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로이드에게 애정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


주변에선 그런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별종 취급하며 비웃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바이오로이드란 여성의 모습을 한 인형에 불과했다.


그러나 부잣집 도련님이자 대주주로서 풍족한 생활을 지내는 남자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는 그저 곁에 있어 줄 바이오로이드만 있으면 충분했다.


이런 남자의 소일거리는 바이오로이드 구호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인을 잃고 떠도는 바이오로이드를 거두거나 기거할 장소를 알아봐 주었다. 뿐만 아니라 바이오로이드에게도 인권을 주자는 조직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활동은 기업들의 신경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하루는, 군용 바이오로이드 GS-10 샌드걸이 남자의 저택 앞에서 발견되었다.


샌드걸이 저택 주변에서 기절해 쓰러져 있는 광경을 정원사 아쿠아가 보고 알렸던 것이다. 퇴역한 그녀인지라 무장은커녕 제복조차 없이 남루한 행색이었다.


그는 말할 것도 없이 샌드걸을 집 안으로 들였다. 상대가 군용이건 민간용이건 그는 호의를 가리지 않고 베풀었다.


정신이 든 샌드걸은 감사를 표했다. 중상을 입고 임무 수행을 못하게 되자, 군에서 방출된 뒤로 여기저기 떠돌다가 그만 허기에 쓰러졌다고 했다.


잠자리와 식사 대접까지 받은 그녀는 눈치를 보며 다시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래…… 갈 데는 있고?"


샌드걸은 대답하지 못했다. 하기야 공장이나 연구소에서 제조되는 바이오로이드에게 돌아갈 곳이 있을 리 없었다.


"뭣하면 여기에서 잠깐 집안일 도와도 돼. 혹시 좋은 일자리가 생기면 알아봐 줄 수도 있으니까." 남자가 웃으며 권했다.


"하지만, 실례를 범하고 싶지는……."


"이 정도 가지고 뭘."


샌드걸은 남자의 권유에 못 이겨 일시적인 하녀로 들어오게 되었다. 메이드장인 콘스탄챠가 한숨을 쉬며 안내했다.


주인님은 참 무방비하세요. 도둑이면 어쩌려고. 걱정하던 콘스탄챠도 한편으로는 괜찮으리라 여겼다. 어차피 예전에도 방랑 바이오로이드를 이런 식으로 보살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자의 호의는 물론, 콘스탄챠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경우가 달랐다.


하녀로 일하던 샌드걸은 며칠 뒤에 모습을 감추었다. 사람 좋은 남자는 샌드걸이 그저 갈 길을 다시 떠났으려고 여겼지만, 콘스탄챠는 무언가 수상함을 느끼고 경찰에 신고했다. 비록 집에서 도난 당한 물품은 없다 해도 그녀의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그것은 너무 늦은 조치였다. 아니, 애초에 샌드걸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됐을런지도 모른다.


샌드걸이 사라진 다음 날, 주식 거래소에서 남자가 소유한 주식 전체가 일시에 매매되었다. 주식을 판 자금 또한 모조리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남자의 생체 정보가 그 대규모 주식 매매에 쓰여졌다.


물론 주식 매매야 샌드걸의 주인 되는 인간 내지 단체가 저질렀겠지만, 남자의 생체 정보 - 지문과 체모 등 - 를 훔쳐낸 건 샌드걸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남자의 생체 정보를 빼돌리기 위해 접근했던 것이다.


이쯤 되자 태평한 남자도 다급히 사기 사건의 수사를 의뢰했다. 허나 주식 매매를 한 쪽은 물론이고 샌드걸의 행방조차 묘연했다. 그녀가 블랙 리버 그룹의 사설군 소속이라는 점만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블랙 리버 쪽에서……!"


가압류 딱지로 도배된 저택에서 남자는 머리를 싸맸다. 바이오로이드들은 남자를 위로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


블랙 리버를 비롯한 기업들이 정부의 구석구석을 장악한 시대였다. 그자들이 작정하고 빼앗으려 든 이상, 경찰이든 소송이든 재산을 되찾기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몇 안 되는 친척들도 남자를 외면하고 일체의 도움 하나 주지 않았다. 블랙 리버의 중역인 숙부님조차 가만히 비웃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 와중에도 어쩐지 이런 저런 명목으로 부채가 늘어났다. 남자에게 남은 자산은 부동산과 바이오로이드 뿐이었지만, 그것도 곧 처분해야 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얼마 못가 남자는 저택도, 유산도 남김없이 모두 털린 빈털터리가 되었다.


