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오르카는 갈망한다! 열두 시 내 오르카! 이제는 열두 시 내 오르카의 상징이 된 스프리건 기자입니다! 아으! 여름이지만 스발바르 제도는 춥네요!]


거대한 돔을 배경으로 삼은 스프리건이 마이크를 잡고 신나게 떠들었다. 저 삭막한 외관의 돔이 바로 아쿠아 랜드다.


나는 지금 현장에 가있는 대신 방 안에서 오르카폰을 통해 탈론 페더가 촬영중인 생중계 방송으로 보는 중이다. 아직 아쿠아 랜드 문도 안열렸는데 추운 날씨에 저 수많은 인파에 끼여 대기하는 건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자! 살짝 분위기를 바꿔서 오늘은 특별한 분을 모셨는데요! 내근이면 내근! 외근이면 외근!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차가운 도시의 엘리트 사원! 오렌지에이드 양을 모셨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네! 오렌지에이드 라디오 오르카 라이브! 줄여서 오라오라를 진행하고 있는 오렌지 에이드입니다! 모두 박수! 짝짝짝! 와아아아아!]


게임과 똑같은 내용으로 진행되는 걸 폰으로 보다보니 문득 게임 스토리를 복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초고화질 풀더빙 시네마틱 영상으로. 살짝 웃었다.


둘의 들뜬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면서 미리 받아둔 아쿠아 랜드 팜플렛을 펼쳤다. 아쿠아 랜드의 지도 위로 온갖 레저 시설의 종류와 위치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우선 아쿠아 랜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 워터 파크는... 아무래도 나하고 미호는 못갈 것 같다. 수영복이 없기 때문이다.


오르카호에 들어온 지 한달이 다되가는 데 미호는 아직도 저 마리오네트 전투복만 입고다닌다. 내가 방 안에선 좀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라며 의류점에 데려간 적도 있는데, 옷을 쥐어주고 탈의실에 집어넣어도 멀뚱멀뚱 들고 서있기만 할 뿐 절대로 안갈아입었다. 보다못한 오드리가 직접 갈아입혀주려고 했는데 아예 오드리가 만지지 못하게 하면서 거절의사를 표했다.


애초에 저 전투복은 실용성을 전혀 상정하지 않고 디자인된 거라 입고 벗기도 불편한데 미호는 한시코 저 옷만을 고집하고 있다. 왜지 대체.


아무튼 미호가 저런 상태니 수영복으로 갈아입는 것도 불가능하다. 바꾸어말하자면 수영장에서 노는 건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욕탕도 아웃. 거긴 남탕 여탕이 구분 안 된 혼욕인데, 말이 혼욕이지 실제로 허용되는 남자는 사령관밖에 없겠지. 미호 혼자만이라면 들여보낼 수 있겠지만, 별로 관심 가질 것 같지가 않다. 눈 안닿는 데로 가버린다는 게 불안하기도 하고, 미호 목욕하는 데에 사령관이 들락날락할 거라고 생각하니... 심히 불쾌하기도 하고.


그 외에는 어디보자. 헬스장은 나하고는 연이 없는 공간이고. 증강현실 게임존, 이건 좀 재밌어보이네. 그리고 마사지실이라. 생체재건장치로 몸 바꾼 뒤로 어깨나 허리 뭉쳤던 건 깔끔하게 리셋됐지만 그래도 한 번 가볼까? ...지금 미호 상태를 보아하니 마사지는 절대 안 받을 거 같은데 관두자. 나만 들어가놓고서 미호보고 밖에서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러고보니 요즘 미호의 뒷머리가 좀 자랐다. 원본 미호는 돋보적으로 긴 머리를 자랑하는 대원 중 한명이지만 마리오네트 버전 미호는 전부 짧게 깎고 다닌다. 한번 머리 정리하러 가봐야하나. 오르카호에 하나뿐인 보련이가 마사지실 가서 일하고 있으니 미용실은 문 닫았지만 스틸라인에서 운영하는 이발소는 남아있을 것 같은데. 가만, 그전에 이 미호는 단발이랑 장발 중 어느쪽을 선호하는 건지 모르겠네. 혹시 원본 미호처럼 장발이 되길 원하는 거라면...


