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랬만에 올려보게 되었습니다. 7명이 보름만에 뚝딱 2명이 되는 탁월한 경영능력에 여유가 사라지니 취미로 쓰던 글은 아무래도 손이 가기가 어려웠네요.

혹시 기다려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죄송스럽고, 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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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과 스틸라인 3인방의 4P는 당연히 불타오르는 화재로 떠올랐다.

사령관의 개인공간 - 사령관실 안쪽의 쪽방과 딸려있는 화장실 - 을 제외하면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 공개하겠다는 것이 사령관의 공언이였던바.

공식적인 허가를 받은 오르카호의 자칭 저널리스트 (타칭 도촬꾼 과 가십걸) 듀오는 오만방에 카메라를 두었고, 놀랍게도 사령관실 내도 예외가 아니였다.

즉, '사령관 24시' 에서 실시간으로 응접실에서부터 시작된 모든 것이 송출되었다는 말이다.


나 지금 폭발 직전이오 - 를 뇌파로 광고하던 사령관을 따라 함내로 들어가는 3인방.

오늘의 경호 담당이던 콘스탄챠와 리리스를 지나 입실하는 3인방.

눈을 테이블에 고정시킨채 쳐다보지를 못하는 사령관.

사망한 대원들의 장례 (화장)와 회수한 군번줄로나마 꾸려진 위령소에 감사하다는 이야기부터-

보급이 좋아졌네, 뭐가 감사했네 점점 횡설수설해 가는 이야기...마찬가지로 횡설수설대는 사령관.

그리고 - 브라우니2030의 육탄돌격과 단도직입적인 고백.

말리는 사령관과 이어지는 노움과 레프리콘의 접근.

결국 날아가버린 이성. 이어지는 청불경고.

응접실에서의 한차례 폭풍 .. 쏙-들어가버린 침실 영상은 없었지만 흘러나오는 소리만으로 오히려 더 상상력을 자극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나오는 콘스탄챠의 모습이라던가, 결국 사령관실 앞에서 주저앉아 필사적으로 뭔가를 참고있는 리리스의 모습이라던가.

식사를 위해 테이블이 있는 응접실로 나왔다가 다시 또 - 

... 거의 모든 대원들이 함으로 복귀하여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있었더랬다.

조용?한 하루가 지났고..


" 이야...저 친구들이 선수칠 줄은 몰랐네? 꿀꺽-꿀꺽- 캬-하 ~ 간만에 분수 좀 뿜어줬더니 맥주맛이 더 각별하구만. "


팔라완 섬의 유일한 도시 폐허에서 아직도 멀쩡한 맥주를 자동 생산-리사이클링을 유지하고 있는 자판기를 털어온 워울프가 소파에 흐물흐물 늘어졌다.


" 야야 너 말좀... "


늘 그렇듯. 워울프의 말투를 타박하는 퀵 카멜이었지만 .. 또한 늘 그렇듯. 워울프의 반격이 한수 위였다.


" 뭐래~ 제일 시끄러웠던 년이. 아앙~ 아앙~ 히아앙~ "


" 야야야야야 ! "


" 캭캭캭캭 "


까무잡잡하게 태닝한 피부 위로도 확연히 드러나는 홍조에 둘을 지켜보던 하이애나가 자지러지게 웃어 댔다.


" 야야 하이에나 웃지말고 술이나 내놔. 카멜 소리가 제일 컷던거 너도 인정하는거지? "


하이에나의 어깨를 붙들며 내기의 승리를 선언하는 샐러맨더.

한쪽 구석에 있는 자신의 전용석에서 뭔가를 반복해서 보고있는 탈론 페더. 

새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있지만, 손가락 사이로 빼곰히 나와있는 눈동자가 페더의 패널을 향해있는 케시크.

대충 걸친 와이셔츠 한장 바람으로 줄담배를 이어가는 스카라비아.


" 큿..하하.. 하하하하하 "


일상. 오랬만에 보는 일상적인 모습에 칸의 입에서 웃음이 세어나왔다.


