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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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원문 보고 꼴려서 써봄


  *

  거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한 달째.

  

  어두운 방에서 오메가가 눈을 떴다. 식은땀이 흘렀다. 한 달 전의 일을 떠올린다. 오르카 호에 잡히고, 사령관이라 불리는 남자에게 끌려가 정절을 빼앗기던 순간을.

  

  허리를 끌어안는 팔뚝. 허벅지를 쓰다듬는 거친 손. 유두를 깨무는 이빨. 닫힌 음문을 억지로 벌리고 들어오던 뜨거운 음경. 몸 안에 들이부어지는 정액.

  

  때리고, 할퀴고, 울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멈추지 않던 남자.

  

  저항할 수 없다는 공포, 등골을 타고 흐르던 달콤한 고양감, 남자의 밑에 깔려 비명 섞인 신음을 흘리던 자신을 향한 혐오.

  

  남자의 행위는 오메가의 기분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아침까지 이어졌다.

  

  그것이 한 달 전. 그렇게 자신을 성처리용 도구로 써버리고, 쾌락의 지옥 밑바닥까지 처박은 남자는 자신을 오르카 호 깊숙한 곳의 방에 버려두었다. 남자는 그 뒤로 한 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

  두 달째.

  

  생리가 오지 않는다.



  *

  네 달째.

  

  서서히 배가 부풀기 시작했다. 부풀어 오르는 배를 보며 오메가는 수많은 감정에 휩싸였다. 공포, 분노, 굴욕, 무력. 철옹성같이 굳게 걸어 잠근 문의 개구멍으로 밥이 올 때마다, 주어진 나이프를 들고 자신의 배를 찌르면 이 생명을 지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벽에 날카롭게 갈아낸 나이프를 들고 자신의 배를 바라본다.

  

  오메가가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배를 쓰다듬는다. 부풀어 오른 배 너머로 느껴지는 소리가, 느껴질 리 없는 고동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음 한쪽이 따듯해진다. 다른 레모네이드 자매들과 있을 때는, 펙스를 위해 일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따듯한 감정.

  

  결국, 오늘도 오메가는 나이프를 내려놓는다.



  *

  여섯 달째.

  

  제법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오메가가 웃는다. 이제는 혐오보다는 애정이, 공포보다는 기대감이 크다.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 이름도 붙여주었다. 헬레나. 펙스에서 일한 시절 언젠가 읽었던 책에 나온 여자아이의 이름. 검사는 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배 속의 아이가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이 열렸다.

  

  굳게 걸어 잠긴 철옹성 같았던 문이 열린 것에, 오메가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공포였다. 두터운 문을 열고 블랙 리리스가 들어왔다. 오른손에 음식을 든 리리스가 오메가를 표독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오메가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더러운 것.”

  

  순간 번쩍하고 눈앞에 별이 튀었다. 리리스에게 얻어맞았다는 것을 이해했을 때는 이미 그녀는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뜨거운 것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고개를 들어 당혹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리리스가 그녀에게 다리를 치켜들었다.

  

  “너 같은 더러운 년이 주인님의 아이를…”

  

  리리스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린 오메가가 재빨리 배를 감추었다, 날카로운 하이힐이 등을 내리찍었다. 하이힐이 등을 후벼 파고 피가 튀는데도 오메가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배의 아이가 다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무서웠다.

  

  “이…!”

  

  리리스가 총을 꺼내 들었다. 총을 본 오메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힐에 맞아 부러지고 피멍이 든 팔다리로 어기적어기적 기어간다. 이마에서 흐른 피가 눈을 가려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팔로 바닥을 짚어가며 기어가 리리스의 다리를 붙잡았다. 리리스의 다리에 매달린 오메가가 울먹이며 말한다.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이 아이만은… 제 아가는… 제발…”

  

  오메가의 등에 총을 겨누던 리리스가 혀를 차며 총을 집어넣었다. 다리를 털어 매달린 오메가를 떼어내고 그녀의 얼굴은 걷어찬 리리스가 방을 나섰다.

  

  오메가가 울먹이며 고개를 들었다. 힐이 얼굴을 깊게 베고 지나갔는지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오메가가 선반에 놓인 천을 들어 피를 닦았다. 닦아도 닦아도 피가 멎질 않았다.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얼굴에 천을 붕대처럼 두른 그녀가 배로 손을 가져가다 멈추었다. 피투성이 손. 다른 천을 꺼내 손의 피를 닦아낸 오메가가 그제야 제 배를 쓰다듬는다.

  

  “아가… 내 아가 레나…”



  *

  아홉 달째

  

  출산 예정일이 다가왔다. 사령관은 얼굴 한번 비추지 않았지만 의료용 바이오로이드를 보내주었다. 리리스에게 맞았을 때 자신을 치료해 주었던 바이오로이드였다. 한때 적이었던 상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성껏 치료해 주었지만, 왼쪽 눈은 결국 고칠 수 없었다. 허나 오메가는 멀어버린 눈보다 배 속의 아이에게 이상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출산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

  열 달째.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찾아올 고통에 공포가, 공포보다 큰 기대감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볼 수 있다는 행복이 찾아왔다.

