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그 섬의 브라우니



"사령관님, 급히 좀 와주시겠어요?"


"콘스탄챠? 무슨 일이야?"


"통신상으로는 말씀드리기가 힘들어요. 얼른 공방으로 와 주세요."




무슨 일인가 싶어 마리와 함께 공방으로 찾아간 사령관은 곤혹한 얼굴로 작업대 위에서 작업중인 닥터와 포츈, 부지런히 뭔가를 가지고 오는 그렘린, 그리고 문 옆에서 사령관을 기다리고 있던 콘스타챠에게 바로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콘스탄챠는 말없이 작업대를 바라보았다. 사령관의 시선이 거기에 닿자. 피로 낭자한 작업대 위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닥터가 의료용 로븟으로 작업대 위의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누르고 고치려고 하는 동안 포츈은 잠시 얼굴에 튄 피를 닦고 새 메스와 붕대를 가져오느라 분주했다. 콘스탄챠가 설명을 시작했다.



"저도 뒤늦게 와서 상황을 들은 것이지만. 닥터 말로는 유전자 씨앗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고 해요. 원래는 브라우니가 되어야 했었는데..."



가까스의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사체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 정도의 의미밖에 되지 않았다. 간신히 숨을 쉬고 피를 뿜었지만. 그게 얼마나 오래 갈 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닥터와 포츈이 필사적으로 상처란 상처를 전부 봉합하고 있었지만. 다리가 기이한 방향으로 뒤틀리며 부러진 뼈가 튀어나오자, 그렘린이 비명을 지르려다 숨을 삼키며 포츈과 같이 간신히 힘주어 뼈를 짜맞추고는 부목용 스프레이를 뿌려 고정시켰다.




보고 받을 일이 많았지만. 사령관은 공방을 떠날 수가 없어 전부 전결처리하거나 대기시키고는 작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5시간 정도가 지나자. 닥터는 진통제와 마취제 범벅이 되어 조용해진 그것을 수복시키려 보내려다. 잠시 포츈과 눈빛을 교환하고는, 한숨을 쉬며 링거만 달아놓았다. 그리고 나서야 사령관이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오빠. 왔구나."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닥터는 피곤한 얼굴로 차트를 들여다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럴리가 없어야 하는데. 이번에 구해 온 유전자 씨앗이 어떤 이유에선지 오염된 거 같아."


"오염? 철충에게?"


"그건 아닌 거 같아. 그냥 화학 물질... 발견된 장소가 화학폐기물 처리장이었다고 했는데. 누가 거기에 두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캐비닛 안이라 괜찮을 거 같다고 그랬는데. 아니었나봐."


"그래서 저렇게 된 거야?"


"저렇게? 뭐 그렇지. 생장이 제대로 안 되는데 골격을 만들려다가 엉망이 된 거 같아. 그것도 급속 처리를 하다가."




포츈이 혹여라도 그것이 다시 발작할까 고정을 단단히 확인하는 동안, 닥터는 설명을 이어갔다.



"시간도 부족하고 해서 빨리 끝내려다가 그게 문제가 되어서 내부 장기며 골격이며 실시간으로 뒤틀리며 성장한 거야. 나랑 포츈이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가 버렸고."


"돌이킬 수 없다는 게 무슨 소리야?"



닥터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이제와서 바이오로이드용 의료 시스템을 쓴다고 해서 애초부터 뒤틀린 몸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가 없다는 거야. 기본 설계도인 유전자가 뒤틀렸으니까."


"그럼 방법이 있을까?"


"다른 브라우니와 같이 정상적으로 회복하는 거? 모르겠어. 방법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데?"



순간, 방에 있던 모두가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사령관은 잠시 모두를 둘러본 뒤 짧게 말했다.



"콘스탄챠, 지휘관들 전부 회의실에 모아줘. 그렘린과 포츈은 저 아이를 돌보고, 닥터는 회의 전까지 자료 간단히 정리해서 보내줘. 정리가 안 되면 직접 와서 구두로 해도 괜찮아."


"알았어."


"네."


"아참, 콘스탄챠는 회의실에 가기 전에 내가 전에 부탁했던 자료 가져오고."




모든 지휘관이 모이게 된 건 1시간 30분 뒤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얼굴을 한 지휘관들 앞에서 사령관이 입을 연 것은 5분이 더 지나서였다.



"다름이 아니라 바이오로이드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일단 이후 사태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지휘관을 전부 불러 모았다. 닥터."



닥터가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들자. 화면에 방금 전 촬영한 사진이 나타났고. 모든 지휘관들이 경악했다. 물론 마리가 가장 크게 놀랐다.




