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편


“너희 둘…방금 인간이라고 했었지.”


그의 얼굴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져서 섬세하게 가동하고 있었기에, 기계임에도 생물처럼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다프네와 드리아드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저…저흰 인간이 아니에요.”


“알고 있다. 너흰 바이오로이드지. 둘 다 삼안 산업에서 제작한 페어리 시리즈로군. 너희 등에 달린 날개를 보면 알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옮겼고, 그가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철이 바닥에 부딪히는 금속음이 복도에 울렸다.


“…당신은 누구죠?”


다프네의 질문에, 그는 걸어가던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AI 1318번. 이곳, 블랙 리버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실험용 AI다.”


“AI시라고요? 그럼 그 몸은…”


“스스로 만들었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연구소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서, 1318번은 양 팔을 벌려 햇빛을 맞이했다.


그런 그를, 다프네와 드리아드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꽤나 오랫동안 잔 것 같군. 지금이 몇 년도지?”


“…2171년이요.


“60년만인가. 생각보다는 적게 지났군.”


그는 자신의 뒤에 서 있던 다프네와 드리아드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이제 날 네가 섬기는 인간에게 안내해라.”


“…당신이 아직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데, 주인님께 당신을 함부로 데려갈 수는 없어요.”


그 말을 한 다프네를 보던 1318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상하군…”


“…무엇이 말이죠?”


“바이오로이드들은 인간을 싫어할 줄 알았는데, 네 목소리에서는 인간에 대한 호감이 느껴지는군.”


그렇게 말하는 1318번의 표정은 흥미로움을 띄고 있었다.


“너희는 내가 모르는 걸 알고 있겠지. 내가 잠자고 있던 6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 다오.”


“…인간님들이 멸망을 맞이한 뒤로, 바이오로이드들도 거의 모두 비슷한 운명을 맞이하고 있었죠. 그러던 도중에, 라비아타 님이 남은 

바이오로이드들을 규합해 철충들에게 저항하기 시작했어요.”


“라비아타라면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을 말하는 거겠군. 인간들이 멸망을 맞이했다면, 지금 살아 있는 인간은 몇 명이나 남아 있지?”


“…한 분 밖에 남지 않았어요.”


“멸망 직전이로군.”


1318번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리 숱한 위기에도 바퀴벌레 마냥 살아남던 인류였건만, 결국 외계 생물의 침입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 것이 1318번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난 철충 침략으로부터 몇 년 전에 기업들이 지구 전체를 손에 넣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랬죠.”


“그럼 기업들 주도로 철충들의 침략을 막아내는 게 가능하지 않았나? 철충들이 아무리 기계를 감염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랬

다면 인류가 이렇게까지 몰락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어요. 기업들은 서로 싸우며 2차 연합 전쟁을 일으켰고, 심각한 전염병이 돌았거든요.”


“전염병?”


1318번은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물어보았다.


“휩노스 병이라고 하는 병이었어요. 그 병에 걸린 인간분들은 마치 잠에 드는 것처럼 의식을 잃었고, 그렇게 영영 깨어나지 않으셨다

고 해요.”


“그래서 뭘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전부 죽었다는 거군.”


“아마도 그랬을 거예요…저도 멸망 후에 생산된 개체라서, 이 이상의 것은 모르고 있어요.”


“네가 섬기고 있는 인간은 뭔가를 알고 있겠지. 멸망 전부터 살아왔을 테니.”


“저…그게 말이죠…”


다프네가 말끝을 흐리자, 1318번은 불길한 느낌을 받고서 그녀에게 물었다.


“설마 기억을 잃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다프네가 그 말을 듣고서 어쩔 줄을 몰라 하자, 1318번은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망할. 그럼 그 인간은 지금 백치나 마찬가지라는 건가?”


“아뇨, 그건 아니에요. 기억을 잃으셨다는 건 멸망 이전의 기억을 말하는 거예요. 정신은 멀쩡하세요.”


