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귀인, 아직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어두워지는 시야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였다. 영겁의 어둠이 지나는 동안, 그는 단잠을 즐겼다. 망자가 된 이후로, 태초의 불을 잠시 계승한 것을 빼면 처음으로 잘 수 있었다

 

 꿈에서 잠에 대해 생각하니 지크벨트가 생각난다. 참 재미있는 친구였다. 유쾌했고, 따뜻하고,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마지막까지 신의를 지킨 충직한 사내였다. 필히 그의 세계에서 지크벨트는 친구를 죄의 불꽃에서 구해냈을 것이다.

 

 생각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움직이던 시절의 기억들이 그를 감싸자 점차 잠이 깬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온다.



 

 콘스탄챠와 그리폰은 오늘도 인간을 찾고 있었다. 마른 핏자국을 발견해 따라가 보았지만, 결과는 예상을 저버리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이런 옷을 입었다고? 분명히 이상한 인간이었을거야.”

 

너무 그러지 말아요 그리폰. 주위에 널린 이 철충 시체들을 보면 알겠지만, 죽기 직전까지 분투한 것 같아요.”

 

그 정도는 나도 알아, 그런데 왜 하필 고증도 안 맞고 비효율적인 기사 코스프레를 하고 있냐 이거지. 자기가 덴세츠 소속 바이오로이든 줄 알았나?”

 

 계속 투덜대는 그리폰을 말린 다음 주변 정찰을 맡긴 콘스탄챠는, 잠든 듯 앉아있는 인간의 갑옷을 어루만졌다. 마치 불타오른듯한 그을음과 구멍이 돋보인다. 화재로 인해 생긴 구멍은 아닌 것 같았기에, 그녀는 코스프레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따뜻함에 잠겨있던 콘스탄챠는, 미사일이 폭파하는 소리에 깨어났다. 곧 그리폰이 날아와 상황을 알린다.

 

철충 한 부대가 쫓아왔어! 미행 당했나봐!”

 

일단 후퇴하도록 하죠. 지원 요청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거에요.”

 

알았어. 그럼 바로 움직이- 꺄악!”

 

그리폰!”

 

 칙 스나이퍼의 총알에 그리폰이 격추당한다. 다행히 등에 매고있는 제트팩만 폭파했지만, 충격이 컸던 모양인지 그녀는 그만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기사와 그 앞에 있는 화톳불에 불똥이 번진다.

 

 다가오는 철충들을 보며 콘스탄챠는 그리폰을 감쌌다.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금 인류가 부흥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을 수는 없었다. 그런 콘스탄챠의 마음을 아는지 나이트 칙은 그녀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죽음을 준비하던 순간,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종소리에 철충과 바이오로이드는 소리의 근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화톳불에 불이 붙었다. 한 번 붙은 불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처럼 활활 타오른다. 넘실거리는 불꽃이 이내 기사의 몸에 닿자, 기사의 몸이 마치 타고 남은 재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그가 깨어난다.

 

 이변을 느낀 칙이 총구를 돌린다. 심상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는 적이지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공격하면 승산은 있다. 발포하려는 찰나, 철충의 시야가 반으로 나누어진다.

 

...간님?”

 

 인간의 뇌파를 방출하는 기사는, 콘스탄챠의 목소리를 듣고 화톳불에 꽂혀있던 검을 움켜쥔 채, 그녀에게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