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히ㅋㅣ - ...방구석 생활이 답답하진 않으십니까? " 


...적응이 힘들다. 비아냥거리는 듯한 독설을 날리게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 메이드라니.

본심과는 다르게 말이 그렇게 튀어나오도록 만드는 모듈의 작용 때문이라고 몇 번이나 설명을 들었음에도 순간 울컥- 올라온다.

가장 '싸게' 만들 수 있어서 대량으로 제조당한 LRL과 코코 이전에 가장 많은 수가 ㅈ간놈의 노리개로 죽어나갔던 개체임을 몰랐다면, 최근의 그 일만 아니였다면, 진즉 한대 쥐어박았을 것이다.


" 괜찮.. .......... 아. 오늘인가. "


ㅈ간놈이 뒤졌다는 사실에 거짓을 한스푼 첨가한 정보를 여러경로를 통해 뿌렸고, 위성이나 감청을 우려해 방음이 확실한 구역 - 거의 사령관실과 기록보관실에만 처박혀있었다.

원래 내 성향이 '방구석 인터넷 만능시대 만세' 였고, 눈을 뜬 이후 이미 겪어본 생활패턴과 다를 바 없어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순간적으로 자제력을 잃었다. 폭주..유치하지만 그보다 잘 표현할 단어가 없다.

그 순간에 눈앞에 있던게 이 녀석 이였고, 그 순간의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마지막 선은 넘지 않았기 망정이지... 


" 네. 벌써 시간입니다. 은둔형 사령관님. "


닥터들의 진단은 인지-생각 와 몸-호르몬 의 괴리로 인한 뭐시기..  내 머리가 인지하고있는 몸뚱어리는 50대의 나인데, 지금 내 몸뚱어리는 본래 내 것조차아닌 너무 건강한 몸인데서 오는 어긋남이 문제였다. ..사춘기가 다시 왔다고 생각하면 쉬울거라나...

처방은 간단했다. 적당히 몸을 움직여라.

 - 아니면 꼴리는대로 욕정을 풀어내던가.


아무튼, 원하는 말을 x가지없게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요 아담한 단발 메이드는 운동시간이 됬음을 알리는 중.

내가 정식주인이 아닌탓에 한계는 있겠지만, 나이(경험)를 먹을 수록. 그리고 관계가 쌓일 수록 개선된다고 하니 -


" 어서 일어나시지요. 아니면 사령관님이 깔아뭉개시면 꼼짝도 못하는 제가 일으켜 드려야 할까요? "


... 아. 진짜 꿀밤마렵네.


-------------------------------------------------------


" !! 주 - "


사령관실 문밖. 오늘의 호위담당이던 CS 페로-005 가 반사적으로 사령관을 부르려다 '쉬잇-' 제스쳐에 간신히 말을 돌렸다.


" 주사 시러요 ! "


맥락없는 말을 소리친 페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절로 지어진 미소로 웃음을 대신하며 사령관의 손길이 페로의 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사령관은 볼 수 없었지만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페로의 갸릉거리는 얼굴이 슬쩍 그의 뒤편을 향했고, 사령관을 따라나오던 바닐라의 안색이 한층 어두워졌다.

사령관은 모를 작은 기싸움이 이뤄지는 사이, 사령관실 바로 옆 작은 휴계실에서 두 명의 바이오로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위병력 부족을 이유로 지원 투입된 스틸라인의 노움 병장이 묵언의 경례만을 붙이며 따라붙었고, 바닐라와 페어로 근무 중인 금란은 특유의 조용한 움직임으로 사령관실 정리에 들어갔다.


" 어느쪽으로.. ? "


지금 사령관이 몸을 움직이기 위해 사용할 만한 시설은 두 군데. 

노래를 크게 틀어두어도 괜찮도록 방음처리가 되어있는 헬스시설과 엔진의 공명음이 목소리를 가려준다는 엔진실 바로 위에 있는 정원구역.

몇차례 방문하면서 친해지고 있는 헬스메이트들이 모두 노동에 참여하는 날임을 떠올린 사령관이 처음으로 정원을 향했다.


