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퀵샌드의 안전가옥. 맥켄지는 작은 방에 앉아있었다. 그녀가 앉은 의자의 앞에는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그 테이블의 위에는 화상무전기와 반이나 찬 술병이 놓여있었다. 다리를 꼬고 등받이에 기댄 맥켄지는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잔에 들어있는 얼음은 조금씩 녹아 잔을 채운 위스키의 양을 늘림과 동시에 농도를 희석하고 있었다. 맥켄지는 그것을 맛있어지는 과정이라 불렀다.

그녀가 기다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무전이었다. 이런 구식 장비로 굳이 통신을 할 사람은 얼마 없었다. 그마저도 그 방법을 지정하기 위해 리오를 통해 명령서를 보내기까지 했다. 차라리 이럴 거면 그 명령서에 할 말을 적으라고. 그렇게 말하려던 맥켄지는 본사 직원까지 보내서 그녀를 데려오게 했던 일을 떠올리고는 뭐라 하는 것을 단념했다.

맥켄지는 술을 들이켰다. 이런 날에는 위스키를 마셔야 했다. 분명 쓸데없이 귀찮고 어려운 일일 것이었다. 제정신으로 듣기보다는 적당히 술에 취해 듣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무전기 너머로 알코올 측정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맥켄지가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알 턱이 없을 것이었다.

무슨 일로 그녀를 불렀는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키리시마법이 통과된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중에는 블랙 리버, 특히 080 기관에서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일도 있었다. 그를 위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무전기의 불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맥켄지는 응답버튼을 가볍게 눌렀다. 그러자 화면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엘리자베스 도네츠크. 080 기관의 수석연구원이었다. 동시에 맥켄지를 일본에 보낸 장본인이기도 했다.

-나를 이쉬마엘이라 부르라.

모비딕의 첫 문장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대사는 이야기의 시작이 아닌 중반에 나오게 되었다. 그나마도 후반부에 가까운 시점이었다. 맥켄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이름을 엘리자베스라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 이전에는 존슨이었고 그 다음은 제인이었다. 이번에는 이쉬마엘이 된 것이었다.

“이쉬마엘? 이쉬라 부르면 될까? 아니면 이즘? 혹은 더 간단하게 엘?”

-맥, 이름가지고 장난치면 안되는 거야.

“맥? 맥베스에서 유래한 내 별명이야?”

엘, 베스 모두 엘리자베스의 애칭중 하나였고 엘리자베스, 자신을 이쉬마엘이라 부르게 한 연구원이 불리기 싫어하는 이름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만해. 그래서 드루크에 대한 정보는 어때?

“드루크?”

또 알 수 없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엘리자베스와 대화하면 이런 점이 골치아팠다.

-맥, 동구권 언어는 모르는 거야?

드루크는 러시아어로 친구라는 말이었다. 바이킹이 들었다면 드루크는 여성인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고 지적했을 것이었다.

“난 바이킹이 아니라고. 미국 토박이가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게 더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아?”

-그것도 그렇네. 이름을 말하기에는 보안이 걱정되는 그것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묻는 거야.

“토모?”

간단히 말하면 되는 것을 항상 그녀는 돌려말하곤 했다.

-맥, 이 무전 보안 확실히 되는 거 맞아? 내가 주문한 그 무전기 기종 맞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편이 알 수 없다는 전파상의 말에 맥켄지는 대충 호환되는 기종을 들고왔을 뿐이었다. 그런 고급장비는 간단히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맥켄지에게는 시간도 돈도 부족했다.

“대충 그래.”

-대충이 뭐야? 보안 안되는 채널이잖아. 우리의 대화가 노출되면 어떻게 되겠어?

“블랙 리버에도 이런 바보들이 있는 거구나 하고 방심하겠지.”

맥켄지는 관심없다는 듯 위스키를 마셨다.

-여튼! 새로운 정보는 있는 거야? 조금 불안하지만 이쪽의 보안을 믿어야지.

“토모의 행방은 대강 알게 되었어. 타누키사키는 토모의 폐기를 위장해서 토모를 중고로 브로커에게 팔아넘겼어. 그리고 우리가 잡은 타무라?”

-토무라.

어째 엘리자베스가 그 이름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그런 이름이었어. 그 정신나간 놈으로 그 사실을 은폐하게 했지. 토모를 데려가고 토무라를 이용한 것은 덴세츠 사이언스였어.”

덴세츠 사이언스를 토모를 확보했다. 블랙 리버의 정수가 담긴 고가의 바이오로이드를 가지고 무엇을 할 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확보한 토모로 실험을 해서 만들어낸 바이오로이드가 바로 덴세츠 사이언스의 육전형 바이오로이드인 히나라는 거지. 거기까지는 우리도 네가 보낸 자료를 통해 알고 있어. 다른 정보가 더 있을 거 아냐.

엘리자베스의 말대로였다. 맥켄지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정보가 있었다.

