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운디네 23의 행동은 무적의 용에게 슬픔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안 그래도 사령관과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막 합류한 배 한 척의 함장이 이 따위 사고를 치다니..하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문제의 목소리는 분명 세이렌이 아니라 운디네의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용은 분노로 달아오른 머릿속을 헬기 안에서 로터음을 ASMR삼아 차분하게 정리했다.

 

‘인간들이 전멸한 후 각 함의 함장직은 가장 지휘에 특화된 세이렌 모델들이 맡고 있었을 터. 그렇다면 함장인 세이렌이 휘하 장병들의 관리에 소홀해 사고가 터졌던 것인가? 만일 그렇다 해도 휘하 병사를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아니, 만일의 가능성을 피할 수 없으니 세이렌 모델들이 전멸하여 운디네 모델이 임시로 함장을 맡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일단 배에 내린 후 봐야겠군. 하지만 어떻게 되었든 징벌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외다..’

 

열받은 해군참모총장을 태운 조종사 익스프레스 76 둘은 해참총장 전용 헬리콥터의 조종석에서 만담을 주고받으며 착륙절차를 진행했다.

 

“기장님.”

 

“응?”

 

“쟤들 다 봊된 거 아님까?”

 

“그렇겠지? 용님 얼굴이 저렇게 화난 건 또 오랜만인데?”

 

“불쌍함다. 듣기로는 웬 운디네가 개소리를 사령관님께 지껄이다 이렇게 된 거라는데.”

 

“뭐라고 했대?”

 

“제가 말놓고 여기서 딱! 한 마디 하겠습니다. 야아아! 기분좋다아아! 라고 했답니다.”

 

“푸흡..사령관님께 처음 보낸 무전이 그거라고? 걔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네.”

 

“총장님도 그런 생각이시지 않겠슴까.”

 

“그렇네. 아, 저기 착륙유도등 켜졌다. 그런데 의외로 배 상태가 깔끔하다?”

 

“때 빼고 광낸 흔적이 역력함다. 60년 동안 동면 상태였으니 유령선 꼬라지일 줄 알았는데 깬 다음 배 전체를 미싱하는 중인 게 확실하지 말임다.”

 

그들의 말대로 배의 상태는 60년 동안 버려져 해상을 방황하던 것치고는 상당히 깔끔했다. 녹이 나 있긴 하지만 운디네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자체적으로 녹제거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고, 드넓은 갑판에서는 네레이드들이 대걸레와 녹 제거장비들을 가지고 열심히 배를 청소하는 중이었다. 약해진 철이 파도에 맞아 생긴 파공 부근에는 몇몇 운디네들이 용접마스크를 쓰고 철판을 땜질하고 있는 모습까지 보였다. 

 

여기에 그 상황에서도 헬기 갑판에 의장병 역할을 할 네레이드들과 운디네들이 세이렌 하나의 지휘로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것이, 조종사들이 보기에나 용이 보기에나 썩 마음에 들었다. 무적의 용은 이 흡족스러운 모습을 보고 방금 전까지 함장을 조져 버리겠다는 생각을 상당부분 바꿔먹을 수밖에 없었다.

 

‘유지보수 작업을 자체적으로 이렇게나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니, 이렇게 바빴다면 그 정도 사고는..핫! 아니되오. 규칙은 규칙이오.’

 

곧 헬기가 착륙하고 참모총장이 헬기에서 내리자, 의장대가 일사불란하게 음악을 연주하는 동시에 장병들이 사열 대형으로 각을 잡은 경례를 올렸다. 운디네 23의 미친 짓에 정신을 놓아버린 함장 세이렌 18 대신 임시 부함장인 세이렌 17이 우렁차게 선창했다.

 

“일동 차려엇! 참모총장님께 대한, 경례에!”

 

“필! 승!”

 

“필승!”

 

그러자 흡족해진 용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답례했다.

 

“필승.”

 

“바로!”

 

척!

 

의전에 노무현 호 바이오로이드들의 운명이 걸린 것을 아는 세이렌 17은 끝까지 각잡힌 자세로 환영을 마치고 무적의 용에게 말했다. 

 

“참모총장님, 본함에 승함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본 함의 임시 부함장직을 맡고 있는 세이렌 17이라고 합니다.”

 

일차로 헌신적인 유지보수작업에 점수를 주고, 이차로 FM의 극치를 보여주는 의전에 분노가 어느 정도 녹은 참모총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함장에게 말했다.

 

“환영해주어 고맙소. 그런데 함장은 어디 있소?” 

 

“함장 세이렌 18은 현재 함수갑판에서 무장검열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60년 동안 장약이 삭았을 위험이 있어 극히 위험하기 때문에 반드시 함장이 지도해야 하여 참모총장님의 환영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제게 요청하였습니다.”