" 와...여기가 정말 잠수함 안이라고? "


어렵던 시간에도 꾸준히 관리되고 있던 몇 안되는 구역인만큼, 활기를 되찾은 페어리 대원들의 손길을 듬뿍받은 정원은 아름다웠던 모습을 빠르게 되찾고 있었다.


" 요정들의 정원- "


" 어! 주인님이다 !! "


입구를 담당하고 있던 다프네의 환영인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벌꿀색 빛가루가 날아들었다.


" 아쿠아..! ㅅ - .. 님을 부르면 안돼..! "


" 오늘은 LRL 없는데? 주인님. 혹시 아쿠아를 보러온거야? 정말?? "


뒤에서 부르는 다프네의 목소리를 인지하지 못했을만큼. 말갛게 상기된 아쿠아가 잔뜩 기대에 찬 몸짓으로 사령관 앞에 내려섰다.

첫 만남 - 코코들을 묻어줄 때 - 에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 그리도 기뻣을까. 

LRL을 통하여 두어번 어울린 이후, 아쿠아는 사령관을 주인님이라 호칭하고 있었다.


" 괜찮아. 정원구역엔 충분히 들어왔으니까. 음- "


이어 다급하게 다가온 다프네를 진정시킨 사령관이 아쿠아의 기대에 부응해 슬그머니 내밀어진 정수리를 가볍게 쓸어주며 잠깐 고민을 했지만, 평소의 경험을 떠올려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 사실 아쿠아가 있는 줄 알고 온건 아니야. "


솔직한 사령관의 말에 신나게 진동하던 벌꿀빛 날개가 시무룩하게 잦아들었다.


" 그래도 이렇게 만났는데, 아쿠아가 정원 안내를 해주지 않을래? 정원에 와본건 처음이거든. "


" !! 아앗 ! 아앗 ! 앗...!! 아 ... 그 .. 그치만 오늘 근무자는 아쿠아가 아닌데.. "


아쿠아의 시선이 등 뒤의 다프네에게 향했다.


페어리들에게 정원이란 심혈을 기울여 가꾸는 일터이자, 보람이자, 행복이고, 자랑이였다.

열심히 가꾼 정원을 주인님에게 선보이는 것. 그 것이 그들에게 가지는 의미는 결코 작지않았고, 페어리라면 누구나 원하는 경험이였다.

때문에 오늘의 근무자인 다프네가 누려야 할 기회를 놀러왔을뿐인 자신이 가로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아쿠아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 괜찮아 아쿠아. 자- 사령관님께서 권해주셨잖니. 그리고 정원의 구석구석까지는 아쿠아가 제일 잘 아니까. 나도 믿고 맡길 수 있겠는걸? "


막내인 아쿠아가 늘 언니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어려워하는 것을 알고있었기에 다프네는 슬그머니 아쿠아의 등을 밀어주었다.

업무적인 측면에서도 정원을 아쿠아가 가장 잘 안다는 것에 거짓은 없었다.

레아는 페어리의 지휘관 격이기 때문에 다른 업무가 많았고, 다프네는 의료부분에 로테이션으로 지원 하고 있었다.

드리아드는 정원뿐만 아니라 재배시설도 관리해야 했고, 시저스 리제는 없었으니

순수하게 정원관리 업무만을 담당하는 것은 아쿠아 뿐이였다. 자연스럽게 정원에서 가장 많은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쿠아였고.


" 저..정말..? 언니 괜찮아? 주인님도 괜찮아? "


특유의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다프네와 조금 과장된 자세로 손을 내미는 사령관.


" 흑...헤..헤헷! 아쿠아만 따라와 !! "


사령관을 잡아끄는 아쿠아의 벌꿀색 빛가루 사이로 투명한 뭔가가 스쳐갔지만. 아무도 몰랐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


" 와 - "


진작 와볼걸.. 하는 생각이 그치질 않는다. 


" 여기도 예쁘지? 들꽃아이들을 잘만 관리해주면 이렇게 예쁘게 피어난다구 ! "


만화에서 보던 들꽃이 가득한 벌판. 별것 아닌 풍경같지만 현실에서는 어느 오지의 군락지라도 찾지 않는 이상 볼 수 없었을 그런 풍경.

