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얌마아아아! 뭐하는거야 지금! 대장이 저기에...!"


느닷없이 일어난 공항 건물을 향한 포격. 쏘우피쉬에 탄 트리아이나가 기겁하며 트리톤을 두들겼다.


"그 인간이 공항에서 멀어진 건 이미 확인했다. 봐라."


"뭐? 정말... 어, 어어어!"


완전히 박살나, 비에 불과 연기가 씻겨져내려가는 공항이었던 것을 배경으로 사람 몇 명이 하늘을 날아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비행기 하나도. 


와쳐가 가장 먼저 날아와 공습지원으로 배에 남은 잔당 소탕을 마무리짓자 대장을 안고있던 레아가 갑판에 살포시 발을 디디고, 이어 네오딤도 도착했다.


*


"인간!"


"대장님!"


레아는 나를 내려주려고 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스스로 일어서질 못하는 걸 보고선 부축해주었다. (나한테만 들릴 소리로 그냥 안겨있어도 된다고 했지만 쪽팔려서 사양했다.)


"다... 다녀왔어..."


"무사해서 다행이야, 정말..."


"아니 세상에. 그보다, 쫄딱 젖었잖아요! 당신들 모두 다!"


"그야 뭐 비바람 속을 헤쳐 날아왔으니까..."


"타올이 있나 찾아봐야겠어요. 그리고 갈아입을 옷도. 언니, 손 좀 빌려주세요."


내 꼴에 기겁한 오드리가 올리비아를 데리고 함교로 달려갔다.


"그런데 여긴 비가 안오네?"


"언제든지 능력을 쓸 수 있도록 공항 위에만 먹구름을 대기시켜놨었거든요."


...그 비 네가 부른거였냐.


"앗, 추우신가요!?"


"어어, 조금 으슬으슬하네..."


"당장 이 일대의 기온을 높일게요!"


아니 무슨 날씨조작을 히터트는 것마냥... 그치만 춥긴 추웠기에 딱히 말리진 않았다.


"...덕분에 살았어. 다들, 구하러 와줘서 정말 고마워."


"후훗, 천만에요. 말씀하신대로 주인님이 배를 떠날 때를 기다린 덕에 이렇게 구할 수 있었네요."


"아니 그건 잘못 전달한 거라니까..."


"어머, 그랬나요?"


레아가 머쓱하게 웃었다. 나는 이번엔 고개를 들어 커다란 조각상마냥 우뚝 서있는 트리톤을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얜 어떻게 된거야? 누가 해킹해서 우리편으로 만들기라도 했어?"


"내 근무지는 내가 정하기로 했다."


"...말이 아주 유창하네? 포세이돈 AGS한테 이 정도의 인공지능이 있었나?"


"100년을 살면 매일 바다만 쳐다봐도 자아에 눈뜨게 되는 법이다."


"자네 논리회로에 오류라도 일어났나보군."


"틀린 말은 아니지. 수리할 때 머리는 남겨둬라. 실수로 리셋시키기라도 하는 건 사양이다."


감정도 지성도 없는걸로 알려진 트리톤이 제 머리 주변을 빙빙 맴도는 드론의 농담을 태연히 받아넘기는 걸 보니 신기하다.

배도 준비되어 있겠다, 이제 슬슬 출발하자고 말하려던 찰나 상공을 경계하던 와쳐가 소리쳤다.


"비상! 레모네이드 감마가 빠른 속도로 접근중입니다!"


"뭐? 또!?"


우르르 난간으로 몰려가자 바다에 깔린 전함을 플랫폼삼아 뛰어넘으며 달려오는 신형이 보였다. 축지법 쓰고있네 미친년이. 저 꼬라지를 보아하니 오메가도 살아있을 것 같다. 감마가 어나이얼레이터에 발을 디뎠을땐 함교에서 거대한 건틀렛이 드론 캐논에 붙어 스스로 날아오더니 공중에서 합체하듯이 감마의 팔에 장착되었다.


