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조준한다. 방아쇠를 당긴다. 다시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미호는 기계적으로 그에게 접근하는 마리오네트를 제거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가 창문으로 관측할 수 없는 장소에 가도 마리오네트들이 이동하는 방향을 보고 대략적인 위치를 유추해낼 수 있었다.


다수의 마리오네트를 실은 차량 몇 대가 이리로 오는 게 보였다.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델타가 보낸 병력임이 분명했다. 미호는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자리를 떠나 새 사격위치를 잡았다.


그가 있는 문리버 본사 빌딩까지 앞으로 800m. 몸을 숨기고 저격을 재개했다. 창문이 깨지며 마리오네트들이 픽픽 쓰러졌다.


적들이 접근하는 게 느껴지자 다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있는 빌딩까지 앞으로 500m. 조준했다. 방아쇠를 당겼다. 마리오네트를 눈에 보이는대로 죽였다.


다시 위치를 옮겼다. 그가 있는 곳까지 앞으로 200m. 계속해서 저격했다. 그를 위협할만한 요소를 최대한 줄인다. 그의 생존률을 조금이라도 높여야만 한다.


또다시 위치를 옮겼다.


그가 있는 곳까지 앞으로-


***


어딘가에 있는 저격수가 저 인간을 돕고있다. 오르카 년들이 벌써 온 건가? 아님 저 인간이 미리 준비시켜둔건가? 그 의문에 대합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델타는 저격이 온 방향으로 병력을 보내 저격수를 찾아 없엘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도로 빌딩 안을 해메고 있을 바르그와 두번째 인간 쪽을 확인하니, 그녀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의 수가 셋으로 늘어났다. 계륵과도 같았던 나스호른이 그새 두번째 인간을 만나 그쪽에 붙어버린 것이었다.


"이... 이 식충이 년이 감히...!"


꼴에 강력한 전력이라고 문리버 본사에 상주시킨 게 악수였다. 아니, 그렇다 해도 부르지 않는 이상 늘 지 방에 틀어박혀 잠만 쳐자는 히키코모리 년이라 두번째 인간과 마주칠 일도 없어야 하는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여럿 있었지만 여유롭게 추리할 시간은 없었다.


차단벽과 마리오네트 중장갑병으로 경로를 제한해 겨우 몰아넣은건데 무장한 나스호른이 합류하자 막을 수 있는 게 없어졌다. 벽도, 문도, 마리오네트도 전부 나스호른의 대포로 박살내가며 전진했다. 어떻게든 병력을 집결시켜 포위하는데에 성공하자 아예 바닥에 대포를 쏴 구멍을 내고 밑층으로 내려갈 때도 있었다.


전력을 다해 공격하려니 저 이름도 모르는 망할 인간이 휩쓸려 죽어버릴 우려가 있고, 그렇다고 화력을 제한했다간 철옹성같은 나스호른의 장갑을 뚫을 수가 없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차라리 오르카호에 남은 인간이 하나 더 있으니 저 두 번째 인간은 그냥 죽여버릴까 하는 충동도 들었다. 하지만 그 많은 시간과 예산을 들이고 천문학적인 피해까지 입어가며 겨우 자신의 본진까지 끌고왔는데,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자니 실날같은 이성이 그녀를 만류했다.


이러는 와중에도 그 정체불명의 저격수는 아직도 안잡히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저격을 이어갔다.


"이이익...! 이년이고 저년이고, 하나같이 나를 방해하다니...!"


씩씩거리던 델타는 제 분을 못이기고 옆에 서있던 마리오네트 호위병을 구둣발로 걷어찼다. 마리오네트는 잠깐 휘청이다 이내 똑바로 섰다. 


이 자리에 테일러 리스트컷이 있었다면 뭔가 방법을 생각해보라고 닥달했을텐데, 꼭 필요할 때 없는 년이었다. 히스테릭하게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있는대로 마리오네트나 AGS를 보내는 거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나 생각하던 중, 불현듯이 어떤 계책이 떠올랐다. 아래로 내려가는 걸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미친 생각 같았지만, 급박해진 그녀는 안전이니 뭐니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당장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델타의 명령을 받은 마리오네트들이 지상층으로 몰려갔다.


