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카 호의 청문회실.

평소라면 쓸 일이 없는 그 방이 오늘따라 왠일인지 북적거렸다.

그것도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 개체들과, 군수과장 포츈, 비서실장 콘스탄챠까지,

오르카 내의 중진들이 모두 모여 

어울리지 않는 흑발의 꼬마와, 평소라면 상석에 앉아있어야 할 사령관을 놓고 둘러 앉은 자리에,

콘스탄챠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럼 지금부터 사령관과 C-33 안드바리, 개체번호 1387의 청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령관의 말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그저 새로운 바이오로이드의 유전정보가 들어있는 정보 저장장치가 발견되었을 뿐이니까.

문제는 사령관의 마음에 그 바이오로이드의 매우 들었고,

그 바이오로이드가 어마어마하게 고급인 바이오로이드라서

생산 최저 조건이 과도하게 높았을 뿐.


하지만 그것이 어마어마한 재앙이 되어 오르카 호에 밀어닥칠줄은

그 저장장치를 발견한 브라우니들도 몰랐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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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이번엔..."

시뻘개진 눈으로, 쩍쩍 갈라져 귀신같은 목소리로 '이번엔'을 중얼거리며 제조실에 있는 남성이 있었다.

핏발서고 다크서클이 짖게 낀 눈으로 바이오로이드 제조 시설에 급속 완성 회로를 넣는

이 남성의 정체를 말해 무엇하랴,

바로 오르카의 사령관이었다.


"기갑병 블러디팬서, 전입 신고합니다!"


"으아아아악! 아니야! 아니라고!!"


"예..엣? 그, 사령관.. 님? 저기 그.. 문제라도 있슴..까?"

생산되자마자 사령관의 비명에 당황한 블러디 팬서에,

이윽고 이성을 되찾은 사령관이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아니야.. 아무 문제 없어. 미안한데 저기 가서 잠깐만 기다려 줄래? 조금만 있다가 인사담당관에게 인계해줄게."

"아..알겠지 말입니다."

그리고 사령관의 손가락 끝을 따라 돌린 블러디 팬서의 눈에는

다른 바이오로이드-그것도 하나같이 고급인- 7명이 앉아있는 긴 의자가 들어왔다.


"에...안녕하심까?"

멋쩍게 웃으며 의자에 앉는 블러디 팬서에게, 이미 의자에 앉아있던

아르망, 하치코 등이 살짝 목례하며 반겨주었다.


그리고 그들을 등진 사령관은,

갑자기 쪼그려 앉아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부품을삼만이천개나썼지영양과전력은팔천씩썼어이건어떻게든사령관재량으로할수있는데부품삼만이천은못채워넣어어떻게든해야되는데이러면다음작전을못나간단말이야진짜쓰면안됐는데내가왜그랬지하진짜이건쓰면안되는거였는데미치겠네어떻게채워넣을방법이없을까정예수색조가꼬박하루를갈아넣어야사천오백개인데그럼일주일을꼬박갈아넣어야하는걸내가한번에낭비해버렸네아진짜미치겠다포츈이랑애들얼굴을어떻게보지방법이없을까이대로라면인망도잃고일주일간자유도잃은채정액서버가되어버린단말야아니차라리일주일이면다행인데보름갈지도몰라아니보름일까한달까지도갈거같은데나어쩌지아진짜미치겠네이건아닌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냥이렇게 보고있어도 되는 검까..?"

"제 연산으로 봤을때 저희가 어떻게 타개할 방책은 없습니다."

"그래도 쭈인님 이렇게 놔두는건 아닌거 같은뎅.."

"그냥 가만히 있으세요.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겁니다."

의자에서 잊혀진채로 대기중인 바이오로이들이 

이 어색한 분위기에 작은 목소리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그 때,

드릉 하는 소리와 함께 제조실문이 열렸다.

"히익, 포..포츈?"

떨리는 목소리로 문을 바라본 사령관 눈에 들어온 것은,

포츈이 아니라 긴 흑발의 꼬마 소녀였다.

"사령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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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너무 길어."

불타는듯한 빨간 머리카락만큼이나 성격이 불같은 메이가 사령관의 말을 잘랐다.

"그러니까 사령관이 또 약속을 어기고 자원을 낭비했다는 거잖아?

5초면 정리할 이야기를 어째서 이렇게 늘리는 거지?"

"그.. 그게 그러니까..."

정곡을 찔려, 쥐구멍에 들어갈듯이 작아지는 사령관에게

로얄 아스널의 호탕한 목소리가 얇은 동앗줄로 내려왔다. 

