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다른 손님들이 하나둘 식당에서 떠난 뒤, 라이라와 아키카는 이올레 일행을 큼직한 식탁으로 불러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원래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상관없었지만, 손님 중 한 명이 크시아와 제법 진한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잘 아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거예요? 저쪽에서는 꽤나 친근하게 말을 걸던데...”


그렇게 모인 이들 사이에서 라이라가 가장 먼저 꺼낸 화제는 역시나 며칠 전부터 이 여관의 명물로 떠오른 크시아와, 그 크시아를 알아본 손님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아까 세 손님이 자리를 잡아 앉은 뒤에도 크시아와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그들이 여기에 오기 전부터 꽤나 가깝게 지냈었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맨 처음 화제로 삼아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네, 제가 느끼기에는 그래요. 같이 다닌 지 며칠 정도밖에 안 됐던 데다가, 얼마 전부터는 사정이 있어서 떨어져 있었거든요.”

“그랬구나. 그래도 그 며칠 동안에는 꽤 돈독했었던 것 같은데요?"

"돈독하다 뿐이겠어?”


아까 크시아를 처음으로 알아보았던 기사 차림의 손님 라네비아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그렇게 웃는 표정이며 크시아가 눈빛으로 보인 반응을 보니, 평범한 동행인은 물론 절친한 친구 수준도 진작에 넘어선 것처럼 보였다. 그런 감정이 어쩐지 자신이 느끼는 것과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여, 라이라가 다음으로 말을 거는 목소리가 조금 더 뾰족해졌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났길래 그렇게 찰떡 같이 대할 수 있는 거예요?”

“디오니사.”


이번에는 이올레가 입을 열었다. 그 손님이 크시아의 말에 새치기를 했다고 느낀 라이라의 눈빛이 잠시 날카로워졌지만, 그 이상 불만을 드러낼 틈도 없이 곧장 이올레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이올레가 케스티와 함께 남쪽에서 올라오면서 겪은 이야기들은 아키카와 라이아에게 제법 흥미롭게 들렸기에, 라이라는 이내 자신도 모르게 이올레에 대한 불만을 접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구나… 라네비아는 크시아랑 다른 배를 타고 왔다고 했었잖아요. 그러면 무슨 일로 고향을 떠난 거예요?”

“고향에서는 더 이상 뭘 할 수가 없는 몸이 됐거든."


라네비아는 벌써 곳곳에 녹이 슬기 시작한 무쇠 정강이를 가리키며 한숨을 쉬고, 싸움에 휘말려 큰 부상을 입었던 사연을 들려주었다. 겨우 그 부상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나니 며칠에 한 번씩 비슷한 악몽을 꾸기 시작해서, 혹시 우연이 아니라면 무언가 해야 할 일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신탁을 받아보기도 했다는 결말에는 아키카도 라이라와 함께 눈물을 맺었다.


"어떤 꿈이었길래요?”

“그게 말이지…”


라네비아가 라이라의 물음을 듣고 ‘왼손’이라고 답하자, 라이라와 케스티 사이에 앉아 있던 크시아의 시선이 흔들리면서 점점 라네비아에게서 멀어졌다. 그러고 보니, 처음 이 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계속 낡은 가죽 망토로 왼쪽 어깨를 덮은 채 오른손만으로 불안하게 음식을 먹으려 하던 게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것이 마음에 걸리던 참이라, 라네비아는 꿈 이야기를 짧게 마치고 크시아의 팔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신경이 쓰이던데, 그 팔은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이야기하면 좀 많이 긴데 말이죠…”


아니나다를까, 크시아의 이야기는 조금 전 이올레네가 다녀갔던 그 사원에서 시작되었다. 그 사원 사제들이 특별한 축복을 내려주었다는 성수를 한 모금 마시고 마을로 돌아가던 중, 반쯤 내려왔을 때부터 왼손이 타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하더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손만 이상해진 줄 알았는데, 걸음을 뗄 때마다 통증이 팔을 타고 올라오는 거 있죠? 마치 무언가 이상한 것으로 변할 것처럼 말이에요.”

“이상한 것? 뭐가?”

“어디가 이상한 것 같으세요?”


이올레와 케스티의 시선이 크시아의 망토 안쪽을 향했다. 아키카가 자신의 옷 중 적당히 맞아 보이는 것을 원래 크시아가 입고 있었던 거적때기 대신 빌려주었기 때문이었겠지만, 평소의 가볍고 산뜻한 차림새 대신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온몸을 두껍게 감싼 모습은 역시 어색해 보였다.

물론 더 어색해진 것은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훑는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크시아 쪽이었다.


“저, 왜 다들 그렇게…”

“그러고 보니 그렇게 끙끙 앓은 지 하루도 안 돼서 멀쩡하게 나은 것도 수상해 보이기도 하네요…”


라이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던진 말도 크시아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그 뒤에 이어진 말들도 그랬다.


“그러면 거의 바로 그 날 정신을 차렸다는 거잖아.”

“그렇게 되죠.”


아키카가 라네비아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때까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하던 케스티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아, 혹시…”

“혹시 뭐?”


이올레가 돌아보자, 케스티는 한 번 숨을 삼켰다가 말을 이었다. 혹시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말을 멈춘 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케스티는 자신이 꺼낼 말의 화제를 크시아의 몸 상태로 좁히고, 가볍게 숨을 내쉬며 조금 다른 이야깃거리를 입에 담았다.


“저희가 낮에 그 신전에 올라가는 동안 들었던 뜬소문하고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소문이라면… 아, 그 새로운 신이 내려왔다던가 하는 소리 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