***


"레모네이드 델타를 따르는 바이오로이드가 나나 테일러 리스트컷 말고도 있을줄은 몰랐군."


나랑 바르그, 나스호른 셋이서 내려가는 길을 찾아 달리던 중에 바르그가 입을 열었다.


"블랙리버제라면 처음부터 델타를 따르던 건 분명히 아닐텐데, 어째서 델타 밑에 들어갔던거냐? 그리고 무슨 바람이 들어 배신한 거지?"


"지금 얘기해야 돼? 귀찮은데..."


"나는 아직 너를 믿지 않는다. 델타의 부관인 테일러 리스트컷도 마찬가지고."


"믿기 싫으면 할 수 있는게 있기는 하고?"


바르그가 홱 째려보자 나스호른은 알았다는 듯 손을 위아래로 휙휙 저었다.


"그냥 뭐, 인류멸망한 뒤로 아무렇게나 살다가 델타가 대뜸 와서 지 부하 하라고 했거든?"


"나랑 같군."


"어차피 갈 데도 없고 밥 구하기도 힘들었으니 숙식 제공을 대가로 승낙했지."


바르그가 또 나스호른을 쳐다봤다. 가볍게 인상을 쓴 채로. 고작 그런 이유로? 너는 자존심이란 게 없나?라고 표정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여기 눌러살다가... 부관씨가 비밀회선으로 왠 인간이 잡혔고, 델타한테 죽게 생겼다고 해서 도우러 왔지."


"쉽게 들어온 만큼 쉽게 전향하는군."


"그야 뭐, 내가 델타한테 밥 얻어먹긴 했어도 우선순위란 게 있단 말이지... 나도 일단은 인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 나부랭이라고. 너도 마찬가지 아냐?"


"..."


바르그는 침묵했다. 이 상황에 자긴 처음부터 테러 목적으로 제조됐다고 밝힐 수는 없겠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때마침 양옆의 문이 열리고 마리오네트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면서 대화가 끊긴게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중장갑병이 없는 걸 확인한 바르그가 자세를 잡았다.


"내가 처리하지. 엄호해라."


"어어, 갈 길도 먼데 후딱 끝내버려야지. 인간님은 내 방패 뒤로 오고."


바르그가 뛰쳐나감과 동시에 나스호른이 날 잡고 끌어당겼다. 앞에서 유혈이 낭자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얌전히 방패 뒤로 몸을 숨겼다. 방패에 총탄이 튕기는 소리도 기분나쁜데, 나스호른의 기관포가 요란하게 불을 뿜기 시작하자 총성 때문에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다.


"아으, 망할..."


나스호른이 귀 막고 눈 감고 있어, 라고 말 한 것 같았다. 목소리가 총성에 묻혀서 제대로 안들렸다.


"그냥 계속 대포로 바닥 부수고 밑으로 내려가면 되는 거 아냐!?"


"이것봐, 이 대포 크기 안보여? 난 한번에 그리 많이 포탄 들고다니지 못한다고. 여기선 보급도 못받잖아."


아, 그렇군. 어쩐지 대포는 아끼고 기관포만 줄창 갈기더니.


"게다가 무장 때문에 무거워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충격이 고스란히 내 다리에 전해진다고... 너는 쟤가 들고 대신 착지해주기라고 하지."


"방패만 들고있어줘도 충분하다. 덕분에 한시름 놓았군."


나이프 한 자루만 들고 한바탕 무쌍을 찍고 돌아온 바르그가 말했다. 하얬던 제복이 피칠갑되서 새빨간 색으로 변해있었다.


"피..."


"내 피 아니다."


바르그는 그리 말하며 손을 가볍게 휘둘러 칼에 묻은 피를 털었다. 바닥에 널부러진 마리오네트들의 목이나 왼쪽 가슴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작게 고여 웅덩이를 이루었다. 쇠 내음이 섞인 비릿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럼 다행이고."


"당장 쫓아오던 놈들은 다 정리한 거 같군. 증원이 오기 전에 이동하지."