감마가 손수 배를 두쪽내는 미친 전개는 결코 다시 보고싶지 않았다. 보다못한 트리톤이 미사일 하나 발사하자 감마는 미사일을 터지지 않게 붙잡고선 역으로 트리톤을 향해 집어던졌다. '퍼엉!' 트리톤의 오른쪽 어깨 부근에 맞아 폭발이 일어났다. 트리톤이 넘어질 뻔 하다가 양 팔로 땅을 받치며 한쪽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쿵. 풀무장 감마가 갑판 위에 착지했다.


"오늘은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로군! 내 부관을 처리하고 트리톤마저 구워삶다니, 참으로 재밌어! 뭐, 그건 그거고. 내게 선전포고를 했으니 나도 받아줘야겠지?"


감마가 잡아먹을 기세로 한쪽 눈을 부라리며 히죽 웃었다.


"한 적 없거든!?"


"아니, 했다. 내가 그렇게 정했어. 감히 펙스에 총구를 겨누는 것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줘야-"


그 순간 감마는 말을 끊고 잽싸게 자리에서 벗어났다. '쐐액-!' 무시무시한 기세로 쇳덩이 하나가 조금전까지 감마가 서있던 자리를 지나쳐 날아갔다. 다른 배에서 떼어낸 닻이었다. 미간을 좁힌 네오딤이 감마를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너 싫어! 대장 괴롭히지 마!"


바닷물에 적셔져 까맣게 광택을 빛내는 닻은 뒤에 달린 사슬로 긴 궤적을 그리며 감마를 향해 돌아왔다. 저런 단순무식한 질량병기야말로 감마한테 가장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수단이었다.


허나 감마는 이번엔 피할 기색을 보이지 않더니 건틀렛을 낀 거대한 손으로 자신한테 곧장 날아오는 닻을 콱 붙잡아 멈춰세웠다. 반동으로 크게 밀려나긴 했지만 정말로 막아낸 것이었다. 네오딤이 당황한 기색 없이 연주 지휘하듯 손가락을 휘두르자 닻에 달려있던 사슬이 감마의 몸을 칭칭 휘감았다. 감마는 제 몸을 묶은 사슬을 잠시 내려보다가 도로 네오딤을 노려봤다.


"하, 이깟 사슬로 날 묶어둘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너랑 계속 놀아주고있을 생각은 없어! 네오딤! 바다에 빠뜨려!"


"응."


"뭣-"


감마가 힘주어 사슬을 끊어버리기도 전에, 네오딤이 손을 옆으로 스윽 하자 감마는 묶인채로 바다에 던져졌다. 그리고 감마가 바다에 빠지기 직전, 그녀의 바로 위에 낙뢰가 떨어졌다. 물기둥이 폭발하듯이 솟아올랐다가 가라앉고, 수면에 넓게 파문이 일었다. 나이스 어시스트 레아. 에스퍼는 격투 타입에 강하다는 법칙이 여기서도 먹히나보다. 감마는 닻에 묶여있으니 계속 가라앉고 있겠지. 죽은건지 잠깐 무력화된건지 확인할 시간은 없다.


배는 속력을 높여 그대로 미국땅의 반대방향으로 나아갔다. 앞선 호라이즌과의 전투로 인해 성한 상태가 아니었는데다 지휘권자도 사라진 포세이돈의 잔당은 우릴 막지 못했다. 추격을 시도하는 전함 몇 척은 트리톤이 친히 가라앉혀주었다. 미국이 빠르게 멀어져갔다.


결과는 전원생존. 우리는 마침내 9지역의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대장, 항로는?"


"스발바르 제도로 가자. 이렇게 고생했는데 방주는 건져야지."


"정말 오르카 놈들이 아직 방주를 점령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실해?"


"걔들도 당장 스발바르로 출발하진 못했을거야. 아직 여유가 있어."