많은 바이오로이드도 압류당했다. 그의 곁에는 콘스탄챠와 다프네와 아쿠아만이 남았다.


남자와 가장 가까운 셋만을 남긴 건 채권단의 배려였을까, 조롱이었을까.


부채를 갚고 남은 얼마 안 되는 돈으로는 가난한 구역의 집만을 얻을 수 있었다. 남자는 바이오로이드 셋과 함께 새 살림을 꾸렸다.


콘스탄챠가 남자를 위로했다.


"주인님, 걱정 마세요. 돈은 저희가 벌면 되니까요."


"미안하구나. 너희에게 힘든 일까지 시키게 되서."


"아니야, 주인님이 우릴 잘 돌봐 주셨으니까 우리도 그 보답을 하려는 거야. 히힛."


아쿠아는 다프네와 함께 웃었다. 못난 주인을 위로해 주는 그 모습에 남자는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아파왔다.


새로운 환경에서 바이오로이드들은 남자를 위해 돈을 벌었다.


남자 또한 일해서 직접 돈을 벌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껏 제대로 된 직업 하나 가져 본 적 없는 남자가 할 만한 일이 남아 있을 리 만무했다.


가뜩이나 대부분의 일자리는 바이오로이드에게 빼앗겨 사라진 시대였다. 구직하는 처지가 되고서야 남자도 대중이 왜 바이오로이드를 혐오하게 되었나 조금은 알게 될 것 같았다.


덕분에 남자는 메이드 자매들이 벌어오는 돈으로 용돈을 받고 살림이나 하는 주부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얌전히 살림이나 할 수 있었으면 차라리 괜찮은 편이었다. 바이오로이드 셋이 파트타임이나 계약직으로 일하면 먹고 사는 데엔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운 나쁘게, 시위가 벌어지는 근처에 갔다가 시위대로 오해 받고 얻어터지는 일만 없었다면, 가난해도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남자는 시위를 진압하던 켈베로스의 전류 진압봉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겪었다.


하지만 그가 받은 보상금은 입원비나 댈까 말까였다. 치료를 위해서는 또 빚을 질 만큼이나 큰 돈이 필요했다. 만약 옛날이었다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빚을 져서라도 치료를 받았다. 문제는 이제 그 빚을 어떻게 갚느냐였다.


바이오로이드 셋이 근근히 모으는 돈으로는 이자를 갚는 데도 모자랐다.


남자는 용돈이나 받아 쓰는 것도 모자라 완전히 짐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한탄했다.


비록 메이드들은 여전히 남자를 원망하지 않았지만, 남자 스스로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행복해지기 힘들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힘들어도 버틸 만했던 비좁은 집안 분위기는 갈수록 어두워졌다. 메이드들의 얼굴에서 점점 웃음이 사라지고, 사소한 일에도 다툼이 늘었다.


그 모양으로 삶이 팍팍해지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구직에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데, 콘스탄챠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다가 황급히 끊었다.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셨어요."


콘스탄챠는 당황하며 손에 든 전단지를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수상함을 느낀 남자는 얼른 콘스탄챠의 손을 붙들어 펴 보았다.


"이리 줘 봐."


콘스탄챠는 거역하지 못하고 손에 쥔 걸 내밀었다.


매춘 업소 광고지였다.


남자는 정신이 아찔해서 소리쳤다.


"콘스탄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콘스탄챠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빌었다.


"죄송해요…… 제가 일하던 계약처가 도산해 버려서…… 돈 구할 곳이."


"그렇다고 이런 일까지 하면 어떻게 해! ……정말로, 정말로 이거 밖에 없었던 거야?"


그는 화를 내는 한편으로 마음이 비참해졌다. 이제는 그가 좋아하는 콘스탄챠의 몸을 팔아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빚이…… 빚 때문에 주인님이 또 위험하시면 안 되니까……."


콘스탄챠도 말을 잇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남자의 저택에서 평화롭게 살다가 여기까지 영락한 처지가 한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도 남자를 원망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무능력함을 원망하였다.


만약 제가 더욱 비싸고 유능했더라면, 주인님의 고생이 덜했을 텐데요.


남자는 콘스탄챠를 끌어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허름한 집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아쿠아와 다프네도 나와서 같이 얼싸안고 울었다.


"미안해, 주인님…… 아쿠아도 아르바이트 말고 제대로 된 직장을 다녀서, 언니들처럼 돈을 벌고 싶어."


"아니야. 아쿠아는 잘 해주고 있어. 잘 될 거야. 그러니 아쿠아는 걱정하지 마렴."