“얼마 전 일이야. 일본 국방부 청사 앞에서 토모를 발견했어.”

토모를 직접 보았던 그 순간을 맥켄지는 잊을 수 없었다.

-토모를 발견했다고? 지금 토모는 덴세츠 사이언스가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고?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본 것은 확실히 토모야.”

-하지만 히나, 그 바이오로이드는 토모를 닮았잖아. 그걸 잘못 본 거 아냐?

“이쉬, 토모를 본 건 나 하나뿐이 아니야. 히나를 처음 봤을 때 벨이 똑같은 지적을 했지만 우리가 발견한 그 빗치는 누가뭐래도 토모였어. 히나는 토모를 닮았지만 그 빗치는 토모 그 자체였어.”

-맥, 빗치가 아니라 바이오로이드.

엘리자베스는 빗치라는 말을 싫어했다. 좀 더 교양있는 용어를 선호하는 그녀였으니까.

-하지만 왜? 왜 토모가 그 자리에 있었던 거지? 그리고 맥, 너희들은 왜 남의 나라 방위성 청사 앞을 들쑤시고 있던 거야?

“우리가 왜 그곳을 갔는지는 복잡한 사연이 있어서 말야. 결론부터 말하면 시 라이온이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러 간 것에 불과하다고. 문제는 이거야. 당시 국방부 청사 앞에서 시 라이온이 해상자위대 막료장을 암살하려 했거든.”

-정확히는 암살하는 척을 한 거지. 너라면 그 거리에서 머리를 못맞추겠어?

길 건너편의 사람의 머리를 맞추는 것 정도라면 맥켄지는 권총을 한손에 들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네이비 씰 출신의 용병들이 그정도도 못할 리가 없었다.

“일리 있는 분석이네. 여튼, 그런 일본정치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토모를 발견했어. 이걸 우연이라 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왜 토모가 그곳에 나타날 수 있었던 거지?”

맥켄지의 말대로였다. 그들이 추적한 대로면 토모는 덴세츠가 확보하고 있어야 했다. 토모로 히나를 만들어냈다면 토모를 굳이 돌아다니게 할 이유가 없었다.

-그걸 알아내라고 보낸 거잖아. 그 이후의 정보는?

“우리가 알아낸 것은 여기까지야.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추측이야. 덴세츠는 물밑에서 키리시마 법을 준비하며 더러운일을 하고 있었고 토모는 이에 활용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덴세츠는 토모로 히나를 만들어낸 것도 모자라 기억을 모두 지우고 스파이로 활용중이라는 거야.”

맥켄지의 말을 들은 엘리자베스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 토무라가 말한 정보에 따르면 이미 덴세츠는 별도로 그런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를 생산중이라 해. 굳이 토모를 쓸 리스크는 없다고 봐. 게다가 토모는 첩보용으로는 그다지 쓰기 어려운 개체기도 하고.

맥켄지는 들어본 적이 없는 토무라의 정보였다. 블랙 리버는 이런 정보를 수도 없기 가지고 맥켄지에게는 공유하지 않으려 하겠지.

“그 이상은 우리도 뭐라 말하기 어려워. 지금 우리는 덴세츠의 암살작전을 파고들 계획이야. 만일 토모가 덴세츠와 연결되어있다면 분명 암살사건에도 연관되어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이번에 이쪽이 물을 차례야.”

-네쪽에서 물을 건 없을 텐데.

엘리자베스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본능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그녀였다.

“그쪽은 요즘 어때?”

-미국 소식이 궁금하면 TV를 켜고 해외뉴스를 들어. 그쪽이 훨씬 정확하니까.

“내가 듣고 싶은 건 현지인의 말이야. 그래야 여기서 고생하는게 차라리 낫다고 위안이라도 받지.”

미국뉴스는 항상 같았다. 미국 전역 각지에서 일어나는 폭동. 그 폭동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거라면 얼마든지 위로해줄 수가 있지. 낮은 실업률로 인해 폭동이 일어나질 않나 바이오로이드 반대운동을 하지 않나 정부에서는 바이오로이드 생산 기업을 법정에 세우려 하지 않나 그 와중에 회사 내에서는 프로젝트 진행도 안되는데다가 PECS까지 경쟁에 끼어들기까지 하고. 한마디로 개판이야. 차라리 고블린들 전체가 헷가닥해서 전부 날려버렸으면 좋을 것 같을 정도니까.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

미국에서 일어나는 폭동. 그 이야기는 엘리자베스의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그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더 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를 설명할 때는 아니었다.

“내가 왜 이 위스키를 마시는 줄 알아? 이거 한잔이면 그런 건 싹 잊을 수 있거든.”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술을 핑계로 도피를 하는게 아니니 이 고생이지. 그러는 맥이야 말로 도피하지 마. 아직 너희가 할 일은 산더미니까. 고작 토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통신을 한게 아냐.

엘리자베스와의 무전은 끝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