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문학] 말실수한 사령관 01 - https://arca.live/b/lastorigin/9071183?mode=best&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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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밥 좀 챙겨주겠다고 식자재 찾으러 갔다가 칙 엠페러라는 이상한 철충을 만났을 때 이후로, 사령관은 가장 큰 위기에 처했다. 그 예전 초코여왕의 성에서의 버뮤다 팀과 둠브링어 팀의 합동작전 때보다 더 큰 자원손실에 눈이 뒤집혀 막말을 내뱉긴 했지만, 결국 아껴먹고 잘살자고 한 소리에 그 냉정한 레오나가 눈깔이 뒤집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폐하, 내일이라도 다시 한번 가서 사과하십시오. 그들이 비록 폐하의 성에 차지 않는 점이 있었다고 한들, 폐하 다음가는 이 오르카 호의 지휘관으로서의 자존심을 더렵혀선 안됬습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냐고 아르망의 발목을 붇잡고 누님 누님 거린 결과, 아르망이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사탕을 스무개 쯤 물려줘도 아르망의 표정이 풀어지진 않겠지, 한숨을 쉬며 사령관은 용산가는 훈련병마냥 다시 발할라의 숙소로 향했다.


“쭈인님! 어짜피 쥬지 박으면 꼼짝 못해! 잘 모르겠찌만 파이팅이야!”


펜리르의 되도 않는 응원을 되새기며 발할라의 숙소 구역에 들어선 사령관은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를 돌렸다. 


철컥,


다행인지 불행인지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그 지옥 속으로 사령관은 걸어 들어갔다.


“각하, 이쪽으로 오시죠. 레오나 지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어느새 나타난 발키리가 길을 안내해 주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걸어가는 도중 자그마하지만 육중한 인영이 사령관을 덮쳤다.


“사령관님, 사령관님! 레오나 대장님이 이상해! 어제 막 무서운 얼굴로 들어와서 알비스를 안아 주지도 않고 막 싸늘하고, 문도 잠그고 안 열어주고, 베라 언니나 님프 언니한테 물어봐도 대답도 안해주고. 사령관님이 어떻게든 해줘! 대장님이 이상해 으아아앙...”


“아, 알비스! 압존법 써야죠! 사령관님 죄송합니다, 얘가 참 착한데 이런 쪽으로 좀 부족, 그만 떨어져요 알비스!”


발키리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한 알비스가 사령관에게 보디슬램에 허리케인 믹서를 가하고 마구 훌쩍였고, 발키리가 알비스를 떼어 내려다 경장보호기의 묵직함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난장판을 만들며 복도를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세 인영이 얽힌 채 옥신각신 할 때 갑자기 정면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내 예상보다 3분 정도 늦게 도착했네, 어서와 사령관. 발키리랑 알비스는 가봐도 좋아.”


니플헤임의 아가리가 열렸고, 지옥의 여왕 헬이 말도 안되는 냉기를 뿜어내며 사령관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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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프리스조차 견디지 못할 한기가 발할라 숙소 복도에 몰아쳤다. 대뇌피질 까지 얼려버릴 눈보라를 힘겹게 이겨내며 사령관은 자연스럽게 꿇어앉은 채로 레오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흐읍,


평소의 레오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였다. 이지적으로 반짝이던 하늘색 눈동자는 새파란 안광을 뿌려대고 있었으며, 윤기나던 머릿결은 푸석푸석 해진 채 산발이 되어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항상 주름 하나 없이 곱게 차려입었던 흰색 제복은 칼라와 단추를 풀어 헤친채 흰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슴골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야하다는 생각 보단 빙하 속 갈라진 심연의 크레바스를 보는 듯한 감상까지 불러 일으킬 정도로 현재의 레오나는 생명체의 범주를 벗어난 상태였다. 용이 줏으러 갔다가 만난 별의 아이보다 지금의 레오나가 무섭지 않을까, 얼척없는 생각을 하던 사령관의 정신줄 사이로 레오나의 싸늘한 말이 파고들었다.


“사령관이 아르망에게 매달릴 것도 예상했고, 다시금 나에게 찾아 올 것도 예상했어. 알비스가 엉키지만 않았다면 사령관이 도착할 시간까지 분 단위로 맞출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모듈 박은 이프리트는 알비스의 변수까지 예측했겠지, 안 그래?”


“그 레오나... 내가 실언을 했어. 정말 미안해. 그러니까...”


“아니야 사령관. 사령관의 그 생각없이 내뱉은 한 마디에 철혈의 레오나, 그리고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명예가 이미 땅에 추락했어. 사령관의 사과 한마디에 꺾여버린 우리의 자존심이 회복되지는 않아”


알비스의 자존심은 괜찮은데... 어느새 사령관 옆에서 같이 꿇어앉은 알비스의 웅얼거림은 다행히도 사령관에게만 들렸다.


“이제 27일 남았어, 사령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머리 좋은 이프리트 한 명 더스트랑 모듈 쥐어주고 한번 잘 훈련 시켜봐. 그때까지 나는 무급휴가야. 휴가계도 다 제출했고 작전 관련 인수인계는 스틸라인쪽에 다 해뒀으니 작전 관련 걱정은 할 것 없어. 다음 회의까지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지휘 대행은 스틸라인의 불굴의 마리 4호야. 무슨 일 생기면 나 말고 발키리 불러. 그럼 이만.”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낸 레오나는 다시 문을 쾅 닫았다. 닫히는 문 틈 사이로 수 십권의 작계 명령서와 작전모듈 분석기가 스쳐 지나갔다. 레오나는 진심으로 사령관을 담궈버릴 생각이다. 사령관은 다시금 깨달았다.


묵묵히 옆에서 같이 꿇어앉아 있던 발키리의 눈물샘이 갑자기 터졌다. 좆령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끅끅대며 오열하는 발키리를 살포시 끌어안아 주는것 뿐이었다.


발키리를 달래서 다시 숙소에 부축해주고 힘없이 발할라 숙소구역을 나오던 사령관은 갑자기 한 바이오로이드와 눈이 마주쳤다. 양 손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기레기, 아니 스프리건이었다.


“사령관님, 이건 그러니까, 이런 대 사건 속에서 기자 혼이 불타오른, 그러니까... 에잇 몰라! 언론 탄압 금지! 언론의 자유 보장하라!!”


맞는 말이지만 어째 본인의 입에서 튀어나오기에는 민망한 말을 외쳐대며 스프리건은 행력 3.7따리 답지 않게 쏜살같이 도망갔다. 얼 빠진채 그 자리에 주저앉은 사령관은 얼굴을 감싸쥐고 꼬꾸라졌다.


‘니미 싯팔 진짜 좆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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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이 좋아해줘서 고마운 레후

원래 반절로 끊으려다가 전개가 전혀 안되서 걍 길게 이은 레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