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천아 씨, 제가 언제 실망시킨 적 있었어요?"


탈론페더는 천아의 날카로운 항의를 유들유들하게 받아넘기며 은근슬쩍 몸을 붙였다. 체온에 민감한 천아는 고양이가 사람의 손길을 피하듯 탈론페더가 침범한 공간만큼 딱 맞게 몸을 뺐다.


어떻게든 친한 척 하며 비벼보려던 탈론페더는 아쉬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장화와 바르그가 흥미를 보이고 있는 와중에도 천아의 태도는 냉랭하기만 했다.


"아니, 견본도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고 뭔 놈의 포토카드랑 10분 남짓한 동영상을 1,500 참치에 팔아? 요즘 영화 찍는다더니 제작비 후달려? 이 돈이면 차라리..."

"1,500 참치라니요! 물론 확정적인 정가로 따지면 1,500 참치가 맞지만... 이 룰렛을 15번 돌릴 때까지 안 붙는 운 없는 고객분들에 한해서 구명책을 드린 거라구요? 확률도 깨끗하게 공개해 놨고, 조작의 여지도 없는 룰렛인데도요?"

"암~ 암. 아가씨들, 나 못 믿어?"


뒷편에서 샐러맨더가 가볍게 눈을 찡긋하며 씨익 웃었다. '절대 못 믿지.' 천아는 이 말은 속으로만 삼키며 샐러맨더의 미소와 함께 빛나는 치아를 미심쩍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 장화랑 바르그 님은 언제나 화보집을 애용해 주시는 우량 고객님이시죠? 어때요? 한 번 행운을 시험해보세요! 지금까지 해금된 적 없는 사령관님의 또 다른 모습이 나와 있는 사진과 영상이 가득! 자, 회당 10 참치로 돌리셔도 좋지만, 100 참치로는 특별히 1회 보너스 찬스를 드려서 총 11회를 돌릴 수 있게 해드린다구요?"

"음, 주인님께서 보여주신 적 없는 모습이라..."

"가격이 좀 부담되긴 하지만 프리미엄이라면..."

"아이고, 우리가 하운드가 아니라 블랙카우들이었네! 앞으로 개명하자, 엠프레시스 블랙카우로!"


팽팽 돌아가는 룰렛을 향해 빨려들어가듯 점점 몸이 기울어지는 둘을 본 천아는 이마를 짝! 소리 나게 짚었다. 그리고는 나란히 여물통에 고개를 박는 소처럼 내려가던 둘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끌어올렸다.


"야! 대체 뭔지 알고 팔아주냐? 프리미엄이라고 하면 그냥 다 질러?"

"아니, 뭐... 비싼 만큼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겠지... 그만큼 비용 많이 들여서 촬영했다는 거니까, 기대 해볼만하지 않나...?"

"주인님의 용안과 옥체를 담은 매체라면 얼마든지 살 의향이 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값어치가 주인님의 위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본다만? 그리고, 애초에 1,500 참치를 다 쓰기 전에 뽑으면 될 일이지 않나?"

"답도 없는 흑우들이네..."


온갖 소비심리를 이용한 상술에 보란 듯이 걸려주면서도 도박사의 오류까지 잔뜩 범하고 있는 둘을 보고 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야, 블랙 마켓에서 얘네가 파는 30분짜리 야동만 해도 200 참치 선에서 살 수 있어. 오다가다 마주치던 애들이 나와서 살짝 깨는 것만 참으면 퀄리티도 그럭저럭 볼만하다고. 근데 10분짜리 영상이랑 사진 쪼가리 몇 개 보겠다고 1,500까지 가야 확정인 룰렛을 돌린다고? 진짜 머리 빻은 거 아냐? 그 영상, 노출은 있는 거겠지?"

"헤헤~ 프리미엄인데, 그런 것까지 까면 프리미엄이 아니겠죠? 기대하게 되는 만큼 설레지 않겠어요?"

"이거 봐, 말 못 하잖아!"

"뭐... 블, 블랙 마켓에서 야, 야한... 그걸 판다고? 진짜?"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

"음, 블랙 마켓까지 아는 분이였구만... 이거 판매 전략을 수정해야 할지도..."


천아의 입이 순식간에 다물렸고, 둘의 어그로가 룰렛이 아닌 천아에게로 쏠렸다. 턱을 쓰다듬으며 사태를 관망하던 샐러맨더는 그 틈을 타서 탈론페더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무언가 속삭거렸다.


"매번 200씩 조금씩 나한테 간식비로 청구하는 게 이거 때문이었나?"

"누가 제일 많이 나와? 나는 있어?"

"그럴 거면 그냥 부대비로 월말에 남는 예산 떨어서 덮어씌우고 다 같이 감상할 수 있게 공유하지 그랬나! 치졸하게 혼자만 보고!"

"서, 설마 아직 뒤쪽으로 하는 애들은 없지? 거, 거기까지는 내가 처음 바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따로 예산 빼 둘 테니 너는 매달 말 잘 팔리는 상위 10개 목록 작성해서 나한테 제출해라! 물론 그 예산은 네 간식비에서 제할 거다! 지금까지 우리한테 속이고 독점한 괘씸죄니까 토 달지 말고 달게 받아들이도록!"

"그, 그럼 반대로 여자 쪽에서 공략하는 건 아직 없겠지? 아, 안돼안돼안돼안돼...! 처, 처음을 못 바치면 차라리 처음이라도 받아가고 말겠어...!"

"그, 그만해 이 미친년들아! 나도 최근에 알았다고!"

"자자~ 손님들! 파격 세일~ 파격 세일!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에요~"


두 사냥개의 히스테리를 못 견딘 천아가 폭발하고, 그와 동시에 머리를 맞대고 수군대던 두 호드가 주의를 집중시켰다.


"손님들의 의견 잘 들었습니다! 그럼... 정가 206 참치로! 어떠세요?"

"..."

"..."

"..."


순간 정적이 흘렀다. 너무도 뜬금없는 격차에 모두 몽둥이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얼어붙었다. 서로 싸우던 것도 잊고 말이다.


그때까지 불협화음을 뿜어내던 하운드들은 마치 제식처럼 발을 맞추어 탈론페더 앞으로 향했다. 위압감 넘치는 발소리에 탈론페더는 내심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샐러맨더도 내색하진 않았지만 남몰래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세 사냥개의 머리가 나란히 모였다. 마치 한 몸에 세 머리가 모인 것처럼, 우렁찬 포효가 흘러나왔다.


"처음부터 그렇게 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