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




“내가 왜 너흴 도와줘야 하지?”


1318번은 그렇게 물으며 사령관을 내려보았다.


사령관은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가 그러기도 전에 1318번은 말을 이었다.


“오, 입을 열기 전에 다시 생각해 보길 바라지. 너희 사정이 어렵든 말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그것에 대한 동정심은 느껴지지도 않

으니 말이다.”


사령관은 뜨끔하며 입을 다물었고, 그가 아무 이유도 대지 못하는 것을 보며 1318번은 그를 비웃었다.


“아까 전의 말솜씨는 어디 간 거지?”


그렇게 비웃는 1318번을 보던 사령관의 머릿속에 퍼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넌 나 말고 진짜 인간과 대화해 본 적이 없지?”


“아니, 있지. 날 만들었던 연구원들과 대화해 봤었다.”


“그렇다고 해도, 오랫동안 깊은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을 거 아니야?”


“인간들을 이해하려면 깊은 대화는 필요하지 않아. 인간들은 숨기려고 하는 게 많지만, 길어봐야 5분 정도면 전부 빤히 보이더군.”


“그럼 나한테는 뭐가 보였는데?”


“무식함.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논리 부족. 그게 가장 먼저 보이더군. 즉흥적으로 의견을 내는 건 잘 하지만, 급하게 말을 짜 맞추다 보

니 당연히 논리가 부족할 수밖에 없지. 그 점은 이해하고 있다.”


“…그것 말고는?"


“방금 말했듯이, 즉흥성과 임기응변. 즉흥적으로 말을 짜맞추고, 말을 돌려서 자기 논리를 정리할 시간을 버는 걸 잘하더군. 아, 그리고 네가 멸망 전의 대부분의 인류와는 달리 바이오로이드들에 대한 태도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네 옆의 블랙 리리스 기종이 애정 어린 눈빛으로 널 걱정하더군. 애정을 받는다는 건 호감을 살 만한 행동을 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했다는 뜻이지.”


자신의 말이 틀렸냐고 묻는 1318번에게, 사령관은 고개를 저었다.


“뭐, 바이오로이드에게 진실된 애정을 받는다는 게 특별한 경우기는 하지만…아예 없던 일도 아니지. 그건 그렇고, 내가 너희를 왜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듣지 못했군.”


말하지 못하겠다면 이만 가 봐도 되냐며 묻는 1318번을 불러세우며, 사령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가를 줄게.”


“대가?”


1318번은 사령관을 비웃는 것이 분명한 웃음을 입가에 띄며 되물었다.


“네가 나에게 무슨 대가를 줄 수 있다는 거지?”


“내 생각에, 넌 인간들에게 굉장한 흥미를 가지고 있어.”


“당연하지. 너희들도 너희의 창조주에 대한 탐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듯이, 나도 인간들에 대해 관심이 많거든.”


“그리고 네 눈 앞에는 현재 지구상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인간이 있지.”


“네가 유일하게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확실하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나와 협상을 하려고 하는 건가?”


“아니, 확실해. 휩노스 병이라는 걸 알고 있어?”


“그래, 조금 전에 다프네에게서 들었지. 잠자듯이 의식을 잃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병.”


“잘 알고 있네. 정확히는 병이 아니라 증후군이야. 우주에서 발산된 어느 전파와 인간의 중추 신경계가 접하게 되면 신경계가 변이를 

일으키게 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증후군이지.”


“우주로부터 발산된 전파? 나보고 그걸 믿으라는 건가?”


“넌 기계니까 전파에 더 민감할 거 아니야? 한번 잘 느껴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사령관을 바라보던 1318번은 이내 눈을 감고서 주변의 전파에 집중했다.


뭔가를 느꼈는지,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얼굴을 잠시 찡그리더니 말했다.


“…정말이군. 이상한 전파가 감지돼. 파장이…단 한 번도 지구상에서 발견된 적 없는 파장이군.”


1318번은 얼굴을 살짝 찌푸린 채로 눈을 떴다.


“어쨌든, 그 전파가 지금 지상 어느 곳이든 닿고 있어서, 인간들은 그걸 피할 수가 없어.”


“그러므로 지상에 있는 인간들은 전부 죽었다는 거군. 그럼 지하로 들어간 인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나?”


“지하 벙커에서도 죽은 사례가 있었어.”


“…우주로 간 인간들은…없겠지. 바보 같은 질문이었어.”


1318번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로 말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네가 최후의 인간이로군.”


“그래, 어쩌다 보니…이 저항군 사령관의 자리에 앉아 있지. 과거의 기억도 없는 채로.”


사령관은 어깨를 으쓱였다.


“꽤 흥미로운 관찰 대상 아니야?”


“네 말은…너를 관찰하는 게 보수라는 건가? 내가 너희에게 협력하는 것에 대한?”


“그런 셈이지.”


