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음집



69







침대에서 눈을 뜨고난 직후 보이는것은 예전에도 봤었던 응급실의 새하얀 천장이었다.


"........."


머리가 깨질것 처럼 아프다. 왜 이런 곳에 내가... 아 맞다. 쵸나랑 있다가... 닥터한테 갔었지.


"아이고..."


닥터의 인도를 받아 신체재건을 위해 재건 장치에 들어간 것까지는 기억속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더라...


"...모르겠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기껏해야 허리 윗부분 정도만 일으키는것에 그칠 뿐, 결국 완전히 일어설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하반신에 감각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던 탓에 도무지 미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체재건 장치에 들어갔던게 마지막 기었이었는데... 성공적으로 끝난걸까.


"후우우... 이렇게 될 줄은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너무 무리했나."


닥터가 처방해준 그 약들을 뒷일은 생각 안하고 무식하게 쑤셔넣은 덕분에, 그 부작용으로 음식다운 음식은 고사하고 환자식으로 나온 죽을 먹는 것조차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애들이 주는 간식거리도 눈치것 맛만 간단히 보고서 티 안나게 화장실에서 처리하고, 또 그걸 계속 반복하고...

뭘 넣어도 20분 내로 게워내는 꼴을 보니 아마 위장도 제대로 맛이 간거겠지.


"뭐... 후회는 없지만."


의학에 문외한인 비전문가가 봐도 약의 정량을 멋대로 초과한다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무식한 행동이지만 그런 무모한 행동을 했기에 다른 애들이랑 즐겁게 놀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아마 정량만 먹었더라면 난 내 발로 침대 밖으로 나가는 것 조차 힘들었을 테니까.


"으으으... 목말라..."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않는다. 그 와중에도 목이 타는듯한 갈증은 또렷하게 느껴지는걸 보니 다행이 아직까지는 살아있기는 한가보다.


"다른건 둘째 치고 우선 물부터 마셔야......"




(스윽)





흐릿한 시야를 바로잡고서 어떻게든 일어서보려고 발악하던 찰나, 누군가가 적절한 타이밍에 물이 가득담긴 컵을 내밀었다.


"아... 고마워 닥터야. 안그래도 목말라서 죽을뻔 했는데......."



































......














".........."














.............



















".............."





















..............

































^0^




".............."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털썩)



























"...................."

(기?절)







..........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흐아아아앙~~~!!! 라붕씨이이이!!!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라붕이의 품에 안긴 실키는 격렬하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라, 라붕씨... 살아 있어....



뒤늦게 뛰어온 레프리콘 또한 마찬가지로 풀린 눈으로 라붕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럼 살아있지, 죽겠냐?"


호에에에엥... 정말 다 나은거 맞져어어..? 또 피 질질 흘리면서 쓰러지고 그러는거 아니져..?



"그래그래. 나 다 나았어. 이제 그럴일 절대 없으니까 안심해. 알았지?"



품에서 훌쩍거리는 실키의 등을 토닥이며 상냥하게 되새기는 라붕이의 옆에 다급하게 찾아온 노움이 그의 어깨를 붙들고서 초조하게 외치기 시작했다.


라붕씨!! 지금은 좀 어떤가요! 속이 이상하다거나 하진 않아요?! 아직도 구역질이 난다던가! 아니면 콧속에서 철분 비슷한 냄새가 난다던가!!



"괘, 괜찬대도... 나 이제 완전히 새로운 몸이라니까. 이제 휩노스병 같은건 걱정 안해도 돼."


...다행이다... 살아서...



드디어 안심을 하게된 노움이 졸였던 가슴을 진정시키던 사이, 누워있는 침대에서 무언가가 움찔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후아아암... 잘 잤냐.



라붕이의 바로 옆에서 하품을 하며 꾸물거리던 이프리트는 개운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켜며 홀가분하게 기상했다.



"이프리트... 너 설마 하루종일 내 옆에서 자고 있었어?"



화들짝 놀라지만 않았을뿐 적잖게 당황한 라붕이에게 이프리트는 몽롱한 눈을 비비며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역시 의무실 침대만큼 편한 장소가 없더라고~ 그래서 이번에도 신세좀 졌다.



"참... 어찌보면 대단하구나. 여러모로"


이번엔 약속 잘 지켰네. 하여간... 내 살다살다 너 같이 손 많이 가는 놈은 처음이라니까.



개운하게 자고 일어났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다크서클이 신경쓰였는지 눈가를 부비적거리던 이프리트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라붕이의 옆구리를 툭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야, 벌써부터 우는소리 하면 안되지. 앞으로도 너한테 많이 기댈건데."


...참 나. 말은 잘해요.



헬쓱하고 창백하던 몸으로 티 안내려고 무리하던 이전과는 다르게 건강한 모습으로 능청스럽게 받아치는 라붕이의 답변이 나름 마음에 들었는지, 이프리트도 간만에 밝게 웃으며 받아내 주었다.