"뭐 어떤가, 메이 소장? 게다가 너무 간략화 하다가는 참작될만한 요소들도 지나쳐버릴 수 있잖은가?"

"소장'님'이겠지, 아스널 준장? 그리고 이런 바보같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게 더 이상해."

"하지만 사령관님의 일인 만큼, 자초지종은 모두 듣는 게 좋지 않겠소?"

"나도 우리 부대원의 일인 만큼, 전후 사정은 모두 듣고 싶어."

마리와 레오나의 의견에, 메이는 그 큰 가슴만큼이나 한쪽 볼을 부풀리고선

'흥' 하며 재미없다는 듯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콘스탄챠가 

"그럼 사령관님. 계속 말씀해 주세요."

하고 다시금 사령관의 진술을 재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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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드바리였구나. 그래 무슨 일이니?"

포츈 몰래 제조실에 숨어들어 제조를 하고있던 만큼 깜짝 놀랐던 사령관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예, 그 포상점수에 대해서 여쭤볼게 있어서 말인데요..."

그리고 사령관을 찾다 제조실까지 온 안드바리의 눈에 들어오는 텅 빈 부품통과 새 대원들.

"그런데 이 분들은 왜 여기 계신거죠? 저 부품통은?"

"그게 그러니까... 새 데이더를 보고, 제조를 참을 수가 없어서.. 근데 지금 실수로 자원을 너무 탕진해서.."

갈수록 쥐구멍으로 기어드는 사령관의 목소리.

"그런데 이러다간 이제 곧 시작해야되는 철충점령지역 공격할 부품도 부족해서...근데 방법이 없어서.... 다른 애들 볼 낯도 없어서.... 지금 어떡해야되나 하고......"

곧 오르카 호에 쥐구멍을 뚫고 해저로 사라져버릴것 만 같은 사령관의 모습에

안드바리는 한숨을 잠깐 내쉬곤, 어쩔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제가 채워 드릴게요."

"어.. 안드바리야? 그.. 최소한 이만개는 채워야 하는데?"

아무리 발할라의 행보관인 안드바리라도 그만한 부품은 있을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사령관이 말했다.

"네. 있어요. 삼만개쯤. 대신에 이번 한 번만이에요. 

살짝 윙크를 하면서, 한 번이라고 강조하듯 검지를 세운 안드바리를

사령관은 덥썩 안아들었다.

"고마워! 고마워! 다시는 이런일 없도록 할 게. 정말 고마워."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방금 제조된 인원들과 입을 맞춘 뒤,

포츈몰래 안드바리의 창고에서 부품을 옮기고, 재고를 맞춰 놓고,

콘스탄챠와 알렉산드라를 불러 새로 제조된 인원들을 소개시키고, 운이 좋았다고 납득시키고,

이제 다들 배속을 마치고 해산하려는 그 찰나에.

포츈이 들이닥쳤다.

"지금 큰일이거든? 사령관 어딨는지 아는 애를 찾고있거든?? 제조실 제조기록이 엄청나거든??? 근데 또 자원은 어디서 솟았거든????

지금 장부가 안맞거든????? 큰일이거 든든든??????"

그리고 이 목소리를 들은 사령관이 헛숨을 들이켰다.

'앗차. 제조기록 조작해 두는거 깜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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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렇게 자리가 열린거란 말이지."

"애초에 안드바리에게 부품이 삼만개나 있는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아무리 발할라의 보급품을 관리한다고 해도 그런 물량을 융통할 데가 어디에?"

"흥, 어디서 빼낸 것 아니겠어?"

"하지만 다른 장부들은 멀쩡한데. 빈 곳도 없소."

"필요한 것보다 많이, 쓴 것 보다 적게. 이런거겠지."

"그 말은 지금 우리 발할라를 모욕하는걸로 받아들여도 되겠어?"


와글와글. 메이의 작은 가시로 시작된 언쟁에 의해 갈수록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콘스탄챠가 안드바리에게 말을 걸었다.

"안드바리? 혹시 어디서 이 부품들이 났는지 말해 줄 수 있나요?"

"저..저기 여기, 장부가 있어요."

안드바리가 늘 갖고다니는 태블릿을 조작해 한 파일을 열고선 콘스탄챠에게 건넸고,

곧 태블릿이 콘스탄챠를 거쳐 지휘관들의 손에서 손을 넘었다.

불량탄 재활용 12개, 탄환 대량생산에 의한 여분 7개, 수복중 폐기된 AGS파츠 재활용 5개....

자잘자잘한, 정말 티끌과도 같은 양의 부품들이 들어온 목록이 안드바리 특유의 작고 꼼꼼한 필체로

장부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다, 다른곳에서 빼내거나 한 건 전혀 없어요.