무분별하게 피어난 것이아니라, 섬세하게 관리된 색상의 조화가 눈앞에 실존하는 비현실이라는 낯선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 소중히 가꾼데에 미안한데.. 여기 누워봐도 되겠니? "


" ? 물론이야 주인님! 정원은 어디까지나 주인님이 즐거웠으면하고 가꾸는거니까 ! 주인님이 좋은 방법으로 즐겨주면 좋아 ! "


사령관이 냅다 누워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서 있을때는 조금 애매하게 느껴지던 들꽃 향기가 코 속을 가득매웠다.


" 와 - 좋네.. "


회색빛 천장이 하늘이였다면 더할나위 없었을텐데 - 라는 생각이 스친 순간, 환한 아쿠아의 얼굴이 거꾸로 다가와 시야를 가렸다.


" 주인님 즐거워? "


" 응. 즐거워. 진작 와볼걸 그랬네. 고맙다 아쿠아. 너무 아름다운 정원이야. 아- 각자 편하게들 쉬어. "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페로와 바닐라는 사령관으로부터 '적당한' 거리에 앉았다. 나란히 앉은 서로를 잠시 곁눈질하는 둘과 다르게, 노움은 우물쭈물거리며 자세를 조금 풀었을 뿐. 서있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아쿠아는..


" ...? 응? "


" 저..저번에 LRL 이...."


대자로 누운 사령관의 왼팔 곁으로 슬그머니 누웠다. 아주 어리게 느껴지는 LRL에 비해 아쿠아는 초등학교 고학년생? 정도로 느껴져 항상 대하기가 애매했었지만, 꽤나 기분이 업된 사령관이 넉넉한 인심을 발휘해 왼팔을 풀어 아쿠아의 머리에 내어주었다.


" 그래. 오늘은 멋진 정원을 가꾼 상으로. "


향기 자체는 은은하지만.. 수가 많아 선명한 들꽃의 향기. 왼팔의 얼마안가 팔이 저릴 것이 분명한 무게감. 감은 눈이 가져다 준 어둠.

과거 언젠가의 비슷한 경험을 희미하게 추억하던 사령관의 의식이 잠으로 침잠했다.


------------------------------------------------------------------


" 아쿠아..? ...어머나. "


저녁시간이 다되었음에도 보이지 않는 한명뿐인 막내를 찾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정원을 찾은 레아가 눈에 비친 광경은 작은 감탄사를 절로 자아냈다.


정원의 어느 부분도 정성스레 가꾸었다고 자부하지만, 멸망 전의 기록으로 인간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던 '들꽃이 핀 언덕' 

아직 한달여의 짧은 만남이긴 했으나, 그간 한번도 보지 못한 만족스럽고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 든 새 사령관.

겁도없이 그 왼팔을 베고 누워 고롱고롱 잘도 자고 있는 막내 아쿠아.

경쟁이라도 하듯 다소곳이 앉아 사령관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바닐라와 페로.

조금 떨어진 곳에 선채로 졸고 있는 신기를 보여주고 있는 노움.


" 오셨어요 언니? 참 예쁜 광경이지 않나요? "


" 다프네.. 그러네. 정말... "


페어리 시리즈라는 바이오로이드로서. 꿈 속에서나 상상했을 광경임에 틀림이 없었다. 

멸망 전 풍요롭던 시절. 수많은 페어리들이 있었을 시절에도 이런 광경에 만족감을 누릴 수 있던 페어리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정성스레 가꾼 정원을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즐기고 있는 인간님과 그 곁에 마음놓고 잠이 든 막내 요정이라니.


멸망 전에도 바이오로이드들을 아끼던 인간들도 없지는 않았다. 소수였지만.

보다 자극적인 오락거리가 수없이 대중화 된 시대에 정원의 풍경을 즐기던 인간은? 소수.

극단적인 양극화의 시대에 정원을 가꿀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던 인간은? 소수.


