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은 밤, 그믐달이 떠오른 밤하늘과 다르게 세상이 불타고 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인류의 문명이, 문화가, 삶이 허물어지고 불타오르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아, 죽이는 달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콜로세움에서 하늘을 보며 읊조리는 노인 하나. 그리고 그를 지키듯 둘러싼 여려 명의 여인.


"회장님, 도망치셔야 합니다. 남은 직원분들은 모두..."

"다 뒤졌겠지. 악몽도 창작의 영감을 준다면서 뻗대더니만 남은 놈이 하나 없구먼, 끌끌."


노인의 시야가 콜로세움 너머의 보호시설로 향한다. 저 보호구역 너머에 담긴 수십 개의 캡슐은 노인과 시대를 함께해온 창작병 환자들이 가득 실려있었다. 미친 듯이 재밌는 이야기를, 진짜보다 진짜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던 수십의 동료가 시대의 멸망과 함께 그곳에 잠들어있었다. 영원히 깨지 않는 끔찍한 꿈과 함께.


콰직, 콰직, 콰직.


그들이 쌓아 올린 문화와 그 유산들을 짓밟는 소리가, 기계음들과 함께 파묻혀 들려온다.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몰락과 함께.


가가가가가각, 콰광, 투두두두두, 촤아왁!

전투의 소음, 무기와 무기가 맞부딪히는 금속음과 총성이 점차 가까워진다.


"모모! 더 이상의 반격은 불가능하다! 지원이 없다면 물러서야 한다!"

"지원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요! 이젠 우리밖에 없다고요!"


마법소녀 모모 시리즈. 덴세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이 철충과 싸우며 그들을 저지하고 있었다. 마법소녀 모모, 백토, 뽀끄루 대마왕.


"모모씨, 뒤로 3보 물러나시고 좌측 8시 방향에 포격을! 백토씨는 모모씨를 호위하며 다가오는 부대를 저지해 주세요! 지금 샬럿씨와 아탈란테를 지원으로 보냈습니다!"

"조금만 버티세요! 30초면 도착하니까!"


노인의 옆에서 지휘하는 금발의 미소녀, 추기경 아르망과 스토리상 서로 원수일 검사, 샬럿이 모모와 백토를 지원하고자 달려 나간다.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카엔 자매가, 클로버 에이스가, 콜로세움의 검투사들이, 덴세츠 작품들의 내로라하는 영웅들이 고작해야 노인 하나를 지키고자 분전하고 피를 흘리며 고전하고 있었다. 이제는 몰락해 사라져 버린 덴세츠의 마지막 망령에 무슨 가치가 있다고, 입술을 짓씹으며 노인은 눈가를 덮었다.


"회장님.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1시간 정도 버틴다면 항구에 불러놓은 잠수함으로 전원 도망칠 수 있습니다!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촤아악! 거대한 흰색 철충에게 몇 명의 바이오로이드가 쓰러졌다. 콜로세움의 전사들이었다.

투두두두! 압도적인 물량의 사격에 서넛의 전사들이 벌집이 되었다. 쿠노이치 시리즈의 적대 부하들이었다.

피유우웅. 어디선가 저격한 레이저에 앞서 막아내던 소녀의 머리가 사라졌다. 마법소녀물의 등장인물이었다.


"씨발, 씨발, 씨발!"


휠체어에 앉아 숨을 몰아쉬던 노인, 아니 그는 짜증이 났다.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 과정이 어떻든 얼마나 더럽고 추악하든 상관없었다. 그저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고, 만들고,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저 불합리한 전개는 뭔가! 엿 바꿔 먹은 파워 밸런스는! 이건 재밌는 이야기가 아니야!


꺼져버린 창작욕, 아니 이건 짜증이다. 멋대로 완성된 이야기를 덧칠하는 저들의 존재가 짜증 났다. 무참하게 찢겨나가는 덴세츠의 이야기들에 짜증이 났다. 눈앞에서 이야기들이 모욕당함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이건 내가 계획한 플롯도 각본도 대사도 아니야!


"꺄아악! 팔이, 팔이!!!!"

"뽀끄루, 진정해! 전선 이탈하지 마!"

"아르망, 빨리 지시를! 어디를 노려야 하죠? 전선이 무너지고 있어요!"

"크으윽, 방패가 녹아내리고 있어! 더는 못 버틴다네!"


소녀들이 싸우고 있다. 한때 아이들의 우상이고 동경하던 이야기들이 피를 흘리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우고 있다. 

남자는 고뇌했다. 어차피 오래는 못 버틴다. 살아남더라도,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은 고작해야 수일 남짓. 언제나처럼 끔찍한 악몽은 그에게 내일이라는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고뇌는 짧고, 판단은 신속했다.


"도망쳐라."


순간, 모두가 뒤를 돌아보았다. 최전선에서 싸우던 백토와 모모가, 그를 지원하던 샬럿과 뽀끄루가, 지시를 내리던 아르망이, 배후에서 다가오는 철충을 베어내던 쿠노이치가. 동시에 노인을 돌아보았다.


"회장님...? 그게 무슨?"


그녀들은 기본적으로 눈앞에 노인을 증오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맞서 싸운 것이다. 자신을 지키라는 명령에, 주저없이 따르고 있는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더 이상 지킬 이들이 없기에.


자신들을 찍던 스태프들이, 매니저가, 디자이너가, 작가가, 덴세츠의 직원들이 모두 사라졌기에-

아니, 죽었기에.


남아있는 '인간'은 오직 덴세츠의 시작과 끝, 요시미츠 회장, 오로지 그뿐이었기에.