" ? 대장..? "


경애해 마지않는 앵거 오브 호드의 부대장. 칸의 드문 웃음소리에 부대원들의 머리위로 ? 표가 떠올랐다.


" 하하...아아... 별일 아니다. 그저... 이런게 평범했었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 고맙다. 모두들. " 


처음 느껴보는 달콤한 사랑에 취해 잘못된 대안에 손을 들어주었을 때도.

고난의 연속이던 시절에도.

이번 사령관을 받아들여 보자는 선택까지. 

힘겨워도, 불만이 있어도, 마지못해나마 따라주었던 부대원들에게. 


" 흥. 대장답지 않게 낯부끄러운 소릴... 그보다 대장. 떨궈놓고 온 애들은 어떻게 되는거요? 기존 방침 그대로 .. 버려둡니까? "


묵묵히 명령에는 따르지만, 언젠가부터 스스럼없이 건내던 질문이 사라졌던 워울프의 물음에 칸은 또다시 흘러나올 것 같던 웃음을 삼켰다.


" 글쎄.. 아직 재가를 받은건 아니지만, 지휘관들끼리는 합의를 보았다. 당연히 구출하러 가야지. 

  짧은 기간이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사령관의 성향으로 봐서는 실리적인 이유로라도 나름 우리들을 아끼고 있으니. 큰 이변이 없는 이상은 허가가 날 것으로 생각하고 용 중장이 움직이고 있다. 

사령관이 공표했던대로, 선조치 후보고에도 사령관의 '합리'에 만족할만한 보고서를 준비할 자신이 있다더군. 조만간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지. "


분함대..라는 명목의 버림패.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위협을 피하기 위해 미끼로 버려진 이들.


" 분함대를 꾸릴 때 최대한 지원을 하긴 했지만.. 최근 철충들의 행동패턴의 변화로 봐서는 서둘러야 한다.  

  쉴 수 있을때 편히들 쉬어두도록. 발빠른 우리가 움직일 일이 많을테니. 자. 건배."


통- 워울프의 맥주캔에 자신의 술잔을 부딪혀 무거워진 분위기를 다시 띄운 칸의 눈에 한때 잃어버렸던 날카로움이 돌아왔다.

그 눈빛을 마주한 워울프 역시. 


" 그래. 이거지. 건배! 호드를 위하여 ! "


...음. 어.. 호.. 호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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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위기를 넘겼다는 감각 때문일까. 마음이 풀어졌다고 해야하나,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하나.

더치걸의 표현을 빌리자면, 좀 '말랑말랑'해진 것 같다.


" 하...하....하.....하치코 .. 녜.. 하치. 치..치치...코 라고 하..합...합니다. 자..잘...잘 .. 여.. 열심히.. 하게읍..니다. "


그래서일까. 지금 내 앞에서 심하게 말을 더듬고 있는 강아지를 보며, 답답함 보다는 안타까움을 느끼는게.

딱히 겁을 먹었다거나..하는 이유도 아닌데 자꾸만 더듬거리는 말투.

본인도 답답해 울상이니 원... 


" 그래. 잘 부탁한다. "


스윽 - 스윽 - 스윽 --


사전 리리스의 부탁대로. 하치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손을 뻗을 때 움찔하긴 했지만, 여전히 겁먹은 기색은 없다.

... 대체 무슨이유로 보디가드의 정신연령을 이렇게나 어리게 만들었을까?

고작 한세대만에 인간들에게 무슨일이 생긴거야...


" 감..감....감사... 합..하..합..... 히잉... "


" 자자.. 괜찮아. 일단은 서둘러 말하려고 하지말고. 천천-히. 느리게 말해보는거야. 한글자씩. 감-사. 합-니-다.  이렇게. "


" 가..감. - 사. 합니 --다. 핫! ㅈ...주...쥬..쥬.....ㅇ ㅣ.... "


" 천천히. 괜찮아. 기다려줄게. "


재촉하지도, 막아서지도 않고 슬-슬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 감-사. 합-니다. 쥬-인님. 하치코. 쥬인-님. 좋-아- 요. 좋-아요. 쥬인님 -손. 무섭--지- 않아--요. 헤헤헤 "


... 인간의 아이들은 5살이면 잃어버렸던 어린 순수를. 바이오로이드들에게서 느낀다.

