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대회의 주 안건은 분함대 재합류 작전 입니다. "


사령관과 각 부대 지휘관 또는 부대장 및 일부 부관과 부분장까지 모두 참여하는 회의를 '대회의'

기존의 모든 안건을 사령관이 결제하는 방식을 갈아치우고, 각 지휘관 및 부대장들의 자율성을 넓힌 탓에 부쩍 늘어나게된 지휘급 인원들 간에 의견교환을 위한 잦은 회의를 '소회의' 라 알음알음 칭하게된 이래 처음으로 대회의가 열렸다.

팔라완 섬에 정박한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날 이였다.


" 소회의를 통해 이미 사전에 논의된 내용으로 용으로부터 전달은 받았지만, 혹시 반대나 기타의견은 없나? 어떤 의견이라도 불이익이 없을 것을 내가 약속한다. 전우들을 버리느니 마니 하면서 발언을 불편하게 하는 부류가 있다면, 잘난 전우 찾으러 맨몸으로 수영시켜 보내줄테니까. "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힘겨운 나날은 반대급부로 그들을 부대를 뛰어넘는 자매로 엮기에 충분했기에.


" ...메이 ? "


그렇기에 사령관은 둠 브링어의 대장 멸망의 메이를 불렀다. 일부러 인간의 명령을 어느 정도 거부할 수 있도록 탄생한 메이에게 맡긴 특별한 역할은 바로 -

NO 맨 이였다. 

정말 한치의 구멍도 없는 경우가 아닌 이상, 조금 억지로 보일지라도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여 반대 혹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도록.


" 하아.. 미움받는 역을 기어코 - "


당연히 당사자가 그리 달가울 리는 없는 역할이였다.


" - 대장. 사령관님께서 그 역할을 지시할때 충분히 설명하셨지 않습니까. 그만큼 대장의 전략적인 식견을 인정하신다는 말이기도 하구요. 꽁해있지말고 얼른 대답을 하세요. "


새로운 사령관이 생각보다는 합리적이고, 일부 온후한 인상이 있긴했지만 첫인상이 지워지기엔 아직 먼 이야기. 때문에 옥좌에서 다리를 꼰채 턱을괴고 고개를 팩 돌리고 있는 메이의 모습에 진땀이 흐르는 나이트엔젤이 작은 목소리로 재촉했다.


" 메이대장. 주인님께서 하문하셨지 않습니까. 자세를 바로하고, 어서 답을 하시지요. "


이어지는 나즈막하지만 뾰족한 목소리에 메이의 시선 역시 뾰족하게 - 사령관의 가장 가까운 좌측자리에 앉은 블랙 리리스에게 닿았다.


" 너 - "


" 멸망의 메이. 답. "


리리스에게 꺼내려던 메이의 말은 사령관의 짧은 두 마디에 잘려나갔다. 

평이하던 사령관의 뇌파로부터 슬금슬금 부정적인 감정들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 메이가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찼고,

사령관의 뇌파변화를 느낀 회의실 내의 바이오로이드들 모두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참 알기 쉬운데, 대하기는 쉽지 않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삼키며 메이가 준비해두었던 답을 꺼냈다.


" 작전자체는 찬성이야. 전력적인 측면에서도, 기타 다른 요인들을 모두 헤아려봐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다만, 작전 방향에는 이견이 있어. "


메이가 주 모니터의 화면에 떠있는 용의 작전계획을 바라보았다.

각 분함대의 분리 위치부터 남겨두었던 보급물자 수량, 인원, 장비 구성 등 거의 모든 상황이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 용 중장이 워낙 잘 작성해놔서 따로 설명은 필요없을 것 같고... 보시다시피 우리는 '그걸' 만난 후 8번이나 분함대를 나누었어. 차례차례 짚어보자면 1번, 2번 분함대. 가장 큰 규모의 분함대였지. 규모가 있는 만큼 물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에서 최대한 넉넉하게 실어주었지만... 1 분함대는 거의 반년. 2 분함대도 벌써 4달이 넘었어. 그것도 바다 한복판에...안타깝지만 .. "


메이가 가르킨 1 분함대의 위치는 괌 북부의 바다 한복판. 2 분함대는 그보다 북쪽의 바다 한복판이였다. 

