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붕괴 가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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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더스트는 남성 호르몬과 궁합이 좋지 않다.


블랙 리버에서 만든 남성 바이오로이드인 T-1 고블린이 과거에 일으킨 사건을 통해 그것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로 남성에게만 한정된 일인가?


진실을 아는 인간은, 이젠 없다.


*


"히히히…… 하하! 죽어주세요! 이 해충!"


서슬퍼런 소리와 함께 철충이 양단되고, 리제가 신속하게 거리를 벌리는 것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난다.


"후하핫……! 다음…… 다음 해충은 어디에 있나요?"


비행의 기세를 줄이지 않고 매끄럽게 선회한 리제가 곧바로 다른 철충을 향해 덤벼들자 주변에 있던 칙칙한 기계들의 총구가 일제히 그녀를 향한다.


하나의 바이오로이드를 노리고 탄환들이 쏟아졌지만 요정같이 가벼운 비행으로 피하거나 능숙하게 가위를 펼쳐 막아냈다.


인간은 따라할 수 없는 곡예를 이어나가며 기세를 죽이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철충의 수를 줄여나간다. 적이 폭발하고 리제에게 상처가 생길수록 그녀의 광기는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크고 작은 상처가 리제에게 쌓여갈 무렵에 갑작스레 전개된 파란 장벽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던 포화가 전부 막혀버렸다.


"칫."


총알 세례를 막아준다는 것은 분명 리제에게 도움이 된 일이지만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오히려 괜한 도움이라고 혀를 차고 있었다.


"신나서 나대지 마시죠? 나약한 아이를 지키는 건 취미가 아닌데. 저런 거지만 죽어버리면 주인님께서 슬퍼하실테니…… 어쩔 수 없네요."


자잘한 상처를 입은 리제를 비웃듯 미소를 지은 은발의 바이오로이드가 총을 격발한다.


커다란 권총에서 불이 뿜어지고, 철충 하나가 섬광에 꿰뚫려 쓰러진다.


"닥쳐! 네년 도움은 필요 없었어……!"


험악한 말을 하면서도 철충을 갈갈이 찢은 리제가 사납게 쳐다보았지만 블랙 리리스는 개가 짖느냐는 표정으로 춤추듯 사방에 탄알을 뿌릴 뿐이었다.


"입을 놀릴 시간에 하나라도 더 처리해 줄래요? 나는 빨리 주인님께 돌아가고 싶은데."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고 표표히 자신의 적을 섬멸해 나가는 리리스.


물론 그녀에게도 공격이 향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의 등장으로 리제를 노리던 철충들마저 총구를 돌렸지만 리리스는 그것을 무시무시한 터프함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권총이 불을 뿜고, 관절 부분을 당해 철충 하나가 균형을 무너뜨리자 그 뒤에 숨어있던 다른 철충이 리리스를 노리고 튀어나왔다.


불의의 기습.


총격음이 터졌다.


"빵! 바보 발견."


심장부를 당해 뻣뻣한 움직임으로 꿈틀거리더니 숨이 멎은 듯 철충이 천천히 쓰러진다. 리리스는 마치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듯 태연하게 다른 철충을 상대하고 있었다.


저격수, 미호가 총알을 흩뿌리며 적들의 시선을 모으는 리리스를 엄호하고 상대적으로 시선이 덜 쏠린 리제가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철충들을 베어나간다.


저격수가 있는 한 불리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저격수가 있는 방향을 향해 기동형 철충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총알이 날아오는 방향은 정해져 있었고, 미호가 이동해 자리를 옮기기에는 철충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 일대를 전부 날려버리기로 작정한 듯 높게 떠오른 기동형 철충들이 미사일을 마구잡이로 쏘아대지만 하늘을 가로지르던 미사일들은 땅에 닿아보이도 전에 허무하게 폭발해 사라져 버렸다.


적의 존재를 깨달은 기동형 철충이 곧바로 몸을 돌려 기관총을 난사했지만 양갈래 머리를 팔랑이는 귀여운 바이오로이드가 빙글빙글 화려한 비행을 뽐내며 종횡무진 돌아다니고, 그럴 때마다 하나 하나 철충이 격추당해 지면을 향해 추락했다.


"귀~엽게 처리 완료!"


찡긋,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우쭐대는 귀여운 바이오로이드, 린트블룸에게 무전이 들어왔다.


"고마워. 그래도 무리하진 마?"


"귀여운 린티는 무리할 일 없을걸요~?"