폐기나 재활용으로 모은 부품들이에요."

한 지휘관은 재미없다는듯이, 한 지휘관은 기특하다는듯이 안드바리를 바라보는 가운데, 

태블릿를 들고있던 레오나가 태블릿 너머로 안드바리를 채근했다.

"근데 안드바리, 어째서 이걸 나한테는 보고하지 않았지?"

"그게.. 이렇게 재고가 남는 경우가 늘 있는것도 아니고, 지휘관님께 보고하기엔 하나하나가 너무 자잘한 것들이라..."

탁, 하고 태블릿을 내려놓은 레오나가 날을 세웠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모인 시점에서는 보고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정도 양이라면 대형작전을 세번은 펼칠 양이야. 

이정도의 물자가 지휘관들 모르게 일개 행보관의 손에 들어가 있는건,

아무리 부정행위가 없고, 개인적인 취미생활에 가까운 행동이라도 그냥 넘길 수는 없어."

직속상관의 서슬퍼런 말에 안드바리의 눈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듯 글썽거렸고,

그러자 마리가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이 레오나의 말을 받았다. 

"틀린 말은 아니오. 하지만 안드바리가 부품을 사적으로 유용할 생각이었다면 사령관에게 내놓지 않았겠지.

그리고 결국 오르카의 보급품으로 내놓은 이상, 이 경우는 과보다는 공이 큰 일 아니겠소? 

그러니 안드바리, 걱정말고 이렇게 부품을 모은 이유가 있다면 말해 보게." 

"그.. 저.. 이번에 포상점수로 동침권나오는 걸로 발할라 언니들한테 선물하려고..

몇명만 주면 곤란하니까 우리 팀 언니들 인원숫자만큼 나오도록 점수 모으려고.." 

""하?""

횡령이나 유용같은 큰 문제인줄 알았던 일이

그저 여동생이 언니들을 생각해서 저금통에 한푼두푼 동전을 모은 일이라니.

"재미없어. 난 갈래."

"하하, 별 일도 아니었군. 그럼 소관도 이만 가보겠소."

시간낭비했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는 메이와 간만에 재밌었다는 듯 웃으며 일어나는 아스날,

귀여운것을 보는 마리의 눈과 당혹인지 기쁨인지 모를 것으로 빨개지는 레오나의 얼굴.

그리고 작게 한숨쉬며 수첩을 꺼내 뭔가를 끄적이는 콘스탄챠.

무거웠던 자리의 분위기는 순간 가볍다 못해 깃털처럼 바뀌었다.


"그러고보니 석식시간이 다 되었네요? 다들 가서 식사하시죠?"

사실상 무의미해진 청문회 자리를 매듭짓는 콘스탄챠의 말에 다들 동의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오나는 빨개진 얼굴로 안드바리를 껴안아 들고,

마리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며 뒤에서 따라가고,

콘스탄챠는 발할라 부대로 지급할 동침권을 계산하고...

사령관도 콘스탄챠와 나란히 걸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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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콘스탄챠? 안드바리가 모아줬던 자원덕에 작전에 쓸 것보다 부품이 좀 남으니까, 그.. 딱 한번만.

딱 한번만 더 시도해 보면 안될까? 이번엔 진짜로 성공할 것 같은데..."


"주인님?"

"사령관?"

"사령관님?"


순간 앗차, 하는 생각이 여기 있는 모두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러고보니 청문회에는 사령관이 제조로 자원을 탕진한 사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묻어갈 수 있었는데.

콘스탄챠가 웃는 얼굴로, 하지만 전혀 웃지 않고 있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주인님. 제조로 자원을 탕진하셨었죠?

안드바리양이 모아온 자원이 없었으면 이번 철충 점령지역 공격작전에 쓸 보급품도 부족했겠네요?

정말, 깜빡할번했지 뭐에요?"


"어..콘스탄챠? 마리? 레오나? 안드바리?"

"그런데도 또 제조라니. 주인님을 정말 어떻게 해야될까.."

"미안해! 그러니까 정말, 정신이 잠깐 나갔었나봐! 다시는 안그럴테니까.."

"아뇨, 안드바리양은 몰라도 사령관님은 나름대로 징계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하늘에서 동앗줄이라도 내려오지 않으려나 하는 눈으로 마리와 레오나, 안드바리를 쳐다보는 사령관의 눈에는

가늘어진 레오나의 눈과, 살짝 한숨을 쉬는 마리의 입과, 절레절레 흔들리는 안드바리의 머리만이 들어왔고




그날 사령관은 콘돔 3박스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