ㅈ간에 내렸던 명령은 인근을 경계하고, 추격대를 요격하라. 주어졌던 보급품.. 식량과 식수는 판단력을 상실한 ㅈ간 몰래 밀어넣어도 3달분이 간당간당 했다.

메이가 1번과 2번의 마크에 X 표시를 더했다.


" 3 분함대는 가고시마 인근, 4 분함대는 제주도 인근에서 나누었어. 이쪽은.. 조금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어. 

3 분함대에는 아자젤을 포함시킬 수 있었으니, 생존문제는 없을거라 생각해. 가고시마는 코헤이 교단의 앞마당이었으니까. 다만, 가고시마에 남아있던 코헤이 교단의 바이오로이드들을 규합했을 경우에 .. 이들이 한 세력을 이루고 있을지도 모르지. 인간이 있는 이상 강제로 합류시키는건 가능하겠지만, 마냥 온건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야.

4 분함대는 제주도에 상륙해서 철충들과 교전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아. 최고 선임자가 스틸라인의 피닉스 대령이였는데, 다들 알다시피 유연한 사고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녀석인데다 상당히 호전적인 성격이니까.

인간..아니, 그 인간에게 질려서 자청해 분함대를 맡아나갔으니, 그 성격에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을 가능성이 너무높아. 그리고 제주도는 적지않은 철충들이 자리한 섬이고, 만약 연결체가 나섰다면...

글쎄. 함대를 이용해 게릴라전을 벌였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여. "


3번에는 O, 4번에는 ? 표시가 더해졌다.


" 5 분함대는 오키나와. 6 분함대는 타이완섬에 내렸지? 여기서부터는 분함대규모가 크게 축소되었지. 전 사령관에게 들켜서 물자도 거의 보급하지 못했고.. 하지만 5 분함대의 오키나와쪽은 긍정적인 상황이야. 우리가 정박기간에 철충을 다 정리했고, 일부러 남겨둔 보급개소도 있었으니까. 

6 분함대는 조금 불안하지. 보급품을 찾아볼만한 거점은 많고, 주둔했던 인근도 꽤 정리했지만... 남겨진 부대규모가 남은 철충에 비해 너무 작아. "


5번에는 O, 6번에는 ? 표시가 더해졌다.


" 7, 8 분함대는 이미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을 통해서 연락이 닿았으니까 줄이도록 할게. "


필리핀 섬을 기준으로 동쪽 바다 인근으로 버려졌던 두 분함대의 대원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필리핀 상공을 가로질러 찾아나선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에게 발견되어 급한 불을 꺼놓은 상태였다.


" 용 중장의 계획은 굉장히 이상적이야. 필리핀 북부까지 7,8 을 자력이동시켜서 필리핀 최북단 인근에서 합류시키고, 동일날짜에 타이완섬의 6을 줍고, 이어서 5를 합류시키면서 오키나와에서 정비. 다시 2개 분함대를 재편성해서 제주도의 4, 가고시마의 3으로 합류 또는 지원을 보내고 오르카호는 태평양의 1,2 를 향해 이동하면서 익스프레스 대원들로 급한 보급을 지원해두고, 순차적으로 합류시켜 최종적으로는 가고시마 인근에서 모두 합류. 가고시마에는 충분한 규모의 도크도 있고, 일본은 멸망 전 꽤나 부유했던 나라니 보급도 용이할 것이란거. 충분히 납득이 가는 작전이야. 하지만... "


이미 소회의에서도 논의가 이뤄졌던 문제점.


" 작전이 너무 이상적이야. "


메이가 패널을 조작하자 용이 그려둔 작전계획 위로 조금 다른 메이의 노선이 그려졌다. 

메이가 그린 동선은 용의 그것보다 훨씬 간결하고 명확했다.

필리핀 북부에서 7,8 분함대와 합류하면서 그대로 오키나와로 직행. 5 분함대와 합류하면서 오르카호의 정비 및 보급을 충당하고, 최대한 빠르게 가고시마의 3 분함대를 향해가는 코스.

생존가능성이 낮은 1, 2 분함대는 사실상 포기. 수가 적어 생존했다 하더라도 발견이 쉽지않을 6 분함대는 보류. 

최단 코스로 3 분함대를 확보하여, 어떤 상태인지 모를 4 분함대의 잔존병력을 최대한 챙기자는 것이 골자였다.


