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다다음 주 에피소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예정이니 많은 존버 부탁드릴게영

그 날 저녁, 이올레 일행은 온몸의 살이 한 웅큼이나 빠진 것처럼 수척해진 모습으로 영원교단의 야영지에서 빠져나왔다.


“진짜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요…”


맨 뒤에서 터벅터벅 걸어나온 크시아가 다른 두 사람을 뒤따라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크시아나 영생자 중 누군가는 목숨을 잃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게 된 덕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느 쪽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여 논의가 그대로 멈춰버렸기에, 어떻게든 자기들만의 목적을 이루려고 온갖 수를 쓰려 했던 주교들도 결국엔 셋의 처분을 포기하고 돌려보내야 했다.


“그러게. 그 영생자가 그렇게 쉽게 손을 털어버릴 줄은 몰랐으니까. 뭐, 그렇게라도 그쪽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으니 잘 된 거 아니겠어?”

“맞아. 뭐라도 건질 게 있을 것 같다고 했었으면 진짜로 몇 명 더 죽어나갔을걸?”


앞서 걸어가고 있던 이올레와 라네비아는 자신들도 그런 상황을 모면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보던 라네비아가 분한 마음에 이를 박박 갈던 것이 무의미하게도, 조금 전까지 영생자 본인과 주교들이 크시아에게 샅샅이 뒤진 결과는 그 모습을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 죽음을 겪은 몸도 혼을 다루는 힘도 영생자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버리면서, 희생자를 낼 정도로 지금까지 서로 날을 세웠던 것이 무의미해진 탓이었다.

그나마 그 점이 오히려 모든 미련을 깔끔하게 지워준 꼴이 된 것이 이번 일을 더 큰 사고 없이 마무리지을 수 있게 해준 셈이었다.


“아무튼, 얼른 돌아가자. 다들 걱정하겠어.”

“그러지. 당신도 일단은 따라오는 거지?”

“네, 이번에는요.”

“이번에는?”


라네비아의 눈빛이 귓바퀴 끝과 함께 흔들렸다.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크시아가 자신들의 곁을 떠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어쩌다보니 함께 움직이게 되었을 뿐이라 언젠가는 이런 말이 나올 것 같긴 했어도 그걸 실제로 듣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이었기에, 라네비아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쳤다.

때마침 뒤로 반 걸음 정도 물러난 위치에 있던 이올레도 라네비아의 그 동작을 목격했다. 하지만 당장은 그 행동이 중요한 영향을 주지는 않을 듯하기에, 일단 돌아가고 나서 언급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묵묵히 속도를 높였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천천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걸어간 뒤, 이올레는 그보다 조금 가까운 곳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얼굴을 비추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는 제법 말쑥하게 차려입은 케스티가 이올레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부르고 있어서, 크시아도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방긋 웃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커다란 사고를 치지 않은 것 같네요?”

“자잘한 일은 있었지만 말이지?”

“그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케스티는 자신과 세 사람을 하늘 위, 알키데스의 회의실로 불러들이고 말을 이어갔다. 오후 내내 세 사람이 영원교단에서의 일을 해결하는 동안 그 뒤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흐지부지된 것이기는 해도 큰 희생 없이 일이 마무리된 덕분에 다음 일감에 대해서는 보다 편안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뭐, 그건 다행이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거지?”

“두 군데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요….”


케스티는 탁자에 펼쳐 놓은 지도를 내려다보며, 지금 알키데스가 있는 위치에서 각각 북쪽과 동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두 지점을 가리켰다. 북쪽은 이올레도 과거 생도 시절에 여러 번 들었던 적이 있는 올라나 오아시스였고, 동쪽은 이올레가 알키데스를 깨운 이후 시점부터 급속히 개발되고 있는 마을인데 아직은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올레는 그 둘을 가만히 살펴보고, 우선 동쪽으로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아직도 이 알키데스에 확장이나 발전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여기라면 그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저, 저는 먼저 이쪽으로 가볼까 해요.”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목소리가 그 생각을 잠시 멈추었다.


“뭔가 볼일이 생겼나요?”

“네. 여기에 ‘신의 샘’이라 불리는 사원이 있거든요.”


케스티가 먼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던 크시아가 말을 이었다.

바다를 건너기 전에 들은 바로는, 최근 그 샘의 수도사들로부터 성수를 받아서 마시고  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했다. 다른 소문에 따르면 아마도 조금 더 북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용의 피’라는 이름의 수맥에서 새어나오는 물이라고 하는데, 마침 그쪽에 적지 않은 인연이 있어서 호기심에 가보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 다음은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요.”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지도 생각 안 해 봤고요?”

“네. 어쩌면 영영 여기 머무를 수도 있고…”


크시아의 말끝이 흐려지기가 무섭게 라네비아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크시아의 눈에도 그 미소가 들어왔기에, 다음 말은 다소 뜸을 들인 뒤에 꺼내게 되었다.


“...일이 잘 된다면 여기로 돌아올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