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슴이 아플 때가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하게 생활하다 갑자기, 누군가가 내 심장을 조여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당장 죽을 정도로 아프고, 눈물이 자연스럽게 흐를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픈 티를 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조금 빠르고 거칠게 숨을 쉴 뿐이었다.

 

“윽.. 흐읏... 흐.. 후우.. 하아..”

 

거칠게 숨을 쉬고, 얼굴을 찡그려 이상한 표정으로 변하면 아픔 뒤에는 미안함이 찾아왔다.

내가 이상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까, 이 아픔을 눈치채지는 않았을까, 이젠 곁에 있지도 않은 그 사람에게 항상 미안해지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내가 아픈데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이 아픔을 들키는 것을 걱정하는 것도 미안하다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난 깊은 죄를 짊어지고 있었다.

 

20년 전의 그 일을.

함께 했었고 함께 맞섰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숨기고 있으니까.

그의 기억을 지우고 모두를 속였지만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을 감춰지지를 못하니까.

 

난... 그와 모든 것을 속이고 있는 죄를 짊어지고 있다.

아파도 아무리 힘들어도 티를 내면 안 된다.

 

나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

 



“알파, 델타와의 전쟁도 몰타도 전부 끝을 맺었어. 지금의 모습은 일종의 소강상태라고 난 생각해.”

 

오르카의 함장실, 거대 잠수함인 오르카의 함장이자 잠수함의 이름을 딴 오르카 저항군의 사령관인 그의 개인실이었지만 ‘개인’이라는 말과는 반대로 항상 북적거리는 이곳에서 왼쪽 가슴에 오르카 저항군의 마크를 새긴 검은 제복을 입은 한 남자는 깍지를 끼고 입가를 가리며 앞에 서류 뭉치를 든 채 서 있는 여자에게 말을 꺼냈다.

 

눈 밑에 있는 눈물점과 어떻게 봐도 미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얼굴에 감출 수 없이 볼륨감을 자랑하는 가슴과 엉덩이를 가진 이상적인 여자, 한때 소속되어 있던 펙스 그 자체를 증오하며 없애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오르카 저항군과 최후의 인간인 사령관과 합을 맺었었지만 이젠 스스로 주인이라 인정하며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도 않는 그녀. 레모네이드 알파는 말을 듣자마자 서류 뭉치를 더 강하게 쥐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이런 소강상태를 이용해서 유럽 지역을 복구하고 몰타섬을 재건하는 것. 그리고 델타에게 피해를 본 인원들을 케어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야. 네 생각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 혼자 쉬면서 너희들이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보기 싫어.”

 

 

“주인님, 제 생각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다면.. 부디 제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주시면 안 되겠나요.. 그렇게 말하시면.. 전..”

 

“알파.. 그래도 난.. 너희들의 사령관이고 최후의 인간이야. ‘최후의 인간’답게, 그리고 너희들이 항상 의지하고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오르카의 ‘사령관’답게...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 말고는 없어서 그래. 거기다 내 짐을 다른 사람이 대신 짊어지고 가는 것도 조금 그렇고. 내 짐은 내가 짊어지고 가면 충분하니까.. 그러니까..”

 

눈앞에 서류 뭉치를 들고 서 있는 알파나 천장에 있는 환풍구에서 몰래 숨어 덮칠 기회를 엿보고 있는 리리스, 카메라로 함장실 전체를 감시하고 있는 탈론 페더를 포함해서 오르카의 모두가 들어도 마음이 요동칠 정도의 감동적인 말과 함께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꺼냈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알파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팔을 뻗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주인님.. 그래도 저는..!”

 

어깨에 손을 올리자, 그조차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리곤 드디어 안심했는지 알파는 손에 쥐고 있던 서류 뭉치를 힘없이 놓았고 이전보다는 편안한 표정을 지은 채 마찬가지로 그를 바라보았다.

 

항상 인간에게 충성하고 인간의 도움이 되어야만 하는 바이오로이드인 자신을 마찬가지로 한 명의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걱정하고 긍정하는 발언을 했던 사령관의 모습을 지켜보았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그의 모습과 행동은 그를 항상 걱정하고 바라보았던 알파의 마음을 더욱 흔들어 놓기에는 충분했고 이젠 어깨에 손을 올린 것으로는 모자라는 것인지 더욱 그에게 다가가 금방이라도 살갗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 도달했다.

 

“주인님.. 전.. 정말..”

 

슬픔과 행복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가진 채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뒤로한 채로 알파도 그가 했던 것처럼 팔을 뻗었고 그대로 그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여러 군데가 닿아도 상관없다는 듯이, 오히려 좋다는 듯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알파는 그를 안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왼팔을 풀고 그의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쳐 올렸다.

