 또한 이런 일은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아프리카에 있는 킬리만자로 산의 서쪽 정상 주변에는 얼어붙은 표범이 있다고 해.”


“이상한 이야기군요. 표범은 어째서 그런 곳까지 올라간 걸까요. 그렇게 추운 곳엔 먹이도 별로 없을텐데요.”


그 말대로였다. 추운 곳에 적응되었을지언정, 너무 추우면 죽는다. 표범은 등산을 싫어한다. 하지만 표범 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건 아무도 모를 거야. 지금까지도 그래왔으니까.”


“대장답지 않습니다. 좀 더 기운을 내셔야죠.”


레오나가 기댄 벽에서 휘어지는 소리가 났다. 발키리는 레오나를 부축하며 바닥에 눕혔다. 발키리의 겉옷이 깔려 있었지만, 추위가 덜어지진 않았다.


“후후, 고마운걸. 하지만 괜찮아. 이젠 별로 아프지도 않으니까 말이야.”


“대장..”


철충은 바이오로이드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쓸만했다. 경계할 지언정 공격하지 않는다. 전투로 이어지더라도 죽는 것은 바이오로이드. 그렇기에 쓸만했다.


“다리 하나가 줄었으니.. 20%는 체중이 줄었으려나?”


“..질나쁜 농담보다는 어떻게 살지를 생각해주세요.”


그녀는 죽어가고 있다. 추위에 의해. 철충에 의해. ..그리고 인간에 의해.


.

.


“발키리 언니! 상황은 어떤가요?”


“적들이 가까워지고 있어.”


‘발키리가 스코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녀들에게 저격당한 인간 지휘관의 유언이다. 발키리는 때때로 정찰병의 임무를 수행했다. 레오나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가장 ‘적합’했다고 한다.


“지시를 시작할게. 귀를 기울여 줘.”


“”네!””


발키리는 말씨가 무뚝뚝했다. 딱히 그녀가 무뚝뚝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무적인 편이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각 분대의 베라는 지근거리에서 조금 안까지 대기하다가 선두부터 저격하고, 즉시 감적을 공유해 줘.”


“알았어요!”


지정사수인 베라는 스코프 너머의 철충을 응시했다. 스코프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괴롭게 한 적은 없었다. 애초에 발키리가 별종인 것 뿐이다.


“공유가 끝나면 님프는 집속사격하도록 해. 서두름은 독이고 낭비는 죽음이야. 베라가 저격한 녀석부터 처리해 줘.”


“맡겨주세요! 언니!”


자매들의 전투는 굶주림 속에서 이어진다. 그건 총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주인이 죽어도 총은 죽지 않지만, 총이 죽으면 주인도 죽는다.


“알비스는 분대의 엄폐가 주 목적이야. 필요한 때가 아니면 총은 넣어 둬. 님프가 철충을 제거하면 연막을 뿌리면서 조금씩 후퇴해. 풀숲 쪽으로 이동하는 거 잊지 말고.”


“응! 알비스, 안 까먹었어!”


눈의 전장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하늘의 축복은 모두의 눈을 가린다. 그리고 눈밭의 저주는 모든 것을 남긴다.


“3.. 2.. 1.. 지금!”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그럼 암사자 부관 3년이면 뭘 배울 수 있을까. 답은 ‘암사자’.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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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써 보는 짧은 글짓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