자신의 실력에 엄청난 자신을 가지고 있는 그 말에 미호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스코프 너머의 적에게 총알을 때려박았다.


*


사방에 낭자된 철의 파편과 시체처럼 즐비해 있는 철 덩어리들 사이에 조금 나른한 얼굴로 블랙 리리스가 자신의 스쿼드를 살펴보았다.


"음~ 린트블룸 양은 위에서 정찰을 하고 있고…… 어머? 한 명 부족하네요."


"지, 지금 왔어요!"


허겁지겁 달려온 바이오로이드는 헥헥거리며 자신이 들고다니던 신호기를 옆에 내려놓았다. 이상할 정도로 서두른 듯한 그 모습에 미호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뭐야? 무슨 일 있었어?"


"네. 조금 이상한 신호가 잡혀서요……."


마지막으로 합류한 바이오로이드, 커넥터 유미가 말끝을 흐린다. 마치 자신이 발견한 것에 확신이 없다는 듯한 태도다.


"흐음?"


그 말을 들은 블랙 리리스가 눈썹을 올린다.


"다른 바이오로이드의 구조 신호인가요? 그런 거라면 잘 됐네요. 주인님을 위해 일 할 바이오로이드를 찾는다면 주인님께서도 기뻐하시겠죠?"


애초부터 그녀들의 목표는 자원과 식량, 합류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바이오로이드를 탐색하는 것이었다. 주변의 철충을 대충 정리한 지금이야말로 그녀들을 구출할 좋은 기회겠지.


"아뇨…… 이건 평범한 구조 신호가 아닌 것 같아요. 마치……."


말하기를 망설이면서 유미가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눈치를 본다.


그 태도에 조금 답답한지 살짝 미간에 주름을 잡은 리리스가 다목적 단말기를 꺼내 오르카 호에 교신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지금 전투를 주인님께 보고드리는 게 먼저겠네요. 그때까지 확실하게 할 말을 정리해 주시겠어요?"


말은 정중하지만 거기에는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는 압박이 담겨있어 유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고 말았다.


"그거 이리 넘겨, 해충. 주인님께서 기다리시는 건 나야."


"어머? 또 암캐 한 마리가 꼬리를 치려고 하는군요. 하지만 이를 어쩌죠? 이 스쿼드의 리더는 저랍니다."


"귀여운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 앗! 통신인가요? 분명 사령관님도 귀여운 린티가 보고싶을 거예요."


살벌한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눈치없이 나타난 린트블룸이 통신기에 얼굴을 들이댔다가 두 광기와 마주하게 되었다.


"히, 히이…… 귀, 귀여운 린티는 참을게요……."


"그래요. 그렇게 얌전히 물러나는 편이 좋을 거예요. 거기에 있는 스토커도 말이죠?"


후닥 물러서는 린티를 보며 킥킥 웃던 미호가 이내 지루해졌는지 유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근데 뭘 봤는데 그러는 거야? 재밌는 거라도 있었어?"


"그게 말이죠……."


안절부절 못하는 유미의 태도를 보며 그제서야 미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무서운 거라도 발견한 걸까? 유미의 태도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요? 귀여운 신호였나요?"


저쪽에 낄 용기도, 배짱도 없었던 린트블룸이 대화에 껴 달라는 얼굴로 다가왔다.


"귀, 귀여운지는 잘 모르겠는데…… 보내는 신호가 옛날에나 볼 수 있던 거였어요."


"옛날?"


무슨 말인가 했지만 이런 거였다. 조금 맥이 빠진 미호가 코로 웃으며 말했다.


"지상이니까. 근처에 있던 걸 대충 주워서 쓴 거 아냐?"


"아뇨…… 신호가 감지 되자마자 추적해 봤는데…… 신호 발신 시작일이……."


슬쩍, 아직도 뒤에서 싸우고 있는 둘을 보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유미가 미호의 귓가에 속삭였다.


"멸망 전이었어요."


그 말을 듣고, 미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게 뭐 중요한 일인가요?"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 린티에게 유미가 눈을 두어번 깜빡이고는 정리해 주기 시작했다.


"그게 말이죠? 이 신호, 멸망 전부터 지금까지 쭉 발신되고 있던 거라구요. 성질 자체는 구조 신호랑 비슷한데 훨씬 옛날부터 쭉 작동하고 있었던 거라면……."


"신호를 보낸 주체가 궁금해진다는 거구나?"