[퍼엉!]


갑작스런 폭발음에 시선이 그리로 돌아갔다. 화면 너머로 리리스와 함께 몸을 숙인 사령관의 모습이 보이고, 뒤이어 오르카호 대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달려온 포츈이 말하기를, 플룸라이드에서 보트가 너무 강하게 사출돼서 벽에 쳐박히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과연, 바르그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양이다.


바르그가 스파이라는 건 알고있지만 굳이 경고한다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사령관 쪽도 바르그가 들어오자마자 스파이인 걸 눈치챘으니, 내가 간섭 안해도 알아서 잘 하겠지.


혼란을 수습하고 빠르게 개장식을 마친 사령관이 기대에 찬 대원들과 함께 아쿠아 랜드로 입장했다. 거기까지 본 나는 방송을 껐다. 슬슬 나도 가볼까.


옷장을 열고 두꺼운 겨울용 외투를 꺼내 입었다. 아쿠아랜드 안은 괜찮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추우니 따듯하게 입고 가야 한다. 두 개의 폰을 양 주머니에 하나씩 챙겨 넣었다. 미호는 옷을 갈아입지는 않지만 위에 외투를 덧입는 건 가능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입혀줘야 한다. 나는 외투를 하나 더 꺼냈다.


"미호야."


가까이 온 미호가 알아서 팔을 벌렸다. 팔 한쪽씩 코트 안에 밀어넣고 지퍼까지 채워주고 나서야 미호는 팔을 내렸다. 얘 똑똑해진거 보면 스스로 외투 정도는 입을 수 있을텐데, 언제까지 내가 입혀줘야 하는거지. 덕분이 오르카넷엔 나를 마리오네트 보모 취급하는 글도 올라온 적이 있다.


뭐 아무튼 간에, 나갈 채비도 마쳤으니 문을 열려고 하자 미호가 내 팔을 붙들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여진 작은 상자를 가리켰다.


"...아, 맞아. 저거 챙겨야지. 깜빡하고 있었네."


상자의 정체는 바로 내가 요청했던 호신용품이었다. 어지 저녁에 익스프레스가 가져다줬다. 상자 뚜껑을 열자 후추 스프레이가 나왔다.


바이오로이드와의 힘의 차이를 매꾸려면 어지간한 무기보다 이게 낫다. AGS한테는 물론 씨알도 안먹히겠지만, 어차피 AGS 상대로는 총을 들어도 못이긴다. 겉보기엔 볼펜같이 생겨서 평소에 들고다녀고 이상하게 보이진 않지만 대신 크기가 워낙 작아 한 번이나 두 번 쓰면 동날거다. 그래도 비상용으로는 딱 됐지. 


나는 후추 스프레이를 집어다 가슴 부분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이전에 장화가 습격한 건도 있으니 혹시 몰라 챙기긴 했다만, 영원히 쓸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먼저 게임존으로 향했다. 입장하자마자 경쾌한 전자음악이 귀에 닿았다. 구시대의 아케이드 기기도 잔뜩 비치되어 있지만 모처럼이니 증강현실이란 거나 해볼 생각이었다. 게임존 담당자인 그렘린에게 가서 2명이서 플레이 가능한 게임 뭐 없냐고 물어보자 군사지식이 없어도 무난하게 할 수 있는 건슈팅 게임을 추천받았다.


입장권을 끊고 총 모양의 슈팅 컨트롤러를 하나씩 챙긴 뒤 플레이룸에 들어갔다. 소규모의 증강현실 게임은 이런 방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꼭 노래방이 생각나는 시스템이었다. (실제로 게임존 안에 노래방도 있다고 한다.) 태블릿같이 생긴 패널을 조작하자 방 안의 풍경이 바뀌었다.


무슨 4D 영화처럼 실감나는 인트로 컷씬이 끝나자 게임이 시작됐다. 적으로 나타난 나이트칙 무리에 총을 쏘자 픽픽 쓰러졌다.


"오, 이런 느낌이구나. 생각보다 실감나는... 어, 야 미호야! 왜 가만히 있어?"


