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


오늘이야말로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반겨주는 기분 좋은 

아침이다.  

유럽에서 소동을 정리하고 잠시 방주로 왔기에 오르카 

잠수함이 아닌 바깥 건물에서 자고 일어날 수 있었다. 

물론 오르카가 그렇게 불편하단 건 아니고


"오전 6시네...."


여전히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여전한 것 같다.

양치하고 세수하고 대충 크림 발라주고 외출복으로는

특별한 날인만큼 그저 편하기만한 옷이 아닌 

남성용 트렌치 코트에 가벼운 검은 면바지를 입고 침대에 

앉아 가만히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본다.


"그때가 거짓말처럼 느껴지네."


처음 오르카로 온 날 그저 불편하기만 했던 이곳이 이리도

편하게 느껴질 줄은 그리고 그저 하루 하루 어찌 보내야할지

답이 없는 고민을 하는게 아닌 사랑스러운 그녀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지 또 함께 어떻게 즐겁게 보내야 할까.

생각하는게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끼익


시간에 맞춰 문을 열고 나가보니 조금 쌀쌀하지만 춥지는

않은 바람이 얼굴이 간질인다. 

가로수 길을 걷다보면 여러 대원들을 만난다.

나무 아래서 편하게 쉬는 엘븐들 

피크닉에 나온 듯 돗자리를 펴고 우아하게 차 한 잔을 즐기며

자매들과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컴페니언

공원에서 즐겁게 떠들며 간식거리를 하나씩 사서 나눠먹는

발할라


그리도 많은 아이들이 있지만 내 눈에는 분수에서 

살짝 초조한 듯 조금은 긴장한 약간 부끄러운 듯 

보기 좋을 정도로 얼굴을 붉힌 

히루메가 서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


"아..! 아니 방금 왔다. 후훗 정장 이외에 그렇게 차려입은

모습은 처음 보는구나."


"히루메랑 데이트니까. 어드바이스 받고 준비 좀 했지."


"첩도 조금은 더 차려입고 오는 편이 좋았으려나..."


"충분히 이뻐 히루메. 오는 길에도 너 밖에 안 보이더라."


"그...그렇더냐...헤헤...."


오자마자 달달한 대화를 나누는 두 남녀 그 모습에 공원에

있던 인원들의 눈이 모두 두 남녀를 향했지만 이미 

둘만의 세계에 삐진 걸까. 딱히 상관 하지않는 모양이다.


"그럼 갈까? 히루메의 데이트 코스도 궁금하고."


"으..응! 우선은 아침식사로 간단하게 카페 호라이즌으로 

가자꾸나."


"정석적이네."


팔짱을 끼고 히루메의 부드러운 마음을 느끼며 카페 호라이즌으로 걸어간다. 

걸어가는 길에도 아직은 조금 익숙치 않은지 시도 때도 없이

꼬리를 살랑대며 얼굴을 살짝 붉히고 있는 히루메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로 잼을 바른 식빵과 커피 그리고

몽블랑, 블랑망제와 함께 민트초코 프라페랑 핫초코를 

주문했다.


"으음~ 달구나. 자 아~ 해보거라."


"아~"


"달지만 끝맛은 깔끔하지 않더냐?"


"응 확실히 맛있어.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아 히루메랑 같이

먹으니까 그럴려나?"


"으우우... 시도 때도 없이 그렇게 두근거리게 하지 말거라....

부끄럽단 말이다..."


"부끄러운 모습도 참 이뻐."


"으우...."


그런 두 남녀의 모습을 카운터에서 바라보는 세 소녀는 

꽤나 묘한 기분이었다.


"오빠가 저렇게 입은 모습은 처음 보는데..."


"복장만 다르지 우리랑 있을 때랑 별반 차이도 없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인님께서는 누구 한 명의 소유가

되실 수 없는 분이다. 어서 일들 해라."


"...항상 우리는 사랑 받으니까."


턱을 괴며 잠깐 지켜보던 장화는 바르그의 말에 평소와 다르게 별 대꾸도 없이 지나쳐 다시 서빙을 하며 카운터로 

돌아갔다. 

예전과 비교한다면 그녀도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뒤로는 간 곳은 공원 근처에 있는 

수상한 검은 천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의외로 

안락한 곳에 키르케가 

수정구슬을 책상 위에 올려둔 채로 있었다.


"어서오세요~! 마녀의 점집에! 어머~ 한 눈에 봐도 풋풋한 

커플 두 분...... 네....."


