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



- 이봐, 오렌지에이드. 


- 놰. 


- 뭐, 일단 일이 이렇게 된 건 미안해. 뭐, 나라도 짜증 날 거야. 몇 주 동안 잠복하다 퇴근했는데 다시 출동하라고 하면 사건이고 나발이고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더라고. 편하게 오렌지라고 불러도 되지? 


- ...놰. 


- 자, 그럼 오렌지. 나 좀 도와줘. 네가 도와줘야 내 동료를 살릴 수 있어. 그리고 이번 일 잘 해결되면 망할 테러리스트들도 물 먹일 수 있다니까? 대중들에겐 바이오로이드 혐오를 퍼트리지만 정작 자기들은 목적을 위해 바이오로이드를 쓰는 위선자로 만드는 거지. 


시티가드로 돌아가는 차 안. 

리앤은 최선을 다해서 오렌지에이드에게 사과하고 있다. 

건성으로 대답하던 오렌지에이드는 고개를 돌려 리앤을 바라봤다. 


- 리앤씨는 퇴근 몇 시예요? 


뜬금없는 질문에 리앤은 당황했다. 


- 나? 보통 9시 출근 6시 퇴근이긴 한데 큰 의미는 없어. 퇴근이라고 해도 숙소는 시티가드에 있고, 비상 걸리면 시간 관계없이 출동, 잠복 들어가면 1~2주는 집에 못 들어가지. 


- 어우, 빡세시네... 


잠시 생각하던 리앤이 인상을 구겼다. 


- 너 지금 나한테 퇴근 시간 늦어진다고 찡찡대려고 했던 거야? 아무리 내가 도움 받는 처지긴 한지만 너무 양심 없는데? 어디 시티가드 앞에서 업무시간을 비비려고 그래! 


- 그건 제가 미안해요. 근데 당신 때문에 1주일 동안 매일 보고서 쓰게 생겼잖아요!


- 8시까지 올리라며. 내가 퇴근 전에 보고서 쓸 시간 줄게. 


- 그게 한 번에 통과될 거 같아요? 제타 그 아줌마가 얼마나 깐깐한데. 이 부분 상세히 써서 다시 올려라. 저 부분은 불필요하니 빼라. 등등하면서 계속 빠꾸 먹일걸요? 그러다 보면 시간은 계속 흐르고, 저는 잠도 못 자고,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해지며, 피부는 썩어가겠죠. 고마워요. 다 리앤씨 덕분이에요. 


시티가드에 도착할 때까지 오렌지에이드는 자신의 불만을 쉴 새 없이 얘기했다. 

리앤은 그녀를 데려온 자신의 판단을 점점 후회했다. 


- 이제 어디 가는 게예요? 


- 영안실, 거기서 뭐가 나왔나 확인해 봐야지. 


그들은 시티가드 지하에 있는 영안실 앞에 도착했다. 

거기엔 이미 한 바이오로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 어서 오세요. 형사님. 


- 나타샤, 뭐 나온 거 있어? 


그들은 가볍게 인사한 후 서늘한 영안실 안으로 들어갔다. 


- 일단 리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시체가 불에 타 힘들었지만, 과거 치과 기록으로 겨우 확인이 가능했어요. 본명 ‘앤드류 리’, 나이 56세, 보스턴 대학교 인류학 교수로 재직했었고, 연합전쟁 때 꽤 고령인데도 정부군에 자원입대 했더라고요.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로 밝혀진 행방은 없었습니다.


- 꽤 배운 아저씨였군. 나머지 테러범은? 


- 다른 4구의 시신은 신원이 남자라는 거 말곤 확인된 게 없습니다. 그리고 경감님의 개가 꽤 열심히 일한 것 같더라고요. 팔다리가 다 흩어져 있어서 맞추는 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 그럼 나머지는 과다 출혈로 죽었겠군. 뭐, 리를 제외하곤 전부 사살 명령이었으니까. 리의 사인은 두부관통상이었나? 


- 셰퍼드님의 사진을 보면 그게 맞긴 한데, 뭔가 좀... 한번 봐보세요. 


나타샤는 ‘리’라고 쓰여 있는 냉동고 문을 열었다. 

냉동고 안에는 불에 탄 사람의 시체가 있었다. 

머리에 구멍이 나있고, 불에 타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체의 머리는 몸에서 떨어져 있었다. 


- 이거 상태 왜 이래? 원래 멀쩡했잖아. 


리앤은 나머지 냉동고도 열어봤다. 전부 불에 타 웅크리고 있었고, 팔다리는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머리는 붙어있었다. 


