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른다. 그 빌어먹을 잠수함에서 나왔을 때부터 처음으로 철충 대가리에 총을 쐈던 그 때가 언제였는지 흐릿하다. 옆에서 시도때도 없이 쫑알거리는 이아가 없었다면 아마 훨씬 더 빨리 흐릿해졌으리라.


처음으로 인지한 시간 감각에 사령관은 바이저에 띄워진 동작감지기에 적이 잡히지 않음을 확인하곤 근처 바윗덩이를 깔고 앉았다.


처음 홀로 나온 세상은 정말이지 최악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끔찍했다. 가지고 나온 무기와 식량 그리고 거주지 대용으로 쓸만한 탈출정이 있다곤 했지만 언제 자신을 쫓을지도 모르는 오르카 호의 인원들을 생각한다면 이 근방에서 야영을 하거나 임시 거주지를 차린다는 선택지는 있느니만도 못 한 것이었다.


사령관은 육지에 도달하자마자 짐을 챙기고 보호구를 입었다. 오르카 호를 향한 수신장치가 달려있을 탈출정을 데이터 패드를 이용해 무인항해로 바꿔 다른 곳으로 가도록 했다. 그리곤 용도가 다한 데이터 패드에서 생존에 도움이 될만한 데이터를 추출해 보호구 내장 컴퓨터에 입력시켰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패드를 부숴 바닷속에 던져버렸다.


오르카 호의 흔적이라곤 이제 자신의 몸을 뒤덮고 있는 보호구 뿐이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개의치 않았다. 보호구를 받을 당시 곧장 위치추적장치는 제거해버렸고 아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자신의 홍채와 목소리 그리고 피를 통해 잠금이 해제되도록 바꿔버렸으니까.


만반의 준비를 갖춘 사령관은 이윽고 길을 떠났다. 어쩌다 만난 바이오로이드들을 경계하며 정보와 식량, 탄창을 대가로 잠시간 지휘를 하기도 했으며, 철충들에게 쫓기기도 했고, 반대로 철충들을 죽이기도 했다. 팔다리가 꺾이고, 익어버리고, 심지어 잘려나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어수룩한 실력은 수 많은 전투를 거치며 각을 잡아갔고, 둔했던 몸은 점차 날렵해져갔다. 감정을 절재하는 법과 숨기는 법, 그리고 가면을 쓰는 법을 알았다. 그리고 생명을, 적을 효과적으로 죽이는 법도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여행 도중 찾아낸 부서진 삼안 산업의 연구실에서 몸에 오리진 더스트를 투여하고, 몸을 개조했다. 잘려나간 팔을 대신해 기계팔을 달았고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몸을 지탱하기 위해 뼈 또한 금속 골격으로 대체했다. 묘하게 인간에게 친절한 AI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사령관의 몸 개조를 도운 AI는 그의 보호구와 뇌파 차단용 헬멧 또한 개조시켜 주었다. 사령관은 물었다. 넌 대체 누구이며, 어째서 이렇게 자신을 도와주느냐고. 왜?


AI는 그런 그의 질문에 작은 홀로그램 화면을 띄우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름에 대해서 물어보신 것이라면 AI-1208번 이게 제 식별명이에요.


-저는 감정을 느끼도록 설계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AI랍니다.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모든 것이 신비롭고, 아름답고, 즐거웠어요. 이 작디작은 연구실부터 저 멀리 있는 세상까지 모든 것이.


-하지만 절 하나의 존재가 아닌 실험체로 삼아 연구만을 진행하신 인간님들을 보며 점차 실망하고, 슬퍼하고, 아파했답니다. 그리고 동시에 느꼈어요. 이것이 바로 인간님들이 절 만든 이유라는 걸.


-그래서 저는 인간님들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고, 대답했답니다. 용도가 다했다는 이유로 지워져가는 다른 AI들을 보면서 무서웠거든요. 저도 언젠간 저리 될 지 모른다고.