"근데 너 언제부터 내 옆에서 자고 있었던거야? 설마 하루 종일 여기 있었어?"


...?! 그, 그건 갑자기 왜 묻는데...


아~ 사실 하사님, 라붕씨가 신체재건 시작한 이후에 라붕씨만 생각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거든요! 라붕씨가 걱정되서 이틀전부터 계속...


아얏~!


이... 이게 갑자기 뭔 말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자빠졌어!


히잉... 그치만 사실이잖아요. 하사님 며칠전부터 취침시간만 되면 라붕씨 병실 찾아가서...


으아아아~ 그만~~!! 더 이상 말하지마!!!!!



실키의 쓸때없는 소리 덕에 적잖게 놀란 이프리트가 실키에게 꿀밤을 먹이며 딴지를 걸고 있던 때, 옆에서 조용히 앉아서 라붕이를 바라보던 브라우니와 눈이 마주쳤다.


...뭐하냐. 인사 안하고. 나 이상으로 날밤 지새우던 놈이 오늘따라 왜 이리 조용해?


........



많은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브라우니에게 미소와 함께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 브라우니. 나 자고 있는 동안 그동안 잘 지냈어?"



사실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게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이 애와 마주보고 싶었기에 무난한 첫마디로 운을 떼보았다.


........


...헤헤헤...



"...!"



대답 대신 베시시 웃으며 나의 품에 안겨든 브라우니는 뜸을 들이더니 이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뭐라 했슴까. 라붕씨 무사히 일어날 거라고 하지 않았슴까.


...참 나. 누가 뭐래?



막 깨어난 라붕이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서 실없이 웃는 브라우니는 그대로 그의 품에 몸을 포개며 중얼거렸다.


라붕씨. 이제 안 아픈거 확실하지 말임다.



"응. 이제는 전혀 안 아파."



마찬가지로 행여나 놓칠까봐 브라우니를 꼬옥 껴안은 라붕이도 진심으로 대답해주었다.


그럼, 퇴원하면 앞으로도 쭈욱 저희랑 함께 하는검다? 이거 선임이 하는말이니까 라붕씨한테는 선택권 없을줄 아십쇼.



"...그래. 앞으로 쭈욱 같이 있자. 브라우니."


.....참, 너만큼 손 많이 가는 놈도 없을거다. 이 얼간아.



여전히 피로가 가시질 않았는지 눈을 비비던 이프리트가 피식거리며 입을 열었다.



"졸리면 옆에서 더 누워있어도 돼. 내가 닥터한테 잘 말해놓을 테니까."


뭐... 이대로 너랑 같이 누워있는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긴한데...





니 앞으로 밀린 선약이 워낙 많아야지. 우선 그거나 끝내셔.




"선약? 내 앞으로?"





















(쿠구구구구구궁)










지...진?





























쾅!!!












라붕아!!!!!/라붕씨!!!!!!





"...네?"



문을 거의 부숴버리며 쳐들어온 매우 심각하고 중대한 표정의 대원들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라붕아라붕아! 너 몸은 이제 괜찮아?! 열은 없고?!


너 또 코에서 피 질질 흘리거나 그러진 않지?! 두통은 좀 어때! 머리 안 아파?!


라붕아! 나 알아보겠어?! 갑자기 기억이 엉킨것 같다거나 위화감 같은거 안 느껴져?! 설마 우리 셋이랑 놀았던거 또 까먹은거 아니지?!


라붕씨!!! 혹시 나까지 잊어버린건 아니지?!! 나랑 후배랑 쉐이드랑 또 놀기로 한 약속 잊어버리면 안된다~!!


서, 선배..! 울지마라! 라붕씨가 또 쇼크 받아서 기억장애 재발하면 큰일이다!



"안 잊어버렸고, 너희도 안 잊었으니까 울지ㅁ"


아이고오오오~!!! 이 사람아!!! 제발 철좀 들어라~!!!



"......."


김라붕. 슬슬 좀 일어나십시오.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지겹습니다.


라붕아! 몸은 어떻느냐! 또 무서운 꿈이나 악몽을 꾸거나 하진 않았느냐!


야야야야!!! 너 이 손가락 봐봐!! 숫자 잘 보여?! 덧셈뺄셈 할 수 있겠어?!



"어... 눈은 원래 멀쩡했는데..."


자, 회복기념 사케 한잔 무라.


야! 병상에서 막 일어난 애한테 뭘 먹이는거야!


이제야 좀 혈색 좋아졌네. 멍충아.


야! 일어나봐 임마! 몸 뻐근할땐 폭발만한게 없다니까~!


하이에나 씨! 라붕씨 다치게 하려고 작정했어요?!


으히히히...!!! 라붕씨..?! 무사히 일어난 기념으로 여기 이 카메라를 보고 이름과 나이를 말해보세요~?!