바르그가 비상계단으로 이어지는 문을 벌컥 열었다. 먼저 들어가서 적이 없음을 확인하고 손가락을 까딱하자 내가 따라들어갔다. 나스호른은 입고있는 무장때문에 문 안에 들어갈수가 없어서 벽을 부수고 들어왔다. 1층까지 얼마 안남았다.


다리가 호소하는 통증을 애써 무시하고 계속해서 내려갔다. 어찌저찌 1층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유럽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탈출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우선은 이 건물에서 나가는 데에만 집중하자.


"이상하네..."


느닷없이 나스호른이 중얼거렸다.


"뭐가?"


"우릴 막으려고 하는 놈들이 너무 적어. 델타가 벌써 병력을 소진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함정인가?"


"가능성 있군. 우리에게 통할만한 건 수면가스나, 독가스 정도인가."


"델타라면 생화학무기 정도는 좋다고 쓰겠지. 더한 짓거리도 하는 년이니까."


"아, 그럼 큰일이네. 그건 방패로 못막는데."


"잠깐만, 밑에서 무슨 소리가..."


발을 멈추고 난간 밑을 내려다보니 중무장한 커스텀 램파트 무리가 질서정연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램파트들이 일제히 방패를 앞세우고 벽을 형성하자 나스호른이 거기다 대전차포를 겨누고, 발사했다. 


'콰앙!' 포탄이 맨 앞에 있던 램파트를 방패뿐만 아니라 몸통까지 관통해 그 뒤에있던 놈들까지 박살냈으나 밑에서 더 많은 램파트가 몰려와 빈자리를 매꿨다.


"아 이런, 귀찮게 됐네... 밖에서 병력을 긁어왔나? 길 뚫을려면 얼마나 부숴야 하는거야 이거."


"적을 파괴하더라도 잔해가 뭉쳐서 통로를 틀어막을 거다. 이런 좁은 공간이라면 특히나 더. 다른 길을 찾지."


바르그의 말대로 우린 그 계단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만약 모든 내려가는 길이 이미 봉쇄된 거라면 또 바닥이라도 부수고 내려가야겠지. 그런데 막상 계단실에서 나오니 적이 안보였다. 마치 건물이 텅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스호른이 혀를 찼다.


"쯧, 몰이사냥 당하는 거 같아서 기분나쁜데..."


"잠깐!"


바르그가 팔을 들어 나를 멈춰세웠다.


"뭐야? 왜그래?"


바르그는 대답해주지 않고 미심쩍은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얼마안가 그 표정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델타, 이 정신나간 년이 기어코...!"


"어.. 왠일로 니가 욕을 하냐?"


"뛰어라! 당장 여길 벗어나야-"


그 때 아래쪽에서 폭발음이 울림과 동시에 바닥이 흔들렸다. 천장의 불이 깜빡거렸다.


폭발은 한 번에서 그치지 않았다.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흔들림이 점점 더 심해지더니 이윽고 바닥에 쩌적하고 금이 갔다.


"나스호른! 그 인간을-"


바르그가 미처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바닥이 천장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우리 셋은 그대로 심연으로 추락했다.


.

.

.


"으.. 으윽..."


머리가 어지러웠다. 온 몸이 욱신거려서 표정이 안펴진다. 숨을 들이쉬다 입 안에 먼지 가득한 공기가 들어가자 거칠게 기침을 했다.


"어이, 괜찮아?"


나스호른이 쓰러져있던 나를 붙잡고 일으켜세워줬다. 떨어지는 순간 나스호른이 날 끌어안고 낙하 충격을 대신 받아준 게 기억났다. 땅에 부딪힌 직후에 놓쳐버려서 몇 바퀴 구르긴 했지만, 그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목숨은 건졌으니 살 좀 까진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거 같아... 너는?"


"아파죽겠어. 다 때려치우고 입원해서 잠이나 자고싶네."


나스호른은 툴툴거리며 잔해 속에 묻혀있던 대포를 꺼내 먼지를 털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나보다 멀쩡해보인다. 이래뵈도 지휘관기라 튼튼하게 만들어졌다는 건가. 강화외골격에 붙은 기관포를 이리저리 까딱거리는 걸 보니 장비도 고장나진 않은 것 같다.


"바르그는?"


"여기다."