미호는 아무런 공격도 안하고 그냥 멀뚱히 서있었다. 시작한 지 1분도 안지났는데 미호 피가 반이나 깎인 걸 발견한 나는 기겁해서 엄폐물 뒤로 밀어넣었다.


"미호야, 너도 공격 좀 해! 혼자선 다 못잡아!"


2P 모드라서 적은 솔플할 때보다 두 배로 나오는데 한 명이 잠수타고 있는 바람에 어느새 나까지 빨피가 됐고, 결국 철충 드론이 쏜 미사일에 맞아 몇 분 만에 게임오버 화면을 보게 됐다.


"...전에 사격장에서도 그렇고, 왜이리 어울려주질 않는거니..."


미호는 당연하게도 아무런 대답도 안했다. 장화랑 싸웠던 거 보면 분명 전투능력이 없는 건 아닌데. 내가 직접적인 위험에 처할 때만 움직이는 건가? ...뭐랄까, 고맙기는 한데 평소에도 좀 어울려줬으면 좋겠다. 나 심심하다고.


다시 시작해봤자 같은 결과가 나올 거 같아서 그냥 게임은 여기서 종료했다. 나 혼자 즐기면 같이 온 의미가 없으니까. 방의 풍경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게임은 다음에 혼자 올 때 다시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어라, 벌써 나오셨어요? 아직 게임이 끝나려면 멀었을텐데."


카운터에 있던 그렘린이 우릴 발견하고는 의아해했다.


"그게... 미호가 전혀 게임에 반응을 안해주더라고. 그래서 같이 즐길 수 있을만한 거 없나 찾아보려고."


"그래요? 저격총이 아니라서 그러나?"


"그런 문제는 아닐 걸, 아마."


컨트롤러를 반납하고 뒤돌아서니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는 미호가 보였다. 또 몽구스 팀이라도 온 건가 했는데, 미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인형뽑기기계였다.


나는 뽑기기계랑 미호를 몇 번 번갈아봤다.


"관심 있어?"


미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줌인되어있었던 고글의 조리개가 촤르륵 풀렸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미호의 손을 잡고 뽑기기계 쪽으로 걸어갔다. 미호는 저항없이 순순히 따라왔다. 기계 안에는 다양한 인형이 들어있었다. 평범한 동물 인형부터 바이오로이드나 사령관을 본딴 캐릭터 인형까지.


옆에 붙은 설명서를 보니 도전은 몇 번을 하든 무료지만 인형을 뽑고 나면 계산해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하긴, 참치캔을 화폐로 쓰는 동네에서 동전투입구가 달린 기계를 그대로 쓸 수는 없었겠지. 참치캔 투입구가 달린 정신나간 기계라도 새로 만들지 않는 이상.


"뭐 갖고싶은 거라도 있어?"


미호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특별히 원하는 건 없는건가? 일단 몽구스 팀 캐릭터 인형은 안보이는데... 그냥 적당한 거나 뽑아야겠다. 저 곰인형이면 되려나.


조이스틱을 조작해 집게를 곰인형 바로 위에 위치시키고, 버튼을 누르자 집게가 하강했다. 집게는 곰인형의 귀를 붙잡았다가 놓쳤다. 집게 위치를 살짝 조정해 다시 밑으로 내렸다. 머리를 붙잡나 했더니 쏙 미끄러졌다. 아까워라. 세 번째, 네 번째 도전도 실패한 그 때,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미호가 나를 옆으로 부드럽게 밀어냈다.


"네가 해보려고? 어려울텐데."


미호가 조이스틱을 잡고 다른 인형의 위로 집게를 옮기더니, 단번에 그 인형을 뽑아냈다. "엑."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내가 하는 걸 관찰하면서 그새 요령이라도 익힌건가? 


미호는 뽑은 인형을 나에게 쑥 내밀었다. 분홍색 여우 인형이었다.


"...나 주는 거야?"


미호가 고개를 작게 끄덕인 걸 본 나는 얼떨떨하게 인형을 받았다. 설마 내가 뭔가를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


나는 손가락으로 여우 인형의 머리를 쓸었다. 부드러웠다. 분홍 여우라, 미호를 연상시키는 키워드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나는 아직 내 손으로 아무것도 못뽑았다. 나는 왼팔에 인형을 끼고 다시 뽑기기계를 붙잡았다.