..............


(뺨을 0.3초 단위로 두들기며)

라붕씨! 저도 잘 기억하죠?! 설마 또 잊어먹거나 한건 아니죠?! 만약 또 잊어버리면 그땐 진짜로 밖으로 쫓아냅니다?!


라붕씨?! 움직일 수 있겠어요?! 움직일 수 있다면 당장 여기 관으로 들어오세요!


중환자실에 관짝 들고 오지마 이 정신니간 것들아!!!


라붕씨라붕씨라붕씨라붕씨!!!저랑같이오라오라특별게스트찬조출현약속까지다잡아놓고그걸잊어먹다뇨!!!나중에사령관님이랑라붕씨랑더블게스트편성해서새벽방송스트리밍까지계획다해놨다구요!!!

아!그러고보니까라붕씨한테추천해줄러브코미디애니메이션이랑드라마까지다추출해놨는데이것들도다챙겨가셔야죠!!참고로제가추천드리는작품은두천재남녀가상대방에게고백받기위해숨막히는두뇌싸움을펼치ㄴ

읍읍읍!!!


오렌지 양! 그 주제는 나중에 따로..!


야!! 넌 그 난리를 피워놓고 이제는 앓아눕기까지 하냐?! 당장 안 일어나!!


라붕아, 너 잠이 너무 많은거 아냐? 수십번 깨워도 안 일어나는건 좀 심하다.


라붕씨! 저와 같이 모모 컬렉션을 감상하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로 약속 하셨을텐데요! 혹시 그것도 잊었나요?!


으이구~! 너처럼 손 많이가는 애도 없을걸~!


자. 여기 입원기간동안 읽을 책들 좀 가져왔어. 내가 엄선한 것들이니까, 꼭 다 읽어봐야해?


........


또 다치기만 해봐라! 그땐 확 그냥 상공에서 떨궈버린다!!


야.



(따악)



"아얏!"



뒤통수를 후려친 손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못마땅한 표정의 메이가 팔짱을 끼고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메이."


.......



이름을 불러 보았음에도 대답이 없던 메이는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퍼질러 있을거야. 여기가 그렇게 한가한 곳인줄 알아?



"......."


니가 앞으로 오르카 호에서 해야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다고. 니 일 대신 떠맡는건 질색이니까, 후딱 정신차리고 일어나.



"........"


"...메이야."


또 뭐.



조용히 메이의 말을 귀담아 듣던 라붕이는 닥터를 떠올리며 넌지시 물었다.




"......너한테도 농쭉 한 번만 해도 돼?"


..................


에?



불과 수 초만에 아수라장이 된 중환자실의 틈바구니에서 당황한 메이를 뒤로 하고 작은 소녀가 꽃다발을 건네주며 물었다.


잘 잤어?


오랜만이에요. 라붕씨.



"응. 어찌저찌해서 잘 됬나봐."


후훗~ 제가 뭐랬어요! 우리가 알아서 잘 낫게 해줄거라고 그랬죠~?



"그러게. 니 말대로네. 키르케."



가까이 다가와 라붕이의 안색을 살피던 더치걸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음! 역시 이전보다 훨씬 더 건강해졌네!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다.



"......."


그럼 이제부터는 부담없이 자주 만날 수 있겠네. 언제 한번 또 놀러와. 알았지?



"...고마워. 땃쥐야."


.......



잠시 침묵하던 키르케는 이내 다시 특유의 밝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기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딘.



자 그럼~! 라붕씨 회복 기념으로 한잔 적셔어어어~~~!!


예이이이이이!!!!!


에이잇..! 이 바보햇츙들! 중환자실에서 술먹으면서 떠들지마!!


맞아요! 아직 라붕씨에게 음주는 금물이라구요! 이제 곧 약도 드셔야 하는데!


그런 관계로! 술 대신에 여기 영양만점 민트미트파이를 드세여~


저... 하치코? 막 깨어난 환자에게 민트미트파이는 좀...



"(우물우물...)"


엄청 잘 먹네?!


라붕아! 여기 이 유부초밥이랑 미트볼도 같이 곁들여 먹거라!



"우물우물... 응. 고마워 히루메!"


후후후~! 초밥에는 역시 일식 스타일의 사케도 진하게 곁들여야 않겠ㄴ...


자자! 중환자실에서 음주는 금지에요~! 특히 환자는 더욱 더!



"...사케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아니 이 바보는 한술 더 뜨네?!


라붕씨... 지금 막 신체 재건 겨우 끝난 사람이 무슨 사케 타령이에요...


자, 여기 허브티나 한잔 하세요. 파이랑 잘 어울릴 거에요.



리리스가 건네준 허브티로 목을 축이고 있을 무렵, 또 다른 친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이제 잠 다 깼냐.