***


철충이 이상할 정도로 난폭해진 탓에 호드는 예정과는 달리 오르카호로 복귀하질 못했다. 때마침 에바가 연락해서 타개책을 제안했고, 사령관은 수상쩍지만 더 좋은 방안이 없었기에 그 제안을 수락했다. 


라비아타와 그녀가 이끄는 스트라이커즈를 보내 호드와 합류시키고, 그들은 오르카호로 복귀하는 대신 에바의 제안대로 알래스카의 철의 왕자의 연구소로 향했다.


에바가 제시한 길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령관에겐 북극해를 통해 스발바르 제도로 가라고 말했다. 그곳이 현 시점에서 저항군에게 있어 제일 안전한 장소이기도 하고, 거기 위치한 기억의 방주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하지만 오르카호는 바로 스발바르 제도로 출발하는 대신 먼저 베링 해협 인근의 세인트 로렌스 섬으로 향했다. 난민 수송 작전을 마칠 즈음 요안나 아일랜드를 비롯한 지상 거점이 철충의 공습에 위협받고 있다는 긴급보고가 들어왔었고, 그들에겐 거점을 버리고 몸만 챙겨서 저 섬에서 합류하자고 했다. 오르카호가 먼저 세인트 로렌스 섬에 도착하고, 이어서 요안나가 이끄는 외부거점의 대원들을 태운 배가 하나 둘 도착했다. 사령관과 요안나 일행이 무사히 재회한 뒤, 그들을 실은 오르카호는 한 발 늦게 스발바르 제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


펙스에는 감시 기록 장치라는 것이 있다. 오메가의 영역을 실시간 감시하는 위성 카메라로, 비서 유미가 오르카호와 같이 떠나지 못한 이유였다.


유미는 마지막까지 미국에 남아서 오르카의 분함대가 감지 범위를 벗어날 때까지 초 단위로 갱신되는 기록을 지웠다. 그 덕분에 오르카 저항군은 모두 무사히 펙스의 눈을 피해 바다로 몸을 숨길 수 있었고, 유미는 자리를 비운 것이 들키기 전에 서둘러 오메가의 본진으로 돌아갔다.


감시 기록 장치는 다시 활성화됐고, 두번째 인간 일행이 탈취한 한 척의 군수지원함이 고스란히 감시망에 포착됐다. 이윽고 오메가가 입력한 명령어에, 위성 카메라는 그 배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현재 위치, 여태까지 지나온 길, 그리고 지금 가고있는 방향.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기록되었다. 예상 목적지는 베링 해, 나아가 북극해로 진입할 듯 했다.


오메가 휘하의 함대가 두번째 인간의 뒤를 쫓아 출항했다. 비록 오메가의 해군은 포세이돈에 비하면 질적으로나 양으로나 부족했지만 지금 감마의 함대는 기함을 포함해 큰 피해를 입어 수리가 급선무이기도 했고, 두번째 인간의 소규모 집단을 잡는데엔 오메가의 병력만으로도 충분할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여유 부리다가 두번째 인간을 눈앞에서 놓친 탓에 있는대로 짜증이 난 오메가는 이번엔 곧장 추격대를 보냈다. 그녀가 미처 생각못한 변수는 지금 북극해로 향하고 있는게 그들만이 아니었다는 거다.


***


북극해에 진입하자 눈에 띄게 추워졌다. 해수면에 크고작은 얼음 덩어리가 둥둥 떠다닌다.

대부분이 선내에 머물러 안나오려고 하는데, 이런 날씨에도 꿋꿋이 갑판에 나와서 일하는 이들이 있었다.


코트를 껴입고 밖으로 나오니 초코바를 우물거리며 경계근무를 서고있던 알비스가 보였다. 탑돌이가 먼저 날 발견하고선 쀼삡거리며 알비스를 부르자 알비스도 나를 뒤돌아봤다. 알비스는 입안에 든 걸 꿀걱 삼키고선 활짝 웃으며 손을 방방 흔들었다.


