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 리리스. 네 전임자보다 뛰어난 충성과 능력을 기대하지. "

과분하신 말씀을.. 하지만 저런 '불량품'과 비교하시다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다만... 능력과는 별개로 저 불량품 전임자와 같은 '과도한 충성심'을 원하시는 거였다면, 최소한 기억이식은 하지 않으셨어야 됬을텐데 말이지요.

기억이식이 인격을 덮어씌우는 것이 아니라.. 영화나 책을 보듯이 기억과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새로운 개체의 인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 기억이 초기 제조품으로 80년 가까이 생존했던 제로넘버링의 모든 기억인데, 정식 주인마저 아니시면...

마음을 다잡아봅시다. 나는 긍지높은 삼안 최고의 바이오로이드 블랙 리리스.

어차피 살아있는 인류가 두 분 뿐이시니, 제 주인님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마음을 다잡아봐도, 역시 주인님이라고 불러드리는게 쉽지 않습니다.

의식을 하고 있을때에도 때때로 '사령관님'이라고 호칭하게 되는데, 굉장히 불쾌하신게 뚜렸하게 느껴집니다.

죄송해요. 하지만 리리스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제 삶에 비해 너무 방대한 기억이 아직 정돈되지 못했답니다.


저저저저저저 게게ㅔㅔㅔㅔ 대대 체ㅔㅔㅔㅔ


...'그 것'은 어느새인가부터 별의 아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꼴사나운 광경은.....사령관님을 지켜야 하는 경호대원들이 바닥을 기며..침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사령관님에게 매달렸습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였..습니다.

혼절하는 사람, 발광하는 사람, 구토하는 사람... 누구하나 제대로 서있지 못한채

출동해있던 대원들을 버리고 잠항하여 도망왔습니다.

...사령관님이 저희에게 실망하셨다해도.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사령관님의 행동이 점점 과격해져 갑니다. 

평소부터 직설적이던 모 대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날의 공포로 점점 미쳐가고 있다고...

원래도 그리 상냥하신 성정은 아니셨지만, 명확한 목적와 계산된 교환비가 제시되던 희생들과는 다른 듯한..

지휘관들로부터 사령관님의 동향에 대해 물어오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사령관님의 성향이 명확히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성향을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아직 정신을 붙들고 있다고 짐작되는 점은 '고급' 바이오로이드들에 한해서는 '망가트리기' 까지는 않고 있다는 정도..

네. 소위 '양산형' 대원들에게는 점점 끔찍한 일들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사령관님께서 페로의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버리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페로의 자랑인 긴-머리카락이 사령관님의 발에 밟힌 것이 원인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지금 당장 잘라버리겠다' 정도였지만, 페로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 이라고 빌자마자

처벌이 가혹해졌습니다.

..네. 사령관님은 저희의 소중한 것을 부숴버리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계십니다...

애정을 표하는 것일 수록 위험에 노출되어 갑니다.


LRL과 코코가 대량으로 생산되었습니다.

함내의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차마 기록을 남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생충처럼. 그 아이들의 희생아래 빌붙어 작고 불안한 평온을 지키고 있습니다..


리리스는 쓸모없지 않아요.. 리리스는...

네 맞습니다. 리리스는 시키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사령관님 제발.. 포이를 용서해주세요..

제 손으로 어떻게 ....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소중하지 않은 것 처럼 대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 날의 그 공포를 이기지 못했던 대가...

이건 너무 가혹합니다.


3번째 인간님이 발견되었습니다.

발키리 대원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즉각 사살하라는 명령을 취소하고 함내로 회수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사령관님의 웃음이 불길하기만 합니다.


그새 또 마음이 바뀌셨는지, 동면캡슐안에 인간님을 사살하라 명령하십니다.

...? 사격이.. 아니. 조준이 되질 않습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듯한...

사령관님에게 맞아 정신이 -


..참신한 미친 아이디어를 자랑하십니다.

3번째 인간님을 깨워 섬에 풀어놓고 직접 '사냥' 놀이를 즐기시겠답니다.

선행 '연습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쫓기는 자도. 쫓는 자도.

모두가 미쳐가는 것 같습니다.


보는 것으로는 질렸는지, '본 게임' 전의 마지막 게임은 직접 사냥꾼이 되시겠다 합니다.

위험을 경고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폭력 입니다.


함을 나오자마자 반사적으로 로자-아줄을 전개하였지만, 

뭔가가 사령관님의 몸을 반으로 찢어놓았습니다.

함내에서 비명- ? 이 울렸습니다.

..그가 어떤사람이였든지...어쨌든 지키지 못했습니다. 

저는 정말 쓸모없는 리리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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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리리스를 두번째가 '불량품'으로 호칭하는 부분은 13화를 참고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