" 모두를 구하고 싶다는거. 나도 동감이야. 나라고 냉혈한은 아니라고.. 하지만 용 중장의 계획은 정말 모든 것이 한치도 변수 없이 들어 맞았을때나 가능한거야. 첫째로 이 너덜너덜한 오르카호가 이 빡빡한 이동을 버텨줘야하고, 7,8 분함대원들이 자력으로 우리에게 따라 붙어야하고, 6 분함대의 대원들을 기적적으로 즉시 발견해야 하고, 5 분함대원들이 오르카호에 충분할만한 보급물자를 이미 확보해놓았어야 하고, 3 분함대가 인간의 직접 대면없이 순순히 합류..혹은 협조를 해줘야하고, 4 분함대가 무리한 전투를 피하고 있었어야하고... 3달치밖에 안되는 보급을 가지고 있던 1, 2 분함대원들이 망망대해 위에서 자력으로 생존해 있었어야해. 

어느 것 하나 들어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살릴 수 있었던 대원들을 잃는 결과만 받아들게 될 수 있어. 최악으로는.. 오르카호가 중간에 퍼지기라도 하면 정말 망하는거고. 그런데말이지..."


메이의 시선이 언제나와 같은 당당하고 담담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는 용을 향했다.


" 내가 아는 '무적'의 용은. 어떤 근거도 없이 이런 작전을 들고왔을리가 없단 말이지. 이제 슬슬 말해주지 그래? "


자연스럽게 시선들이 용을 향했다. 


" 용. 사전 보고시에 아직 확인 중 이라던 부분들을 다 반영한 작전안인가? "


" 네. 사령관 각하. 소관의 작전안과 그 근거에 대해서 발언을 요청드리오. "


대답 대신 제스쳐로 이어진 사령관의 허가에 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메이 대장의 지적대로 소관의 작전은 변수를 너무 좁게 잡은.. 이론상의 작전안임을 부정할 수 없소. 다만,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이미 준비를 해두고 있었고, 이제야 확인이 되어 대회의 소집을 요청하게 된 것이오. "


용의 패널조작에 따라 주 모니터의 일부가 화면을 나누어 작은 화면 2개를 분할해 출력했다. 윗쪽에는 AGS의 지휘관을 맡고있는 알바트로스의 검은 강철이. 아래쪽에는 - 신호 없음 - .


" 알바트로스 중장의 노력으로 화성의 에이다와의 통신이 회복되었소. 아직... 에이다공이 직접 접촉은 보류하고 있지만, 화성의 위성 1대를 희생하여 1, 2 분함대의 위치와 상황을 파악해주었소.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들은 생존해있소. " 


이어서 전환된 주화면에 위성에서 찍힌 '모여있는' 1,2 분함대의 사진이 출력되었다. 2 분함대는 꽤 규모가 있는 섬에 정착해 있었고, 1 분함대는 그곳에서 불과 1 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함선들을 계획적으로 배치하여 마치 함선으로 작은 섬을 만든 것 같은 모양새. 

움직임에 활발함은 없었지만 제대로 만든 낚시대와 그물로 물고기를 낚고, 떠내려오는 해조류를 걷어올리고, 잠수하여 패류를 찾고, 작은 섬에서는 식용 채소로 보이는 무언가를 재배하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  2 분함대가 차출될 때. 전임...의 상태가 명백하게 이상했기에 만약의 상황에 자급 할 수 있도록 원시적인 방법부터 식수를 만드는 기계의 설계도까지 전부 준비를 시켰었소. 식량부분도 .. 낚시나 물질에 경험이 있는 인원들을 추리기도 했고, 감사하게도 드리아드 대원들이 2 분함대에 참여해주었소. 

2 분함대의 지휘관인 세이렌에게는 만약 1달 이내에 오르카로부터 통신이 없을 경우, 조타만 조정하여 조류를 타고 자연스럽게 1 분함대쪽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명령을 우회하여 합류한 뒤. 같은 방식으로 함대를 이동하여 조금이라도 땅이 있는 곳에서 생존을 도모하도록 지시해두었소이다. ...정말 감사하게도 바다가 그들을 제대로 이끌어 주었구려. "


그들의 위치는 과거 일본의 오가사와라 제도의 섬. 인구가 사멸한지는 인류 멸망 전보다도 이미 한참 전이었기에 철충이 없었고, 한때 머물었던 인간이 남긴 흔적 - 식용 작물의 존재는 그들의 생명선이 되어주었다.