"아, 대장님! 안녕! 대장님도 초코바 먹을래?"


"오, 좋지. 하나만 줄래?"


"응! 여깄어!"


알비스는 탄입대에서 초코바를 하나 꺼내 척 건네줬다. 추위 탓인지 초코바가 좀 딱딱했지만 씹을만했다. 맛있다. 나는 남는 손으로 알비스의 머리를 헝클어주었다.


"추울텐데 수고가 많네."


"헤헤, 하나도 안추워! 왜냐하면 알비스는 자랑스러운 발할라의 일원이니까!"


"오구, 귀여운 것."


알비스가 허리에 주먹을 얹고선 등을 쭉 펴고 턱을 척 들어올렸다. 얼굴이 높아진 김에 볼따구를 만지작거리니 따듯하고 말랑한 감촉이 전해져왔다. 알비스는 헤실헤실 웃으며 역으로 제 뺨을 내 손에 비볐다.


고개를 돌리면 그렘린과 드론이 트리톤을 수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트리톤은 덩치 탓에 선내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밖에서 수리해야만 했다.


"휴우, 이 작업도 끝이 보여가네요."


"본 개체의 수리로 인해 선박 점검이 상당시간 지체되었는데, 괜찮은 건가."


"배는 됐어요. 겨우 총알 좀 박히거나 그슬린 정도니까. 움직이는 데는 지장없고."


"어차피 적 전함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자네 화력이 필수불가결일세. 하늘에서 날아오는 적은 와쳐가 처리한다 해도 말이지."


"이봐요, 저희 모델은 일단은 정찰기거든요. 전투 기능은 부가적인 거고."


와쳐도 여기 있었군. 날지는 않고 갑판에서 대기중이었구나.


"그렘린, 일은 잘 되가?"


"이쪽은 문제없는데... 솔직히,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일손이 너무 부족해요. 저번 전투로 저를 포함해 몇몇 분들이 무기를 잃어버리셨잖아요? 그분들이 쓸 새 무기도 만들어야 하고, 아직 남아있는 무기도 한번 점검해야 하는데... 엔지니어는 두 명 밖에 없는데 포츈 언니는 배를 모느라 자리에서 벗어날수가 없으니, 곤란하게 됐죠."


일손 부족에 장비 부족. 어떻게든 펙스의 마수를 뿌리칠 수는 있었지만 상황은 영 좋지가 않았다. 


"음. 추운 건 괜찮고?"


"헤헤, 그부분은 걱정 안해주셔도 되요. 알비스도 그렇고, 저흰 처음부터 이런 날씨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니까요."


"이보게 대장, 나도 좀 걱정해주지 않겠나?"


"넌 로봇이잖아. 추위를 느낄 수 있긴 해?"


"엔진이 얼어붙을 수는 있단 말일세! 나같은 소형 모델은 특히나 더 외부온도에 취약하다고! 원래 난 실내용이란 말이지!?"


"넌 무슨 변온동물이냐..."


나는 드론에게는 수고해달라는 말밖에 남겨줄 수가 없었다.




군수품 창고에선 니키가 상자를 하나하나 열어보며 물자 목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우리가 포세이돈에서 훔친 이 배는 군수지원함이었기에 창고엔 상당량의 물자가 비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니키. 조사는 어느정도 진행됐어?"


"자세한 수량 조사는 아직 멀었는데, 전체적인 파악은 끝났어."


"그래? 그래서, 이 배가 구체적으로 뭘 싣고있는거야?"


"여기있는 군수품은 거의 다 군사 장비와 병기야. 차량도 있고. 반면 포세이돈은 바이오로이드 병사를 잘 안쓰는 모양인지 우리가 먹을 식량이나 입을 옷 같은건 턱없이 적어. 식량 사정은 소완이 맡기로 했으니까 자세한 건 그쪽에 가서 물어봐."


