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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1gryP9yJm7U






 

[이반 뇌제, 아들을 죽이다.] 

1581년 11월 16일

- 일리야 레핀 -





 


 





나는 고한다.

내일이 되면 나는 저 괴물들과 함께 사라지리라.

나는 고한다.

벗어날 수 없는 두려움이 내 온몸을 감돈다.

나는 고한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낀다.

나는 고한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모든것이 평범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됐던걸까?

... 그래. 거기서부터였지.

한 브라우니가 가져왔던 그 탄산수 기계가... 

모든것의 시작이었지.


지긋지긋한 더위의 한 여름, 성가신 모기들이 찾아올 때 쯤

오르카 호 병사들은 아우로라의 

딸기 스무디에 지긋지긋해 있던 상태였다.

병사들이 내게 찾아와 본인들의 복지개선을 위한

새로운 드링크 레시피가 필요하다고 항의를 했고

나 역시 은근히 스무디에 질려있었던지라

급히 수색팀을 꾸려 새로운 레시피를,

최소한 딸기맛이 아닌 음료를 좀 찾으라 명했다.

나의 충성스러운 병사들이 몇 일에 걸친 수색끝에

한 브라우니가 무언가를 찾아냈다.

브라우니는 신이 난 얼굴로 그것을

내게 가져왔고 나는 기쁜 마음에 그녀를 칭찬했다.

그것은 평범해보이는 탄산수 기계였다.

나는 그 기계를 닥터에게 가져가기 전

그것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기계는 컴퓨터 본체의 절반정도 크기에

정면에는 탄산수 모델 EG-1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고

그 아래로 탄산수가 나오는 부분임이 분명한 꼭지 두 개, 

물이 흐르는것을 방지하기위한

물받이가 설치되어있었다.

검은색 모델이라는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것 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점이 없는 평범한 탄산수 기계였다.

평범한...

그래,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오랜 세월 방치되었음에도

녹이 슬지도 부서지지도 않은 평범함 그 자체인 모습이?

그러나 그렇게 대놓고 수상한 점이 있었음에도

아우로라의 그 빌어먹을 딸기 스무디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쁨에 

나는 두 눈이 가려진 바보나 다름없었다.

나는 기계의 이곳저곳을 만져보며

사용법을 익히려했다.

그러다 우연히 기계의 뒷부분에 나있는

작은 틈새에 새끼 손가락을 집어넣게 되었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무언가에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깜짝 놀란 나는 황급히 기계에서 손을 뗐다.

새끼 손가락을 들여다 보니 꽤 깊숙히 베여 피를 주륵주륵 흘리고 있었다.

마치 나를 비웃는것처럼 끼긱끼긱 기계음을 뿜어내는

탄산수 기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브라우니들에게 어서 기계를 

닥터에게 맡기라고 명령했다.

사건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닥터는 별 다른 말이 없었다.

그저 내게 전원을 연결해 탄산수를 뽑는 방법만을

간단히 설명했을 뿐이었다.

나는 곧 탄산수 기계를 병사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고

얼마 안 있어 기계는 오르카호에서 가장 방문자가 많은 시설이 되었다.

뭐, 아우로라를 비롯한 주방팀은 탐탁찮아했지만

무더운 날씨에 새콤달콤한 레모네이드, 다양한 과즙주스, 

혹은 그냥 탄산수를 무한대로 마음껏 즐길수 있게 되었으니

병사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고 나도 무척 기뻤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이 됐을 무렵

내 두 눈이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리앤과의 데이트를 위해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던 와중에

탄산수 기계 앞을 지나가다 우연히 브라우니 두 기와 마주쳤다.

그들이 내게 경례를 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알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바이오로이드란 

공산품과 같아서 동일한 개체는 외모가 똑같이 생기기 마련이다.

헌데 그 두 브라우니의 얼굴은 

일반 브라우니와는 매우 다르게 생겼다.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얼굴의 선이 굵직한것이

꼭 남자의 얼굴과 같았다.

꼭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었다.

공기처럼 흔하게 스쳐가듯 몇 번이고 지나친듯한 얼굴...

내가 빤히 쳐다보고있자 그 브라우니가

얼굴을 붉히며 두 손을 뺨에 갖다 댔다.

어쩐지 구역질이 나서 황급히 자리를 떴다.

