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탐색 임무를 마친 천아가 바깥의 싸늘한 냉기와 함께 복귀했다. 과연 한참 추운 밖의 온도 때문인지 천아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고는 사령실 한쪽 구석의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 후 주머니 이곳저곳에서 굳어버린 핫팩을 꺼내 던져두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초췌한 얼굴의 사령관에게 고정되어있었다.


"야!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추운 날씨에 탐색을 다녀왔는데, 왜 그런 표정이야? 누가 괴롭혀?"

"괴롭히기는... 여기 아이들은 착해! 전부 너 같은 줄 아냐?"

"얼씨구? 말은 잘 해요~"


투덜거리는 사령관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띈 천아는 새로운 핫팩을 꺼내 흔들면서 사령관의 심기에 대해 은근슬쩍 운을 띄었다.


"그럼 표정이 왜 그래? 가뜩이나 못생긴 우리 핫팩... 그러다 더 찌그러지면 이 누나 말고 누가 예뻐해 준다고?"

"더 찌그러져도 예뻐해 주겠다니 고맙네."


결국 사령관의 입가에 드디어 미소가 걸렸고, 그것을 놓치지 않은 천아는 자리에서 일어서 사령관의 곁에 다가갔다. 길거리 생활로 단련된 그녀의 눈치란 대단한 것이어서, 슬쩍 사령관의 곁에 다가서 그를 관찰한 것 만으로도 대충 무엇 때문에 저런 죽쌍을 쓰고 궁상을 떠는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참나, 지금 읽고 있는 저 서류 때문이구먼?'


"그 서류 못 보던 녀석인데... 어디 보자~"

"앗!"


냉큼 그의 손에 들린 서류를 슬쩍하자 사령관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녀에게 향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대충 보았을 때에는 단순한 작계에 관한 내용으로 보였으나, 자세히 읽어보자 그것은 델타가 사망한 뒤 아직도 오르카 호에 합류하지 않고 저항을 지속하거나, 문을 걸어 닫고 숨어 지내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처우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지휘관급 회의의 결정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단순히 숨어 지내는 녀석들은 지금처럼 방관하겠지만 계속 저항을 멈추지 않는 단체들은 결국 정리하는 방향으로 정해졌군.'


역시, 이 쓸데없이 착하기만 한 핫팩은 구할 수 없는 바이오로이드들의 최후를 곱씹으며 저런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모양이다. 천아는 그의 저런 심성을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한 군의 통수권자인 그에게는 위태롭다고 생각했다. 결국 지금은 전시 상황이며 오르카 소속의 인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역시 구원하고 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저 명령에 따를 입장인 자신 역시 아는 사실을, 이 눈앞의 남자가 모를까?


'아니,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 거겠지. 이 녀석, 은근히 여린 구석이 있으니까.'


"에헤헤~ 역시 나는 봐도 잘 모르겠다~"

"그러면 왜 뺏어간 거야?"


툴툴거리는 그의 표정에 천아는 그녀의 방식대로 사령관의 마음을 지켜주고자 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려운 작전 문서 라던가, 거국적인 결정들은 함께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의 곁에서 그가 필요로 할 때 기대어 줄 나무가 되어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야! 핫팩! 아까 복귀할 때 눈이 오던데 올해 눈 본 적 없지?"

"그렇지?"

"그럼 이럴 때가 아니지! 일어나!"


냉큼 사령관의 손을 이끌고 뛰쳐나가는 천아에게 사령관은 어리둥절 하면서도 허겁지겁 겉옷을 두 벌 챙겨 얌전히 천아의 손에 이끌려 함 밖으로 연결된 포트까지 나왔다. 역시 천아의 말처럼 바깥 세상은 새하얀 눈이 살랑살랑 내리는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고, 멀찍이 보이는 하얗게 쌓인 설원과 대비되는 얼지 않은 푸른 바다의 모습은 답답했던 그의 가슴을 뻥 뚫어주는 것 같았다.


"이야... 확실히 절경이네... 그런데 어쩐 일이야? 추운 거 싫어하면서."

"어느 누구씨가 칙칙한 표정으로 고뇌하고 있더라고~ 그렇게 고민할 때는 역시 이렇게 멋~진 자연을 보면서 머리도 식혀줘야지."

"고마워."


살며시 웃으며 감사를 표하는 사령관의 말에 천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추운 바닷바람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라며 쓸데없이 변명을 늘어놓는 천아를 보며 사령관은 여벌로 챙겨온 겉옷을 천아의 어깨에 덮어주고는 혹시 몰라 함께 들고 온 우산을 펴 그녀에게 씌어주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눈을 막으면 조금이라도 그녀의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의 작은 배려심.


그 배려심에 천아는 결국 낯이 뜨거워지는 기분을 참지 못하고 그의 옆구리를 툭 치면서 쏘아붙였다.


"야! 겉옷을 하나 더 챙겨온 건 센스 있었는데, 왜 우산은 하나만 들고 온 거야! 이러면 넌 눈을 다 맞잖아!"

"나야 추위를 많이 타지 않으니까."

"보는 내가 춥다고! 어휴... 우리 핫팩, 센스가 아직 모자라."

"이게 챙겨줘도..."


드디어 온연하게 돌아온 사령관의 표정. 아까의 침울했던 기색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 이 시간을 즐기기 시작한 사령관의 모습에 천아는 추위로 코끝이 빨개지는 것도 잊은 채 함께 미소를 지었다. 허나 사령관의 덩치는 작은 편이 아니었고, 우산을 함께 쓰기란 그의 덩치는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이 배려심이 하늘을 뒤덮고도 남을 남자는 어떤 말을 하더라도 우산을 그녀에게 최대한 씌워주고 자신은 눈을 맞는 그런 선택을 하리라. 그동안 함께해온 시간이 얼마던가. 논쟁의 결과를 예상하는 것은 쉬웠다.


결국 천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사령관의 손에 들린 우산을 기습해 빼앗고는 바닷가를 향해 던져버렸다.


"히히! 어때, 핫팩? 이러면 나도 같이 눈을 맞을 수 밖에 없겠지?"

"야! 너 추위도 약하면서...!"

"괜찮아! 내 옆에는 네가 있고, 네 옆에 내가 있으니까. 함께 눈을 피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 눈을 함께 맞아주는 것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천아..."

"그러니 아까처럼 혼자 고뇌하고 우울해 하지 마! 븅신아! 그러는 거 전혀 멋지지 않거든? 나한테 하소연이라도 하던가~"


적어도 난, 어느 고난이 찾아와도 언제나 네 곁에 이렇게 어깨를 맞대고 남아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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