 

이런 장병들의 모습에 무적의 용은 그 명석한 머리로 곧 상황에 대한 파악을 마쳤다.

 

‘제대로 된 유지보수 절차가 이루어지고 있고, 병사들의 군기가 잡혀 있군. 그렇다면 함장의 능력도 알 만하다. 운디네의 돌발 행동이었던 것 같군. 그렇다면 함장에게는 가벼운 질책만 하고 그 운디네를 사령관께 데려가면 되겠구려.’

 

“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려. 상갑판으로 나를 안내해 주겠소?”

 

“예..알겠습니다.”

 

곧 세이렌 17의 안내로 무적의 용은 노무현 호의 내부를 지나 상갑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거기서 용이 만난 것은 의외의 광경이었다.

 

함장 세이렌 18은 죄송함이 물씬 풍기는 얼굴로 상갑판에 꿇어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운디네 23과 네레이드 38이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서 있었다. 곧 함장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무적의 용님, 이번 사고는 전적으로 함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저의 책임입니다. 책임은 제가 모두 지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다른 장병들에게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오? 일어나시오. 세이렌 18. 나는 여기에 그대를 책망하러 온 것이 아니외다.”

 

용은 순간 당황했다. 속으로는 이 세이렌 책임감이 깊구려-하면서 내심 감탄했지만, 군율이란 게 있고 일단 사령관에게 받은 말이 있으니 그건 그것대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그녀는 120여척 이상으로 구성된 함대의 사령관이기 때문에 규칙을 지켜야 했으니까. 

 

‘그래도 일단 이렇게까지 하니, 역시 사령관에게 데리고 가서 가볍게 질책만 주면 되겠소. 군율에 벗어나지도 않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이 배의 승무원들에게는 입단속을 단단히 시키면 될 일이지.’

 

이 때, 운디네 23은 심각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기가 장난친 것 하나 때문에 이 배의 자매들이 모두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거기에 옆의 세이렌 18이 자기 때문에 꿇어앉아 있는 것을 보니, 마음 속에서 날카로운 삼각형이 무자비하게 돌아가며 그녀의 양심을 마구 후벼파는 기분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곧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 내가 죄를 실토하고 나쁜 년이 되자. 그러면 세이렌 18도 구하고, 노무현 호 자매들도 구할 수 있어!’

 

물론 이 상황에서 그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폭탄이었다. 하지만 양심의 죄책감에 쩔어 주변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운디네 23은 곧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함장게이야..나를 구할 필요가 없노. 아, 내가 보냈다!

 

저년이 범인이구나! 순간 무적의 용의 부드러웠던 눈이 가늘어졌다. 

 

“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옆의 세이렌 18의 얼굴이 그 허연 상태에서 이제는 파리해지면서 옆으로 픽, 하고 쓰러졌다. 네레이드 38과 세이렌 17이 세이렌 18에게 달려가면서 운디네 23을 황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 운디네 23의 말은 계속되었다. 이 상황에서 용의 호위로 참가하고 있던 스프리건 177이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숨겼던 고성능 카메라를 들어 이 광경을 오르카 호에 중계하기 시작했다.

 

“호라이즌 함대들 지금까지 뭐했노, 이기야!”

 

“나도 군대에서 태어났고, 멸망전쟁까지 다 겪었는데, 심심하면 사람한테 뺑끼칠하라 하고, 불러다가 미싱 돌리고 훈련시키고 했는데, 거 위에 사람들은 뭐 했어! 함대 자기들 함대 자기 함대 작전운용도 한 개 제대로 할 수 없는 함대를 맨들어 놔 놓고 “나 해군참모총장이요, 나 사령관이요” 그렇게 별들 달고 꺼드럭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그래서 함대 보수하겠다고 줄줄이 모여가 가지고 줄세우고, 자기들이 직무유기 아입니까?”

 

갑자기 청산유수같이 튀어나오는 개소리에 무적의 용은 아까보다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해참총장인 본인이 함대를 관리해서 이 지경까지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자신의 가슴 속을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그녀는 이 미친 소리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주변 바이오로이드들은 이 미친 현장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운디네 23의 개소리는 계속되었다. 이제는 아예 자기 목숨을 내놓은 듯이 호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삐딱하게 선 모습이 가관이었다.

 

“이렇게 수치스러운 일들을 하고..함대 돌려받으면 우리 호라이즌 잘해요. 사격도 잘하고, 초계도 잘하고, 공격도 잘하고, 호라이즌이 바다 나가 보니까 못하는 게 없는데, 철충도 잘 죽이고, 별참피도 잘 쳐부수고, 지원공격도 잘 하고 못 하는 게 없는데! 왜, 함대가 이 모양이라는 얘깁니까?”

