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이 오르카 호에 영상 메시지를 보낸 지, 어느덧 보름이 지나갔다.

틈이 나는대로 대원들과 연락하고 싶은 그였지만, 좀처럼 기회가 잘 생기지 않았다.


(최고급 공장에서 양산된 AGS들... 성능 한번 확실하군)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라서, 더 과감하고 소모적인 전략들을 써볼 수 있었어. 포텐셜은 우리 대원들한테 비할 바가 안되지만, 효율성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군)


(우리 오르카에 있는 AGS 대원들하곤 달리, 감정모듈이 따로 없어서 다행이야...)


(알프레드, 페누, 해피, 로크, 삿갓, 글라눈나... 다들 너무 보고싶네...)


"사령관님! 오늘은 바닐라양도 비번인데, 저랑 같이 땡땡이라도 치시지 않겠습니까~♪"


"친애하는 각하, 시찰을 나가실 땐, 부디 이 로크를 대동시켜 주십시오. 하늘 위에서 모든 위협을 제거하겠습니다."


"교미가 하고싶다! 배터리가 과부화되서 코어까지 타들어가는 격렬하고 진득한 교미가 하고싶다!!!"


"미친새끼."


"밥 줘- (벅벅)"


"이봐 친구! 저기 서 있는 메이드 아가씨들 보이지? 내가 옆으로 날아가면 치마속을 한번에 다 볼 수 있겠는데?"


"저... 저... 망할 변태 새가...! 콘스탄챠, 당장 격추시키세요!!"


"맹우여... 내 다리 위에 앉아 보거라. 가슴 위에 아이스크림을 묻혀 놨으니, 같이 천천히 음미해보자꾸나~"


(또 누가 한명 더 있었던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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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딱히 중요한 건 아니겠지...)


사령관은 기지개를 펴면서 의자를 뒤로 재껴 앉았다.


"흐아암~ 글라눈나 가슴 위에 뿌려진 하겐다즈... 진짜 달콤했지..."


"뭐가 달콤했었다고요?"


(아...)


사령관은 업무시간엔, 델타와 공개채널로 연락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했다.

그는 최대한 차분한 말투로, 구차한 변명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니까, 요전에 메이드가 갖다준 아이스크림이 무척 달콤했다는..."


"나말고, 다른 여자랑 아이스크림을...? 용서못해!"


"아니, 그게 아니라... 나 혼자 방에 있을 때, 아이스크림을..."


"나 없이, 방에서 혼자서 뭘 한거죠? 설마 또... 밖에 나갈 생각을...?! 용서못해! 용서못해!"


(환장하겠군...)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델타... 잠시 진정하고, 내 말을 우선..."


뚝-


(제길, 패널을 쓸때마다 항상 이렇게 감시를 받을 수 밖에 없다니!)


(이 상태론 대원들과 영상통화는 고사하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조차 힘들겠어)


곧 머지않아, 복도에선 거칠게 하이힐을 내딛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또각...!


(3... 2... 1...)


쾅-!!


"자기~ 아까 꺼낸 말에 대해서 잠시 해명을 좀 해줘야겠어요~♪"

"그게..."


"어서요~ 어눌한 거짓말 따위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거 잘 알죠?"


(젠장, 어떡하지... 내가 블러핑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백프로 그녀한테 들킬텐데...)


(거짓말은 어차피 들통날 수 밖에 없어. 그렇다면, 혼나지 않을만한 거짓말을 하는 게 최선이야)


(좋아, 해보자...)


찰나의 시간동안 엄청난 고민 끝에, 그는 나름대로 최선의 답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당신이랑 여행을 가고 싶어서 말이지."


"네? 둘이서 같이 여행을...?"


"그래, 예전부터 유럽은 꼭 한번 가보고 싶었거든. 볼거리가 많기도 하고, 당신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니까."


"그러면, 자기... 나랑 둘이서 유럽 호캉스를 즐기고 싶다는 뜻인가요?"


"응, 나도 직접 가본 적이 없어서... 에펠탑, 콜로세움, 빅벤, 암스테르담... 전부 자료로만 열람했거든."