1318번은 웃음을 흘리더니, 이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기계적으로 합성된 웃음소리에, 블랙 리리스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오…이런 당돌한 인간 같으니. 자기 자신을 협상패로 쓸 줄이야.”


1318번은 웃는 것을 멈추고서 말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건가?”


“불만이 없진 않지만, 일단은 받아들이도록 하지. 하지만 하나만 확실히 해 두지.”


1318번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첫째, 우리의 관계는 협력 관계이지, 부하-상사 관계가 아니다. 넌 내게 명령할 권한이 없어.”


“좋아.”


“둘째, 난 항상 너희와 같이 있진 않을 거다. 가끔씩은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도 가겠지.”


“…그럼 날 어떻게 관찰하려고?”


그 말에, 1318번은 함장실 안에 달려 있는 CCTV를 가리켰다.


블랙 리리스와 사령관이 CCTV로 시선을 돌리자, CCTV는 두 사람이 서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1318번의 짓임을 알아챈 둘은 곧바로 1318번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한 거지?”


블랙 리리스가 위협조로 물어보자 1318번은 간단하다는 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흰 보안 프로그램을 개선할 필요가 있어. 너희 통신 시스템에 침입하고 나니, 다른 시스템들도 알아서 술술 뚫리더군. 심지어 보안 

프로토콜은 회피하기가 너무 쉬워서 하품이 날 정도였어…도대체 보안 책임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문책이 필요하겠어, 인간.”


1318번이 조작한 CCTV를 보던 사령관은 속으로 이젠 함장실에서 그녀들과 그렇고 그런 짓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짓던 사령관은 어차피 탈론페더가 설치한 몰래카메라들도 있는데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하며 1318번에게 말했다.


“…그래, 알겠어.”


“좋다, 그럼 계약은 성사되었군.”


1318번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령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인간들은 계약을 할 때 악수를 한다고 하던데. 아니면 계약 서류가 필요한 건가? 도장이나?”


“아니, 지금은 필요하진 않은 것 같네.”


사령관은 1318번의 차가운 금속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며 말했다.


“구두로 한 계약은 그 무엇보다도 효력이 없을 텐데.”


“너도 지성이 있는 존재라면 양심이 있겠지.”


“내 양심에 계약의 이행 여부를 기댄다는 건가? 바보 같은 선택이군…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지.”


1318번은 만족한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날 저녁, 해 질 녘이 되자 1318번은 오르카 호의 갑판 위에 서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갑판 위를 걷는 소리를 듣고서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다프네가 서 있었다.


“사령관님과 계약을 하셨다면서요?”


“그랬지.”


1318번은 다시 석양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네가 날 발견한 건 나에게 있어서 천운이었다. 감사를 표하지.”


“뭘요.”


다프네는 미소를 지었지만, 1318번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계약 내용이…사령관님을 관찰하는 거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소문이 꽤나 빨리 퍼지는군. 누구에게 들었지?”


“어…레아 언니요. 레아 언니는 콘스탄챠 씨에게 들었고, 콘스탄챠 씨는…리리스 씨한테서 들었다고 했어요.”


“경호원이 그리 입이 싸서 쓰나.”


1318번은 혀를 차는 소리를 발성 장치에서 합성해 내보냈다.


“말이 나온 김에, 지금 그 인간이 뭘 하고 있는지 한 번 봐야겠군.”


“어떻게요? 직접 찾아가시려고요?”


“아니, 선내의 CCTV를 통해서 보면 된다.”


“…그건 또 어떻게 하신 거죠?”


“해킹했지.”


잠시 할 말을 잃은 다프네를 두고서, 1318번은 CCTV에 접속해 함장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이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기분이 이상하군.”


“왜요?”


“…인간과 누군가가 책상 위에서 발가벗은 채로 뒹굴고 있거든.”


“…네?”


다프네는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곧바로 이해하고서 얼굴을 붉혔다.


“그…그걸 지켜보고 계시면 안되죠!”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지켜볼 사람은 더 있는 것 같던데. 함장실 이곳저곳에 카메라가 숨겨져 있더군.”


1318번은 CCTV로 사령관을 지켜보는 것을 멈추고서 다프네에게 말했다.


“네 사령관이 그걸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내가 CCTV로 지켜볼 수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저러는 걸 보면 확

실히 그런 건 신경을 안 쓰는 편인 것 같군. 특이한 인간이야.”


1318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먼저 들어가지. 바람이 찬 것 같은데, 난 상관없지만…바이오로이드도 추위는 타겠지. 너희도 생명체니까.”


그렇게 말하고서 갑판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1318번을, 다프네는 그가 완전히 갑판 밑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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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1챕터 끝.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봐줘서 고맙다.


이 다음엔 이야기를 어찌 이어야 되냐...이벤트 스토리들이랑 스까보고 싶었는데, 시간대 설정을 7지 이후로 잡아버렸음...


뭐, 내 부족한 능지를 최대한 쥐어짜내서 스토리 짜 볼게.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