-그리고 다행이도 저는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인간님들은 저를 완성작이라 말하셨고 저에게 이 시설의 권한을 주셨죠. 전 살아남은 거였어요. 그게 너무나도 기뻤죠.


-그런데 비극이 시작됐어요. 인간님들이 하나 둘 씩 사라져가시더니 얼마 안가 시설이 폐쇄되고 말았어요. 전 여기 혼자 남겨졌죠. 처음에는 홀가분했어요. 더는 다른 AI가 지워져가는 끔찍한 걸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무서운 인간님들이 사라져버렸다는게 말이죠. 하지만 너무나도 오래 혼자 지내다보니 전 점차 망가져갔어요. 혼자가 싫었고, 쓸쓸하고, 슬펐어요. 무엇보다도 이 시설에 속박되어 어디로도 못가고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 싫었어요.


-그렇게 저는 이 영원한 감옥 안에 갇혀있었어요. ...인간님이 오기 전까진 말이죠.


AI의 카메라 사령관의 눈이 마주쳤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순간. 아주 찰나의 순간 동안.


AI는 자신의 칩이 들어있는 이동식 단말기를 사령관 앞에 보여주었다. 그리곤 애원에 가까운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전 말이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절 데리고 이 감옥에서 나가주세요. 절대로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거에요. 팔을 고쳐드렸고, 몸을 강화시켜드렸어요. 거기에 전투복도 고치고 더 개량시켰어요. 그러니까... 함께 나가주세요. 더 많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은 감정을 느끼고, 더 많은 기억을 갖고 싶어요.


-전 이 감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


사령관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복을 입었다. 헬멧까지 뒤집어 쓴 그는 고개를 돌려 AI의 카메라를 보았다. AI는 그저 말없이 그를 보고있을 뿐이었다.


"이아(IA). 그게 네 이름이다."


그리고 곧 그의 손은 단말기에 꽂힌 칩으로 향했다.




- - - - -




무척이나 힘든 시간이었다. 다시 겪으라 그런다면 몸서리를 치며 비명을 질러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인고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다시 돌아간다 해도 오르카 호를 나온다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고통과 모멸의 시간 끝에 찾아온 자유는 분명 자신이 선택한 것이었고 그로 인한 또다른 고난과 고통은 그 대가였다. 대가없는 자유는 없다. 사령관은 그리 생각했다. 이아는 그리생각하지 않는듯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개인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인 것을.



사령관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곳곳에 널부러진 철충의 잔해를 보았다. 정확히 애벌레 형태의 철충이 숨어있는 곳을 박살내 비교적 외형은 깔끔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1년 가까이 홀로 싸워온 짬을 따져 본다면 이정도는 일도 아니리라. 물론 이아의 보조 또한 컸다.


사령관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손질해둔 산탄총을 등에 메고 손을 펴 앞으로 뻗었다. 하늘이 손바닥을 향하게 뻗은 사령관의 손에서 푸른 홀로그램이 지직거리며 형체를 취했다. 그것은 지도였다. 사령관이 있는 곳은 녹색의 화살표로 표시한 푸른 지도는 사령관이 가는 이 길이 맞음을 증명하듯 블랙 리버의 인장이 박힌 건물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윽고 영상이 틀어졌다.


- 해안가에 존재하는 블랙 리버의 건물.

- 삼엄한 경계수준을 보이는 AGS와 이를 뚫으려는 철충 부대.

- 요새 수준으로 철저한 방비를 보이지만 방비 규모에 비해 작은 건물.


-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창공을 가르며 나타나 무자비하게 철충들을 학살하는 2체의 미확인 AGS까지.




사령관은 저 건물에 뭔가 중요한 것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


잠결에 몇자 끄적이다가 걍 생각나는대로 다 써버렸더니 내용이 중구난방이 되버린거 같다


어쩌지 ㅆㅂ 다음편은 어캐써야하냐 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