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작전회의는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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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분위기에 미안하지만 ... 무리야. "


기술부 총책임자. 닥터 1호의 단호한 한마디가 회의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 용 언니나 다른 언니들이 어떻게든 안되겠냐고.. 우리도 머리를 쥐어짜가면서 고민해봤는데 미안해. 오르카호의 상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고, 이 섬에서 건진건 예상보다 너무 적었어. "


기술부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보급부의 안드바리도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않는 순수한 자연경관'이 상품이였던 이 관광섬은. 샅샅이 뒤졌음에도 예상치에 한참 못미치는 물자 밖에 없었다.

기술부는 최소치로 기대했던 부품들조차 확보하지 못하여 골머리. 보급부는 식료품을 비롯한 생필품들의 불출을 재고하기위해 비상이 걸렸다.


" 인공섬군에서 조치는 다 된 것 아니었나? 우리가 여기까지 이동하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는데. "


톡-톡-톡. 사령관의 오른손 검지가 회의테이블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 그런 줄 알았는데...하 - . 잠항- 재부상 과정에서 발생한 트러블들이 안잡혀. '그걸' 마주친 이후에 의미없는 긴급잠항과 기동을 반복하면서 쌓인 피로도가 꾸준히 관리 받지 못하면서 부품들의 수명이 예상을 웃돌게 갉아먹혀 버린거야. 

땜질로 메꾸는 것도 어느 정도지, 때우다가 터져버린 파이프들이 수두룩해. 

손쉽게 갈아버리기만해도 괜찮은 개소들도, 교환할 부품들이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자재들을 가져가다 직접 만들기까지 하고 있지만, 인력과 자원과 시간이 더 필요해. ..용 언니의 계획에는 절대 맞출 수 없는 시간이. "


닥터의 패널을 통해 현재의 인력, 추가로 필요할 자원, 소요 예상시간이 주 모니터로 떠올랐다.


" 그리고 보급품도 부족해요.. "


이어서 안드바리가 화면한켠에 현재 보급현황을 추가했다. 차마 안드바리가 입에 올리지 못한, '최대한 빠른시일내에 추가적인 보급작전이 필요함.' 이라는 문구가 굵은 글씨로 강조되어있었다.


" 이동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이야긴 아닌 것으로 알고있소. 잠항이 불가능할 뿐이지. 설명했듯 보급은 오키나와에서 해소하는 것으로 계획했으니 - "


" ..용 중장. 당신의 냉정함을 믿고 발언할게. 잠항이 불가능한 잠수함이 호위조차 없이 수상으로 이동하는 건 너무 리스크가 크지 않을까? "


레오나의 지적에 침착해보이던 용의 안색이 흔들렸다.

철충이 이상할 정도로 바다에 접근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나 육상 근처의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포격을 가하기도했고, 흔치 않은 편이지만 발진 전의 공중기에 감염되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철충도 존재한다.

더하여 지금 오르카호가 경계해야할 세력은 철충만이 아니였다.


" ...비서 레모네이드. "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던 오키나와에서 이동하게된 이유이자, 오르카호가 남은 함대까지 죄다 떨궈버리고 다시 홀로 움직이게된 이유.

살아있는 인간 샘플 - 오르카호의 ㅈ간-을 포착한 레모네이드 세력에 대한 정체불명인과 에바 프로토타입의 경고 때문이였다. 

아직 확인도 되지않은 정보였건만, 이미 제정신이 아니던 ㅈ간은 무작정 도주길에 올랐었다.


" 고장난 시계도 한번은 맞는다더니.. 그 작자가 맞긴 했었군. "


이미 몇차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던 에바 프로토타입의 경고.

화성 에이다의 지원이 끊기게된 결정적인 이유인 지구궤도권 오비탈 와쳐의 갑작스러운 적대적인 반응.

이번에 포착된 포세이돈 인더스트리 함대의 뭔가를 '찾는' 듯한 움직임.


오르카호는. 추적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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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하게 준비되어 보였던 용의 작전이 평소의 냉철한 계산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사실이였다.

분'함대'. 가장 많이 버려진 것이 호라이즌의 대원들이였으니.

전장에서 쓰러지는 것은 가슴이 미어질 지언정 의미없는 죽음은 아닐진데, 이런식으로 버려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마음이 - 냉정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톡-톡-- 톡.