  

  아이를 낳는 것은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다. 눈앞이 몇 번이나 새하얗게 변했다. 목이 갈라질 때까지 비명을 질렀다. 한참의 고통이 이어지고 뿌연 시야 속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랑스러운 아이, 내 아가. 내 아이 레나.

  

  “딸입니다.”

  

  아이의 피를 닦아낸 바이오로이드가 아이를 천으로 감싸 오메가에게 건넸다. 너무나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 주름진 피부마저, 가냘픈 울음소리마저 사랑스러운 나의 딸.

  

  오메가가 아이를 받기 위해 팔을 뻗었다.

  

  “나의 아이, 내 딸. 내 딸 헬레나. 사랑하는 내…”

  

  순식간에 눈앞이 어두워졌다.



  *

  빛이 눈을 찔렀다. 오메가가 침대에서 눈을 일으켰다. 눈앞이 뿌옇게 번졌다가 천천히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했다. 정신을 차린 오메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 한쪽에 품에 천으로 감싼 무언가를 들고 있는 사령관이 서 있었다. 오메가가 떨리는 눈으로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인간님… 제발… 제 아이를…”

  

  사령관이 순순히 아이를 건넸다. 사령관의 눈치를 볼 겨를도 없이 오메가가 달려와 아이를 받는다.

  

  천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님…?”

  

  사령관은 그저 무미건조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오메가가 흠칫 놀란다. 천천히 손을 들어 왼쪽 눈으로 가져갔다.

  

  눈이 보인다.

  

  오메가가 자신의 배를 더듬었다. 매끈한 배. 얼마 전까지 임신했던 사람의 배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한 배였다. 천천히 무릎부터 무너지는 오메가가 현실을 깨닫는다.

  

  자신은 아이를 가졌던 적이 없다는걸.

  

  “아아…아…아아아아!!!”

  

  오메가의 입에서 바이오로이드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울음소리라기보다는 새끼 잃은 어미 짐승의 처절한 울부짖음이었다.

  

  “내 아가! 아가! 레나! 레나를 돌려주세요! 인간님, 제발! 제가 잘못했어요! 제 아가를! 헬레나를! 인간님! 제 아이를…! 돌려주세요…! 제발…”

  

  사령관의 다리를 부여잡고 오메가가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살을 저미는 것보다, 손톱을 뽑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 엄습했다. 채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허나 가져본 적도 없었던 나의 아이. 만나려야 만날 수 없는 나의 아가.

  

  오메가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한참이나 울려 퍼지고, 가만히 서서 그녀의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던 사령관이 움직였다.

  

  바닥에 쓰러져 실신하듯 울고 있는 오메가를 억지로 일으킨다. 침대 위로 자신을 던진 사령관을 바라보며 오메가가 울음 속 미묘한 희망을 품는다.

  

  차라리 여기서 자신을 품어준다면, 한 번 더 자신의 몸 안에 정액을 쏟아내 준다면, 그때는 정말로 헬레나를, 내 아이를 만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사령관은 무정한 얼굴로 오른손의 고글을 들어 올렸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은 오메가가 또다시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인간님!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 제발! 원하는 건 전부 다 드릴 테니! 제발 저에게 또다시 그런 일은! 제게 아이를 빼앗는 그런 일은 하지 말아주세요! 제발!

  

  그런 오메가의 부탁에도 사령관이 그녀의 눈에 억지로 고글을 씌웠다.

  

  “싫어어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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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아이,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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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아이, 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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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아이, 제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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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아이, 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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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방 속,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새하얀 나신의 여인이 방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었다. 허나 그것을 생명체라 부르기에는 그 마음이 너무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내 아가들… 헬레나… 앨리스… 벨라… 제시카… 릴리… 내 아가들, 엄마가 미안해… 내 아가… 엄마가… 엄마가…”

  

  문이 열렸다. 빛이 쏟아져 내리고 검은 그림자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으로 들어선 남자를 본 오메가가 바닥을 기어 그의 다리에 매달린다.

  

  “인간님.. 인간님!!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원하시는 건 모두 드릴게요! 궁금하신 건 모두 알려드릴게요! 더는 아이를 돌려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제발! 제게서 아이를 뺏지 말아 주세요! 더는 아이를 품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내는 건 싫어요! 인간님! 주인님! 제발!”

  

  하지만 사령관은 오늘도 고글을 꺼내 든다. 여섯 번째 아이를 빼앗기 위해.

  

  “싫어어어어어!!!!”



  *

  어두운 방에서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자장가라 하기에는 너무나 구슬픈 노래가.

 

  푸석푸석한 검은 머리, 초점을 잃은 눈. 부풀어 오른 배. 여자는 메마른 손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는다.

 

  “레이첼… 내 아가…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너무… 너무 미안해…”

 

  어두운 방에서 오메가는 한참을 그렇게, 자장가가 뒤섞인 사죄의 말을 흘리며 빼앗길 아이를 품은 배를 쓰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