-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떨어졌는데 좀 이상하죠? 보통 시체가 불에 타면서 근육이 없어져도 뼈 때문에 형태는 유지하기 마련이거든요. 하지만 이건 불에 탔는데 머리가 몸에서 떨어졌어요. 


- 그렇다는 건... 머리와 몸을 연결하는 목뼈에 문제가 생겼다는 거군. 


리앤은 셰퍼드가 보낸 사진을 확인했다. 

리가 사망한 사진. 

리는 눈을 감고 있고 이마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 대장이 보낸 사진에는 리는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걸로 나온단 말이지. 이런 식이면 사인이 두부관통상이 아니라 경추골절일 수도 있겠군. 부검해 봤어? 


- 시도는 해봤는데 화제로 시신이 손상된 상태여서 사인이 확실하진 않아요. 


- 대장이 저놈의 목을 부러뜨리고 총으로 쐈을 수도 있다는 건데... 확인사살인가? 다시 한번 확실히 알아봐.


- 그리고 리에 대해서 꽤 흥미로운 게 있는데요. 일단 이걸 보세요. 


나타샤는 리앤에게 종이 뭉치들을 건네줬다. 


-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경쟁과 진화’, ‘스파르타쿠스와 노예의 자유 의지’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게 뭐야? 


- 리가 썼던 논문입니다. 진짜 재밌는 건 마지막에 있어요. 


리앤은 마지막 뭉치를 확인하고 흥미롭게 말했다. 


- ‘바이오로이드 인권 존중을 통한 실업률 타파’ 이걸 그놈이 쓴 거라고? 


- 그러니까 재밌는 거죠. 이런 논문을 쓸 정도로 바이오로이드 인권에 신경을 쓴 양반이 어쩌다 테러리스트의 수장이 된 걸까요?


- 이걸 보니까 좀 알 거 같네.


종이를 빠르게 넘겨보던 리앤이 말했다.


- 그걸 벌써 다 봤어요?


- 아니. 그런데 이걸 봐.


리앤은 논문 저자 부분을 가리켰다.


- 제1 저자는 리, 그리고 공동 저자는...


- 피터 코스타. 바이오로이드 인권 운동가였지.


- 블랙리버가 보낸 바이오로이드에게 살해당했죠. 리의 제자였나 보네요.


- 어쩌면 이 사건을 계기로 반 바이오로이드로 전향했을 수도 있겠군.


그 말이 끝나자 영안실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 또 블랙리버에요? 하여튼 뉴올리언스 때도 그렇고 뭔 사고만 터지면 다 그놈들 탓이네요.


갑작스러운 오렌지의 난입에 정적이 흘렀다.


- 누구세요?


당황한 나타샤를 보고 리앤은 말했다.


- 인사해. 나타샤, 여기는 11번 오렌지에이드, 오렌지에이드, 여기는 24번 나타샤.


- 만나서 반가워요. 레모네이드 제타님의 명령으로 파견 나온 오렌지에이드예요.


- 오렌지에이드는 헤드헌터 일을 해서 여러 바이오로이드에 대해 알고 있어. 도움이 될 거야.


- 아, 그럼 이것 좀 확인해 주시겠어요?


나타샤는 인사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오렌지를 영안실 안쪽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녀가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냉동고를 열었다.

냉동고 안에서 불에 탄 시체가 나왔다.


- 으악! 뭔 짓이에요!


오렌지가 소리쳤다.


- 이게 이번 현장에 나온 고문 받다 죽은 바이오로이든데 신원 확인이 안 돼서요. 어떤 모델인지 확인 좀 해줄 수 있나요?


- 이렇게 타버렸는데 어떻게 알아요!


오렌지에이드는 헛구역질하면서 말했다.


- 아, 그렇겠네. 그럼 이 사진 좀 봐주세요.


나타샤는 오렌지에게 사진을 들이밀었다. 

사진에는 고문받고 죽은 바이오로이드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혀있었다. 


- 이 검은색 단발머리의 바이오로이드 모델 좀 알려주세요. 


- 우웩!


오렌지는 이번엔 참지 못했고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숨을 고르고 오렌지가 대답했다. 


- 모르겠는데요? 


- 야, 너 진짜! 


이번에는 리앤이 소리 질렀다. 


- 아무리 억지로 끌려왔지만, 너무 비협조적인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납치당한 바이오로이든데 주인은 찾아 줘야 할 거 아니야.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레모네이드한테 보고할 수밖에 없어. 


- 비협조적인 게 아니라 진짜 저도 몰라요. 아무리 제가 헤드헌터라고 해도 모든 바이오로이드를 어떻게 알겠어요? 삼안, 블랙리버, 덴세츠, 하다못해 스마트엔조이 제품이면 몰라도 이름 없는 중소기업 바이오로이드까지 들어가면 저도 조사가 필요해요. 