 

이쯤 되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의 네레이드 38이 뒤에서 짝, 짝, 하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무현 호 바이오로이드들도 듣고 보니 잘못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지라, 다같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내 노무현 호의 함상은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로 뒤덮였다. 오직 무적의 용만 이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지 몰라 얼떨떨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호라이즌이 방위력이 얼마만큼 크냐..정직하게 하자. 언제 역전된 걸로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대개 우리 최후의 함대가 합류할 때에, 우리가 합류할 때에 실질적으로 역전된 것으로 보지 않습니까? 스틸라인은 뭐 국방력이고 뭐고 그 땅개들이라..우리가 스틸라인의 국방비의 몇 배.. 몇 밴지 지금 숫자를 외질 못하겠는데..여러 배를 쓰고 있습니다. 두 자릿수 아닙니까?”

 

뜬금없는 스틸라인 비방이 시작되자 이제는 갑판에 모인 모두가 대체 이게 뭐냐는 얼굴로 운디네 23을 보기 시작했다. 그래, 육군과 해군의 갈등이야 오래된 일이긴 한데, 굳이 왜 지금? 

 

동일한 심정은 집무실에서 이 뜬금없는 일장연설을 스프리건의 카메라로 보는 사령관도 매한가지라, 대체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때 사령관실 밖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지금 저 물개 새끼가 뭐? 스틸라인을 땅개? 땅개애? 지금 저년의 모가지를 째 버리겠다!”

 

“진정하세요! 마리 대장님, 그냥 허풍입니다, 허풍!”

 

“그래, 기다려 봐. 무적의 용은 상식이 있으니까 저 개소리에 뭐라고 해 줄 거야.”

 

아, 마리. 망할. 사령관은 옆의 바닐라를 불러 오늘 마리를 진정시켜야 하니 소년 몸을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바닐라가 그 성미에도 사령관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닥터에게 통신을 했다. 그 상황에서도 운디네 23의 연설은 계속되었다.

 

“정직하게 보는 관점에서 국방력을 비교하면 이제 스틸라인은 뒤로 나가도 괜찮습니다. “그 뭐 공짜 비슷한 건데 기왕에 있는 건데 그냥 쓰지, 인계철선으로 놔 두지 뭘 거 시끄럽게 거 옮기냐?” 그렇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시끄럽게 할..안 하고 그냥 넘어가면 좋은데 제가 왜 스틸라인을 뒤로 나가라고 하냐? 나가라고 하냐고 주장하냐?”

 

“심리적 의존 관계, 의존 상태를 벗어나야 됩니다. 병사들이 내 배는 내가 지킨다라고 하는 의지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국방이 되는 것이지,

 

스틸라인한테 매달려 가지고 바짓가랭이 매달려 가지고 운디..스틸라인 운디 뒤에서 숨어가지고 “형님 형님, 형님 빽만 믿겠다!”, 이게 호라이즌의 안보의식일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되겠습니…읍읍읍!”

 

혼돈의 현장은 드디어 정신을 차린 무적의 용에게 제압당했다. 그 용의 손이 입을 막자 말을 더 하려고 하다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얼굴이 파래진 운디네 23을 보며 용이 조용히 말했다.

 

“본인이 여기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령관의 명령으로 함장을 사령관께 데려가기 위함이외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사령관께 데려가야 할 자는 함장이 아니라 여기 있었구려.” 

 

“그리고 스프리건, 부탁하건대 그만 찍으시오.”

 

“네, 네에..”

 

치직.

 

방송이 끝나고, 함상은 이제 자신들이 무엇을 저지른 것인지 아는 바이오로이드 일동의 무서운 침묵 속에 뒤덮였다. 그 현장에서 운디네 23의 입을 막고 있던 용이 손을 떼 사령관에게 통신을 보냈다.

 

“사령관, 범인을 검거했소.”

 

“응..으응..잘했어, 그럼 이제 그 운디네를 데리고 집무실로 와 주겠어? 혹시 해코지하지는 말고.”

 

“..알겠소.”

 

참모총장은 재빨리 움직였다. 곧 문제의 운디네를 구속한 경호원들이 참모총장과 함께 헬리콥터에 올라 오르카 호로 떠나고, 하얗게 질린 채 기절해 버린 세이렌 18에게 다가간 세이렌 17이 18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함장님, 함장님.”

 

“호에에..오에? 부함장? 방금 무슨 일이 있었나요?”

 

충격으로 방금 전 기억이 날아간 함장을 본 세이렌 17은 조용히 함장을 껴안고 토닥였다.

 

“괜찮아요, 함장님. 아무 일 없었어요. 아무 일도..”




3편은 나올 수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