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아의 일기


오늘 일과 후에 남친에게 갔다. 그런데 처음부터 뭔가 좀 이상했다.


내가 들어가면 항상 먼저 꼭 안아주던 남친이,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한참 그렇게 서 있었는데도 전혀 나를 알아채 주지 못해서, 내가 먼저 남친을 불렀지만 세 번이나 부르고 나서야 남친은 겨우 나를 알아채고는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나는 남친에게 달려들어 안긴 다음, 우중충한 얼굴 하지 말고 무엇이 고민인건지 나에게 이야기해 보라고 조심스레 말해봤다.


하지만 남친은 여전히 조금 뻣뻣한 웃음을 지은 채로, 그저 괜찮다며 날 꼭 끌어안아 줄 뿐이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나도 남친이 오르카를 이끌고 있고, 남친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떠안고 있는지, 그것 때문에 남친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도와주기에는, 나는 남친의 비서들처럼 뛰어나지도 못하고, 남친의 다른 아내들처럼 기댈 수 있을만한 연인이 되지도 못한다.


내가 잘 하는것은 그저 누군가를 죽이는 것 뿐.


내가 잘 할 수 있는 말은 뱀과 같은 말로 유혹하는 것 뿐.


사랑하는 사람을 힘내게 해 주거나, 보듬어 줄 수 있는 말 같은 것은 배운 적도, 해 본 적도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항상 따뜻하고 행복했던 남친의 포옹도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


나는 남친에게 위로 한 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는데, 남친에게서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는 것 같아 답답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남친에게서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남친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보답을 해 주기 위해 준비했다.


단단히 준비한 후, 남친의 숙소에 들어갔더니 남친은 그 시간까지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조금 바쁜 일이 남았으니 먼저 침대에 들어가 있으라고 이야기했다.


남친의 말을 듣는 순간, 어지러워졌다.


내가 이렇게 준비해서 들어오면, 항상 남친은 날 안아들고 침대에 살포시 내려놔 주었고, 나는 바로 따라 누운 남친의 몸을 휘감고 몇 시간이고 천천히 남친의 체온을 받으며 남친을 녹여내었었다.


한 번도 나에게 침대에 먼저 들어가란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침대에 먼저 들어왔다.


내가 정말 자연스럽게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뒤에 남친이 들어오면, 그때야말로 아무렇지 않은 듯 웃을 것이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남친을 녹여줘야지.


결국,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 뿐이니까.


내일은 남친의 첫 번째 부인인 발할라의 발키리에게 남친을 보듬어 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늘려가야지.


그리고 언젠가는 남친이 좀 더 기댈 수 있는 아내가 되어야겠다.







사령관의 일기




오늘 스틸라인 온라인에서 펜타킬을 놓쳤다.


다 잡은 물고기였는데 마지막에 대체 어떻게 눈 앞에서 브라우니가 빠져나간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민하다가 천아가 온 줄도 몰랐다.


결국 하루 종일 그 장면을 머릿속으로 복기하느라 건성으로 보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저장해 둔 리플레이를 보려 했는데 천아가 왔다.


나는 조금 바쁘다는 핑계로 먼저 천아를 침대로 보냈고, 그 후에 리플레이를 봤더니 한타 후 마지막 순간에 돌진기를 반 박자만 늦게 썼어도 펜타킬을 딸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너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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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사령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