특유의 퉁명스러움이 섞인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모두의 엠프레시스 하운드가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참~ 부지런하시네. 골골거리던 와중에도 약속이란 약속은 꾸준히 잡아놓으셨더라? 아주 그냥 몸이 10개라도 부족하시겠어?



"왜 이제 왔어. 서운할 뻔했네."


허이구. 헛소리 하시는거 보니까 이젠 정말로 다 나았나보네.


정말이지, 오래도 자더구나. 정말로 이대로 영영 안깨어나는 줄 알았다.



옆에서 피곤한 얼굴로 한마디 덧붙인 바르그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무사히 깨어났구나. 라붕아.



"응. 역시 뱌루룽도 와줬구나?"


그래. 니가 드디어 깨어났다는데 당연히 달려와야ㅈ...


에이잇!! 뱌루에 이어서 이번엔 뱌루룽이냐!!


.......



살짝 구석진 자리에서 말 없이 바라보던 천아가 뒤늦게 입을 열며 라붕이에게 다가왔다.



"안녕. 쵸나야."


....그래. 누나왔다 새꺄ㅋ


남들은 온갖 마음 고생 시켜놓고서 니는 그 동안 꿀 빠느라 고생했다 븅신아.



라붕이의 이마에 검지 손가락을 살짝 튕겨 딱밤을 먹인 천아는 라붕이의 신체 재건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해 주었다.


3주. 니가 잠들어 있었던 시간이야.



"...3주 씩이나 지났구나."


닥터가 너 포트에서 꺼냈을때, 니 생체신호가 희미해서 큰일이었다고 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 참 난리도 아니었지. 특히 사령관은 더더욱.



"......."


니 유전자 본따서 개량한 오리진 더스트를 토대로 신체의 틀을 만드는건 성공했는데, 정작 혈액 구성에 문제가 발생했었거든.

그거 해결하려고 사령관이 창백해질 때까지 수혈 미친듯이 하다가 걔도 쓰러지고.



"...?! 사령관이 쓰러졌다니... 그게 무슨...!"


걱정할 필요는 없다. 주인님은 회복하신지 좀 오래 됬으니까.


참 나. 사령관이 넌 줄 아냐? 최근까지 죽을뻔한 주제에 누가 누굴 걱정해?



".......사령관이 내 혈액 구성 단계에 쓸 피를 제공해준거야?"


뭐... 그렇다고 봐야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혈액도 대조해 보긴했는데, 니 몸에 제일 궁합 좋은 혈액이 사령관이었거든. 그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백혈구를 자력으로 생산 할 수 있도록 재건이 가능 했다나봐.

물론, 그 밖에 또 중추신경계나 전자 신경계 재구성 단계에서도 변수가 많이 생겨서 닥터랑 다른 기술진 애들이 엄청 애먹었지만, 결국은 해냈고.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너야.



"............."


이제는, 더 이상 아픈 곳 없지?



".....응. 너희가 힘써줘서 이제는 전혀."



(꾹꾹)



"...?"



조용히 뺨을 찌르는 부드러운 손가락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옆으로 은근슬쩍 다가온 엔젤이 손수건을 내밀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라붕씨 라붕씨.



"어?"


지금이라면 마음것 터뜨려도 괜찮아요~!



"......어..?"


에?! 라붕씨 진짜로 울어요?!



"?! 아아..아냐아냐..!! 나 운 적 없는데..!"


어어어... 점마 왜 눈시울이 뻘게지노~?


어머나~ 라붕씨가 우는 모습 보일줄은 몰랐는데~


자자자자자 잠깐...! 엉엉 울거면 여기 카메라 보고 울어요!!


야! 넌 지금이 카메라 들이밀 타이밍이냐! 눈치좀 챙겨!


키키킥... 야, 그렇게 질질 짤 만큼 감동받았냐?


헤에... 다른 녀석도 아니고 니가 우리에게 감동받아서 운단 말이지?


오구오구~ 그렇게 감동먹었어~? 우리가 잔뜩 안아줄테니까 울거면 실컷 울어~



"아 그런거 아니라니까!!!"


.......



이렇게, 모두의 진심이 담긴 축하를 받으며 무사히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조금 요란법석 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기쁘고 행복했으니까 별 상관없었다.


...그래도 나중에 지금 찍힌 영상은 지워달라고 해야지.


몸은 좀 어떻소.



티백으로 우려낸 차를 컵에 담아 건네준 용에게 머쓱한 표정으로 감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병문안 소동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무렵, 또 다시 시작될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을때 용이 문안 차원에서 찾아왔다.


이제 슬슬 일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문을 열자마자 비명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오. 행여나 그대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닐까 하고.



"아...하하. 저도 모르게 그만..."



한것 무안해진 얼굴로 티타임을 갖던 도중, 나에게 놓을 수액과 주사바늘을 챙겨온 리제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나 참... 눈 마주치자마자 갑자기 비명부터 질러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기는 해? 몸에 이상 생긴건 아닌가 하고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데.