텐션이 잔뜩 오른 채로 반겨주나 했더니 나와 히루메를 보곤

약간 기운이 빠지는 듯 텐션이 내려가는 키르케

책상 아래에서 뭘 꺼내더니...


"꿀꺽..꿀꺽...푸하아~! 자! 그래서 풋풋한 두 커플 분은 

무슨 일이실로 오셨나요~!?"


술 마시더니 다시 오른 텐션으로 온 목적을 묻는다.


"첩과 민호의 전생의 인연을 확인하러 왔노라."


"두 분의 전생에 인연 말이죠! 자아 자아 그러면 이 수정구슬 

을 자~세히 봐주시라...."


무슨 일로 키르케의 점집에 온 건가 했는데 

전생의 인연이라 히루메답다고 해야할려나 그저 귀엽다.


"거기 남자친구분?! 수정구슬에 집중해주세요~"


"예~"


딱히 가만히 보고 있어도 뭔가 떠오르지는 않는다만


"으음... 보이네요... 울창한 숲 속... 노란여우가.... 무언가에

쫓기고 있어요...."


음 뭔가 시작하네.


"그리고 그 뒤를 쫓는게... 익숙한 얼굴이 보여요... 음....

사냥꾼인... 대리 님....아..아니 남자친구분...."


굳이 정정할 필요가 있었으려나?


"이런...잡혔어요...! 앗 하지만 노란 여우의 눈을 보고 

마음이 약해진 사냥꾼이 치료하고 놔주네요...."


.....좋게 생각해보려해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는 

딱히 안 그려지는데


"아 아 비록 쫓기고 쫓았지만 그래도 목숨을 살려주고 

치료까지 해준 곳에 대한 보답으로 여우가 다시 사냥꾼을

찾아가네요."


"그리고... 사람의 모습에 놀란 사냥꾼이 집 안으로 들이네요.

어머 어머... 망측해라~♡"


....꽤나 많이 급조된 이야기같지만 히루메의 표정을 보니

흥미진진 했는지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역시 전생에도 맺어져있던 인연이라며

기쁘게 웃는 히루메의 얼굴만 생각나는 점집이었다.


"흐음... 점집은 재미없었더냐?"


"아니? 꽤나 재밌는 이야기였는데?"


"구슬은 제대로 보지 않고 첩만 보지 않았더냐."


"그랬나~ 잘 모르겠네~?"


"흥 다음은 노래방이니라."


"제대로 대답 안해준다고 삐진거야?"


"첩은 안 삐졌다."


"정말~?"


"윽... 그렇게 안고 머리 쓰다듬어줘도... 말... 안할..."


"저엉말~?"


"으응...캬응..."


말을 늘이며 장난스럽게 말하는게 조금 맘에 안 들었는지

뒤로 돌아 노래방으로 먼저 향하려는 히루메 그런 히루메를 

뒤에서 안고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면 입으론 반항해도

꼬리는 솔직하게 살랑거리며 기분 좋다는 걸 알려준다.

부들거리는 여우 귀도 부드럽게 만지고 있다보면 

기분 좋다는 듯 참지 못하고 신음을 조금 흘린다.




그대와 나 이제 영원히


돋을볕이 비추는 시에
오색 빛 다남 길 지난 곳
살사리꽃 인사하던 하얀 언덕에
또 다시 나 돌아왔노라.

물 비늘 목소리 따라서
저 멀리 그대가 보이네.
여전히 날 향해 누그럽게 웃노니
이제는 떠나지 않으리.

영원히 그대의 품속에

라~ 라라라 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 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 라라라라~ 라라 라라 라~
영원히 그대 꿈 속에.


게임을 키면 항상 듣던 히루메의 노래였던 호접지몽을 

설마 현실에서 그것도 바로 눈 앞에서 들을 수 있을 줄은 

부르고 있는 하루메를 가만히 보고 노래를 듣고 있자면

정말로 전생의 인연이 맺어져있는 게 아닐까 싶은 가슴이 

미어지는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는 감정이 올라온다.


"어떻더냐. 민호와 함께 데이트를 나갈 날을 위해 준비한

노래다."


"좋았어. 정말로 좋았어."


"후후 민호의 표정을 보아하니 절로 뿌듯해지는구나."


내가 앉아있는 쇼파 옆으로 와 머리를 어께에 기대며 

잠시 고요한 정적을 즐기는 히루메 

그녀와 함께 나도 잠시 고요한 정적에 몸을 맡긴 채 잠깐

눈을 감는다. 