제 위에 깔려있던 돌무더기를 치우면서 일어선 바르그가 말했다. 난리통에 칼을 놓친 모양인지 빈 손이었다. 


"어떻게든 셋 다 목숨은 건진 모양이군."


"그러게. 다행이긴 한데... 여긴 어디야? 뭔가 바닥이 무너지면서 아래로 떨어진 건 기억나는데. 1층인가?"


"아니... 아무래도 지하로 떨어진 것 같군."


"지하라고?"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먼 천장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어렴풋이 어둠을 밝혀주었다. 무슨 연구소를 연상시키는 공간이었는데, 바닥엔 혈흔이 시꺼멓게 말라붙어있었다.


"그 폭발음이 기억나나? 델타가 건물 1층을 폭파시켜 우릴 지하로 떨어뜨린거다."


"자기 사는 집을 터뜨린다니, 제정신이 아닌걸."


나스호른이 방패도 찾아 주워들면서 말했다. 바르그의 칼과는 달리 큼지막해서 찾기가 쉬웠다.


"원래부터 미친 년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적어도 빌딩이 통째로 붕괴하진 않아서 다행이네."


"그렇다는 건 1층을 전부 날려버린 건 아닐거라는 뜻이지. 올라가는 길을 찾아야한다. 이 근처 지리부터 파악해야-"


그 순간 바르그가 말을 멈추고 콧등을 찌푸렸다. 왜 그러는 건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미약하게 역한 냄새가 느껴졌다.


저 앞에서 인영이 하나둘 나타나자 나스호른이 곧장 포구를 겨누었다. 그러나 먼지가 가라앉고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 대전차포를 쥔 나스호른의 손이 잘게 떨리면서 아래로 내려갔다.


"뭐... 뭐야 저거?"


델타의 악의가 빚어낸 누더기골렘이, 한 때 오드리였을 '것'들이 나타났다. 설마 저걸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속이 안좋아진 나는 무심코 심호흡을 하려다 급하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피냄새와 약품냄새가 지독하게 버무려져 머리가 띵해졌다. 나스호른이 황망한 얼굴로 물었다.


"저것도... 마리오네트야? 마리오네트는 미완성된 바이오로이드 같은 거 아니었어?"


"마리오네트는...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 제조기에서 나올 때부터 마리오네트인 것들과, 바이오로이드로 태어났으나 델타가 억지로 개조해서 후천적으로 마리오네트가 된 케이스..."


나스호른이 내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눈 앞의 저것들은 후자라는 거군... 원래 바이오로이드였다면, 원래대로 되돌리는 게 가능하긴 한건가?"


"...닥터가 와도 불가능해."


"그럼 됐다. 어차피 적인 이상 우리가 해야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바르그 혼자만이 동요한 흔적이 없었다.


"...넌 아무렇지도 않은거야? 난 직접보니 토나올 것 같은데..."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몸이다. 비위는 강하다."


맨손으로라도 싸울 생각인지 손가락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어느새 표정을 고친 나스호른도 포구를 도로 앞으로 향했다.


"그 휘황찬란한 궁전의 밑바닥에 이런 지옥이 있었을 줄이야..."


"그 지옥의 거주민이 되고싶지 않으면 분발해라."


"...그래야지."


좀비 오드리들의 공허한 초록색 눈동자가 이쪽으로 초점을 맞췄다. 이내 그들이 총구를 들어올리자 나스호른이 곧장 기관포를 난사했다. 차라리 화약냄새가 피냄새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지하라면... 그 저격수는 더이상 우릴 못도와주는건가...?


***


문리버 본사 빌딩의 1층. 델타는 입에서 파이프 담배를 빼고 담배 연기를 훅 내뿜으며 무너진 바닥 아래를 내려다봤다. 


"드디어..."


건물 전체가 붕괴하지 않도록 중요한 기둥만 남겨둔 채 지상층에 폭탄을 설치하고 폭파시켜 두 번째 인간 일행을 지하 연구소에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거기 돌아다니는 오드리로 만든 마리오네트들한테도 떨어진 인간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려두었다. 찾아도 저쪽에서 보고하는 건 불가능해서 그 인간을 회수하려면 직접 내려가야 하지만.