어쩌면 인간이 잃어버린 마음들을 투영하고자, 인간이 잃어버린 인간성을 느끼고 싶어 이런 특징들을 가진 바이오로이드들을 창조한건 아닐까.


" 그래. 나도 하치코가 마음에 들어. 앞으로 잘 지내보자. "


" 헤헤헤헤 "


첫 스타트는 나쁘지 않은 것 같고.. 이걸 보고 있을 다른 하치코들도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부대 특성상 못볼꼴을 특히나 많이 보아야 했던 배틀메이드와 컴패니언은 복귀율이 꼴지를 다투는 상태.

심리적인 문제가 깊은 부대원들이 많다.


" 안녕! 새 주인님 ! 난 펜리르야. 나를 풀어주고 다시 고기도 먹을 수 있게해줘서 고마워 ! "


강아지 다음은 늑댄가. 확실히 맨탈쪽은 전혀 문제가 없어보인다.

각인된 주인이 아니였다고는 하나, 자의로 인간을 직접 공격하려고 했던 요주의 대상.

인간의 명령 없이도 철충에 적극적인 선제공격이 가능한 특이 개체.

희소성 때문에 온존하긴 했으나, 오랜 시간 감옥에 갇혀있었던 것 치고 상태가.. 아주 멀쩡한데?


" 반갑다 펜리르. 요청사항은 리리스를 통해서 들었다. 앞으로 탐색을 재개하게되면 수렵조를 편성할 계획도 있으니까, 더 많은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해줄게. "


" 꺅! 고마워 주인님 ! 펜리르 착하게 기다릴께 ! "


그새 '새 주인님' 에서 '주인님'으로 바뀌었군.. 

ㅈ간놈 마냥 정신나갈 개판을 낼 것도 아니니. 개인 단위에서 손에 꼽힐만한 무력을 놀려둘 이유는 없다.


" 안녕하세요. 사령관님. CS페로-04 인사드립니다. "


" 페로.. "


리리스의 나직한 부름에 힘이 없다.

사령관님이라... 소위 여성들의 '거지존'(어깨 닿을 즈음)에 못미치는 짧은? 머리카락. 이 아이가 그 아이구나.

페로들의 맏이 격이자, 


" 그래. 반갑다. 초면에 미안한 이야기지만, 페로들은 다른 자매들보다 조금 바쁠지도 몰라. 다른 자매들은 조금.. 약한 분야까지 가능한게 페로니까? 앞으로 잘 부탁한다. "


확고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던 '두번째' 리리스를 대신해 컴패니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던 아이.

ㅈ간놈의 명령으로 리리스에게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렸었던 아이.

분명히 트라우마가 가장 심한 그룹으로 분류됬던 것 같은데 ... 아. 손. ...떨고있구나.

..훌륭한 언니네.


" 오늘은 가볍게 인사나 나누자고 부른 자리니까 여기까지 하지. 리리스는 잠깐. "


" 쥬--인-님. 하..하...하치.  하-치-코. 빨리- 근무. 설. -거에요. "


기특해라. 


" 그래. 고맙다. 리리스가 판단해서 근무 조정해 줄테니까. 오늘은 가서 쉬렴. "


" 헤헤헤헤 "


...컴패니언이 삼안제였지. ...손주놈은 혹시.. 어지간히도 외로웠던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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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잡고 기다리던 페로를 마지막으로. 사령관실에는 리리스만이 남겨졌다.


" 저 셋 외에 다른 대원들 상태는 좀 어때? "


사령관이 손짓으로 권한 자리에 앉은 리리스의 허리가 꼿꼿이 섰다. 

질책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아직은 본능적으로. 또 반사적으로 몸이 긴장되었다.


" 많이들 좋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포이는 아직 ... 신체훼손이 너무 심했어서요.. "


포이를 비롯한 몇몇의 상태를 떠올린 사령관의 미간이 절로 구겨졌다.