"각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건 브라우니가 아닙니까!"


"맞다. 닥터, 설명해줘."


"그게 말이지..."




설명이 끝나자. 지휘관들은 경악한 얼굴이었다. 인간도 과거에 화학물질 재난으로 이런 일을 당한 적이 많지만. 바이오로이드가 이렇게 처참한 모습이 되어 나타난 건 생각지도 못했을 테니. 특히 자신의 부대원이 늘 것이라 기대했던 마리는 그 오랜 세월을 견뎠음에도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나타날 지경이었다. 사령관은 마리에게 시간을 주려는 듯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마리가 입을 열었다.




"어떤... 처분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바로 그것 때문에 모두를 불러 모은 건데."




사령관의 말에 모든 지휘관들이 긴장된 얼굴로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유전자 씨앗이 어디서 발견되냐에 따라 오염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도 개발해야겠지만. 그 전까지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대체로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 방침을 정해두는 게 좋겠지."



지휘관들은 우울한 얼굴로 천장이나 바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리는 이를 악물고 화면을 노려보다 사령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직접 볼 수 있겠습니까?"


"닥터가 허락한다면."




다른 지휘관들은 회의실에 대기시키고 사령관과 콘스탄챠, 마리, 닥터는 포츈이 작업중인 공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까보다는 좀 더 안정되었지만. 여전히 괴로워보이는 브라우니를 내려다보며 마리는 닥터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는 공방 안 의자에 앉아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떤 전투에서도 보지 못한 허탈한 눈이었다.




"각하. 만약 부하가 무의미한 고통을 받고 있다면. 덜어주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한 부하를 죽이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고 싶어?"


"방법만 있다면. 살리고 싶습니다."


"좋아. 그럼 생각해보자."




마리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방법이 있습니까?"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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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 오르카 호는 외딴 섬에 도착했다. 몇 년 전부터 보급기지 및 휴양지 삼아 개발하던 섬에 1년 만에 다시 도착해서 승조원들은 다들 들떠있었다. 유래없이 쾌적한 잠수함이나 육지라곤 해도 전선이 코앞인 곳에서 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으니. 오랜만에 휴가를 받은 바이오로이드들은 쾌적한 옷으로 갈아입고 멋진 해변에서 쉬거나 그동안 받은 월급을 들고 가게로 가는 등 시끌벅적했다. 교대인원들이 업무를 인수인계받고 오르카를 정비하는 동안 사령관은 마리와 함께 기지 구석 작은 집에 들렀다.




"어때, 이젠 좀 괜찮아?"


"아- 으-"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군."




뇌도 손상을 입었던 터라 온전한 문장이 나오진 않았지만. 웃는 얼굴과 모니터링 장치 덕에 전보다는 나아진 브라우니가 천천히 차를 내왔다. 몇 번의 대수술을 거쳐 뼈대는 겨우 바로잡았지만. 근육은 아직 온전하지 못해서 닥터와 포츈이 만든 외골격을 입고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한동안은 오르카 안에서 지냈지만 이젠 섬 생활도 꽤 익숙해진 듯 했다.




"다른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아-"




전투 스트레스가 심해 이 섬으로 후송된 바이오로이드들은 처음엔 이 브라우니를 기피했었지만 병원에서 쉬거나 공장에서 일하고 돌아온 뒤 숙소 근처 집에서 지내는 이 녀석이 눈에 밟혔는지 몇몇이 찾아가 말동무를 해주더니 지금은 아예 없으면 큰일나는 동생 같은 존재가 된 듯 했다.




"매일 누가 오니 좋겠네."


"아-"




사령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편한 몸으로 혼자 사는 집 치고는 굉장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외골격에 붙은 약병이야 병원에서 늘 지켜보겠지만. 걸핏하면 깨던 잔과 그릇이 누가 직접 깎아 만든 나무 식기로 바뀌고 외골격의 힘 때문에 조금 비틀려있던 창틀도 누가 바꿔놓고 갔다. 사령관이 앞뜰로 눈을 옮기니 의자에 않아 불편한 사람이 쓰기 좋게 나무 숟가락을 깎던 이프리트가 보였다. 경례를 대충 받아넘긴 사령관은 마리에게 눈짓을 했다.




"다프네의 말이 맞는 거 같네. 오히려 브라우니가 정서적 위안을 주는 거 아닐까."


"누구를 돌본다는 것은 그런 것이죠. 각하."


"그래, 이제 만족해?"


"아뇨."



마리는 브라우니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말했다.



"이런 일에 만족이란 없습니다. 더 나아지길 계속 바랄 뿐이죠."


"너 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