" 너무 격해졌군. 잠깐 정리 좀 하지. "


반박과 설득이 이어지는 릴레이를 사령관이 멈춰 세웠다.


" 오르카호는 잠항은 불가. 다만, 수상이동은 가능. 속도는 대략 15노트 정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 "


사령관의 말은 리앤이 손에 즉시 입력되어 화면으로 올라왔다.


" 수상이동시 문제가 되는 건... 바다의 상태, 비행형 철충, 내륙인근에 접근시 철충의 포격, 레모네이드? 라는 세력의 위성추적과 발각시 달려올 포세이돈 인더스트리 소속의 적대 함대. "


" 부족한 기술부 인력과 자원. 그리고 시간. "


중얼중얼 입으로 내뱉으며 사령관이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 좋아. 일단, 되는 방향으로 생각을 다시해보지. 아까 칸이 제시했던 의견 중에, 잠항수리를 포기하고, 속도를 끌어올리는대만 집중하면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지 ? "


잠시 패널을 뒤적이던 닥터 1호가 닥터 2호와 수근수근 거린지 약 5분 후.


" 아깝지만.. 나중에는 그냥 떼어서 버려버려야 하는 손실을 감수할 수 있다면, 22노트까진 만들어볼게 오빠. 이건 내가 약속할게. "


기술부의 닥터 1호가 아닌 닥터 2호가 답을 전했다.


" 야야 니가 무슨 권한으로 - 진짜 잠수함에다가 돛까지 달자고?? "


" 무슨수든 다 써봐야지. 안그래 ? 대신 그 속도를 유지하는건 언니들이 머리가 빠져라 계산해야겠지만! "


22노트. 용이 계산했던 15~18 노트의 속도를 웃도는 속도였다.


" 속도는 일단 됬다치고. 바다 문제. 이건... 레아. 자신감만으로 될 문제는 아니야. 정말 가능하겠나 ? 신중히 생각하고 답하도록. "


본인을 드러내기 싫다는 듯, 평소 조용하고 흐릿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오베로니아 레아의 얼굴에 굳은 각오가 서렸다.


" 해내겠습니다. "


" ...다음. 철충문제는..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가능하면 피해가본다 치고. 마지막 남은게 그.. 레모네이드 ? 아까 홍련이 발안했던 작전이 흥미롭던데. "


사령관의 시선이 몽구스 팀의 홍련 작전관에게 닿았다. 


"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령관님. 가짜나 조작한 정보를 보내는게 아니니만큼, 속인다 조차 아니니까요. "


홍련이 제시했던 작전. ㅈ간의 사망을 뿌려버리는 것 이었다. 그 시체를 묻은 가짜 좌표까지 포함해서.


" 흩어진 대원들을 불러모으려는 것 처럼, 공용 통신으로 방수해버린다라.. 저쪽이 내 존재를 모르는건 확실한가? "


" 그건 확실해 오빠. 에바 프로토타입은 둘째치고,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통신을 받은 부분은 용납될 수 없었으니까. 그 작자가 오르카호 밖으로의 통신은 물리적으로 차단해버렸었으니까. 내부에 있는 조력자도 이미 특정하고 있어. 어찌됬건 그 언니도 고생은 함께 했으니 그냥 눈감아주고 있었을 뿐이지. 명령만주면 지금이라도 토모 언니와 스카디 언니가 연행해 올거야. "


 --- 톡. 톡 - 톡..톡...


입을 다물고 다시 검지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한 사령관을 모두가 조용히 바라보며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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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라. 

정말 그런 것 같다. 

내 나름의 기준으로 리스크를 1~5단계로 나눴을때 2에도 잘 손을 안대던 인간이 나란 인간이였는데.

첫 위기를 넘긴 생존에 취한걸까, 반짝이는 안드바리의 눈빛에 들뜬걸까, 사방에서 뽐내고 있는 미모들에 녹은걸까. 

알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다.

알지 못하는 정보가 너무 많다.

해결책들을 다 찾아둔 것 같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리스크는 여전히 작지않다.


" 솔직히 모두를 살린다는 건 꿈에서나 할 소리지. 그런 말도안되는 기대들은 접어. 그래야 덜 힘들테니까. "


정말...


" 그래도.. 한번 최선은 다해보자. "


어울리지 않는 짓인데.


" 네! 사령관님 !! "


같잖던 영웅짓거리를 내가 해보게 생겼다니. 그것참 -


" 감사드리오..사령관 각하. "


오래살고 볼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