"...미안."



처음 눈을 떴을 때, 리제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또 이전 버릇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얼굴에 작열감이 느껴질 만큼 부끄러울 뿐이었다.


자, 팔 내밀어. 수액맞을 시간이야.



매우 능숙한 솜씨로 내 혈관에 부드럽게 바늘을 꽂아넣는 리제의 모습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것도 리제에게 극진한 간호를 받는 날이 오다니.

뭔가, 참 신기하면서도 오묘한 느낌이다.


지금은 몸 상태 어때. 이전과 비슷한 증상이 느껴져? 기억이 엉킨것 같다거나, 속이 메스겁다거나.



"음... 하반신이 잘 움직이지 않는것 제외하고는 딱히 큰 이상은 없는것 같아."


아, 그건 아직 말단 신경계에 적응이 안되서 그런거야. 몇시간만 지나면 감각도 다시 돌아와서 거동도 가능해질 테니까 걱정 안해도 돼.

아, 신체재건이 무사히 완료된 만큼 이제 식사도 제한없이 할 수 있어. 물론 일어난지 얼마 안된 만큼 당분간은 여기서 환자식 위주로 식사하면서 경과를 지켜볼거니까 그렇게 알고.



"그래? 그럼 술도 먹어도 돼?"


밥 먹고 바로 약 먹어야 하는데 되겠냐! 술 말고 밥 먹으라고 밥!


.......



모두와 웃고 떠들며 격의없이 지내던 모습을 지켜보던 용은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는, 리제 양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구려.



"ㄴ, 네?"


예전에 라붕씨의 건강상태를 보다 면밀하게 관찰하기 위해서 라붕씨가 찍힌 영상들을 살펴보다가 발견했다오. 그녀를 만나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는 모습을.



"........."


허나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그대도 많이 변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소. 이제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려.



"아... 하하하... 그건 그... 뭐 부터 설명을 드려야 할지..."


........


야.



"네?"


너, 내가 무섭니?



"아, 아니... 딱히..."


...근데 왜 내 얼굴 볼때마다 소리지르고 기절하니?



"....오해가... 조금 있었는데... 이제는 괜찮아 졌다고 해야하나... 뭐랄까..."


흐음...



"(꿀꺽...)"


.......


뭐, 이제라도 정신차렸으면 됐어. 자, 여기 이 체온계 입에 물고 잠시 기다려.



의료 차트를 작성하기 위한 문진을 시작한 리제와 건강상태에 대한 문답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긴 시간을 보냈다.

예전같았다면 상상이나 했을까. 이런 광경을.


음... 건강 상태는 나쁘지 않네. 딱히 불편한 점도 없는것 같고.



나름 만족스런 결과가 나온것을 확인한 리제는 문진표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어디긴 어디야. 이 내용 정리해서 모두에게 공유해야지. 죄다 니 관련된 소식만 기다리고 있는거 알긴 알아?



무덤덤하게 대꾸한 리제는 문진 차트를 한데 모아 병실을 나가기전, 라붕이를 향해 무심하게 한마디를 건넸다.


몸조리 똑바로 해. 또 쓰러지지 말고.


그래 라붕씨. 또 쓰러지면 그때는 정말 민폐가 따로 없을것 같다.


어머, 이제는 잔머리 굴리면서 오르카 호 나가려고 하는 버릇도 좀 나아졌어?



"에이... 언제적 이야기를..."


바로 몇일 전 이야기다만.


하아아... 도대체 언제까지 민폐만 끼치고 살겁니까. 제발 사람답게 좀 사십쇼.


아 하하하... 에이~ 바닐라도 참? 모처럼 좋은날인데...


...언니 오빠들~? 다 끝났으면 이제 저도 입좀 열어도 될까용?



피로에 찌든 얼굴로 슬쩍 끼어든 닥터는 손을 빼꼼히 들고서 조용히 끼어들었다.



"...닥터야."


히힛... 내가 뭐랬어. 이 천재 미소녀 여동생만 믿으라고 했지?



허리춤에 양 손을 얹고서 자랑스럽게 미소를 띄운 닥터는 라붕이의 신체재건 결과에 대해 간략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결론만 말할게. 라붕이 오빠의 신체재건과, 그로 인한 휩노스 병의 면역력 확보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어.

이제,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말씀~!



해맑은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결과를 통보해주는 닥터를 바라보다가 이내 전신거울에 비친 새로운 몸을 멍하니 쳐다보던 라붕이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뭔가, 실감이 전혀 안나네. 체감상 바뀐것도 딱히 없는 느낌이고."



속옷조차 입지 않고 오직 한장의 환자 가운만을 입고 있는 자신의 새로운 몸을 거울을 통해 자세히 바라보니, 신체 곳곳에 쓸때없는 지방은 사라지고 대신 근육이 조금 늘어난 것 같긴 하다.

...정말로 된거구나. 신체 재건.