다프네도 훌쩍이며 거들었다.


"저도 새 병원을 알아볼게요. 분명 자리가 있겠지요."


하지만 돈을 구할 데가 없었다.


빚의 무게는 남자와 메이드들을 짓눌렀다. 은행에서는 채무 불이행이 계속되면 남은 바이오로이드마저 경매에 부치거나 동결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어쩌지 못한 남자는 마침내 콘스탄챠와 다프네가 유사 성행위 업소에 출근하는 걸 허락하고 말았다.


이때, 사업장 관리자는 아예 몸까지 팔게 시키는 게 어떻겠냐고 꼬드겼다.


"부잣집 출신 인형들은 인기가 많지요. 주인에 대한 충성심도 높고 교양도 있고 하니. 어떻습니까?"


"……됐습니다."


"뭐, 생각나면 다시 연락하십쇼. 수익은 잘 나눠 드릴테니."


불쾌해서 휙 돌아서는 남자의 뒤에 대고 관리자가 이죽거렸다.


"젊은 사람이 세상 물정 모르는구만."


남자도 절망스러웠다.


얼마나 물정에 밝고 유능해야 자신의 가족을 이 지경에서 구할 수 있을까.


남자는 어릴 적부터 콘스탄챠를 비롯한 바이오로이드에게 둘러싸여 살았다. 덕분에 바이오로이드는 그의 남매이자 가족과도 같았다. 그래서 더욱 괴로웠다.


콘스탄챠와 다프네는 대낮에는 파트타임을 하고, 오후 늦게는 업소로 출근했다. 그녀들은 밤이 되어야 눈을 내리깔고 돌아왔다. 아쿠아도 언니들이 어디 가는지 깨닫고 우울해 했다.


둘 모두 남자 앞에서는 애써 밝게 행동했다. 최근엔 돈이 잘 벌린다던가, 이대로 일이년만 지나도 한숨 트일 거라던가, 팁을 더 많이 받았다던가. 혹은 애프터를 거절하느라 힘들었다던가.


남자는 억지로 웃으려는 그녀들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미안한 나머지 자괴감이 들 지경이었다. 가족이며 누이 같은 그녀들마저 밑바닥으로 떨어뜨려 괴로웠다.


그래서 한번은, 차라리 다른 주인을 찾는 게 어떻겠느냐고 묻기까지 해 보았다.


"절대 못 해요, 주인님."


"저희가 무언가 잘못했나요? 버리지 말아 주세요."


"아쿠아가 더 잘할게. 주인님이랑 같이 있고 싶어……."


바이오로이드들은 하나같이 울며 반대했다. 남자도 그녀들이 고맙고 안타까워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운다고 형편이 나아질 일은 없겠지만,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뜻밖의 인물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남자의 숙부였다.


숙부는 남자의 몇 안되는 친척이자 예전 보호자였다. 그런데 남자가 성인이 되고 바이오로이드 구호 활동을 하면서부터 왕래가 끊겼었다. 블랙 리버의 간부인 그의 신경에 거슬렀던 탓이다.


재산을 잃고 나앉았을 때에도 아무 도움 주지 않았으면서, 무슨 볼일로 연락했는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궁지에 몰려 있던 남자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몇년 만에 만난 숙부는 초라한 행색의 조카를 보자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꼴이 그게 뭐야?"


"……."


"정신이 들어?"


남자가 눈을 들었다.


"고생 좀 하니까 이제 세상 물정 돌아가는 걸 알겠나 모르겠어." 숙부가 빈정거렸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그 물정이란 걸 알고 싶다고 받아쳤다.


건방진 말투에도 숙부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 이제 좀 남자다워졌구만. ……본론으로 들어가마. 블랙 리버에서 빼앗은 네 재산, 내가 맡아 두고 있어."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고요?!"


"내 형의 유산 말이야. 주식 판 돈, 저택, 부동산 같은 자산들…… 고스란히 보호해 두고 있었지. 상부에서 처분하려는 걸 막느라 힘들었어."


남자는 믿지 못하는 얼굴로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숙부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조카 녀석이 고생하는데, 이제 정신 좀 차렸겠다 싶어서 돌려주려는 거야."


남자는 할 말은 많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가 목숨줄을 쥐었는지, 그 정도 분별은 있었다.


숙부는 미소를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뭡니까?"


"3대 기업 중 두 곳이 힘을 합쳐서 테마파크를 시범 운영하기로 됐어. 네가 그 본점을 직접 관리해 봐. 소일거리 겸 사회 경험도 할 겸…… 편할 거야."


