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시지요. 슬슬 날이 서늘해지고 있으니 오실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사옵니다."


"하늘은 높고 여름이 이별을 그리워하며 떠나니 수확의 계절인지라,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여 보존식을 준비하실것이라 생각해서 휴가를 내고 왔습니다."


평소의 한복을 차려입는 금란과는 다르게 편한 트레이닝복과 빨간 고무장갑, 

그리고 깨끗한 고무신을 신고 머리를 뒤로 땋아 깔끔하게 묶고왔다.

평소의 금란이라면 절대 입지 않았을 복장이겠지만...


"후후, 대단한 복장이시옵니다. 주군께서 보셨다면 어떠실런지 모르겠사옵니다."


"이런들 어떠하겠습니까, 저런들 어떠하겠습니까? 주인님께서 불만족 하신다 하여도 

지금 제 복장은 주인님의 명령을 받들기 위한것일뿐, 전혀 문제 될일 없습니다."


소완의 숨겨진듯한 날 선 질문에도 여유로운 태세를 보이며 취사장으로 같이 들어가자

그 안에는 배추와 무의 산더미가 있었다.


"양이 좀 많지요? 배추 6천포기와 무 3천단이옵니다. 

어젯밤에 마리 대장이 브라우니들을 시켜 옮겼다고 하더군요."


"이...이 양을 단 둘이 한단 말입니까?"


"그럴리야 없지요. 이미 포티아들이 뒤쪽 재료창고 앞에서 배추속을 새벽부터 만들고 있고

브라우니들이 배추를 나눠받아가 김장을 시작했사옵니다."


"...그렇군요. 김장속이 제대로 됬는지 확인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리하시지요. 저는 잠시 저녁때 먹을 고기 손질을 하고 있겠습니다."


...

금란은 소완과 헤어지자 마자 급한걸음으로 브라우니들이 작업하는곳으로 달려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복도에 아무도 없어서 금란이 헐레벌떡 뛰어가는 모습을 못봤다는것이겠다.


...

"하아..하아.. 브라우니분들.. 지금 뭘..."


급하게 작업실로 달려왔을땐 이미 브라우니들이 인터넷으로 얻은 정보들을 조합해서

만들고 자신들의 탄생국가인 미국의 스타일대로 이것저것 섞고 달달한것을 마구 쏟아붓는등 이미 김치라고 볼수 없는 

상황이 널부러져있었다.


"아아... 이래서는 도저히 김치가..."


금란은 재빠르게 정신을 수습하고 김치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를 배추들을 한곳으로 모으도록 지시한 후

배추를 실어올때 쓴 큰 대야에 담도록 한 후 모조리 음식물 쓰레기장에 버리도록 했다.


"그...그럼 저희가 만든 이건 김치가 아닌검까?"


"그...그럴리가 없슴다. 인터넷에서 뒤져보니까 뭐든 맛있는 야채를 넣고 맵게 발효시키면 김치라고..."


"틀린말은 아니지요. 김치가 유명해지면서 각 국가의 특징이 있는 야채로도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은 식당에 나갈 요리들이고 주인께서 드실 음식, 초콜릿이나 버터를 넣어서는 안됩니다."


"근데 초콜릿 맛있지 않슴까? 저는 밥먹을때도 초콜릿 부식으로 나오면 좋지 말임다.

참치가 더 좋긴 하지만서도...."


"큭.큭.큭. 좋은 생각이다. 브라우니. 한번 초콜릿 김치를 만들어보겠나!?"


"주...주인님?"


"와아아아아~ 좋슴다 사령관님이 빽이 되어주시는검다?!"


"큭.큭.큭. 자아 브라우니, 초콜릿 김치를 만들어보자!"


"주...주인님...?"


하지만 이미 풀 스위치 들어가버린 사령관과 브라우니를 말리다가 지쳐버린 금란은

작업실을 문을 나와 굳게 닫고는 문앞에 종이를 붙여놓고는 포티아들이 작업하는곳으로 체념한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다다다다...


"오르카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 최고의 악당 멀린 등장-!

금란아씨, 어디 가?"


"포티아분들이 김칫속을 담그고 있다길래 가는중이었습니다.

멀린양은 김치를 담궈.. 아 ...실언을 했습니다."


"후후, 실언따위는 신경쓰지마! 나도 김치 좋아하는데 같이 하러가도 될까?"


"그럼요. 같이 가시죠."


그렇게 금란과 멀린은 조금 걸어 포티아가 작업하는 취사작업실에 도착했어야 했지만..

무지막지하게 화가 난 블라인드 프린세스가 달려와 멀린을 납치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살려줘어어어어어어~~~~~~~~~~!!!!"


".......명복을..."


그렇게 취사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닥에는 김장용 포를 깔고 온몸으로 속을 문대는 포티아와 

아우로라가 보였다.