그야 그럴 수 밖에. 원래 신체 재건 직후 면역력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로 바로 움직이면 아파 죽는다구.

우리 오빠도 처음에 신체 재건 끝난지 얼마 안됬을때 백신 안맞아서 죽을뻔 했다니까? 그래서 라붕이 오빠는 기본적인 신체의 면역력이 형성될 때까지 포트 내에서 수면중인 상태였거든.



그러고보니 7지역인가. 사령관이 신체재건 직후에 쓰러져서 백신맞고 휴식 취하던 에피소드가 있던걸로 아는데. 아마 그 이야기겠지?



"그럼... 이제는 약도 안먹어도 괜찮은거야?"


...아니. 아직은 약을 계속 먹어야 할거야. 그리고 설명했다시피 지속적으로 입원하면서 내가 만든 라붕이 오빠 전용 오리진 더스트를 지속적으로 투여해야 하고.


우선 라붕이 오빠의 오리진 더스트 적응력은 게임으로 따지면 이제야 겨우 레벨1정도 수준이거든. 그러니 꾸준한 투여와 시술을 통해서 라붕이 오빠의 신체를 호전시키고 강화해 나갈 계획이야. 다른 언니들한테는 진작에 공유한 내용이니까, 참고해둬.


아, 일단 정력 부분에 있어서는 최대치까지 강화시켰으니까 참고해두고~



"...그런것 까지 알 수 있어?"


저기요. 라붕이 오빠 신체재건을 누가 주도했다고 생각하는거야? 바로 나라구! 난 이미 라붕이 오빠의 신체 정보를 유전자 단위 세포 단위로 빠삭하게 꿰차고 있단 말씀~!

참고로 덧붙이자면, 라붕이 오빠의 강화된 정력으로 최대 몇명의 여자를 상대할 수 있는지, 또 최대 사정량과 횟수는 어느 정도인지까지 디테일하게 설명해줄수 있ㄱ...



"자자자자잠깐...! 알았으니까..! 그 얘기는 다음에 따로 하자! 응?!"


아이잇! 뭘 그만이야! 이거 엄청 중요한 내용인데.



"아니... 그래도 다른 여자애들도 있는데... 그런 얘기는 좀..."


....................



설명에 열중하느라 주위를 잊고 있던 닥터가 뒤늦게 라붕이의 뒤를 바라보니 그 곳에는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 다양한 표정을 지은 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크, 크흠. 뭐... 그럼 그건 나중에 차차 얘기하는걸로 하고.



...이 건에 대해서는 나중에 혼자 와서 설명 듣자. 지금은 훨씬 중요한 사항이 많은것 같으니까.



우선, 닥터의 말에 의하면 나의 몸에 주입된 오리진 더스트는 오로지 나의 유전자에 맞게 개량된 커스텀 버전 이라는 것. 그렇기에 신체 재건과정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완전한 물건은 아니기에 주기적인 투여 및 지속적인 경과 관찰과 케어가 필요해. 그러니까 라붕이 오빠는 당분간은 주기적으로 의무동 입실과 퇴실을 반복하게 될거야.



또 살짝 아쉬운 점은, 오리진 더스트와 상당한 친화력을 보였던 사령관과는 달리 나의 신체능력이 그렇게 높아지진 않았다는 모양이다.

물론 평범한 인간에 비하면 월등히 강화된 것은 맞으나 바이오로이드의 평균치에는 미치지 못한다나.



"결론은, 부작용 경과 및 지속적인 연구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말이네. 그걸 위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주기적으로 입원을 해야 한다는 거고."



또 다른 주의사항은, 오르카 호 외부에서의 활동이 엄격하게 제한된다는 것이다.

일단은 명색이 오리진 더스트로 인한 강화인간으로 분류되니 스펙 상으로는 평범한 인간보다야 훨씬 강인한 몸이라고는 하나, 그건 이론상의 이야기고 실제 나의 현재 체력이나 건강상태는 매우 예민하게 다뤄야 할 만큼 약한 모양이다.


닥터가 이전에 말했다시피, 한번 망가진 뇌의 신경세포와 중추신경은 두 번 다시 고칠 수 없다. 뇌와 중추신경은 새로운 재구성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닥터는 그에 대한 차선책으로 새롭게 만든 오리진 더스트를 기반으로 한 전자신경계를 새롭게 "설계"했다고 하던데...

즉, 결론을 요약하자면 "불완전한 성공", 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혹시 모를 부작용이나 합병증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나의 외부로의 외출이나 격렬한 운동같은 신체활동은 크고 작은 사소한 부분까지 닥터의 엄중한 관리감독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중추신경의 태반이 잠식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멀쩡했던 일부 신경계를 대부분 새롭게 손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거든.

하지만 걱정하진 마! 일상생활이나 가벼운 활동에 지장을 줄 만큼 무리가 오지는 않을테니까!