마지막 남은 이성의 조각이였는지, 비교적 '값비싼' 바이오로이드는 망가트리지 않은 ㅈ간이였지만

간혹 본보기를 보인다는 명목으로 끔찍하게 망가트려 수복실에 장식 - 숨만 붙여놓는 - 하는 바이오로이드는 대부분 개성이 강한 부류였다.


" ...그래. 앞으로 무슨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녹녹치 않은 상황에 리리스 정도의 전력을 내옆에만 두고 낭비할 수는 없어. "


" !! 주인님. 그건... ! "


" 그만. 이번은 정말 어쩔 수가 없어서 내가 전선에까지 나갔지만 앵간해선 다시 그럴 생각은 없어. 미안하지만.. 네 솜씨를 봐놓고 내 옆에서 놀려두기도 아깝고. 

  컴패니언은 가능하면 3조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외부조, 호위조, 휴식조로.

  전투부대들이 완전히 정상화되고, 저항군 집단의 규모가 자리를 잡으면 다시 생각해봐야겠지만 당장은 그래.

  그러니까 지금 발이 묶인동안 부대를 확실히 장악하고, 최대한 많은 대원을 복귀시키는 걸 1순위로 하도록해. 

  컴패니언은 지금 내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부대니까. "


삼안제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특수코드에 근거한 믿음이였지만, 거기까지 알리 없는 리리스에게는 사령관의 말과 뇌파에서 전해지는 '믿음' 만이 머리를 빙글빙글 휘몰아쳤다.


" 녜..녜!! 주인님. 착한 리리스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높은 능력치와 그에 준하는 프라이드 만큼 인정에 목말랐던 리리스의 귓가가 벌겋게 물들었다. 

사뿐히 날아갈 것 같은 몸짓으로 인사를 건낸 리리스까지 떠나고. 

찻잔을 정리하고자 콘스탄챠가 입실했다.


" ... 앨리스는 좀 어때 ? "


앨리스. 그 명칭에 부드러운 미소를 건채 우아하게 움직이던 콘스탄챠의 움직임이 얼어붙은 듯 멈춰섰다.


" 그래. ..쉽지않은 일이지. "


삐빅 - 


" ? .. 용? 왜 패널로... 아. 콘스탄챠. 밖에 용 중장이 와있는 모양이야. 입실시키도록해. "


" - 네. 주인님. "


포이 못지않게 상태가 좋지않은 앨리스의 생각이 잠시 굳었던 콘스탄챠는,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를 채워 줄 자매들조차 없다는 사실에 아랫입술을 가볍게 씹었다.

메이드로서 손님맞이를 주인님이 패널로 받게하다니.

명백한 불찰이었고, 기저에 깔린 메이드로서의 의식으로부터 - 대단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아직 짧은 기간이지만, 이런 것이 쌓이고 쌓여 사령관이 자꾸 컴패니언만 찾는 것은 아닌지에까지 생각이 닿자 가슴한켠이 불편해졌다.


" 저어.. 주인님? "


" ? "


사실상 별개의 전력으로 활동하는 라비아타를 제외하면 배틀메이드의 맏이는 콘스탄챠. 콘스탄챠 S-2. 

최고급 기종까지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종기가 없어 넘버링 조차 떼고 오직 콘스탄챠라고 불리우는 자신. 

블랙 리리스야 최고급 기종으로 비교를 불가한다고 하나, 부대로서 배틀메이드가 컴패니언에 비해 주인님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건... 달갑지 않았다.


" 용 중장과의 면담이 끝나시고 .. 혹시 저희 배틀메이드의 자매들과도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실지요? 3일 후 부터 복귀 가능한 인원들이 근무에 참여하게된만큼 한번.. "


" 아? 벌써..? 그런 반가운 소식이라면 얼마든지 좋지. "


" 감사합니다. "


선선한 사령관의 허가를 뒤로 콘스탄챠의 손이 패널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곧이어 입실하던 용이 움찔할 정도로 진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