"허억.. 허억.. 포티아님 아직도 멀었어요?"


"아직 30kg는 더 남았어요. 열심히 비비세요."


"아... 아우로라양... 땀에서 달콤한 체취가... 김치속이 달콤한 향이....아아...."


"엣? 저 뭐 잘못한건가요? 소완 주방장님이 적어주신대로 했는데?"


"마..맞아요. 여기 소완 주방장님이 적어주신....어라?

여기 주의사항에...."


-아우로라양은 체취에서 달콤한 향이 나고 지칠수록 향이 짙어지니 

김칫속을 버무릴때에는 반드시 역할을 바꿔 포티아 양이 들어가서 버무리도록 하시옵소서. 

중요한 임무이니 꼭 숙지하시길 바라옵니다.-


"....망했다...."


"......저는 여기 안온것으로 하겠습니다..."


"금란님, 금란님. 제발 아니 금란언니 제발~!!!!!"


"금란님 금란님! 봄베이 사파이어 한병 드릴테니까 제발요! 저희 소완주방장님한테 걸리면 죽어요!"


두 명의 절규를 뒤로하고 취사작업장을 빠져나온 금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오르카 바깥의 호라이즌 카페로 발걸음을 옮겨 휴식을 취했고...


...


"소첩이 중요하다고 한것을 대놓고 무시하다니 

두 분다 저를 뛰어넘는 요리세계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 세계를 저에게 구경좀 시켜주시지요. 어디 미천한 혀로 두분의 요리를 감히 맛좀 보고자하니 힘좀 써보시지요."


"잘못했어요 주방장니임..."


"저...저는 포티아님이 시킨대로 한 죄밖에 없어요..."


"아...혼자 살겠다고 그러기에요...?"


"아직 재미있으신가보군요. 두분 다 정식을 차려서 20분내로 가져오시지요.

만약에 제 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달콤~~한 김치만 식사로 내어드리고

오르카 식단을 한동안 조기튀김, 건더기없고 된장향만 나는 된장국, 시들시들해서 꺾이면 끊어질듯한 콩나물 무침,

푸석푸석한 영창쌀에 카레만 나갈것입니다.

아 물론 담당요리사는 포티아 양과 아우로라 양 이름이 쓰여지겠지요."


"....!!!! 죄송합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


"주인님-! 브라우니들과 같이 김치에 장난치셨다고요? 

초콜릿 범벅에 아유 이건 또 뭐에요? 정어리 아니에요?"


"후후, 사령관 특제 고등어 순살 김치다-!"


"...아하하, 주인님 먼저 한입 드셔보시겠어요?"


당당하게 콘스탄챠에게 젓가락을 받아 익숙하게 김치를 한입 먹었지만...


"구웨에에에에엑... 아니 김치에 생선액젓 들어가니까 고등어도 괜찮을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이 많은양의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려면 소완님께 안걸리는게 힘들겠는데요..."


"봉쥬르~ 사령관~. 오늘 우리... 우악? 이게 무슨 냄새야?"


"오오, 운디네 이거 먹어볼래? 고등어 순살 김친데, 내가 특별히 개발한거거든?"


"...이미 기절했어요. 뒷 처리는 제가 할테니 이만 나가주시겠어요?"


"으응, 소완 눈에 안걸리게 잘 부탁할게..."


...


"잘 쉬었군요.. 오늘 하루가 잘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아직 여기 계셨군요. 저도 차 한잔 같이 해도 되겠사옵니까?"


"그러시지요. 김장쪽은 잘 되었습니까?"


"...조언을 드리자면 PX에서 보존식을 많이 챙겨두시는걸 추천하옵니다."


"....! 차값은 제가 내고 갈테니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도 될까요?"


"행운을 빕니다. 

저는 주인께 찾아가봐야 해서 차만 마시고 일어나야겠군요."


"주인님께는 어쩐일로...?"


"또 괴식을 만들다가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어서 콘스탄챠양이 버리는것을 목격했사옵니다.

주인께는 지고의 식사를 대접하는게 제 존재의미지만...

음식으로 장난치신분께는 조금.. 지도를 해야겠지요."


"아... 또 사고를 치셨나보군요..."


"이 기회에 저도 휴가를 내고 쌓인 피로나 풀어야겠네요. 다음에 뵙지요."


"다음에 또 뵙지요. 주방장님."


카페에서 나와 오르카로 향하는 금란의 머릿칼을 흩날리는 바람에 여름의 청량함과는 다른

시원하고 서늘한 바람이 그녀를 스쳐지나갔다.


"...하늘도 높고 맑으니 

주인님의 발걸음에도 거침없이 나아가시기 좋을때군요.

당당하게 걸으소서, 저희 모두 따라갈테니.

...다만 제가 반걸음 조금 더 가까이서 따라가도 되겠지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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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가을맞이 창작대회 (10.1 ~ 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