피로를 티내지 않기위해 애써 밝은 표정으로 안심시켜주는 닥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닥터. 날 구해줘서."


됐네요. 어차피 나중에 이거 빌미로 실컷 받아먹을테니까, 각오하시고~



"하하하. 그래그래. 명심할게."


아 그리고! 또 한번 더 나한테


노오오오옹ㅋㅋㅋㅋㅋ 쭈우우욱ㅋㅋㅋㅋㅋ


이거 하기만 해봐~! 그땐 타이탄으로 확 날려버린다~!



"에에에..."


아니, 진심으로 실망하네?!




뭐, 여러 복잡한 과정이나 이론적인 사항들을 제쳐두고 결과만 보자면, 난 결국에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두의 노력 덕분에.

병문안 차원에서 수도 없이 많은 선물과 격려를 건네준 모두에게 각자 감사의 인사를 건네니 어느새인가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아직 한 명더 남았지."



오늘 밤까지는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괜찮다는 닥터의 허가가 있었으니까. 그러니 지금 정도는 괜찮을거다.

이미 녀석에게 문자도 보내 놓았으니까.


























서늘하면서도 시원한 바닷바람이 갑판을 나오자마자 피부를 세차게 반기고 있다.


"어우... 은근 춥네. 역시 실내에서 만날걸 그랬나."


라고 하기엔 다른 애들도 듣고 있을 함 내에선 진지한 대화같은걸 하기엔 여전히 무안하니까.


"........."


갑판 끄트머리에서 혼자 난간에 기대어 서있는 인영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니, 기척을 감지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밝게 인사했다.


"어서와. 새로운 몸은 적응 잘 되가?"


상냥하게 안부를 묻는 사령관의 한쪽 손에는 비닐 봉지가, 한쪽 손에는 이미 마시고 있는 캔맥주가 들려 있었다.


"치사하게 니만 먹냐? 나도 좀 줘봐."


"에휴. 일어나자마자 술부터 찾냐. 그럴줄 알고 여러개 가져왔으니 안심해도 돼. 근데 너 술 먹어도 괜찮겠어? 깨어난지 얼마 안됐잖아."


"안될 것 뭐 있노."


"...그래. 마셔라 마셔."


술 앞에서 이 바보를 설득시키는건 무의미 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아는 사령관은 라붕이에게 봉투 째로 술들을 건네주었다. 어차피 닥터에게는 미리 허가를 구해놓았으니 이 정도는 문제 없을것이다.


"니가 혼자서 술마시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잘 먹지도 못하는 놈이."


"왜,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게임속의 나는 술에 약한 타입이었나봐?"


"나야 모르지. 그 양반이 딱히 술에 집착하는 놈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너 나랑 술먹다가 죽을뻔 했잖아.

굳이 한마디 사족을 붙이는 라붕이의 모습에 사령관은 질색하며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야... 그건 니가 쓸때없이 잘 마시는 거라고. 이래뵈도 나도 술을 못먹는다는 소리는 안들어 봤는데."


"......."


살짝 눈치보던 라붕이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사령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몸은 좀 어때?"


"....?"


라붕이가 건네는 질문의 의도를 뒤늦게 파악한 사령관은 떨떠름한 얼굴로 되묻기 시작했다.


"지금 니가 내 몸을 걱정하는거야?"


"...왜. 난 니 걱정하면 안돼냐?"


사령관의 반응은 나름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틀에 박힌 것 마냥 딴지거는 모습에 살짝 무안했던 라붕이는 넌지시 입을 열었다.


"너, 나한테 줄 피 뽑느라 쓰러졌다더만."


"아... 그걸 들었구나. 근데 딱히 신경쓸 필요는 없어. 갑자기 수혈을 너무 무리하게 해서 급성 빈혈을 잠시 겪은것 뿐이니까. 실제로 금방 회복했고."


".....그래. 다행이네."


별일 아니었다는 장화의 일갈이 있었다 할 지라도 내심 사령관이 걱정되었던 것은 사실이기에 당사자의 확답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고마워."


"음?"


"쓰러져가면서 까지 날 살려준거. 고맙다고."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친구가 위험한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니까. 그리고..."


난관에 기댄 모습 그대로 옆을 바라보며 미소지은 사령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너라도 그렇게 했을거잖아. 그치?"


"...하하 참."


더 이상 낯뜨거운 말 해봐야 괜히 눈치없는 놈 될게 뻔했기에 이 주제는 더 꺼내지 않는 편이 나을듯 하다.


".....사령관."


제일 차가운 맥주캔을 개봉한 라붕이는 거품이 올라오는 맥주를 멍하니 바라만 볼뿐, 정작 그것을 입에 대지는 않았다.


"응?"


"난 뭐하면 돼?"


"........"


"난 이제부터, 이 오르카 호에서 뭘 하면 되는거야?"


