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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방에서 뛰쳐나와 기지 시설들이 늘어서 있는 복도를 가로지른다.

심장이 터질 듯 뛴다.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그저 손에 쥔 물건을 놓치지 않는 것에만 집중한 채로 내달리는 것이었다.

대규모 철충 섬멸 작전에 많은 병력이 투입된 탓인지 그가 달리는 동안 오르카호는 너무나 조용했다.

누구 하나 사령관과 마주치지 않았고, 빈 복도에는 사령관의 뜀박질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도움을 청할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현재 오르카호에는 이 절망적인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 전투원도, 사령관을 지켜줄 경호원도 출격해서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었다.

손목의 디바이스로 대위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한창 전투를 지휘하는 중이었는지 아무런 답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의 병력뿐만 아니라 대위까지도 예상치 못한 철충의 공세에 고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시설들 사이를 빠져나와 그는 곧장 출격포트로 향했다.

출격포트에 도착하자 출격용 잠수정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 중 하나에 올라타 해치를 닫고, 전장을 향해 무작정 출격했다.

전투원들의 안전을 위해 잠수정의 설계를 본인이 직접 검수했기 때문에 잠수정을 모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령관과의 통신이 두절되어 고통스러운 싸움을 이어가는 그녀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퇴각을 지시하지 못하였을 때의 결과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

이 행동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그 또한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지금 잠수정을 멈추고 다시 숲속을 달리는 것은, 다리가 타들어가는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짊어진 목숨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18. 격변을 위한 희생

‘실로 우둔하고, 한심한 작자로군.’

에이드리언 대위는 사령관실 의자에 앉아 사령관에게 전해들은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내가 자신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을 모를 리는 없을 터인데, 그럼에도 자신의 가장 충성스러운 측근을 나에게 보내겠다는 것인가.’

‘콘스탄챠의 명령권을 넘길 테니, 비서로 써달라니. 열등감에 찌들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군.........그 메이드가 비서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개체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쉽게 충성을 버릴 개체도 아니다.’

그는 사령관이 순순히 자신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바이오로이드를 넘기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전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거나, 그로 인해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발단은 다이카 개체가 정찰 중 레이더로 발견한 철충들을 보고한 것이었다.

소규모의 하급 철충들이 이동하는 모습. 하지만 대위는 그것들에게서 어떠한 위화감을 느꼈다.

우르르 몰려가며, 개활지를 아무런 위장 없이 활보하고 있는 것은 마치 얕보이기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

다이카는 그저 철충들을 고성능 레이더로 식별해내었기 때문에 오합지졸로 보이는 이 무리에 대해 별다른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가 특이사항으로서 보고한 것은 일순간의 레이더 오작동 뿐, 이마저도 노후화된 장비가 일으킨 문제로 치부했다.

머지않아 대위는 나이트 칙들의 뒤로 늘어서 있는 레이더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교란 전파를 사용하여 레이더에서 모습을 숨기는 철충의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 존재를 확인하는 것에는 갓 제조한 지니야 개체 하나밖에 들지 않았다.

AGS에게 명령하여 제조한 지니야 개체는 순종적으로 정찰 명령에 따라주었고, 육안으로 레이더의 존재를 확인한 후 공격받아 즉시 통신이 끊어졌다.

철충들이 계략이 탄로 났음을 깨닫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레이더가 지니야의 시선에 노출된 시간도 적었을 뿐 아니라, 그저 길 잃은 하나의 바이오로이드처럼 보이는 그녀를 철충들이 큰 위협으로 판단하지는 않았으리라.

현재까지 레이더의 출몰은 전임 사령관이 이전에 지하 선로에서 마주한 그것뿐이었다.

지상에 나타나서 교란 신호로 타 개체들의 모습을 숨기는 것은 이제까지의 전투 기록과는 전혀 다른 행태였다.
때때로 숲속을 거쳐 이동하며 큰 개체들을 숨기고자 했고, 항상 하급 개체들만이 돋보이도록 했다.
전파 장비가 아닌 육안으로는 위장은 쉽게 간파할 수 있겠으나, 탄로 나기 전에 바로 적을 격추할 수 있도록 디텍터 칙들의 경계 또한 삼엄했다.

찰나의 관찰로 파악한 적들만 해도 스펙터, 스토커, 칙 커맨더, 엠페러와 같은 고위 개체들이었다.
따라서 이 공격은 소규모 잔당들의 마지막 발악이 아닌, 저항군의 허를 찌르고자 하는 철충 본대의 습격이었다.

위장을 간파하였다 하더라도 격파하기에는 까다로웠다.
고위 개체들과의 전면전에서 많은 병력이 소모되는 것은 불 보듯 뻔했고, 방해 전파로 콘솔을 이용한 지휘 자체가 불가능해질 확률 또한 높았다.