아무리 떨쳐내려해도 기묘한 외모의 브라우니 둘에 대한 

생각을 도저히 버릴 수 없었으나

리앤과의 약속에 늦었다는 사실에

억지로 발길을 바삐 움직였다.

그 탄산수 기계 주위를 벗어나도 기묘한 광경은 계속 되었다.

긴 복도를 지나면서 다양한 바이오로이드들과 마주쳤다.

아이언 애니, 엘븐 포레스트메이커, LRL,

노움, 요안나, 오렐리아, 더치걸, 티타니아까지...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을 만났지만 

모두가 똑같았다.

그 기묘한 브라우니처럼 선이 굵은 남자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같은 얼굴이었다.

제정신이 아닌가싶어 뺨을 때려보기도 하고 꼬집기도 하고

나중에는 벽에다 머리를 박아보기도 하였으나

내 눈이 보는것은 똑같았다.

어디선가 본듯한, 기묘한 생김새를 가진 바이오로이드들 뿐이었다.

그런 그들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혐오감이 들었다.

익숙한 무언가에 대한 의미 불명의 혐오감.

나는 저 혐오스러운 얼굴을 이전에 본 적이 있다.

언제였을까? 어디서였을까?

스치듯 지나가며, 수없이 많이 지나치며 저 얼굴들을 보았다.

... 어떻게 보았을까?

나는 문득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을 해치고 지나가

화장실을 향해 뛰어갔다.

화장실 안에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었으나 

난 신경쓰지 않고 벽에 달린 거울을 황급히 들여다보았다.

그 거울을 보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였다.

그 기묘했던, 혐오스러웠던 얼굴들.

모두 나였다.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의 얼굴이 

모두 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전화로 리앤과의 약속도 취소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인사도 무시한 채 

방으로 돌아와 문도 걸어 잠그고 침대에 몸을 날려

이불속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내가 미친건가?

아님 정신이 나간걸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황급히 서랍속에 손을 집어넣어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들이댔다.

내 얼굴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선이 굵은 얼굴의 생김새가 때로는 잘생겨보이기도

때로는 혐오스럽도록 못생겨보이기도 했다.

이런 내게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의 사랑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니,

처음엔 무슨 악몽을 꾸는줄 알았다.

여자가 잘 대해줄 때만 해도 ‘날 좋아하나?’ 라는 

망상을 벌이는 주제도 모르는 나였는데

여기 와서 여자들이 내게 잘 대해줄 뿐만 아니라

잘 대주기까지 해서 난 ‘난 역시 잘생겼구나’ 하는 착각에 빠져버렸었다.

 이 손 거울은 그런 착각에 빠질 때마다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가져다 놓은 물건이었다.

착각에 빠질 때 마다 거울을 보며 

‘난 역시 못생겼구나, 난 역시 혐오스럽구나.’

같은 자기 암시를 걸기 위해서였다.

난 결코 사랑스럽지 않다...

난 결코 사랑받을수 없다....

대충 그런 뜻이었다.

여기 애들도 무슨 이유가 있어서 내게 잘 대해주는거겠지...

이런 얼굴을 누가 좋아하겠어... 하고.

그런 얼굴이 지금 그 애들에게 붙어있다.

내 혐오스런 얼굴이 왜... 대체 왜?

생각의 끈이 마치 우로보로스의 꼬리처럼 얽히고 섥혀있던 찰나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고 외치자 콘스탄챠가 답했다.

리앤양이 화가 난 채로 따지러 왔다는 대답 뒤로

리앤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당장 안 나오면 문 폭파시켜버리겠다는 말과 함께

다시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생각했다.

만약에... 만약에 저 문을 열었을 때 

모든것이 정상으로 되돌아가있었다면?

그저, 모든것이 그저 내 착각에 불과했다면?

제발 내 머리가 돌아버린것 뿐이었다면?

나는 압도적인 절망과 한 가닥의 희망을 품고

잠겨진 잠금쇠를 철컥 열어 재꼈다.

그리고 조심스레 문을 열어 당겨

그 뒤에 있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았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리앤과 그녀를 말리는 콘스탄챠,

보안을 담당하는 아이아스의 난처한 얼굴까지 모두 보였다.

그들 모두 내 얼굴을 한 채로 말이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문을 거칠게 닫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몇 개월일지도 모르겠다.