수 십 번의 시도 끝에 나도 직접 인형을 뽑는 데에 성공했다. 나는 상품 출구에서 인형을 꺼내 미호에게 내밀었다. "자, 선물." 내가 뽑은 건 하얀 북극여우 인형이었다.



"..."


미호는 조심스레 인형을 받아들어 멍하니 쳐다봤다. 입꼬리는 조금도 올라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기뻐하는 티 좀 내줬으면 한다만, 어쩔 수 없지. 나는 뻐근해진 손가락을 폈다.


"뽑기는 충분히 했으니 이제 딴 데나 가보자. 오늘은 더 게임 못하겠다."


그렇게 게임존에서 나가기 전에 뽑은 인형을 계산하려고 했는데... 미호가 인형을 붙잡고 안놔줬다. 결국 그렘린이 바코드스캐너를 쭉 뻗어야 했다.


게임존을 뒤로 한 우리는 아쿠아 랜드의 온갖 장소를 돌아다녔지만 미호는 어딜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바르그 데리고 아쿠아 랜드 관광시켜주던 사령관이 이런 심정이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특이한 점은 미호는 아쿠아 랜드에서 돌아다니는 내내 그 하얀 여우 인형을 결코 손에서 놓치 않았었는데,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손에서 뗐다. 다른 건 몰라도 저 인형만큼은 제법 마음에 들었나보다. 내 분홍 여우 인형과 미호의 하얀 여우 인형은 나란히 책상 위에 앉게 되었다.


<50%>


***


다음 날, 기억의 방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눈 감고 팔짱 낀 채로 광장 벤치에 앉아있는 바르그를 발견했다. 


나를 눈치챈건지 바르그가 슬며시 눈을 뜨면서 시선을 이리로 돌렸다. 눈이 마주치게 되자 나는 가볍게 눈인사만 하고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바르그가 스파이로 들어와있는 지금 시점에선 엮어봤자 좋을 게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기다려라."


그런데 바르그가 나를 불러세웠다. 귀에 꼽고있던 이어폰을 빼서 주머니에 집어넣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묻고싶은 게 있다."


"뭔데?"


"가족이 그리운가?"


순간 나도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당연한 걸 묻네. 그건 왜?"


"만약 네 가족을 다시 볼 기회가 있다면, 너는 어쩔거지? 잡을건가?"


그 말을 듣고나자 바르그가 왜 이 얘기를 꺼낸건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글쎄... 나라면..."


고향이 그립다. 가족이 그립다. 다시 부모님 얼굴을 직접 보고싶다. 다시 부모님 목소리를 듣고싶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하다못해 마지막으로 인사만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나라면 안 잡을 것 같은데."


나는 감성 대신 이성을 선택했다.


"...뭐라고?"


바르그가 눈을 부릅 떴다.


"어째서지? 네 가족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었나?"


"당연하지. 그 부분에 거짓은 없어." 


"그렇다면 왜 기회를 마다하는 거지?"


"그런 기회가 있을리가 없으니까."


눈에 힘이 풀린 바르그가 눈을 깜빡거렸다.


"내 부모님도, 형도... 이미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렸어. 그게 현실이야. 이제와서 무슨 수로 다시 만날 수가 있겠어?"


"그래서 '만약'이라고 했잖나. 가정법에서 문제를 지적하면 어쩌자는 거냐."


"어차피 터무니없는 가정이잖아. 너한테 갑자기 백억원이 생기면 뭐할거냐, 아님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뭐할거냐 랑 같은 급이구만. 

그리고, 네가 말한 그런 기회가 있다면 그건 어디서 나오는 건데? 눈앞에 악마가 나타나서 영혼을 팔면 죽은 부모님을 되살려주겠다고 꼬드기기라도 하는 상황인건가? 그런거라면 악마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영혼 팔아치우는 게 멍청한 짓이지."


여제의 부활에 눈이 멀어 델타와 손을 잡고 사령관을 납치하겠다? 나는 바르그의 뜻에 동조할 수 없었다.