다른 전술을 구상하고 실행하기에는 때가 늦었고,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예정된 진격 작전을 포기하고 습격에 대비해야 하였다. 어떠한 방식으로 교전하더라도 아군의 심각한 피해는 불가피했다.

에이드리언 대위는 고민을 거듭하던 중, 전임 사령관과 그를 추종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떠올랐다.

하나같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
개국 공신과 같은 개체들이었지만, 사령관의 방식에 너무 길들여진 나머지 바이오로이드로서의, 인류를 위한 도구로서의 본분을 잊었다.

무엇보다 자신들에게 쓸데없는 가치를 부여하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양태가 전임 사령관의 자취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대위는 그들을 미끼로 사용하고자 했다.

원래는 진격 작전에 동원될 그들을 차출해 전임 사령관의 손에 맡기면 그들도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었다.

많은 철충 병력이 습격에 동원되었으니 진격 작전은 더 수월할 것이다.
200명의 공백으로는 큰 차질이 생기지 않으리라.

소규모의 교전을 상정하고 전투에 임한 그들은 무참하게 찢겨나갈 것이다.
사령관의 지시는 닿지 못하고, 그는 자신이 무력함을 실감하며 절규할 것이다.

병력 소모가 상당하겠지만 대다수가 하급 바이오로이드였다.

무리 없이 새로 제조할 수 있을 뿐더러 사체를 분해한다면 자원을 조금 충당할 수 있다. 오히려 과하게 높은 급양의 질과 편의시설 사용으로 자원을 좀먹던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나 다름없었다.

......바이오로이드 하나하나의 생환을 최우선시해서는 작은 전투 몇 개는 이길지라도 전쟁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이 의도된 패배는 비효율적이고 비이성적인 전임 사령관의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금의 희생일 뿐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그는 자신의 입맛에 맞춰 오르카호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으리라. 지긋지긋한 가식 또한 그만둘 수 있으리라.

계획을 다시금 돌아본 대위는 그때 지니야를 제조했던 기록을 지우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망자를 숨기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19. 절망

사령관은 자신이 전장에 가까워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총 소리, 폭탄이 터지는 소리, 비명 소리가 날카롭게 그의 귀를 파고들며 그가 당면한 현실에서 도망칠 수 없도록 옭아매었다.

‘제발 모두 무사해 다오. 빛이시여, 당신이 실제로 있다면 부디 어린 양들을 가엾게 여겨 지켜주시옵소서. 제발, 제발 나의 부족함으로 그녀들이 환란을 겪지 않도록 해 주시옵소서.’

그는 한 가지 생각만을 반복하며 무아지경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고개를 돌려 그것의 모습을 본 사령관은, 흙의 쓴맛이 느껴지기도 전에 주저앉고 말았다.

몸의 정중앙에 구멍이 뚫려 쓰러져 있는 요안나, 그리고 그녀의 너덜너덜해진 방패가 사령관의 다리맡에 놓여 있었다.

그 뒤로는 그녀가 보호하고자 했던 몇 명의 바이오로이드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을려져 있었다.

사령관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그가 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으리라는 사실을, 그가 모두를 구해낼 수 없다는 것을.

참혹한 모습에 고개를 돌린 사령관의 눈 앞에 전장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졌다.

매머드의 포격에 쓰러지는 드라코, 스펙터의 방어막을 뚫으려 시도하다 트릭스터에게 갈갈이 찢기는 스틸라인 소대, 스나이퍼 칙에게 격추 당하는 리제와 레이시.

바이오로이드들이 죽어가는 모습은 마치 지옥도를 방불케 했으며,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잔혹함이 있었다.

철충들은 그의 존재를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이 학살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사령관은 자리에 주저앉아 뜻 모를 신음을 아아, 아아아, 하고 내뱉으며 눈물만 쏟아내는 꼴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칙 파이널 어택에 당한 지니야가 그의 눈 앞을 스쳐 지나간 순간 그는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고, 멀지 않은 곳에 브라우니 하나를 보았다.

옆에 쓰러진 레프리콘의 복수라도 하려는 걸까, 한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칙 커맨더에게 무작정 돌진하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욕을 내뱉으며 달려가는 그녀의 앞에 레이더의 폭탄이 떨어졌다.

폭음과 함께 그녀는 뒤로 나뒹굴었고, 다시 일어나서 싸우려는 듯이 총을 움켜쥔 손을 움찔거렸다.

솔져 칙이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접근하자 사령관은 저도 모르게 뛰쳐나갔다.

한명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의지가 드디어 그의 몸을 움직였던 것일까, 어디서 용기가 생겨났는지는 그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고함을 지르며 퇴각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퇴각! 퇴각하세요! 오르카호 쪽으로 도망치세요! 곧 원군이 올 겁니다!”

