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충과의 전투는 혈투로 변한지 오래였다. 중장갑을 지닌 거대한 철충들이 사정없이 총포를 쏘아 갈기며 전진해 왔다. 기갑부대 아머드 메이든 대원들도 물러서지 않고 온갖 중화기를 퍼부었다.


그녀들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마주 싸웠다. 전투 중에 피격당해 쓰러지는 대원도 있었지만 블러디 팬서와 그 부하 동료들은 끝끝내 도망치지 않았다.


"물러서지 마!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우리가 이긴다. 거기, 이오. 겁먹지 말고 닥치는 대로 쏘아 갈겨! 내가 막아 줄 테니까."


이오는 전차와 같은 장갑을 지닌 블러디 팬서의 호통과 보호를 받아 가며 강화 외골격의 기관포와 미사일 런처를 쏘기에 여념이 없었다. 겁이 많은 그녀여서, 동료 스프리건이 총에 맞아 실려가는 걸 보고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다른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비록 소심해도 비겁자는 아니었다.


그 사이 아군의 우회 부대가 철충들의 측면과 후면을 강타했다. 덕분에 아머드 메이든을 향한 공격이 다소 잦아들었다. 이오는 아군이 우세하다는 통신을 받자 조금은 안도하며 긴장의 끈을 놓았다.


그것이 실수였다. 이오가 땀을 닦느라 멈춘 사이 저격형 철충이 이오를 노렸다. 블러디 팬서는 그것을 눈치채고 서둘러 이오 앞을 가로막았다. 하필 대물 저격 능력이 있던 적인지라, 저격총의 탄환은 블러디 팬서의 중장갑을 뚫었다. 피격당한 팬서는 이를 악물었다.


"이 개새끼들……."


"대장?!"


칼리스타는 물론 이오도 놀라서 블러디 팬서를 바라보았다. 팬서가 애써 태연한 척하며 손을 내저었다.


"야, 난 괜찮아. 어차피 우리가 이겨 가고 있으니까, 너희들은 계속 밀어 붙여. 버텨 놓고 공을 빼앗기면 안 되지."


이오와 칼리스타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꺼져, 이 쇠벌레들아!"


고함친 칼리스타가 외골격의 오토캐논을 조준해 닥치는 대로 갈겼다. 이오는 대원들이 다치고 상한 꼴을 보자 몸이 떨렸지만, 자기 때문에 대장이 다쳤다는 생각에 같이 끼어들어 미사일을 날렸다. 이에 앞의 철충들이 하나둘 파괴되어 갔다.


결국 그날의 전투는 아군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이오는 귀환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투의 공포는 정말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귀환 중에 블러디 팬서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팬서는 자기가 할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기고 입실했다. 칼리스타도 뒤늦게 살펴 보니 여러 군데 다친 바람에 팬서의 뒤를 따라야 했다. 오기 때문에 항상 다치는 일이 잦은 그녀였다.


이번 아군의 대승은 아머드 메이든이 버텨 준 덕분이었다. 사령관은 그녀들에게 칭찬과 훈장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멀쩡한 대원은 이오 뿐이었으므로, 특별히 이오가 대표격으로 수여식에 나서게 되었다. 이오는 남성공포증까지 있어 나가고 싶지 않았으나, 블러디 팬서가 떠밀다시피 하는 바람에 어쩌지 못했다.


외골격을 벗은 이오는 붉은 제복 차림으로 사령관을 만났다.


사령관은 이오에게 친히 훈장을 걸어 준 다음 악수했다.


"잘 했어. 다친 데가 없다니 다행이다."


이오는 사령관을 단 둘이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다, 피부 접촉까지 해서 좀처럼 몸둘 바를 몰랐다. 워낙 부끄러움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겨우 자신감없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다른 동료들이 전부 상처를 받았어요."


"물론 그건 안타까운 일이지. 그래도 이오가 무사하잖니. 그것만 해도 어디야?"


이오는 고개를 수그리고 조그맣게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좀 더 용감하게 잘 싸웠다면 대원들도 다치지 않았을 거예요. 저 같은 애 때문에……."


"아니야. 넌 충분히 잘해 줬어…… 어쨌든 열심히 싸웠잖아? 그러니 널 탓하지 마렴."