오렌지는 억울하다는 투로 말했다. 


- 그럼 너 의견은 중소기업 제품일 거라 이거군. 


- 제 생각은 그래요. 그런데 저 바이오로이드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오렌지는 바이오로이드 시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 일단 간단한 사인 등을 확인한 후 주인이 나타나기 전까진 특별한 조치 없이 보관합니다. 사망 후 1주일이 지나거나 주인이 동의해야 부검을 진행할 수 있어요. 


- 어... 그래도 살해당한 건데 주인의 동의가 없어도 부검하는 게 맞지 않나요? 


오렌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한데, 바이오로이드는 사유 재산이어서 멋대로 부검하면 고소당할 수 있어. 그리고 주인이 나타나도 부검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고. 


- 자기 바이오로이드가 피해를 입었는데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 바이오로이드 사망 원인 중 주인의 과실도 꽤 높은 비율을 차지하거든.


- ...


바이오로이드의 어둠을 들은 오렌지는 오랜만에 조용히 있었다. 


- 하여튼 보관 후 1주일이 지나면 주인이 없다고 판단한 후 부검 등 상세히 조사 후 화장합니다. 이틀 전부터 보관했으니까 5일 남았네요. 그리고 남은 금속 골격은 기업에 돌려주죠. 기업도 확인이 안 되면 폐기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골격에 모델명이라도 적혀있길 바라야겠네요. 


- 이 바이오로드는 특이사항 있어? 


리앤은 불에 탄 바이오로이드를 가리키며 물었다. 


- 아직 부검도 못했고, 불에 타서 확인도 잘 안 되지만, 경추에 맞은 총이 사인일겁니다. 덕분에 모듈은 박살났고요. 하지만 사진으로 봤을 때 타박상이 너무 심해서 고문 중 사망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 아직 확실한건 없는거네. 나중에 부검하게 되면 알려줘.


- 알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우리 동료를 확인해야겠군. 


다른 냉동고가 열렸다.

리앤과 나타샤는 불에 탄 동료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특이사항은? 


- 경정님은 복부에 두발, 경추에 한발 총 3군데 총상이 발견됐습니다. 대장님은 경추에 한발 발견됐고요. 탄환도 대구경 권총탄으로 똑같습니다. 이번에도 화제 때문에 확실하진 않지만 동일범 소행 같아요.


- 다른 건 없어? 


- 그리고 크게 중요한 건 아닌데 대장님 모듈은 경정님보단 덜 파손됐습... 


- 뭐! 그럼 복구할 수 있어? 


리앤은 나타샤의 말을 끊고 소리쳤다.


- 아니요. 끝까지 들어보세요. 덜 파손됐다는 게 복구가 가능하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경정님과 저 바이오로이드가 100% 파손됐다면 대장님은 90% 파손됐다는 소리예요. 최대한 노력은 해보겠는데 솔직히 말하면 복구는 불가능에 가까워요. 


- 그럼 ‘코어링크’는 가능한 거야? 그거라도 되면 내가 링크해서 알아볼 수 있는데. 


리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 글쎄요, 이 정도로 파손된 모듈을 코어링크 했다간 죽을 가능성도 꽤 높고, 만약에 죽지 않는다고 해도 부작용으로 정상적인 생활은 못 할 겁니다. 그러니까 하지 마세요. 


나타샤는 단호하게 말했다. 


- 그럼... 힘들겠지만 최대한 복구해 봐. 


- 네. 그리고 경정님 무장을 확인해 봤는데 로봇 개가 회수되지 않았어요.


- 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개로 사살했고... 작전 중 파괴됐나? 사용한 로봇은 확보했어?


- 넵. 현장을 지키고 있는 램파트가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위 때문에 인원이 없어서 가져오진 못했어요. 


- 그거야 뭐, 내가 현장으로 가면 되지. 수고했어. 


- 저기 리앤씨? 


오렌지가 리앤에게 물었다. 


- 현장이라면 섀스타 산 맞죠? 


- 그렇지. 왜?


- 거기까지 또 언제 가요? 저 보고서도 써야 하는데...


- 헬기 타고. 


- 진짜요? 나 헬기 처음 타보는데! 그거 재밌어요?


리앤과 오렌지는 급하게 영안실을 떠났다. 

나타샤는 점점 멀어지는 대화를 들으며 홀로 남아있다. 

그리고 오렌지가 오염시킨 흔적을 보며 중얼거렸다. 


- 이거 누가 치우지?



---------------------------------




나타샤는 웨히히 만화에 나오는 시티가드 소속 바이오로이드




피터 코스타는 멸망 전의 어느 기록에 나오는 에이미한테 암살 당한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