소수 중 소수 중 소수가 겹칠 확률은? 그 것도 많은 인간들이 살아있던 멸망 전도 아닌 지금에 이르러서야.


" ...언니... "


" ..아? 아... 이런.. 내가 왜이럴까. 주책맞게... "


레아의 눈에서 주체하지 못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힘겨운 시절에 찟어지는 듯한 슬픔에 흘리던 눈물도 아니고,

사랑의 시절에 분에 넘치는 애정에 흘리던 눈물과도 달랐다.


바이오로이드는 엄연히 '제조' 된 존재. 라비아타와 같은 지극히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바이오로이드는 각자의 목적과 역할이 이미 정해진채 '설계'된다.

효율적인 노동을 위하여 가장 쉽고 저렴하게 먹히는 방법은? 그 자신이 노동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각자의 목적에 맞는 본능과 같은 기저심리를 심는 것. 

메이드는 주인에게 봉사하는 행위 자체에 만족과 보람을 느낀다.

경호원은 주인을 지키는데에, 전투병은 전투에서 승리하는데에, 정비병은 기계를 정비하고, 멀쩡히 작동하는데에...


눈앞의 광경은 정원사(페어리)이자 가정용 메이드(배틀메이드)로 설계된 바이오로이드로써 더할 나위 없었고, 

눈물은 근본적인 만족감에서 비롯된 기쁨이였다.


" 카메라 한대 정도는 허용해주는게 좋았으려나? 다른 자매들도 봤으면 좋았을텐데. "


매일 손질되는 정원은 몰래카메라가 허용되지 않는 몇 안되는 구역 중 하나.

정원의 풍경을 헤쳐 꼼꼼히 치웠던 카메라가 아쉬운 날이 올 줄이야.


" 그러네요. 그래도.. 어디 이런 광경을 상상이나 했겠어요? 후후.. "


시간을 확인한 바닐라가 사령관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멍하니 눈 만뜬 사령관을 향한 독설은 들은 모두가 움찔했을 정도임에도 사령관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왼팔에 누운 아쿠아를 확인할 뿐 이였다.


" 편안하셨나요. 주인님? 아쿠아. 이제 일어나야지. 저녁시간 이란다. 주인님도 식사를 하셔야해. "


" 으응... 큰 언니..? "


소리없이 날아와 가녀린 팔로 아쿠아를 일으키는 레아.


" 레아? "


" 네~ ..주인님. 오베로니아 레...아.. 인사드려요. 어머- 후후훗 ♥ 콘스탄챠가 말했던게 .. "


살짝 수그린 레아를 누운채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면 어떨까?

잠이 덜 깬 사령관으로부터 폭발하듯 치고나오는 뇌파가 그 감상을 적나라하게 전했다.


" 어 - 반갑다. 아쿠아는.. 일어났니? 오늘 즐거웠고, 저녁 맛있게 먹으렴. "


" 감사합니다. 주인님. 언제든 또 찾아주시길.. 저희 페어리들은 언제라도 왕림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


그 발칙한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건내는 레아에게서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그제야 인지한 사령관이 가볍게 숙인 레아의 얼굴을 직시했다.


" ...그래. 너무 예쁘네. 앞으로는 자주 찾아올게. "


간신히 눈을 땐 사령관이 정원밖으로 걸음을 옴겼다.


" ..? 안가나...? "


바닐라와 페로가 재촉을 듣고서야 간신히 따라나섰고, 노움도 특유의 긴 앞머리로 잔뜩 붉어진 얼굴을 가리고서야 따라왔다.


" ㅋ..크...크...큰 언니이... "


" 레아 언니.. "


" 어머나 - 우리 아쿠아한테는 조금 낯설었겠구나.. 주인님도 한창대의 남성이시지않니. 자연스러우신거고, 언니는 오히려 기쁜걸? "


레아에게 일으켜진 아쿠아도, 한걸음 뒤에있던 다프네도. 물론 레아도. 


" 우리의 정원도. 언니의 부족한 몸도.. 마음에 드신다는 뜻이니까. "


빨갛게 달아오른 뺨이 한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