은연중에 정곡을 찔린 바르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너무 쏘아붙였나. 나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바르그, 들어봐. 언제까지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 수는 없어. 떠난 이들은 가슴 속에 고이 묻어두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거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계속 곪을 뿐이야."


오르카호에 두번째 인간으로서 들어오게 되면서, 내가 모두에게 외면받았던 때엔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마리오네트 미호가 계속 곁에 있어주면서, 이쪽 세계에 남고싶은 마음도 조금씩 떠오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랑은 달리 바르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에게 남은 거라고는 손떼묻은 녹음기 뿐이었다.


"...네가 어떤 생각인지는 잘 알았다."


바르그가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나는 무심코 그녀를 불러세웠다.


"너는 어쩔건데?"


바르그가 우뚝 멈췄다. 말하고 나서야 이걸 물어봐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그는 고개를 반만 돌려 이쪽을 쳐다봤다.


"...나는 바이오로이드다. 어머니 뱃속이 아니라 제조기에서 태어났지."


하. 그렇게 대답을 회피하겠다, 이거지.


"꼭 낳은 사람만이 부모인 건 아니지. 바이오로이드라도 부모처럼 따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라비아타 봐봐, 걔는 애덤 존스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있는걸. 그럼 한번 가정해보자, 너한테도 어머니가 있다고 말이야. 너라면 네가 질문한 그 상황에서 어떡할 거지?"


바르그는 몇 초 동안 침묵하더니, 도로 고개를 원위치시키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그 기회를 잡고야 말 거다."


바르그는 그 말을 마치고서 어딘가로 걸어갔다. 스파이이면서도 숨길 생각이 전혀 없구만. 나는 점점 작아지는 바르그의 등을 조용히 바라봤다. 역시 말 몇마디로 회유하는 건 안되는군.



설득 판정 들어갈게요. 주사위 굴려주세요.

...설득 실패! 당신은 뱌루룽 엔딩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보너스. 저번화에서 어떻게 마리오네트 미호가 혼자 볶음밥을 포장해왔는지에 대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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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서오세... 요...?"


가게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오자 포티아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으나, 그 손님의 얼굴을 보게된 순간 그 표정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고글이 두 눈을 가리고 있었으니까.


늘 두 번째 인간이랑 같이 다니던 마리오네트 저격병이 혼자 들어왔다. 그냥 먼저 자리만 잡으러 온 거고 자신에겐 말 걸지 말아달라고 속으로 빌었으나, 유감스럽게도 마리오네트는 다른 손님들이나 테이블엔 눈길도 안주고 일직선으로 포티아가 서있는 카운터로 걸어왔다.


"피, 필요한 거라도 있으신... 가요...?"


"..."


마리오네트는 침묵을 지켰다. 그 알 수 없는 압박감에 포티아는 무심코 말을 더듬었다. 마리오네트를 대신해 대화를 맡던 그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 주방장님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슬쩍 카운터 밑에 있는 시티가드 호출벨에 손을 올렸다. 


마리오네트가 손을 뻗자 포티아는 몸을 움찔 떨었다. 그러나 마리오네트의 손이 향한 곳은 그녀가 아닌, 옆에 꽃혀있는 메뉴판이었다. 마리오네트는 메뉴판을 펼쳐 한군데를 검지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어... 볶음밥...이요...?"


마리오네트는 이번엔 검지와 중지만 펼쳐 V 사인을 보여줬다.


"이... 2인분 말씀이신가요?"


마리오네트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제서야 눈 앞의 대상이 그저 음식을 사러 온 손님이란 걸 인지한 포티아는 속으로 안도하며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 예! 볶음밥 2인분 말이죠. 포장이신가요?"


2인분이라면 그 인간과 같이 먹을 양일테니, 심부름이라도 온 거일 거라고 생각했다. 마리오네트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편하신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했으나 마리오네트는 어디에도 앉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또다시 무언의 압박을 느낀 포티아는 손을 서둘렀다. 시간이 지나고, 볶음밥 2인분을 종이백에 담아 건네주고 나서야 마리오네트는 계산을 마치고 뒤돌아서 식당을 떠났다.


'...식당에 키오스크 설치해달라고 건의해야지...'


포티아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