 

그렇게 겹친 손을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이 쥔 알파는 그대로 자기 얼굴로 손을 올렸고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온기를 한껏 달아오른, 붉지만 부드러운 뺨으로 느끼고 있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행복한 표정과 금방이라도 그에게 안길 것 같은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한 뒤 그의 뒤편에 있는 태블릿을 향해 남은 팔을 뻗었고 그대로 그에게 있어서 대원들 다음으로 소중한 태블릿을 뺏어 등 뒤편으로 가져갔다.

 

“...알파? 갑자기 그건 왜..”

 

자기 생각대로 분위기가 나가지 않고 오히려 소중한 것을 빼앗긴 그는 내면에서 무언가가 찢겨나가는 엄청난 고통을 느꼈고, 불쌍해 보이는 강아지를 보는 것만 같은 맑은 눈의 표정을 지은 채 알파에게 말을 꺼냈다.

 

“저를 생각하고.. 아껴주고.. 사랑해주시는건 정말로.. 정말로.. 감사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주인님은 절대 안정이에요. 제가 주인님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는 한이 있더라도요.”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알파.. 난 너희들에게 짐을.. 그리고.. 절대 안정은..”

 

“30시간 41분... 주인님게서 주무시지도 않고 식음도 제대로 드시지 않으면서 일에만 몰두하신 시간이에요. 걱정 끼치고 싶지 않다, 짐을 짊어지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말을 하시면서 걱정시키는 일만 하시면 저희들이 더욱 마음이 아파요.”

 

“내가.. 너희들을 걱정시킨다니.. 오히려 내가 하지 않는 편이 더 걱정..”

 

“주인님. 이제... 그만 쉬실 때도 되셨어요. 이젠 저희들이 주인님을 도와줄 차례에요. 그러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일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쉬어주세요.”

 

사람이 사람을 진심으로 걱정할 때,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표정을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시선을 제대로 맞추는 것도 힘들어하면서 고갤 떨구고, 다른 누군가는 슬픈 표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나타내고, 누군가는 그냥 울면서 감정에 호소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곳에 서서 사랑하는 주인님에게 말하고 있는 알파도 다른 건 아니었다.

 

당장 우는 아이처럼 같이 눈이 붉게 충혈되지는 않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슬픈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진심으로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듯이 말을 하자 그는 맑은 눈의 시선을 다시 그녀의 눈에 집중시키면서 뺨에 가져다 댄 손을 움직여 뺨을 어루만지면서 입을 다시 열었다.

 

“알파, 그리고 모두를 걱정시키게 만들어서 미안해. 그런 표정.. 처음 보는건 아니지만.. 정말.. 미안해.”

 

“주인님...”

 

그의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뺨을 어루만져주자 다시 한번 알파는 안심한 듯이 기뻐 보이는 표정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다시 한번 달아오른 그녀는 그에게 점차 다가가 오히려 그를 덮치려는 생각까지 하면서 그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런데.. 그렇게까지 하루를 날리면서 쉬어야할까..? 하하...”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주인님..?”

 

“하루 전체를 날리는 것은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수면에 필요한 8시간이나 식사를 포함한다면 11시간에서 12시간이면 적당하지 않을까.. 하하..”

 

“...주인님. 전 방금 진심으로 실망했어요.”

 

“저.. 알파..? 방금 뭐라고..”

 

“오늘 하루. 전체를 절대 안정이라도 오르카 전 인원에게 말하겠어요. 그러니 오늘 하루는 어디 나갈 생각도 하지 마시고 그대로 방에서 푹 쉬어주세요. 조금 있으면 주인님의 건강 상태를 고려한 특식이 나올 예정이니 그거 드시고 난 뒤에 주무시면 될 것 같네요.”

 

“아.. 아니.. 잠깐만.. 알파..!!”

 

“오늘 하루. 모두 쉬시고 난 뒤에 태블릿과 서류는 돌려드릴게요. 메신저 기능을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두고 갈테니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불러주세요.”

 

방금까지 느꼈던 알파의 온기와는 달리 엄청나게 추운 살기를 느끼면서 그대로 알파는 방을 나갔다.

결국, 그가 얻은 것이라고는 ‘하루 전체를 쉴 수 있는 권리 (강제)’뿐이었고 결국 할 것도 없어진 그는 그대로 옆에 있는 침대에 제복을 입은 채로 누워 망해버린 하루를 어떻게 때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하아.. 진짜.. 이제 어쩌냐..”

 

이제 일을 빼앗겨버린 그는 알파가 그나마 남겨두고 간 오르카용 스마트폰을 들고 메일이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원을 켜 화면을 보았다.

 

그리고...

 

“...20년 전의 일?”

 

아무것도 아닌 내용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것만 같은 메일의 제목.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그는 그대로 메일을 열어보았고... 오르카의 세상을 뒤집혀놓을 거대한 일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


이거 후회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