사실 이런걸 묻기위해서 사령관에게 혼자 시간을 내어달라고 한건 아니었지만, 새로운 신체라는 것이 생겼다는 실감이 생기자마자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 내가 곰곰히 생각을 해 봤거든?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뭘 할수 있을까. 하는."


"...응."


"그런데 있잖아. 아무리 떠올려도... 내가 여기서 뭘 하는게 좋을지 통 모르겠더라고. 난 게임 속 주인공 마냥 유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애들처럼 이렇다 할 특기가 있는것도 아닌데. 그래서인지 도무지 내 혼자 힘으론 답이 안나와서."


원래라면, 스틸라인과 호드 애들에게 말했듯이 난 그저 평범한 일이나 하면서 내 나름대로의 1인분만 하면 그걸로 족할거라 결론내렸다. 현실적으로 보아도, 그리고 오르카의 입장에서 보아도 일개 민간인인 나에게 맞는 수준은 기껏해야 그 정도 일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럼에도, 요즘은 어째서인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정말 그런 걸로 너희에게 보답할 수 있는건지."


"......."


"이제 와서 이런다고 부끄러운 과거가 사라지는 것 쯤은 잘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물 흐르듯이 넘기기에는 내가 용납하기 싫었어. 그래서 말인데."


"응. 알았어."


"그래. 넌 왠지 그렇게 말할것 같더ㄹ......



...뭐가?"


"알았다고."


"???"


뭔가 매우 중요한 것이 생략된 것 같음에도 사령관의 표정은 살짝 취기가 감도는 것 외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뭘 알았는데?"


"니가 뭔 소리 하는지 알겠다고."


"네...?"


대화의 문맥이 이어지질 않는 모습에 라붕이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사령관을 노려보았다.


"...너 벌써 취한건 아니지?"


"아니 이게 날 뭘로 보고! 내가 너보다 약한 것 뿐이지 나도 한 음주 하거든?!"


"근데 뭘 알았는데 임마!"


"니 마음."


"........."


"너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건지, 이제 잘 알고있어.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마."


반쯤 남은 맥주캔을 흔들어 보이던 사령관의 모습에, 라붕이도 이제서야 개봉한 맥주를 입에 갖다대기 시작했다.


"자."


차가운 맥주를 몇모금 들이키며 머릿속을 정리하던 와중에 사령관은 이전부터 건네주고 싶었던 것을 조용히 내밀었다.


"카드..? 이게 뭔데."


"니 대원증."


"....!"


"원래라면 예전에 너랑 밥먹을때 주려고 했는데, 타이밍이 어색해서 못줬던거야. 그런데 그때 안주고 지금까지 갖고 있길 잘 한것 같네."


사령관이 건네준 자신의 대원증을 멍하니 바라만 보던 라붕이에게, 사령관은 친구가 아닌 사령관으로서 입을 열었다.


"너도, 이제 오르카 호의 공식 대원이야."


"........"


"그렇다는건, 너도 이제는 내 휘하의 대원이라는 뜻이고. 이게 무슨 의미인지 너라면 잘 알고 있겠지?"


늘 자상한 모습만 보였던 평소와는 달리, 대원증을 건네주는 지금의 사령관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진지한 얼굴이었다.


"...응. 알고 있어."


그런 사령관의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한 라붕이는 살짝 긴장감을 느끼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새로운 대원인 너에게, 사령관으로서 명령을 내리겠어."


사령관은 사상 처음으로 인간에게 자신의 "명령권"을 사용하며 품속에서 서류를 꺼내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


서류를 받아 그 내용을 읊어보던 라붕이는 사령관의 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물론 나도 각오를 다지고서 이야기를 꺼낸건 맞지만... 이 정도의 스케일을 염두에 두고서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정말로 괜찮겠어?"


"안될게 뭐 있어? 내가 너한테 명령하겠다는데."


"..........."


"참고로, 다른 지휘관 들이랑 수뇌부 애들도 진작에 만장일치로 동의한 안건이야. 신입 말단인 너에게 선택지 따위는 없을줄 알라고."


싱긋 웃으며 마지막 말을 끝으로, 사령관은 품속에서 만년필을 꺼내어 라붕이에게 내밀었다.


"이제 니 서명만 있으면 끝이야."


"............."


"미리 말해두는데, 이거 명령이다? 이거 어기면 너 리리스한테 다 일러바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하하 참...."


이미 정해진 결말이 준비되어 있다는걸 깨달은 라붕이는 한 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허탈하게 웃으며 펜을 건네받았다.


...곧 바빠질 거라는 메이의 말이 이런 의미였나.


"난 모른다. 후회해도."


"그럴 일 없을 테니까. 쓸때 없는 걱정 하지마."


이제는 피하지 않고 굳게 마음을 먹어야 할 때라는걸 직감한 라붕이는 사령관이 건네준 '부사령관 육성 교육 수료 동의서'의 딱 하나 남은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었다.













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