연료나 배터리는 제법 쌓여있으니 로봇 친구들은 굶을 일 없겠지만. 니키는 살짝 웃었다.


"군사 장비에 병기라면... 장비 부족 문제는 해결되는 건가? 무기 잃어버린 애들한테 새로 쥐어줄만한 좋은 거 있어?"


"아니. 여기있는 건 다 미사일, 어뢰, 폭뢰, 기뢰... 그런 거 뿐이야. 아니면 대공포용 탄약이라던가."


"그것들도 충분히 쓸만한 거 아냐?"


"여기선 어뢰 못 쏴. 이 배가 가진 자체적인 무장은 함수와 함미에 1문씩 배치된 20mm 발칸포 뿐이라고. 누구처럼 미사일을 직접 집어던진다면 모를까. 그래도 트리톤이랑 와쳐는 미사일 동날까봐 걱정하지 않고 펑펑 쏠 수 있겠네."


아니지, 규격이 맞긴 하나? 니키는 잠시 생각하다가 보급품 상자를 열고 총을 하나 꺼내보였다. 손가락을 걸 방아쇠가 없는, 사람이 쓰는 게 아닌 로봇에 붙여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AGS용 무장 파츠나 예비 부품은 많으니까 잘 조립하면 무기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공순이 애들 바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니키는 입맛을 다시며 총을 도로 상자에 던져넣었다. 


"우리 천재 여동생만 여기 있었으면 만사가 해결됐을텐데, 참 아쉬워."




주방에 자리잡은 소완은 식재료 관리에 힘쓰고 있었다.


"소완, 남은 식량은 어때? 충분해?"


"인원수가 적으니 양은 아직 여유가 있지만, 질이 문제로군요. 전투식량에 보존식 뿐... 실로 불만족스럽사옵니다."


"그래도 필요한 영양분은 얻을 수 있지 않나?"


"만족스러운 맛을 내지 못한다는 건 요리사로서의 수치이옵니다. 트리아이나 양에게 식용 물고기를 잡아와달라 부탁했는데, 다행히도 흔쾌히 들어주더군요. 결과만 좋다면 오늘 저녁엔 신선한 생선요리를 진상하겠사옵니다."


소완은 오른팔을 명치 아래로 펼쳐 기품있게 상체를 숙였다.


"보존식이라도 괜찮으니 너무 무리하진 마. 반찬투정할 때가 아니란 건 잘 아니까."


"기대한다고 해주시옵소서."


"아니, 부담주기 싫어서 그러는거니까..."


"기대한다고, 해주시옵소서."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이 소완, 반드시 주인의 기대에 부응하겠나이다."


소완이 빙긋 웃었다. 얘가 원래 이런 캐릭터였던가... 트리아이나가 뭐든 잡아오길 빌어야겠다, 안그랬다간 걔한테 불똥이 튈 것 같으니까.


주방을 떠나려다가 할 말이 생각난 나는 발을 멈추고 소완을 돌아봤다.


"소완. 지금 상태에서 바이오로이드 수가 더 늘어나도 감당 가능할까?"


기억의 방주에서 온전한 유전자 씨앗을 찾게 된다면 부족한 일손을 매꿀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만큼 새로 추가된 인원을 먹여살릴 기반이 되냐는 것이다.


"그 수가 얼마가 되든, 안정적인 식량 공급처를 찾지 못한채로 규모를 늘리는 것은 자충수이옵니다. 주인께서 바라신다면 얼마든지 저희 허리띠를 졸라매겠습니다만, 그것도 임시조치일 뿐이옵니다."


"역시 그런가... 어차피 바이오로이드 제조시설도 없긴 하지만, 어떻게든 자급자족할 방법을 찾아야겠네."


오르카호의 경우에는 외부에 탐사를 보내 멸망전에 제조된 식료품을 찾거나, 요안나 아일랜드같은 지상 거점에서 농사 등의 방법으로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느 쪽이든 현재의 우리에겐 먼 길이었다.