살짝 어둡고 고요한 방 안에서는 히루메의 심징소리가

들렸다. 주인의 맘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신나있다는 듯 

살짝 빠르게 뛰는 소리 



"좋구나. 심장소리가 느껴지는 체온이 향이 너무나도 

안락해서... 잠이 올 것만 같구나."


"나도 너무 안락하고 편안해서... 잠이 올 것같네."





어쩌다보니 정말로 조금 잠들어버려서 점심 때를 놓치고 

초저녁이 되어서야 노래방을 나온 김대리와 히루메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점심을 걸렀으니 

저녁은 좀 일찍 먹기로 했다.


딸랑~


"실례합니다."


"응...어서와... 김대리... 히루메...."


"예약 시간보다 빨리 왔다만 괜찮나 카엔?"


"응...문제 없음... 앉아..."


저녁은 히루메가 좋아하는 유부초밥을 먹을 겸 

쿠노이치 자매와 그 어머니가 운영하는 초밥 집으로 왔다.

들어서고 가장 먼저 반겨준 건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있는 카엔이었다.


"자... 거기 있는 수도에서.... 뜨거운 나오니...조심..."


컵은 건네주며 주의사항을 말해주는 카엔

초밥 집은 처음이라 꽤나 신기한 것들 투성이었다.


"아가리...."


"예?"


"흠흠 초밥 집 차 이름이노라. 생선의 잔향과 기름기를 

없애주는 역할이니라."


"아... 난 또..."


"후훗 카엔이 민호에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이유도 없지 않느냐."


"김 대리... 실망..."


"....미안."


약간의 헤프닝 뒤 차례로 나오는 음식들을 맛 보는 둘 

과연 스토리에서 소완이 인정했다던 카엔의 실력은 

뛰어났다. 알맞게 되어있는 간에 기름기는 적당하게 혀에 

살짝 발리듯, 몇 번 씹다보면 사라진다. 

그 뒤 마시는 아가리가 입을 한 번 말끔히 정리해주고

장국은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김 대리... 술..?"


"어떡할까 히루메?"


"한 두잔 정도는 괜찮지 않겠더냐?"


살짝 미소 지으며 말하는 히루메의 모습은 뭐랄까 

요염했다. 그리고 선언 같았다. 오늘 밤은 쉽게 

안 보내주겠다는...?


"부탁할게."


"확인..."


맥주 한 병을 시키고 잔을 함께 기울이며 

적당하게 기분이 약간 좋을 정도로 살짝 취한 채로 식당을 

나왔다.

초저녁이었던 시간은 어느새 늦저녁 꽤나 어둑 어둑 해졌고

아침에 쌀쌀한 정도였던 바람은 꽤나 차가워졌다.


"에츄...!"


역시 춥겠지 꽤나... 아니 좀 많이 얇게 입었으니까

코트를 벗어 히루메한테 입혔다. 

약간 취해 헤실 헤실 웃는 모습이랑 코트에 코를 조금 

파묻고 체취를 맡는 게 영락 없는 개과..인 여우였다.



원래라면 밤바람을 쐬며 밤 산책을 조금 할까 했지만 

날이 추웠기에 김 대리는 물론 히루메도 오늘 하루 기다렸던 

메인 이벤트로 조금 빠르게 넘어가기로 했다. 


"민호야... 그 준비할 게 조금 있으니 옆 방에서 씻고 

와주겠느냐? 살짝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말이다..."


"알았어. 천천히 해 어디 안가니까."


뭘 그리 준비하길래 옆 방에서 잠깐 대기해달라 하는 걸까.

여러모로 기대하게 된다. 

씻고 나온 뒤 입었던 옷들을 어느정도 정리해두니

준비가 끝났다는 히루메의 메세지가 왔다.

그녀의 메세지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옆 방으로 

넘어가는 와중 어째 한기가 조금 느껴진다. 


끼익


"어우 여기도 쌀쌀하네. 히루메 괜찮아? 생각보다 좀 더 

쌀쌀한데......"


"후훗."


요염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갤 돌려보면 

새하얀 침대에 옅은 푸른색의 천들이 하늘 하늘 거리며

침대에 주변에서 살랑거리고 있고 

소리의 근원지인 침대 위에는 새하얀 배경에 눈꽃 모양 

자수가 수 놓인 겉옷을 걸치고 

살짝 하애진 꼬리들을 살랑이며 

지나가는 나그네를 유혹하는 설녀가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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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