" 풍족하진 않아도, 최소한의 식수와 식량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그러면 1, 2 분함대쪽은 조금 후순위로 두어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4 분함대쪽을 급하게 다루어야 되는게 아닌지. "


스틸라인의 지휘관. 전임 사령관에의해 용과 같은 '중장'으로 추대되었으나 지휘체계를 논하며 스스로 다시 '소장'으로 내려선 마리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4 분함대는 스틸라인의 피닉스 대령이 지휘관을 맡았고, 대부분의 대원이 스탈라인의 대원들로 채워진 부대였기 때문일까. 발언 허가 요청도 없이 끼어들만큼,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용이 말없이 에이다가 제공한 위성사진을 몇 장 더 넘겼다.


" 1, 2 분함대 방향으로 포세이돈 인더스트리의 함대가 이동 중인 것이 확인되었소. 뭘 찾는건지, 주변을 정찰하면서 느리게 이동하고 있지만. 이대로 나아가면 분명히 1, 2 분함대와 대면할 것으로 예상되오. ... 때문에 최대한 빨리 1,2 분함대를 합류시켜야 하오. "


굳건하던 용의 안색에 난처함이 서렸다.


" 실은.. 만약 3개월 분의 보급품을 모두 소진하고도 오르카호의 연결이 단절된 상태라면, 포세이돈 함대에 투항해서라도 생존을 도모하라고... 그런 명령을 내려두었소. 3개월쯤이면 명령의 강제성도 약해져있었을테니."


" 아... "


용의 고백에 마리의 입에서 작은 한탄이 흘렀다. 온존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4 분함대와 늦으면 홀랑 날아가버릴 수도 있는 1, 2 분함대. 

규모, 확률, 전력...마리의 지휘모듈도 어느쪽이 우선되야 할지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었다. 가혹하게도.

용이 차마 마리를 바라보지 못하고 설명을 이어갔다.


" 감사한 많은 대원들의 도움에 힘입어, 6 분함대쪽으로도 사전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소이다. 사령관 각하가 허가해주시는대로, 트리아이나 대원과 팬텀 대원이 잠수정을 타고 먼저 타이완섬으로 향하여 6 분함대원들을 수색할 것이오. ..? 사령관 각하? "


" 허가하지. 이미 말했지만, 그런 급한사안들은 개별 보고때 미리미리 보고를 해. 보내. 지금 당장. "


" 예! 각하. 네레이드. 지금 즉시 전달하도록.  ...이어서 보고 드리겠소이다. 5 분함대는 오르카호가 이동 중 항속거리가 나오는대로 베테랑 익스프레스 대원 2명이 선행하여 연락을 취할 것이오. 너무 희망적인 예측이라 보일지 모를 부분이오만, 5 분함대의 구성원 상당수가 퍼블릭 서번트의 대원들이니만큼 철충도 없는 섬에서 하는일 없이 시간을 떼우느니, 자원을 긁어 모으고 인프라를 구축했을 것이 분명하오. 우리가 타고나는 본성이라는 것.. 타고나도록 설계된 본능이라는 것은 익히들 잘 알지않소? "


바이오로이드가 타고나는 본성. 맡겨질 역할에 따라 타고나도록 설계된 본성을 근거로 삼는 용의 예측에 모두가 수긍했다. 메이 역시도 5 분함대의 부대구성원들을 다시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로, 퍼블릭 서번트의 바이오로이드 중에서도 성실하기로 유명한 개체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 다만, 메이대장의 지적대로. 3, 4 분함대의 상황은 변수가 크오. 그 부분이 오르카호를 바로 가고시마로 향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오. 합류가되든 설득이되든, 분함대를 통해 안전이 확인한 후에 오르카호가 진입하는 것이 옳을 것이오. "


자리에 앉음으로서 용이 발언을 마쳤다. 


준비가 잘된 작전으로 보였다. 이미 반년도 전에 이루어진 1, 2 분함대를 위한 사전안배. 6 분함대를 위한 적절한 인선. 5 분함대에 대한 근거있는 추론. 3, 4 분함대의 변수를 고려하여 오르카의 안전과 시간이라는 실리를 확보하는 분함대 파견 계획.


이제 문제는 저 가혹한 일정을 .. 상처가 채 낫지 못한 오르카호가 견딜 수 있느냐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