문 밖에서 들려오던 탄식과 절망의 신음소리는

이미 멎어버린지 오래였다.

난 여전히 내 방에 틀어박혀있었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저 녀석들은 문을 두드리며

나를 방 밖으로 빼내려고 애썼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하다못해 럼버제인이 문을 부수려고 들었으나

문을 부수면 난 죽은 목숨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통에

그조차도 허투루가 되고 말았다.

나는 방구석에 버려진 먹다남은 육포를 조금씩 뜯어먹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문 밖에서 날 밖으로 빼내려는 모든 시도들을 무시했다.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도 무시했다.

방밖에서 들리는 거센 파도 소리도 무시했다.

무시했다. 모두 무시했다.

나는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미쳐있는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모두의 얼굴이 내 얼굴로 바뀌는 일이라니,

도저히 평범하다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정말 저들의 얼굴이 변한것이 맞는걸까?

그저 내 안구가 맛이 가버린것은 아닐까?

그저 내 착각이 저 착한 아이들을 괴롭게 만드는것은 아닐까?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나는 미쳐버린 것인가?

나는 언제까지 이 미쳐버린 광경을 보아야만 하는 것인가?

쾅쾅쾅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그녀인가? 나인가? 나의 모습을 한 그녀인가?

상관없다. 누구든 상관없다.

어쨌든 모두가 똑같은 나일테니.

나는 여기 죽은듯 가만히 앉아 나의 죽음을 기다릴것이다.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나의 반항이요 저항이니.

허나 문의 두들김은 멈추지 않는다.

곧이어 누군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문에 무언가가 거칠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누구냐고 소리치는 호통이 끝나기도 전에

내 나약한 문은 쇠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 뒤로 번쩍이는 섬광이 비춰오자

나는 두 눈을 찡그리며 다급히 침대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침입자 둘이 수근거리더니

두 눈을 찌르던 빛줄기가 서서히 멎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얼굴을 덮은 두 손을 아래로 내리며

 엉거주춤 침대 뒤에서 나와야만했다.

빛에 의해 멀었던 시각이 서서히 돌아오자

이 반갑지않은 두 손님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되었다.

헬라와 닥터.

그녀들은 결코 내 얼굴을 하고있지 않았다.






헬라


닥터






https://youtu.be/BIv2dABhwZE?feature=shared






내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들은 나를 붙잡더니 방 밖을 향해 끌고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으나

그들의 무쇠팔은 굳세기 그지없었다.

내가 그들에게 무슨일인지와 다른 이들은 어디갔는지를

물어보았으나 둘은 말이 없었다.

적어도 그들은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이윽고 우리가 잠수함의 출구에 도달하자

그들은 마침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무슨일이 일어나건,

어떤 사람들을 만나건 자신들을 탓하지 말아달라고.

내가 무슨뜻이냐고 묻자 그들은 잠수함의 문을 열어

바깥의 광경을 보여주었다.

문 밖에는... 맙소사...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로 시체의 벌판이 널려있었다.

그것도 모두 피가 빨린것처럼

말라비틀어진 미라가 되어있는 채로 말이다.

고약한 악취가 코를 찔러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었고

하늘을 가득 매운 매캐한 연기가 눈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천천히 시체의 벌판으로 다가갔다.

모두 내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브라우니, 워울프, 파니, 티에치엔, 샌드걸,

레프리콘, 그렘린, 지니야, 임펫...

나의 자랑스런 병사들이 모두... 모두 죽었다.

내가 절망에 빠져 무릎을 꿇었을 때

닥터가 내 뒤로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방에 갇혀지냈을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냐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모든것을 말했다.

다음은 내가 그녀에게 들었던 모든 말들이었다.


그녀는 그 탄산수 기계가 잠수함에 온 뒤로

모든것을 바꾸어버렸다고 말했다.

처음엔 얼굴, 다음은 성격, 그 뒤는 생각, 마지막은 합일.

탄산수를 마신 이들의 얼굴이

전부 나의 얼굴로 바뀌었다고 했다.

개인별로 속도에 차이는 있었지만

길어도 열흘 안으로 얼굴들이 바뀌었다고.

얼굴이 바뀐 이들은 자신의 얼굴이,

그리고 바뀐 남들의 얼굴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거울을 들이밀어도 사진을 찍어 보여줘도 

마치 맹인이 된 것처럼 바뀐점을 느끼질 못했다고도 한다.