오드리와 올리비아는 스발바르 제도에서의 활동을 대비한 방한복을 만들고 있었다.


"어때, 잘 되가?"


"꽤나 어려운 리퀘스트네요. 옷가지를 있는대로 긁어모았지만 전원을 위한 옷을 만들기엔 재료가 터무니없이 부족해요. 고문 후유증으로 손도 뻣뻣해져서 예전만큼 효율도 잘 안나고요. 언니는 초능력으로 제단할 줄 아니 저보단 사정이 낫지만."


"초능력...?"


옆에선 올리비아가 염동력같은걸로 바늘을 조작해 옷을 개량하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남는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여줬다.


"후후, 대단하죠? 우리 언니는 네오딤 양이나 레아 양처럼 파워풀하진 못해도 매우 디테일하고 델리케이트한 나노컨트롤이 가능하다고요!"


...그보다 애초에 왜 의류 디자이너가 초능력을 갖고있는거지. 근데 생각해보니 여긴 파티시에르한테도 초능력 쥐어주는 세상이구나.


"아무튼 지금 상태로는 스발바르 제도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AGS를 제외하면 발할라 레이디들과 미스 이그니스 정도겠네요."


"응? 이그니스는 왜?"


오드리가 잠시 움찔했다.


"어, 그게... 미스 이그니스는, 체온이 높거든요. 그래서..."


오드리가 대답을 회피하는 듯 하자 올리비아가 어떤 글을 적은 태블릿을 보여주었다.


[피하지방이 두꺼워서.]


"언니!! 다이렉트하게 말하지 말라니까요! ...이건 우리들만의 시크릿이에요, 미스터?"


오드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손가락을 입가에 대고 쉿 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오자 오드리도 미소지었다. 올리비아가 오드리의 어깨를 건들고 눈짓으로 뭔가 전달하자 오드리는 웃음기를 거두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미스터. 말해두고 싶은 게 있어요. 지도를 봤는데, 스발바르 제도는 레모네이드 델타의 영역권과 매우 근접해요. 그곳에서 어떤 데인저러스한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오드리가 걱정하는 건 오르카가 아닌 델타의 세력과의 접촉이었다. 나야 게임 스토리를 알고있으니 거기 남은 적은 소규모 철충 무리와 델타의 잔당 정도라는 걸 알지만, 오드리의 불안을 가라앉히려면 이걸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만 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거야. 델타는 스발바르 제도를 점령하지 않았을걸, 거기서 걔가 탐낼만한 건 기억의 방주에 저장된 유전자 씨앗 뿐이니까."


"설령 그렇다 해도, 저희랑 목적이 겹친다는 거잖아요? 델타가 먼저 가서 그곳에 무슨 장난질을 해놓았을지, 어쩌면 이미 다 털어먹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요."


...정답이다. 예리한데. 


"그래도 가서 확인해봐야지. 이미 델타가 휩쓸고 지나갔다 해도 뭐든 남은 게 있지 않겠어? 이런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평생 약소세력인 채로 남게될거야. 그럼 오메가나 다른 적들이 계속해서 우릴 잡아먹으려 들걸."


오드리는 불안감이 남아있지만 어느정도 납득했는지 말리지 않겠다는 듯 더 말하지 않았다. 이번엔 올리비아가 태블릿을 들어 보여줬다.


[기억의 방주의 정확한 위치는 알고있어?]


"...어어... 아니...?"


[그 군도의 면적은 한반도보다도 훨씬 크다고. 거기서 어떻게 찾을 생각이야?]


그건...


...미처 생각을 안해봤는데. 제일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부분을 바늘처럼 콕 찌르자 나는 벙쪘다.

어쩌지.



할 말은 한다, 올카콜라!

참고로 에바는 두번째 인간의 존재를 모르고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