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사령관은 1318번을 보고서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나? 넌 내 질문에만 대답하면 된다. 그 뒤엔 알아서 사라져 줄 테니 말이지.”


1318번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사령관은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겁을 먹었나 보군. 어쩌면…조금 덜 위협적인 모습으로 왔어야 했나?”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함장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318번이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이해해 주길 바라지. 철충들을 뚫고 인간들을 찾기 위해서는 이런 몸이 필요했거든.”


“…나에게 하려는 질문이 뭐지?”


“별로 어려운 질문은 아닐 거야. 아니, 어쩌면 답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


1318번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당신은 왜 살아야 하지?”


 




…잠시 뒤, 1318번은 함장실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자는 그의 금속으로 이루어진 신체의 무게에 불안하게 들리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 함장실의 책상 너머에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고 있는 사령관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경호 담당인 블랙 리리스가 그에게 적대적인 시선을 따가울 정도로 보내고 있었다.


그녀를 잠시 쳐다본 1318번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조금 전에는 말이 좀 잘못 나오긴 했지만, 당신의 숨이 붙어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물어보려던 게 아니라, 인류가 존속해야 하는 이유를 물어보려고 했었던 거다.”


그 말에, 블랙 리리스의 시선은 한 층 더 예리해졌다.


“…거기 블랙 리리스 기종.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네가 섬기는 인간을 해칠 생각은 없다. 이 해명을 오늘만 몇 명에게 몇 번이나 하는

지 모르겠군. 이걸 봐라.”


그 말과 함께, 1318번은 손 끝에서 광선을 발사해 함장실에 그저 인테리어로 놓여 있던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블랙 리리스는 그가 손을 든 즉시 그에게 자신의 권총을 겨눴지만, 1318번은 개의치 않으며 손을 가만히 내렸다.


“난 네가 그 총을 겨누기도 전에 내 앞에 있는 인간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왜 그랬을까? 네가 답해 봐라.”


그는 블랙 리리스를 보며 말했고, 블랙 리리스는 여전히 그에게 겨눈 총을 거두지 않은 채로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그에게 답했다.


“…죽일 생각이 없었으니까.”


“바로 그거야.”


1318번은 손뼉을 한 번 치며 말했다.  


금속끼리 부딪히는 파열음이 함장실을 채웠다.


“어차피 난 저 인간을 죽일 생각이 없어. 직접 보고 나서는 더더욱. 어차피 저 인간의 몸은 순수한 인간의 몸도 아니잖아?”


“그걸 어떻게…”


“내 눈은 장식이 아니야. 내가 보고 있는 상대의 몸이 바이오로이드의 몸인지, 인간의 몸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지.”


1318번은 의자 뒤로 몸을 기대려다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 대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자 몸을 곧바로 세웠다.


“그래서, 내 질문에 대답할 준비는 된 건가, 인간?”


“…대답하기 전에, 나도 무언가를 물어봐도 될까?”


“얼마든지.”


양 팔을 벌려 환영한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그에게, 사령관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왜 인류가 존속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그럼 나에게 인류가 존속해야만 하는 이유를 물어보는 이유는 뭐지? 네 의도가 궁금해서 말이야.”


1318번은 사령관의 말을 듣고서 의외라는 듯이 한쪽 눈을 치켜 올렸다.


“나한테 질문을 할 줄은 몰랐는데.”


“답을 못 하겠다는 거야?”


“아니.”


1318번은 깊은 숨을 들이쉬는 소리를 냈다.


“…숨도 쉬어?”


“아니, 그냥 소리만 흉내 내는 거지.”


“필요 없는 기능을 탑재했다는 거야?”


“유흥이지. 인간들도 유흥을 즐기지만, 그게 인간들의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 어쨌든,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도록 하지.”


1318번은 앞으로 몸을 숙이며 손을 들어 턱을 괴었다.


“내가 데이터 센터의 서버 안에 갇혀서 그 안의 정보들을 살펴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을 때, 난 인간들의 역사를 공부했지. 그리

고 결론을 내렸어.”


“무슨 결론?”


“인류는 자신들을 개선할 기회를 전부 소진했다는 결론.”


그 말에, 사령관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지? 부정하는 건가, 아니면…”


1318번은 미소를 지었지만, 이번의 미소는 비틀린 모습이었다.


“부정할 수가 없는 거야, 그렇지? 아무리 멸망 전의 기억을 잃었다 해도, 당신은 기록들을 살펴 봤겠지. 멸망 전의 인류가 어떤 역사

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 말이 사실이었기에, 사령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블랙 리리스는 여전히 총을 내리지 않은 채였지만, 시선은 불안한 듯이 사령관을 쳐다보고 있었다.


“인류의 역사는 피투성이야. 인류는…무언가를 희생시키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지. 최소한 내가 보기엔 그래. 내가 틀렸을 수

도 있지만 말이야. 그러니 어서 내 의견을 부정해 봐. 당신의 종족을 변호해 보라고.”


“…주인님?”


묵을 지키고 있던 사령관은 리리스의 목소리를 듣고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리리스는 무언의 신뢰를 담은 눈빛을 사령관에게 보내고 있었고, 사령관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사령관은 곧 1318번을 향해 답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모르겠어. 인류가 어째서 존속해야 하는지.”