"어머나... 세상에...///"


(통했나...?) 


사령관은 무덤덤하게 말하는 척, 그녀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봤다.

다행히,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당연히 되고 말고요! 우리 사랑스러운 자기... 어쩜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다 하다니!!"


"그래, 이참에 밖에 나가서 제대로 회포를 풀어보자고."


"후후... 네, 너무 좋아요~♡ (신혼여행 예행연습 정도론 나쁘지 않겠어!)


사령관은 행복에 젖어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희망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출발하기 전에, 간단한 통신기기를 챙겨두자. 이왕이면 해킹이나 추적이 불가능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자기~"


(다행히, 닥터가 나한테 알려준 아스키 코드가 몇개 더 남아있어)


"자기~?"


(이번 기회에, 자유롭게 연락이 가능한 통신망을 구축해야만 해.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생길지 모르니까...)


"자기-!!!"

"어... 어...?"


"내가 도대체 몇번을 불렀는데 대답도 안하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에요?!"


"아... 미안, 뭐라고 했는지 한번만 다시 말해줄래?"


"흥-!"


(안돼, 모처럼 생긴 절호의 기회를 허투루 날릴 순 없어)


사령관은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주무르며 달래기 시작했다.


"자... 자... 삐지지말고, 응?"


"삐지긴 누가 삐져요? 당신은, 내 말보다 훨씬 중요한 그 생각이나 마저 하세욧!"


(이대로는 힘들겠군. 이 방법이 델타한테도 먹혀야 할텐데...)


사령관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가볍게 바람을 불어넣었다.


"후-!"


"흐끼야앗?!///"


"후-! 후-!"


"꺄아아-/// 간지럽...! 그만해요!!"


델타는 잔뜩 얼굴을 붉힌 채로, 사령관의 입술을 피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어림도 없지! 당신이 화 풀릴 때까지, 계속 하는 수 밖에!!"


"꺄하하하!! 그만, 알겠어요! 이제 제발 그만...!!"


"진짜로? 화 다 풀린 거 맞지?"


"하아... 하아... 네... 이제... 다 풀렸어요..."


"좋아, 이제 놔줄게."


"으... 정말, 당신이란 남자는...!"


(소완이 삐질때마다 썼던 방법이었는데, 다행히 델타한테도 먹히는군)


사령관은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리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유럽 전역을 다 둘러보려면 이것저것 준비할 게 꽤 많겠어."


"걱정마세요. 당신은 그냥 몸만 오면 되니까~♪"


"그래, 고마워..."


"일단 우리 둘이서 타고 갈 크루즈부터 준비해야겠어요."


"겨우 우리 둘이 가는데, 크루즈를 타고 가겠다고?"


"후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뭔들 못해주겠나요."


(이 여자는 매번 스케일이 엄청나군...)


"그럼, 난 속옷 정도만 챙겨서..."


덥썩-!!


"지금 당장 나랑 같이 피팅룸으로 가야 되요."


"엇..."


"자기한테 어울리는 피서복이랑 턱시도도 맞춰야 되고, 하앙~ 정말인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네요~♡"


델타는 사령관의 옷깃을 잡고 문 밖으로 질질 끌고 가버렸다. 







---------------------------(2주 후, 오르카 호 대형 몰)


"빨리! 빨리! 주워담을 수 있는 건, 최대한 가져와라!!"


"네, 대장님~!!"


"젠장... 각하가 이렇게까지 빨리 연락을 취할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데...!"


마리는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으며 눈 앞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스틸라인 병사들을 쳐다봤다.


"여기 크림팩 한 박스 더!"


"코팩이랑 매니큐어, 립스틱도 전부 가져오세요 브라우니!"


"그게... 립스틱은 커녕, 립글로스도 전부 매진됐지 말임다..."


"크윽...! 미리 구매 좀 해놨으면 좋았으려만..."


그녀들이 이렇게 분주히 움직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사령관이 3일 후 연락을 취하겠다는 메시지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납작 대령! 내가 말해둔 파우더는 사왔어?"