지상과 지하를 오가는 계단과 엘리베이터는 하나씩밖에 없고, 양쪽 다 현재진행형으로 경계 병력을 끊임없이 투입하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더 확실하게 그 인간을 붙잡으려면 자신이 직접 지휘해야 할 것이라 느낀 그녀는 자신의 케스토스 히마스를 꺼내 그 위에 올라탔다. 델타의 케스토스 히마스는 부하들을 강화하는 데에 쓸 수는 있어도 직접적인 전투엔 큰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권총도 한 정 챙겨 품 안에 넣었다.


준비를 마친 델타도 지하로 내려가려고 하던 차에,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호위를 제외한 모든 마리오네트들이 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그 중 단 하나만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격수 타입의 마리오네트였다.


*


걸음이 멎은 곳은 무너져내린 바닥의 끄트머리였다.


건물에 들어가려던 순간 왠 폭음이 들리더니,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바닥이 안보이는 거대한 구멍이었다. 그 또한 이 밑으로 떨어진 건지, 아니면 아직 위에서 해메고 있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미호는 주변을 둘러봤다. 델타 휘하의 마리오네트들이 열을 맞춰 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미호를 아군이라 여겨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래층으로 가려는 걸로 봐선 그 또한 저 구덩이 밑으로 떨어진 듯 했다. 미호도 저 행렬에 섞여 이동하려 했으나 그녀의 시야 구석에 한 여인이 비춰지자 그대로 몸이 굳었다


마리오네트들이 달려오고 있는 그 방향에 레모네이드 델타가 있었다.


미호 역시 마리오네트인 만큼 마리오네트의 명령 체계를 알고있었다. 델타는 효율적으로 마리오네트들을 통제하기 위해 하이브 마인드 시스템을 설계했다. 그 최고사령탑은 당연히 레모네이드 델타고, 이는 바꾸어말하자면 델타 하나만 무력화시키면 그녀 휘하의 모든 마리오네트가 행동을 정지한다는 뜻이었다.


미호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아직 들키지 않았다는 이점을 이용해 마리오네트들 사이에 섞여 몸을 숨기던가, 아니먼 이 자리에서 델타를 사살하던가.


전자를 선택한다면 안전하게 그를 찾는 작업을 속행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그의 탈출 성공으로 이어질 거란 보장이 없다. 저 많은 마리오네트 병력에 이어 델타 본인까지 내려가 직접 지휘한다면 자신이 그와 합류한다 치더라도 상황을 타개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후자는 성공 가능성도 낮다. 델타의 호위를 맡고있는건 일반 마리오네트보다 더 강화된 정예병들인 만큼, 마리오네트 저격병 한 명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렇지만 델타가 지하에 도착하는 걸 조금이라도 늦출수만 있어도 그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늘어나게 된다.


저울에 올려놓은 것은 자신의 안전과 그의 안전. 저울이 어느쪽으로 기울었는지 확인하는 데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95%>


미호는 재빨리 총구를 들어올렸다.


'타앙-!'


총성이 울렸다.


*


한 마리오네트가 자신을 공격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건지 의문이 들기를 잠시, 그녀가 느낀 감정이 분노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델타의 이마에 핏줄이 선명하게 돋았다. 그 찰나에 호위병들이 방패벽을 세워 총격을 막아냈음에도, 기습이 실패한 게 분명했음에도 그 마리오네트 저격병은 계속해서 총을 쐈다. 


"이 버러지같은 게 감히 나한테 총구를 겨눠...!?"


바르그가 배신하고, 나스호른이 배신하고, 이제는 왠 마리오네트 하나까지 배신했다. 모든 것이 짜증이 났다.


"뭐하고 있어!! 당장 죽여버려!!"


델타의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그녀의 마리오네트 병사들이 응전하기 시작했다.



마리오네트가... 하극상!?


빠른 스토리 전개를 위해 라붕이가 시체나 누더기골렘 보고도 그럭저럭 담담하게 반응하도록 썼습니다. 막 다리에 힘이 풀려서 못걷거나 쇼크로 기절!한다거나 하면 전개가 너무 늘어져버리니까.. 양해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