“싸우지 말고 물러나세요!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까 어서 퇴각을.....!”

그의 존재를 눈치 챈 철충들이 총알을 퍼부었기에 그는 순간 말을 멈추었지만, 다시금 달리며 계속 퇴각 지시를 소리쳤다.

사령관이 갑작스럽게 전장에 나타나자 혼비백산하던 바이오로이드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이내 그의 말을 듣고 오르카호를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령관은 달리던 속도를 유지하면서 쓰러진 브라우니에게 몸을 던졌다. 그녀에게 닿자마자 쥐고 있던 방어 역장을 작동시켰고, 역장이 둘의 몸을 감싸면서 모습을 감추었다.

운 좋게 대부분의 탄환을 피했지만, 다리와 팔에 각각 한 발씩 총알이 박혀 있었다. 극심한 통증이 그의 신경을 타고 전신을 휘감았다.

외마디 비명을 지른 사령관은 팔과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난 뒤, 브라우니의 몸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제발.......제발 조금만 버텨! 넌 절대 안 죽을 거야, 내가 죽게는 안 냅둘 거야!”

몇 발자국도 이동하지 못했으나, 순간 역장이 일렁이며 은신 효과가 풀렸다.

앞을 바라보니 거의 모든 철충들이 일제히 무장을 난사하고 있었다. 은신을 무시하고 그의 뇌파를 추적한 철충들이 무차별 공격을 가했고, 그 때문에 은신 기능이 망가진 것이었다.

점점 더 많은 철충들이 모여듦에 따라 역장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분명 경이로울 정도의 내구도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 무지막지한 협공은 당해낼 수 없었다.

사령관은 아랑곳 않고 계속 브라우니를 끌고 뒷걸음질쳤다.

발을 딛을 때마다 총상에서 찌르는 통증이 전해졌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내가........씨발.........이정도로........! 으극, 꽁무니 빼고 도망칠 줄 알았냐?! 어림도 없지, 어림도 없어!”

감정이 격해져 철충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온 힘을 다할 뿐이었다.

1m 정도를 겨우 이동했을까, 금방이라도 깨질 듯 위태로운 역장 너머로 타겟을 바꾸는 철충들이 보였다. 퇴각하던 바이오로이드 몇몇이 사령관의 모습이 드러나자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사령관을 구하려 하는 듯 보였지만 그가 다시 돌아가라고 격하게 손짓하는 모습에 그녀들은 주저했다.

사령관에게 집중되어 있던 화력이 어느 정도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분산되자 다시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사령관은 다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돌아가라고 외쳤지만, 역장에 막혀 잘 들리지 않았는지 그녀들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이도저도 못하고 있었다.

“오지 말라고! 지금 나한테 오면 다 총맞고 죽어! 가! 돌아가란 말이야!”

“제발 나한테 신경 끄고 도망치라고, 제발!”

하지만 그 상태는 오래가지 못했다. 칙 엠페러의 공격이 역장에 작렬하면서 사령관은 브라우니를 안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역장이 한계에 도달해 산산조각 났으며, 남은 역장 생성기의 모서리가 방금의 충격으로 사령관의 복부에 박혔다.

내장을 찌르는 통증에 그는 몸을 웅크렸고,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장이 깨지는 순간 철충에게 벌집이 될 것 같았으나 이상하게도 철충은 자신이 아닌 바이오로이드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는 브라우니를 다시 옮기려 하였지만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기 위해 몸을 뒤틀었다.

그 순간, 사령관은 브라우니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만의 개성을 바란 그녀의 노력을 보여주듯 양산된 브라우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의 그녀가, 눈에 파편이 박힌 채로 의식을 잃고 늘어져 있었다.

생기가 없는 그녀의 다른 한쪽 눈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사령관은 고개를 들었다.

철충들이 공중을 뒤덮었지만,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하염없이 맑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친 것은 하늘이 아닌 떨어지는 매머드의 포탄이었다.

그는 브라우니를 힘껏 끌어안고 마지막 힘을 다해 이미 망가져 버린 역장 생성기를 높이 들었다.

직격을 피하기 위해 실낱갈은 희망에 걸어본 것일까, 역장 생성기를 치켜든 그의 팔이 떨려왔다.

다가온 포탄이 폭발하는 굉음과 함께 그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바이오로이드들이 몰려오는 것과 함께 어떤 폭격기의 소리만이 홀연히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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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써보는 장편 -> 오타, 개연성 지적 등 대환영
2. 항상 부족한 글 봐줘서 너무 고마운레후
3. 띠리링 띠딩 쾅쾅쾅쾅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