특히 탄산수를 마셨던 마리를 제외한 모든 지휘관들은

병사들에게 헛소문이 퍼져나가고있다면서

지위를 막론하고 그런 소문을 입에 담는이가 있을시

엄벌에 처하겠다는 엄포를 늘어놓는 바람에

이 문제에 대해 의문을 늘어놓을 이가 없어져버렸다.

 그렇게 문제가 일단락 되어가나싶던 찰나,

두 번째 문제가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얼굴이 달라진 이들의 성격이 이번엔

자아 비판적이고 어둡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매사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비하를 입에 달고 살았다.

사령관인 나는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고있고 지휘관중에 한 명은 자살했으니

병사들의 사기가 꺾이고 절망에 빠지는 일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중 극단적으로 우울감에 빠졌던 무적의 용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했다고 하니

오르카의 분위기가 어땠을지는 말해봐야 입 아플듯 싶다.

그리고 세 번째 비극이 벌어졌다.

절망에 빠진 이들이 무언가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그저 검은 구름이었다고 한다.

붉은 두 눈을 가진 검은 구름이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무슨 말을 걸어 왔는지 알 바가 없었다.

그저 병사들의 절반이 검은 구름에 홀린듯

혼잣말과 의미없는 웃음을 흘리더니

이번엔 오르카의 분위기를 광적으로 바꿔놓았다.

어디를 가도 광소를 터뜨리는 이들 뿐이었다.

끊임없이 눈앞의 누군가에게 중얼거렸고 

감사의 인사를 보내듯 두 손모아 기도를 올렸다.

오르카호는 달라졌다. 

두 번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으리라.

모두가 속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을 그 때

네 번째이자 마지막 고통이 시작되었다.

얼굴이 바뀌고 생각이 달라지고 마음이 변화한 그들은

이미 그들이 아니게 되었다.

그들의 나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은

그들의 정신을 매혹한 정체불명의 검은 구름에 대한

충성으로 바뀐지 오래였다.

그들의 외형도 생각도 마음도 모든 것이, 모든 것이!

그렇게 모든것이 뒤바뀐 그들은

검은 구름의 명령을 따르기 시작했다.

우선 오르카호를 지금 이 곳, 닥터의 말에 따르면

탄산수 기계가 처음 발견된 장소로 이동했다.

그 뒤 탄산수를 마시지 않은 모든 병사를 밖으로 끌어내 

그들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탄산수를 마시고 자신들과 같은 존재가 될지,

시체가 되어 그 분의 피와 살이 될것인지.

맨정신의 병사들 대부분이 반발했고

결과는... 지금과 같은 피의 행렬이었다.

남은 이들은 저항했으나 역부적이었고

살아남은 몇 안되는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현재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닥터도 옆에 헬라가 없었다면 

끔찍히 살해당했거나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일이 벌어졌던 것이었다.


모든 사실을 들은 나는 머리를 붙잡으며

고통스럽게 흐느꼈다.

내가 나의 끔찍한 공포에서 벗어나느라

오르카호의 파멸을 방관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니.

내 울부짖음을 곁에서 본 닥터는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내게 상냥히 말을 건냈다.

아직 끝난것은 아니라고.

그녀는 헬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헬라는 주머니에서 휴대용 통신기를 꺼내

무언가를 전달했다.

잠시뒤, 두 명의 여인이 시체의 들판 너머에서 다가왔다.

한손에 단검을 든 워울프와 녹슨 갑옷의 요안나.

그 둘은 나를 보며 말했다.

분명히 그 탄산수 기계에 무언가가 있다고,

닥터를 데려가 그 탄산수 기계를 역설계 해

정신이 나간 대원들에게 먹이면

분명히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러니 고통스럽더라도 

오르카호의 사령관으로서 더욱 힘을 내주길 바란다고.

아직 살아있는 그녀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그들의 말을 듣고 흐르던 눈물을 애써 훔쳤다.

그들의 말이 맞았다. 아직 절망하긴 일렀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그들에게 고맙다고 말한뒤

그들을 따라 주변에 하나뿐인 

동굴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생각 해보면 어쩌면 나는 도망쳐야만 했을지 모른다.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아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내 앞에 놓여진 그 끔찍한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그 어두운 둥지에서 최대한 도망치는 것 뿐...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