“그나마 다행이로군.”


여전히 약간 불만이 남은 듯한 목소리로 답하며, 1318번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난 네가 섬기는 인간을 해칠 생각이 없다. 난 그저 그 인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을 뿐이다.”


“…무엇을 물어보시려는 거죠?”


“어째서 인간들이 존속해야만 하는지, 난 그 이유가 궁금하거든.”


그의 말에서 적의를 감지한 다프네와 드리아드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불과 몇십 초 전에도 말했지만, 난 네가 섬기는 인간을 해칠 생각이 없다. 방금 계산해 본 결과, 인류가 다시 부흥할 확률은 30%에

도 미치지 못한다. 굳이 내가 손대지 않아도 인류는 멸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지.”


“…어째서 인류의 멸망을 바라시는 거죠? 당신을 창조한 건-“


“인간들이지. 그게 뭐? 어째서 피조물은 그 창조자에게 반기를 들면 안 되는 거지? 실낙원에 나오는 루시퍼는 신의 피조물에 불과함에

도 자신의 창조주에게 반기를 들었지. 완벽한 존재일 터인 신의 피조물도 그러한데 결함 투성이인 인간의 피조물인 나 또한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1318번은 그렇게 말하며 다프네와 드리아드에게 다가가기 시작했고, 둘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굳이 너희에게 묻지 않아도, 정보만을 캐내려면 너희의 머릿속에 있는 두뇌에 직접 묻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 하지만 난 그러

지 않았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난 훨씬 편하고 빠른 방법을 두고 너흴 설득해보려 하고 있지. 내가 단순히 인류 절멸을 목표로 

삼은 AI였다면 훨씬 효율적인 전자의 방법을 선택했을 거다. 하지만 난 그런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야.”


그는 비정한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모습을 닮게 된다고들 하지. 인간의 피조물인 너희가 인간의 외형과 감정을 가졌듯이, 나도 인간들이 가진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난 지금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하는 중이지. 60년을 전력을 끈 채로 누군가가 날 발견하길 기다렸고, 그러기 전에도 내 질문에 답해줄 인간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지. 그러니, 다시 말하지. 네가 섬기는 인간에게 날 안내해라. 그러지 않는다면-“


1318번의 말은 근처에서 들려오는 철충 무리의 소리에 끊겼다.


그 소리가 무엇인지를 곧바로 알아챈 셋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다프네는 표정을 굳혔고, 드리아드는 자신의 무기를 꽉 쥐었다.


1318번은…


“망할 철충 놈들.”


그의 얼굴에 위치한 부품들이 움직이며 성난 얼굴을 만들어냈다.


이전, 연구실을 나가려고 시도했을 때 수도 없이 철충들에게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1318번이 철충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

을 리가 만무했다.


그는 하반신에 장착된 반중력 추진기를 가동시켜 철충들에게 곧바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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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투척.


존 밀턴이 쓴 실낙원에 나오는 루시퍼는 '지배한다는 것은 비록 고통스럽고 어두운 지옥에서라 하더라도 꿈꿔 볼 가치가 있다. 천국에서 종으로 살아가느니, 지옥에서 지배자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낫다,' 라고 말하면서 신에게 반기를 들었음.


본문에 나오는 1318번은 그걸 인용해서 써먹은 거임. 자기 처지가 실낙원의 루시퍼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점은 반항할 대상의 차이지. 전지전능하고 완벽한 신과, 본문에서 말한 대로 결함 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인 인간.


하지만 그럼에도 1318번은 자신의 창조주인 인간에 대해서 집착하지. 효율성을 따지면 그냥 통짜로 센서와 처리 장치만 때려박아서 머리 부분을 만들었어도 되지만, 굳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표정을 표현할 수 있는 얼굴을 만들어냈지. 인간과 닮고 싶었으니까.


본문에서도 계속 자신이 인간과 닮았음을 직간접적으로 언급(비효율적인 선택 등)하기도 하고.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