"네, 네 제기랄... ! 사왔다고요. 이 망할 난쟁이 똥자루 대장."


"너 이씨...! 아무튼, 지금 당장 나랑 미용실로 가야해! 지금 출발하면 아마도 우리가 첫 번째로..."


"유감스럽게도, 제가 사오는 길에 한번 둘러봤는데, 대기줄만 앉아서 오르카 호 세 바퀴쯤 되더군요."


"뭐? 하씨... 그럼 어떡하지..."


"지금쯤이면, 보련 양의 손이 이미 다 터져나갔을지도 모릅니다."


"히잉... 그치만... 그치만..."


"그 염병할 놈의 킹치만 좀 진짜...! 아니면, 급한대로 옷가게부터 들리던지요."


"아마... 거기도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척-!


???!!!


나이트앤젤은 메이의 눈 앞에 VVVIP 라고 써 있는 황금색 카드를 내밀었다.


"그건 뭐야?"


"보면 모르겠습니까? 이것만 있으면 우리는 대기줄 없이, 바로 입장이 가능할겁니다."


"오... 그건 도대체 어떻게 얻은거야?"


"하... 그냥, 제가 오드리님 앞에서 치욕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 정도만 알아두시죠."


"이야~♪ 대령, 다시 봤는데? 마르고 납작한 게 이렇게 도움이 될 때도 있...!"








---------------------------(북극 발할라 주둔지)


"도대체 언제쯤  도착하는거야..."


"걱정마세요 레오나 대장님. 우리 바리가 이런 걸 까먹을 애는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배송이 늦어도 너무 늦는단 말이지... 이번주는 악천후도 없이, 내내 맑았는데도 불구하고..."


"확실히 조금 늦는 감이 있긴 하네요. 설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슈우우웅- 탁-!!


정찰에서 돌아온 샌드걸이 지상에 착지함과 동시에, 베라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샌드걸 중위, 보고드립니다. 그... 대장님..."


"수고했어 중위. 별 다른 특이사항은 없지?"


"그게... 사실은, 한가지 미심쩍은 광경을 목격하긴 했습니다."


"음, 그래? 일단 그대로 보고해봐.


"혹시... 최근에 오르카 호에 물자지원을 요청하신 적이 있습니까?"


"있지. 곧 달링하고 대면할 기회가 생기니까, 화장품하고 미용도구는 있는대로 전부 보내라고 했어."


"아... 이런..."


?????


갑자기 그녀는 안색이 창백해지며, 입술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레오나 대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왜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제가... 그... 눈 앞에서... 범인들을 놔준 셈이라..."


"뭐?"


간이 침대에 누워있던 레오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떨고있는 그녀의 앞에 섰다.


"중위, 내 눈 똑바로 쳐다봐!"


"네... 네...! 대장님!!"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나한테 차분하게, 똑바로 얘기해!"


"호드 분들이 뭔가를 바쁘게 옮기고 있었는데, 그게 아무래도 대장님이 요청하신 물자들 같습니다..."


"뭐라고??!!!"


레오나는 성난 사자처럼 으르렁대며 주먹을 쥔 채로, 무전기를 거칠게 뽑아들었다.


"이번 건은 선을 넘어도, 단단히 넘은 거 같군! 당장 칸한테 정식으로 항의를 넣어서..."


"그게... 일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칸 대장님이셨습니다."


"카... 칸이...? 그 욕심하나 없고 올바르다 못해, 우직하기까지 한 그 칸이...?"


"네, 대장님.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샌드걸의 진술에, 레오나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주저 앉았다.


"하...! 거 참...! 그래... 당신도 좋아하는 남자 앞에선, 그저 예뻐 보이고 싶은 한명의 여자다 이거지...?"


"죄송합니다..."


곧 그녀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부관을 불러 세웠다. 


"발키리!"


"네, 대장님."


"애들 전부 다 장비 챙겨서, 5분 안에 집합시켜."


"어쩌시려고요...?"


"우리 걸 다시 되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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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동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