미호의 말에 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의 대화에 전혀 끼지 못하는 린트블룸이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엄청 나이든 신호라는 거네요?"


"……그런 거야."


짜게 식은 눈으로 린트블룸을 보며 미호가 대충 답해주자 반짝, 트윈테일 바이오로이드의 눈이 빛났다.


"그럼 린티가 더 귀엽겠네요! 엣헴!"


말을 말자. 호들갑 떠는 린트블룸을 잠깐 쳐다보던 미호가 슬쩍 유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예 무시하기로 마음 먹은 눈이다.


유미도 린트블룸에 대한 걸 머릿속 구석으로 보내버리기로 했다.


"그럼 찾으러 가 볼까? 멸망 전 물자라면 사령관한테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그러고 싶기는 한데…… 사실 오래된 신호라고 해서 꼭 중요한 게 들어있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조금 자신 없다는 투로 유미가 중얼거린다. 별 거 아닌 일로 괜히 리제나 리리스를 귀찮게 했다가는 후환이 두렵다, 라는 얼굴이었다.


"뭐, 어쩌겠어? 사령관한테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건데. 저 둘이 싫어할 일은 없을걸?"


살짝 미소지은 미호가 단말기 앞에서 서로의 얼굴을 밀어내며 뭐라뭐라 말하고 있는 둘을 향해 다가갔다.


"주, 주인님! 착한 리리스가 곧 돌아가요! 으윽, 밀지 마! 이 스토커가! 앗! 방금 건 나쁜 리리스가……"


"하아…… 주인님! 주인님의 리제가 여기 있어요……! 다른 아이들을 보고 계셨던 건…… 윽! 저리 가 이 해추웅!"


평소에는 그런대로 믿음직한 사람들인데. 왜 사령관이 얽힌 일만 되면 이렇게 망가지는 걸까.


미호는 속으로 탄식하며 엎치락뒤치락 싸우고 있는 둘의 뒤에 서서 자신이 단말기에 비춰지도록 자리를 잡았다.


"사령관? 모두 무사해. 곧 돌아갈테니까 보고는 끝낼게."


미호의 말에 단말기 너머로 보이던 남성이 살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후에 통신이 종료되며 단말기에 비춰지던 얼굴이 없어지자 서로를 밀어내며 싸우고 있던 둘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멋대로 주인님과 저의 연결을 끊어버리다니…… 각오는 된 거겠죠?"


"너도…… 해충이야……?"


매섭게 자신을 보는 둘의 시선을 감흥없이 바라보며 미호가 말했다.


"이런 통신보단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돌아가서 만나는 게 낫지않아? 거기에, 사령관을 기쁘게 할만한 일도 있어."


"주인님을……."


"기쁘게……?"


둘 모두 미호의 말에 반응한다. 잠시 생각하는 것처럼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입을 다문 리리스가 이내 방긋 미소지었다.


"그게 뭔가요? 혹시 아까 유미 양이 말했던 신호 말인가요?"


"맞아.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다고 하던데? 아니면 어쩔 수 없지만 찾아볼 가치는 있을 것 같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정해요."


그렇게 말한 리리스가 시선을 유미에게 돌린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이미 엄청 흥미가 있는 것 같았다.


"후후…… 나한테도 알려줄거지……?"


전자 날개를 이용해 둥실 떠오른 리제가 유미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다.


마치 정면에서 노려보는 것처럼…… 눈을 감으며 웃고 있음에도 유미는 뱀 앞에 놓인 개구리가 이런 심정인가, 하고 생각했다.


"시, 신호는 가까워요. 아마 찾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럼 가보도록 해요. 아무것도 없더라도, 주인님께 도움이 될만한 걸 찾을 가능성이 있다면 찾아볼 가치는 충분하죠."


빙긋 미소짓는 리리스의 말에 유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튼, 아무것도 없다고 억울하게 해코지를 당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


그렇게 찾기를 잠시. 무너진 건물의 잔해 틈을 파고 지면에 감춰진 지하실 문을 찾아 열고 나서야 그녀들은 찾고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커다란 원통 모양의 캡슐.


단단한 재질의 강철이, 단지 거기에 있었다.


주변에 특별한 연결장치는 보이지 않고 그저 내구성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 장식없는 밋밋한 형태의 물건이었다.


크기는 꽤나 커서 바이오로이드 서너 명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뭔가요?"