"……."


"아무튼 이오야.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지켜볼게."


사령관은 이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이오는 순간적으로 멍해져 있다가, 사령관이 웃어 주고 난 뒤에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날 저녁부터 이오는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금방 회복한 룸메이트 칼리스타는 이오가 뭘 하는지 궁금히 여겼다.


"뭐 해?"


"아냐, 아무것도."


이오는 급히 쓰던 것을 감추었다. 칼리스타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금새 씩 웃었다. 이오가 동료들을 대표해서 사령관을 만나고 온 사실이 생각난 것이다.


"아, 너 혹시 사령관한테 반해서 연애편지 쓰니?"


이오는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저었다.


"그게 아니라."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이야? ……잘 해봐. 이오가 성장하는 모습이 너무도 대견하다고, 이 언니는."


씩 웃은 칼리스타가 이오의 등을 두들겼다.


혼자 남은 이오는 한숨을 쉬며 썼던 편지를 지우고는 다시 생각에 골몰했다. 난생 처음 편지 쓰기가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


한참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끝에 겨우 만족스러운 편지를 써 냈다. 이오는 편지를 품에 갈무리하고 사령관을 찾아가 뵈려고 했다.


마침, 시찰을 나온 사령관이 통로 저편에서 걸어오는 중이었다. 이오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사령관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 다른 부대의 대원들이 사령관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오는 멈칫하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별안간 용기가 사라진 바람에 그대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 모양으로, 이오는 계속해서 사령관에게 편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한번은 아예 함교에 찾아갈 생각도 해 봤지만, 그때마다 함교에 또 다른 대원들이 미리 찾아와 있는 바람에 이오는 지레 포기하고 말았다.


게다가 사령관이 혼자 있을 때에도 경호원들이 곁에 서 있었던지라, 이오는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오의 동료들도 그 같은 모습을 모를 리 없었다. 칼리스타는 그날도 머뭇대기만 한 이오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야, 뭘 그렇게 어려워 해? 그냥 주고 오면 되잖아. 주지도 못할 연애 편지는 뭐하러 쓴 거야."


"연애 편지가 아니라니까."


"연애 편지든 아니든 간에 그냥 눈 딱 감고 주면 되지."


듣고 있던 스프리건이 끼어들었다.


"이오, 이 언니가 대신 전달해 줄까? 데일리 오르카에 실어 주는 건…… 좀 부끄러우려나? 헤헤."


"고맙지만, 괜찮아. 내가 직접 전해드릴 거야……."


이오가 고개를 저었다. 칼리스타는 여전히 답답하단 표정이었다.


"다른 애들 있는 게 뭐 그리 부담이 된다고 그래. 게다가 경호원 애들은 항상 붙어 다니는 애들인데, 평생 못 전해 줄 거니?"


이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만히 보고 있던 블러디 팬서가 점잖게 나섰다.


"너무들 그러지 마. 이오도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잖아…… 다들 잊었어? 이것만도 큰 발전이라고."


그 말에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성공포증과 대인기피증에 가까운 이오가, 사령관한테 직접 편지를 전해 주려고 할 정도면 많이 나아진 것이다.


대원들을 타이른 팬서가 이오를 보고 말했다.


"이오, 정 만나기 힘들면 내가 길을 놓아줘? 이래뵈도 난 사령관님을 만나기 좀 편하니까 말이야. ……경호원들이 문제면 내가 특별히 부탁드릴게."


"아니에요, 대장. 또 신세를 질 순 없어요."


은근히 고집이 센 이오는 팬서의 제안을 물리쳤다.


하지만 이오는 그 뒤로도 사령관을 만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결국 보다 못한 팬서가 몰래 사령관을 만나 이오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죄송하지만, 사령관님. 이오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오를? 무슨 일이 있어?"


"실은, 이오가 사령관님께 드릴 게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자꾸 애들이 있어서 못 드리는 모양이라…… 애가 좀 소심하잖습니까, 그래서 용기를 못 내는 모양입니다."


관대한 사령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못할 거 없지. 날 만나고 싶다는데."


사령관도 이오가 소심한 성격임은 알고 있었기에, 이 기회에 신경을 써줄 생각이었다.