숙부는 태블릿을 툭 던졌다.


태블릿 화면의 내용을 살피던 남자가 침을 삼키고는, 곧 노기를 띠었다.


"이건, 바이오로이드 매춘과 학대 테마파크 아닙니까? 이런 짓을 제게 시킬 생각이었습니까?"


"왜, 못하겠어?"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남자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했다.


그의 뒤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아직 정신 못차렸어? 네가 좋아하는 인형들한테 그 고생을 시켜놓고?"


남자는 멈칫했다. 피곤하고 비참하게 업소에 나가는 콘스탄챠와 다프네, 애써 기운을 북돋는 아쿠아가 떠올랐다.


머뭇거리던 남자는 채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곁으로 다가온 숙부가 웃으면서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야 좀 철이 들었구나. ……받아. 인형들 맛있는 거랑 옷이나 좀 사줘."


내밀어진 카드를, 남자는 힘없이 받아들었다. 숙부는 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조카야. 이게 바로 세상 물정이란 거다. 알겠니? 돌아가신 내 형…… 네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거란 말이다."


남자의 눈은 태블릿 화면의 테마파크 계획 - 패닉 파크 프로젝트 - 에 머물러져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온 남자는 가족들을 불러 놓고, 재산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물론 그 내막은 적당히 각색했다.


콘스탄챠와 다프네, 아쿠아는 좀처럼 믿지 못했지만, 곧 너나할 것 없이 기뻐하며 그를 얼싸안아 주었다.


"드디어 해내셨군요, 주인님!"


"축하드려요, 주인님."


"와. 이게 개구멍에도 볕들 날 오는 거야?"


"쥐구멍이겠지. 후후."


오랜만에 각종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술에 취해 잠들 때까지도, 남자는 그녀들과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선 그녀들의 동족을 지옥에 빠뜨려야 하는 것이다.




* * *




거짓말처럼 재산을 되찾은 남자는 약속대로 패닉 파크의 관리를 맡았다.


관리라 봐야, 가끔 멋진 예복을 입고 손님들을 안내하며 진행을 맡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실무는 휘하의 직원이나 바이오로이드 키르케 등이 맡았다.


패닉 파크의 목적은 실업과 빈부격차로 인한 대중의 불만을 돌리는 데에 있었다. '빵과 서커스'의 일환으로, 바이오로이드 매춘과 학대 기회를 제공해서 시선을 붙들어 매려는 것이다.


패닉 파크의 A구역은 보통 테마파크였지만, B구역은 매춘이나 겁탈이 가능했고, C구역에서는 고문과 학대가 이루어졌다. 피해자는 전원 바이오로이드였다.


곧 개장할 C구역의 최초 이용자는 다름아닌 남자 그 자신이었다.


C구역에, 숙부의 비서인 알렉산드라가 이끄는 대로 도착한 남자는 흠칫하고 놀랐다.


학대방에 묶여 끌려온 두 바이오로이드는 그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바로 남자와 가족을 고생길로 빠뜨린 샌드걸과 켈베로스였던 것이다. 그녀들을 알아본 남자의 몸이 떨렸다.


묶여 있던 그녀들은, 눈가리개가 풀리고 남자를 알아보자, 구해 달라며 정에 호소했다. 그녀들도 죽을 곳에 끌려왔다는 건 아는 모양이었다.


"……."


눈 감고 침묵하던 남자는 이윽고 알렉산드라를 향해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알렉산드라는 빙그레 웃으며 고문 도구를 건넸다.


마침내 '철이 든' 도련님을 보고, 알렉산드라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주인님도 조카의 변모를 마음에 들어 하시리라.




* * *




남자는, 가난할 때도 변함없이 자신을 모신 바이오로이드를 사랑했다.


슬하에 둔 1남 2녀 모두 바이오로이드가 낳은 아이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류 멸망의 순간이 다가왔다.


남자는 가족을 데리고 피난가기 전 패닉 파크의 관리자 키르케한테 명했다.


"키르케, 여길 계속 지키고 관리해라. 명령이다. 나중에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예? ……예. 알겠습니다."


키르케는 명령대로 패닉 파크에 홀로 남아, 놀이공원 대부분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바이오로이드는 소유한 인간의 명령에 거역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간 패닉 파크는 남았지만, 남자와 메이드들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사령관을 만난 키르케 또한 관리자의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단지, 패닉 파크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보여주고 이야기해 줬을 따름이었다.


남자가 내린 마지막 명령대로.




===

한번쯤 패닉 파크의 관리자에 대해 쓰고 싶었음




소설 모음 (픽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