리리스도 이런 건 처음 보는지 경계하는 눈으로 캡슐을 둘러보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캡슐을 툭툭 두드려 본 미호가 말했다.


"안에 뭐가 있는건가? 꽤 단단해 보이는데."


"하나도 안 귀엽네요. 이런 디자인이면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지 않을까요?"


지극히 주관적이고 어린애같은 감상을 말하며 린티가 흥미없는 눈으로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었다. 다만 그 중에 한 명, 굳어서 그것을 쳐다보는 바이오로이드가 있었다.


"이건……."


유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새, 생명유지장치……."


그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유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몇 번 본 적 있어요. 이거, 멸망 전 인간님들이 쓰던 거예요. 안에는 배양액이 있어서…… 생명 활동을 도와주는……."


그 말에 리리스가 슬쩍, 유미를 쳐다보았다.


멸망 전에도 활동하던 그녀가 하는 말이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유미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므로 사실이라고 봐도 좋겠지. 그렇게 생각한 리리스가 그것에 다가갔다.


"열린 흔적은 있나요?"


리리스가 묻자 유미가 고개를 저었다.


"안에 있던 게 나온 흔적은 없어 보여요. 심지어…… 구조 신호까지 보내고 있어……."


이건 아직 작동하고 있다.


그 말에 모두가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사령관 말고 다른 인간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네?"


그 말에, 유미가 한 걸음 물러서더니 껴안는 것처럼 자신의 팔을 감쌌다.


핏기가 가시고 공포에 떠는 것 같은 모습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조차 반사적으로 긴장할 정도였다.


그녀는 인간의 만행을 봤다. 그렇기에 이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인간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비록 유미를 제외한 이 자리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멸망 후에 복원된 개체들이지만 데이터라는 형태로 옛날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떻게 바이오로이드를 대했으며,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가.


하지만 단순히 알고 있는 거랑, 그것을 옆에서 생생하게 체험한 것은 엄연히 무게가 다르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렇게 떨고 있는 거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미호가 다가와 유미의 손을 잡아주었다.


"걱정마. 이 안에 나쁜 인간이 있다고 해도, 우리 사령관이 어떻게든 해 줄테니까."


이 안에 있는 인간이 어떤 인간이든지 사령관은 자신들을 소중히 대해준다. 그걸 믿기에 미호는 유미를 위로하려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유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그럼?"


그게 아니라니?


그럼 왜 이렇게 겁먹은 건지 짚히는 구석이 없다. 미호가 되물었지만 유미는 그저 입을 다물고 불안한 눈으로 캡슐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모두의 말이 줄자 린티가 조용히 손을 들면서 이목을 끌었다.


"이거……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 가져가는 것도 힘들 것 같고……."


자신들만으로 운반하기에는 무겁다. 그렇다고해서 안쪽에 있는 내용물을 꺼내는 방법도 모른다.


"……."


잠시 침묵하던 리리스가 유미를 쳐다보았다.


"신호기를 켜 주세요. 주인님께 보고해야겠어요."


리더로서 그녀의 대응은 옳바르다.


불확정 요소를 오르카 호에 가져가는 것은 물론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 두고 갔다가 철충의 표적이 된다면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인간을 잃을 수도 있다.


어떤 원리로 철충에게 들키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한 번 발견한 이상 이것을 방치한다는 선택은 할 수가 없었다.


기술자들의 지원이 필요하다. 오르카 호에 전해두면 분명 자신의 주인님은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여 주겠지. 그런 믿음이 리리스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유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뭐 하나요?"


리리스가 가만히 쳐다보자 유미는 정신을 차린 것처럼 고개를 들더니 고개를 저었다.


"제, 제가 열어볼게요. 구조 신호에 대응하는 신호를 보내면 열 수 있을 거예요. 안쪽을…… 안쪽을 확인해봐야 해요."


"안 돼요. 만약 열었다가 안에 정말로 인간이 있다면, 그땐 저희들만으론 지킬 수 없을지도 몰라요."


이것을 여는 순간 무방비하게 인간이 노출된다면 당연히 철충들이 쳐들어올 것이다. 그렇다면 고작 다섯 명으로 지원이 오기 전까지 버티기는 힘들 것이다.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더 많은 인원을 불러 안전하게 호위하면 된다.


"화, 확인 해야해요……."


유미가 눈을 크게 뜨고 리리스를 본다. 그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탁하고 검은 그 눈동자가 리리스는 마음에 들었다.


"……뭔가 있네요. 그렇죠?"