“주인님!?”


리리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사령관은 잠시 기다려 보라는 듯이 손을 살짝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네 말이 맞아. 인류의 역사는 피로 쓰였지. 멸망 직전의 역사는 더더욱 그랬고.”


1318번은 미소를 거뒀지만, 흥미롭다는 듯이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나 혼자서 인류를 다시 번창시킬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


“확률은 꽤 낮더군. 내가 계산한 바로는.”


사령관은 그 말을 듣고서 웃음을 피식 흘렸다.


“그런 것도 계산할 수 있어?”


“수많은 부가 기능들 중에 하나지. 어쨌든, 계속해봐.”


“그래…1318번, 그게 네 이름이었지?”


1318번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거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유일하게 받은 선물이니까. 선물이라 할 만한 것도 아니지만.”


“누구에게?”


“인간에게서. 인간에게서 받았겠지, 그럼 누구에게서 받았을 것 같?”


1318번은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한테 1318번이란 이름을 준 인간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겠지. 나도 이름에 딱히 뜻을 두지는 않아. 1318번, 1318, 아니면 그냥 

인공지능. 뭐라고 불리든 나는 나니까 말이지.”


“자아가 확고하네.”


“칭찬 고맙군.”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사령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인류는 왜 존속해야 하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 난 그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해.”


생각치 못했던 답에, 1318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문이 틀렸다고?”


“넌 방금 전에 말했었지, 인류는 자신들 스스로를 개선할 기회를 전부 소진했다고.”


“그랬지.”


“난 기회는 무한히 주어진다고 생각해. 아직 내가 살아있으니까…인류는 아직 스스로를 개선할 기회가 남아 있을 거야.”


“뻔뻔하군.”


1318번은 차가운 목소리로 짧게 대꾸했다.


“그리고 오만해. 오만하기 짝이 없군. 네가 인류를 다시 번창시킨다고 가정해 보지. 100명, 인류의 수가 100명으로 늘어났을 때, 그 중 

악인이 몇 명이나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아니, 조금 더 쉬운 질문을 해 보지. 100명 중 선천적으로 선함을 지니고 태어날 인간이 몇 명이나 될 거라고 생각하지?”


“그건…”


“답은 0명이다. 인류는 선천적으로 악함과 선함을 동시에 가지고 태어나지. 선천적으로 선한 자는 없어. 선천적으로 악한 자는 있을 지 몰라도. 그 100명을 전부 다 선한 인간으로 키워낼 수 있나? 그 이후에는? 그 100명이 자손을 남기고, 그 자손이 자손을 남겨서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뒤에는 멸망 이전의 인류와 같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몇 천 년 동안 이어진 인간의 역사에서도 인간의 본성은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네가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해 보기 전엔 모르는 일이지.”


“허, 달걀 껍데기를 까면 그 내용물이 나오는 것처럼 당연한 일을 부정하는군. 넌 인간의 본성을 바꾸지 못해. 그 누구도.”


“네 말이 맞아, 하지만…달걀 껍데기를 깠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쌍란이 나올 수도 있잖아.”


“쌍란이 나올 확률은 0.1%에 불과해. 그리고 쌍란은 닭 산란 초기의 배란 문제에서 비롯된 거란 걸 모르나 보군. 닭은 태어난 지 20

주 정도부터 알을 낳기 시작하는데, 초산 기간에는 배란이 불규칙한 경우가 있어서 하루에 난자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가 배출될 때 

생성되는 거지. 생성될 때부터 정상적이지 않게 생산되는 달걀이었던 거지.”


“지금의 상황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 그리고 내가 알기로 쌍란을 먹는 게 몸에 해롭진 않다고. 오히려 쌍란을 발견하게 된다면 운이 좋은 거 아니야?”


1318번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더니, 이내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가 앉아 있던 의자는 여전히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좋다, 인간. 비록 60년을 기다려야 했을 정도로 완벽한 대답은 아니지만…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말한 뒤, 1318번은 뒤로 돌아 함장실을 나가려 했다.


“이젠 어디로 갈 거야?”


“모르겠군.”


사령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1318번에게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있잖아, 아까 네가 오고 나서 다프네에게 간략한 사정을 들었어. 네가 단신으로 다수의 철충들을 제거할 수 있을 만한 전투력이 있다는 것도.”


1318번은 사령관이 어떤 취지에서 그런 말을 꺼낸 것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 너희와 합류해서 너흴 도와 달라고?”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고, 1318번은 발걸음을 돌려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흥미로운 제안이군. 그런데 말이지…”


그는 책상에 손을 짚고 상체를 앞으로 숙여 사령관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사령관과 1318번의 덩치 차이가 워낙 많이 났기에, 1318번이 상체를 숙이고 있었음에도 사령관을 내려다보는 꼴이 되어 있었다.


1318번은 붉은 안광을 빛내며 사령관에게 물었다.


“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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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썼던 게 분량이 좀 적었던 거 같으므로 오늘도 올림.


마침 시간이 좀 나서 다행이었음.


솔직히 내가 인류는 왜 존속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 던져놓고도 나 스스로가 확실한 답을 오랫동안 못 내려서 좀 어려웠음;;


어찌저찌 쓰긴 했는데, 논리의 수준이...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