그는 스케줄 한 부분을 비워 놓았다. 경호팀에도 사정을 알린 다음 그때만은 특별히 그를 혼자 남겨 두도록 부탁했다.


그 같은 사정을 모르는 이오는, 하루는 유난히 채근하는 대원들의 등쌀에 밀려 사령관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몰래 들여다보니 사령관은 마침 경호원도 없이 혼자 근무 중이었다. 이오는 영문을 모르겠지만 잘됐다 싶었다. 용기를 내어 사령관 앞에 섰다.


"저…… 사령관님. 안녕하세요. 이오에요."


"오오, 그래…… 어서 와. 반가워."


사령관은 이오가 올 것을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체 하고 이것저것 신변을 물어 주었다.


"잘 지내니? 요즘."


"네. 동료들도 다들 잘 해주고."


"그래…… 그래야지.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왔니?"


"그, 그것이……."


이오는 주저 주저하다가 마침내 품에 갈무리한 편지를 꺼내서 두 손으로 내밀었다.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편지를 받았다. 이오는 얼굴을 잔뜩 붉히며 겨우 말했다.


"제가 쓴 건데, 나중에 읽어 주시면 좋겠어요. ……이상한 건 아니니까……."


"하하, 이상하기는. 남이 진지하게 쓴 편지를 이상하게 여기면 안 되지."


이오는 가슴이 쿵쿵 뛰어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얼른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간을 뺏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벌써 가려고? 뭐라고 먹고 가."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는데."


이오는 고개를 푹 숙이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사령관은 머리를 긁었다. 그는 그녀가 사라지자 얼른 편지를 개봉했다. 그녀가 무슨 내용을 썼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이오가 편지를 주고 온 다음 날이었다. 동료끼리 모인 자리에서 칼리스타가 문득 이오를 보고 물었다.


"이오, 연애 편지는 어떻게 됐어. 사령관이 무슨 반응을 보여?"


이오는 움찔 놀라며 얼른 부정했다.


"연애 편지 아니라니까."


"아, 네…… 아무튼 편지를 받았으니 사령관이 답변도 보냈을 거 아니겠어?"


그러자 이오는 한동안 대답이 없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몰라."


"응?"


"실은, 사령관님께서 잘 받았다고 메시지는 보내 주셨어…… 그렇지만 그 다음은 몰라."


그 말을 듣고, 칼리스타를 비롯한 동료들은 잠깐 생각하다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차인 모양이구나.


"뭐…… 다음 기회가 있을 거야. 너무 상심하지 마."


"그래. 사령관이 좀 부끄러워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힘내. 가벼운 관계부터 시작해서 다시 도전해 봐. 우리도 아직 데이트 해본 적 없으니까. 응?"


아머드 메이든 대원들이 너나할 것 없이 이오를 위로하기 바빴다. 이오는 눈을 깜박거리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들 무슨 말이야?"


대원들도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음? 사령관한테 차인 거 아니었어?"


"사귀자고 편지 보냈는데 별로 애프터도 없었다면서."


이오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쓴 건, 사귀자고 보낸 편지가 아니었어."


"엥?"


"말했잖아. 연애 편지가 아니었다고."


"그럼 무슨 내용이었길래 그렇게 못 드려서 안달이었던 거야."


이오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응, 그게. 그냥, 고맙다는 내용이었어…… 나 같이 보잘것없는 애 볼 때마다 칭찬도 해 주시고, 가끔 팬서 대장 통해서 안부도 물어 주시고, 이번에 훈장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그리고, 대원들한테도 훈장을 따로 수여해 주시면 좋겠다고 전해 드린 거야."


동료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연애편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칼리스타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하, 나 참. 그거 보내고 싶어서 그렇게 끙끙 앓았다니. 너 정말……."


"이오, 챙겨 준 건 고맙지만 말야, 이 언니들은 앞가림 다 할 줄 알거든? 그렇게 해줄 필요까진 없어. 임마."


팬서는 그리 말하면서도 기특하다는 듯이 어깨를 두드렸다.


"뭐야, 데일리 오르카에 실을 걸 그랬잖아? 엄청난 미담이 됐을 텐데. 까비."


스프리건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이오는 난처한 듯이 웃었다.