그렇기에 한 번 기회를 준다. 리리스가 말하자 유미가 작게 중얼거렸다.


"만약."


유미가 조금 흥분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만약 이 안에 인간 여자가 있다면요?"


그런 거였어? 한순간 짜증을 느낀 리리스가 저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쏘아붙였다.


"그게 어쨌다는 건가요? 남자든 여자든 인간이 있다면 주인님께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유미는 입술을 꾸욱 깨물며 리리스를 보았다.


"맞아요. 주인님께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그래서, 그 인간 여자가 사령관님의 마음에 든다면요……?"


"네?"


"어……?"


그 말에는 리제는 물론 미호와 린트블룸마저 깜짝 놀랐다.


그 여자가 사령관의 마음에 든다면? 그야…….


"둘이서 사랑을 나누고…… 섹스해서 아이가 생기면요……? 우리들은……?"


"기, 기다려 봐."


눈치 있게 유미가 말하고 싶은 걸 깨달은 미호가 그 말을 끊었다.


"사령관은 우리를 소중히 대해주잖아. 아무리 인간 여자가 있다고 해도 우리를 버리지는 않을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미호의 말에 유미가 초조한 눈으로 캡슐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바이오로이드예요. 도구라구요. 사령관님은 도구 취급하지 않지만 저 인간 여자는 어떨지 몰라요. 만약 그 여자가 사령관님께 이상한 바람을 넣으면 어떡해요? 그게 아니더라도."


숨을 몰아쉬면서, 유미가 계속 소리쳤다. 미친 사람같다. 린트블룸은 속으로 생각했다.


"인간 여성이 있는데, 사령관님이 우리같은 바이오로이드를 필요로 할까요……? 가끔 자위도구로 써 주실지도 모르지만…… 만약 영영 안아주지도 않게 된다면요?"


"그, 그런 일은……."


"없다고 장담할 수가 없잖아요!"


"윽……."


유미가 자신의 팔을 너무 세게 잡은 탓에 미호가 작게 소리를 질렀다.


"바이오로이드와 인간 사이에서 나온 아이는 수술이 필요해요! 그런 귀찮은 작업을 할 필요도 없이 순수한 인간을 낳을 방법이 생긴다면…… 그분이 정말 우리를 사랑해 줄까요……?"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맹점이었다.


사령관이 단순히 인간 여성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상냥했던 거라면, 하는 불안.


바이오로이드가 아닌 인간 여성에게 푹 빠져서 자신들에게 그 총애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모든 것이 다 일리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거기에 멸망 전 인간들을 봐온 유미의 말이라는 점이 그 말에 한 층 더 신빙성을 주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전원 크든 작든 사령관에게 호의를 안고 있었다.


리제나 리리스는 말할 것도 없이 사령관을 사랑했으며 유미와 미호, 린트블룸 또한 애틋한 감정을 안고 있었다.


그렇기에 올지도 모르는 미래가 두려웠다.


버려지고, 도구로 다뤄질수도 있다는 그 미래가.


더 이상 그분의 사랑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심이.


"해충…… 해충이야……."


리제가 가위를 꺼내들더니 캡슐을 향해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말리는 바이오로이드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릴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가 없는 거겠지.


모두들 유미의 말에 평정을 잃고 있었다.


지금까지 초조해하는 모습을 조각조차 보이지 않던 리리스마저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캡슐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까앙! 폭력적인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단번에 양단하지는 못했지만 리제의 가위는 캡슐에 선명한 흠집을 남겨놓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저 밋밋하기만 했던 새하얀 캡슐에 상처가 늘어난다.


그 모습을 보던 유미가 어둡게 중얼거렸다.


"제가 열 수 있어요. 안을 확인해봐도 될까요?"


리리스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는 누구라도 알 수 있게 세로로 흔들렸다.


*


사령관의 단말기에 보고서가 떠올랐다.


거기에는 리리스를 리더로 한 정찰분대가 오늘 얻은 물자와 전투중 소모한 물자, 처치한 철충의 수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것은 보고한다고 바로 사령관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오르카호 내에 있는 지휘관들과 보급을 맡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전해지고, 수정되어서 최종적으로 사령관에게 닿는다.


그렇기에, 그것이 너무나도 사소하고 교묘하게 수정된 탓에 사령관은 의심조차도 하지 않았다.


사령관이 아무리 그 보고서를 봐도 전투 외의 이유로 탄알 하나가 더 소모된 것을 알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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