평소의 요시미츠 회장은 그저 또라이였다. 이야기를 만들고 재밌으며, 재밌어야 하고, 재미있으면 그만인, 오로지 그것만을 쫓아 살아가는 미치광이. 그것이 그였다.

하지만 철충이 인류를 괴멸시키고, 휩노스 병이 그의 동료를 앗아가며, 매일 반복되는 악몽에 그는 그저 쇠약한 노인이 되어있었다. 그런 노인이 자신들에게 도망치라니, 예상치 못한 대답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고, 그의 눈빛을 보고 납득했다.


타오르고 있었다.


콜로세움이 불타오르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뽀끄루 대마왕의 불꽃에 타오르는 철충도 아니다. 노인의 눈을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지막 생기를, 희미하지만 과거와도 같은 또라이 같은 미소를 지은 채 노인은, 그의 창작욕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듯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30초만 벌 인원 2명만 남기고 전원 도망쳐라. 인간과 다른 바이오로이드인 너희라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 거다. 뒤도 돌아보지 마라. 최대한 빨리 멀어지는게 좋아."


노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법소녀 둘이 앞으로 나섰다."


"우리가-"

"남겠습니다."


전기톱의 토끼귀 마법소녀

일본도와 바주카포의 마법소녀


피로 물들고, 붕대로 감싸진 과거의 희망이 노인 앞에 섰다.


"백토! 모모! 무모해요!"


날아오르는 총탄을 칼로 튕겨내며 세 체의 철충을 도륙 낸 살렷이 외쳤지만, 그녀들의 눈빛은 견고했다. 출혈의 양, 상처에서 새어나오는 내장 쪼가리, 자신들의 신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기에 내린 그녀들의 결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길게 말할 힘도 없어요. 우리 몸 상태는 잘 알잖아요? 이게 최선이에요. 그나마 사지 멀쩡한 다른 사람들이 도망치는 게 빠를 거에요."

"모모 말이 맞다. 길어봤자 2시간 안에 우린 쓰러질 거다. 악에 도망치는 것보다야 최후까지 맞서 싸우는 게 마법소녀 다운 것!"


"지랄들을 해요. 하지만 그래야 우리 덴세츠 시리즈지!"


서로가 걱정하는 대화 속, 누가 남든 상관없다는 남자는 망설임 없이 품에서 스위치를 꺼내 들었다.


"회장님, 그건..! 안됩니다! 동료분들도 한꺼번에 날아가 버릴 거라고요!"


덴세츠는 진짜 같은 진짜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운석이나 화산폭발을 CG로 사용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용서받지 못할 수치!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할 것 같아 모두와 함께 만들어둔 궁극의 자폭장치. 오로지 덴세츠의 회장 요시미츠만이 작동 권한을 가진 스위치였다.


"가라 꼬맹이들아. 이건 명령이다. 덴세츠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더라도, 덴세츠가 만든 이야기는 끝나서는 안돼."


뽀끄루가 모모와 백토에게 손을 뻗지만, 이미 몸은 항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명령이라는 한마디에 멋대로 움직이는 몸에 입술을 씹어도 결연한 두 명의 마법소녀는 손을 흔들 뿐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들의 각오, 흔들림 없이 악에 맞서 싸우는 마법소녀의 각오였다.


"그래서, 나랑 마지막까지 남은 기분이 어떻든?"

"솔직히 말해도 되나요, 회장님?"


백토가 전기톱으로 철충을 썰어 넘기고, 일본도로 날아오는 총탄을 갈라내는 백토가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좇같아요. 마음 같아선 제 칼로 후벼버리고 싶은데 해칠 수가 없네요. 그게 참 안타까워요."

"솔직히 나도 당신이 맘에 안 든다! 머리를 쪼개버리고 싶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낄낄. 솔직하니 보기 좋구먼."


어차피 총탄에 걸레짝이 되어 뒈져버릴 최후. 그녀들과 그는 거리낌이 없었다. 예의 따위 엿 바꿔 먹은 그들의 마지막은 오히려 유쾌해 보일 정도로 상쾌했다. 피가 흐른다. 구동액이 흩뿌려지고, 불길은 더욱 거세진다.


마지막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노인의 엄지는 버튼을 눌렀다.


딸깍.


아주 작은 그 소리와 함께, 라미엘의 핵융합 장치를 응용한 자폭장치, -서로 머리를 맞대 고심해 지은 그 이름하여 '디 엔드'-가 작동을 시작했다. 대지가 울리고, 지면과 함께 터져 나오는 엄청난 열기, 그리고


-섬광.


자아가 흩어지는 마지막 순간, 노인은 언젠가 부하들에게 지껄였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별의별 장르를 다 만들었는데, 딱 하나 못 만들어본 게 있어.

그게 뭡니까 회장님?







-신화. 







저 너머, 도망치는 그녀들. 인간이라고는 모두 뒤져버린 이 종말 속에서 그녀들이 살아남고, 살아간다면-


그게 우리 덴세츠가 바라던 이야기, 진짜보다 진짜 같은 이야기, 신화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철충, 마법소녀, 인간 상관없이 몰아치는 섬광 속, 덴세츠 사의 이야기가 막을 내렸다.

그리고-덴세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와 종료 5분전! 다썼다! 겁나 오랜만에 글을 써봅니다. 덴세츠 이야기로 뭐가 좋을까 하다가 덴세츠 회장 이야기는 없어서 덴세츠 회장 또라이 요시미츠를 써보고자 했는데, 결과가 좀 생각한 그대로 표현이 잘 안됐네요. 아무튼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회] 덴세츠 창작대회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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