"저기, 고맙지만 그건 곤란해…… 사실, 그 편지를 보내드린 건, 사령관님이 날 항상 평범한 애들처럼 대우해 주시는 게 정말 고마워서. 나도 이번에 증명해 드리고 싶었던 거야."


"증명?"


"으응. 나도, 자꾸 틀어박히는 애가 아니라고 알려 드리고 싶었어…… 다른 애들처럼 평범하게 편지도 보내고 감사할 줄 알고, 동료들을 챙길 줄 안다고, 알려 드리고 싶었거든."


칼리스타가 태클을 걸었다.


"……전혀 평범하지 않았거든?"


"야, 야. 그것만 해도 어디야. 이오가 사령관님하고 커뮤니케이션 한 것만 해도 대단한 발전이란 거 몰라? 전에는 아예 숙소에서 나오지도 못했잖냐."


팬서는 어디까지나 대견하다는 기색으로 이오를 보고 있었다.


칼리스타가 어깨를 으쓱하고 있는데, 문득 팬서의 단말기에 메시지가 왔다. 행정실에서의 소식이었다. 단말기를 확인한 팬서가 깜짝 놀랐다.


"야. 사령관님 시찰 나오신댄다. 다들 로비에 모여. ……이오, 너도 나올 거야?"


팬서가 이오를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이오는 사령관이 시찰을 나올 때마다 부끄럽단 이유로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오는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팬서 이하 모든 대원들은 시찰 나온 사령관을 향해 일렬 종대로 줄지어 섰다.


"사령관님께 경례!"


대원들이 급히 손을 들려고 하자 사령관이 막았다. 편하게 시찰 나오는 마당에 꼭 사열 받는 것처럼 행동해서 곤란하기 일쑤였다.


"팬서, 그러지 말라니까. 부담스럽게시리."


"하지만 이번엔 이오도 나와서 말입니다. 오랜만에 전 대원들의 군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밝은 그녀의 말에, 사령관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더니, 문득 이오를 향해 다가갔다. 긴장해서 열중 쉬어 자세로 있던 이오는 화들짝 놀라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편지 잘 받았어, 이오. 고맙다. ……네가 그렇게 고마워할 줄은 몰랐어."


"예? 가…… 감사합니다."


대원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시선을 모았다. 이오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는 이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음, 며칠 내로 한번 만나자. 시간 낼 테니까. 알았지? 팬서도 이오 훈련 시간 좀 비워 둬."


"……."


이오는 놀라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이오에게 호감을 나타낸 사령관은, 팬서한테 가서는 그때 못한 훈장 수여식을 따로 여는 방안을 이야기했다. 그것도 이오가 편지로 부탁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오는 가슴이 쿵쿵 뛰어서 더 이상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윽고 사령관이 자리를 떠나자 동료들이 휘파람을 불며 이오를 축하했다.


팬서는 이오의 어깨를 감싸며 자기 일인 것마냥 감격해 마지 않았다.


"오, 대단한데? 우리 중에 제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갔잖아? 좋아. 오늘은 회식이다!"


스프리건도 눈을 반짝이며 공연히 즐거워했다.


"대박. 완전 대박. 데일리 오르카 특종이네?! 아머드 메이든에서도 드디어 첫 데이트가 이뤄지겠습니다- 안 되겠다, 탈론페더 양한테도 알려야지- 히힛."


"쳇. 다음엔 안 봐줄 거야." 칼리스타가 왠지 뾰로통하게 이오를 흘겨 보았다.


주변에 몰려들어 한 마디씩 하는 대원들의 말이 귀에 거의 들려오지 않았다. 이오는 멍해진 채로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하얗게 물든 머릿 속에는 오로지 사령관님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어째서 그런지는 몰랐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왠지 부끄럽거나 무섭지 않고, 어디선가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져 올 따름이었다. 이런 적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회식 자리에서도, 그날 밤에 잠들 때까지도, 이오는 사령관님의 모습이 떠올라서 좀처럼 차분해지지 못했다.


그런 의문은 가까운 시일 내로 밝혀질 터였다. 이오는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늦게서야 꿈나라로 떠났다. 그녀는 무슨 꿈을 꾸는지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사령관님을 생각할 때의 표정이었다.




---


소설 모음 보기 (픽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