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는 인류 중 가장 진화되었고 우수한 종족이며, 이것은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마법사들은 책상에 앉아 마법진이라는 낙서만 그리며 진짜 마법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멍청한 종족이며,


헌터들은 성좌들과 상태창에 끌려다니는 머저리 노예고,


귀환자들은 이세계의 미개한 사상에 찌든 원시인 중 원시인이다.


그러나 지구 가운데 존재하는 인류 중 악질은 바로 비능력자로, 이들을 모두 죽여 지구상에서 씨를 말리는 것이 유일한 구원이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지?'


매지컬리즘.


20세기에 나치즘이 있다면 22세기에는 매지컬리즘이 전 세계를 절망으로 밀어넣었다.


마법소녀에게 지배받는 세상이 가장 진화된 세상이라 여기며 세계 3차 대전을 일으킨 마법소녀들.


그 최후는 파멸이었다. 


마법소녀 외의 다른 능력자들과 비능력자들이 힘을 합쳐 국제 능력자 연합을 만들었고, 매지컬리즘이란 악독한 사상은 마법소녀 리더의 자살로 끝을 맺었다. 


전쟁은 끝났고, 마법소녀들은 리더의 뒤를 따라 자결하거나 국제 능력자 연합의 포로가 되어 심판을 받았다.


정의와 불의가 맞서 싸워 정의가 이긴 흔하디 흔한 이야기.


하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꿀꺽.


국제 능력자 연합 소속 국선 변호사 한유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대한민국 서울의 능력자 구치소를 개조해 만든 전범 수용소.


지구상 마지막 마법소녀가 이 곳에 있었다. 


국제 능력자 연합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어 들어간 마법소녀도 있겠지만, 마법소녀의 능력을 쓰지 않으면 비능력자나 다름 없는 법.


전쟁이 국제 능력자 연합의 승리로 끝난 후 마법소녀들은 두 가지 선택에 직면했다.


죽거나 사형당하거나.


어차피 죽는 것은 똑같았지만 진통제를 먹고 머리에 총을 쏘는 것과 전쟁범죄자로서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하며 비참하게 죽는 것은 큰 차이점이 있었다.


전범재판도 막바지에 달해가고 있었다. 


유진은 조심스럽게 서류를 들었다. 


로제 아트모스피어. 본명은 한유진.


우연의 일치인지 자신과 이름이 똑같았다.


'전범과 이름이 같다니 소름이 돋기도 하고...'


그 이름과 함께 서류에 붙은 머그샷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마법소녀 코스튬 대신 추레한 죄수복이 입혀져 있었지만, 반짝거리는 벽안과 어깨까지 흘러내리는 진한 라벤더색 머리카락은 그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속눈썹 길다... 그럼 뭐해. 전범재판의 골칫거리인데.'


유진은 한숨을 쉬며 서류를 덮었다.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말 그대로 온 세상의 화젯거리이자 국제 능력자 협회의 골칫거리였다.


마지막 마법소녀이자 마법소녀들 중 유일하게 죗값을 치르겠다며 자수한 특이한 마법소녀.


몇몇 사람들은 학살을 해 놓고 뻔뻔하게 마법소녀가 아닌 인간들은 죽어야 한다는 다른 전범들과 달리, 그녀에게 갱생 가능성이 있다며 국제 능력자 협회의 교화 능력을 보여달라 요구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래봤자 범죄자는 범죄자라 외치며 그녀의 목을 매달자고 주장했다. 


국제 능력자 연합이 쾌속으로 진행되던 다른 마법소녀 전범들의 재판과 달리, 로제 아트모스피어의 재판을 종전 후 2년이나 질질 끌고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마침내 연합은 그녀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재판을 열었다.


연합은 로제 아트모스피어의 변호인으로 한유진을 지명했다. 


전쟁 전 대한민국에서 변호사 배지를 단 변호사이자, 


한때는 막대한 마법소녀의 소질을 가지고 있었던 소녀였다.


*


 '변신해 본 적도 없어. 마법소녀의 능력을 써 본적도 없어.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지. 매지컬리즘 사상에 빠지지 않은 마법소녀 후보라서?'


전범수용소 면회실. 


유진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려대며 허공을 응시했다. 


21세기 초반 일어난 '능력자 붐.'


세계 각지에서 여러 종류의 능력자가 태어났다.


유진도 그 중 한 명이었으며, 출생신고를 할 때 능력자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밝혀진 사실은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강한 마법소녀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그때 마법소녀가 되었다면 나도 여기 갇혀 있었으려나.'


유진은 자신의 복숭아빛 머리카락을 검지로 꼬며 생각했다. 


변신하지 않아도 엄청난 소질 덕분에 자연스레 바뀐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


덕분에 성인이 되기 전에는 염색을 하고 렌즈를 끼고 다녔다. 


그녀의 부모는 유진을 철저히 비능력자로 키웠다. 


힘 때문에 여기저기 이용당하느니 평범한 사람으로 사는 게 더 낫다 여겼으리라.


덕분에 유진은 매지컬리즘에 감염되지 않은 마법소녀 후보로서 연합에 보호되어 살아남았지만, 부모님은 전쟁에 휩쓸려 죽었다.


"죄수번호 3929번 입장합니다."


교도관의 그 한 마디에 그녀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마력 제어 장치를 찬 로제 아트모스피어가 입장했다. 


"와."


유진 자신도 어디가서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그녀는 차원이 달랐다. 


말 그대로 반짝거린다는 말이 어울리는 소녀였다. 


옥색 미결수복과 수갑 또한 그 아름다움의 일부로 여겨질 정도로.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나았다. 


'마법소녀 복장을 입었을 때는 더 예뻤겠지.'   


유진은 긴장과 미약한 질투심을 누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변호를 맡게 될 한유진입니다."


"...안녕하세요."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인사했다.


"잘 부탁드려요."


유진이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자, 로제는 어색하게 수갑으로 묶인 양 손을 내밀었다. 


여름이라 드러난 팔 위로 자해 흉터가 비죽비죽 그어져 있었다. 


'마법을 얼마나 많이 쓰면 저렇게 되는 거지.'


보이는 곳도 저런데 안 보이는 곳은 얼마나 심할까.


유진은 도저히 그 흉터를 응시할 자신이 없었다.


마법소녀가 얻는 마력의 원천은 마법사의 그것과 달랐다.


마법사가 공기 중 마력을 끌어 와 마법을 구현한다면, 마법소녀는 고통을 생명 마나로 변환해 변신하고 마법을 쓴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죄를 인정하고 죗값을 치르겠다 해도, 유진에게 로제는 도저히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저 흉터가 새겨진 만큼 마법으로 얼마나 많이 피해를 입혀 왔을까.


당장 자신의 부모도 마법소녀 때문에 죽었는데.


꾸욱-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 아래에 숨긴 주먹을 쥐었다. 


"...저를 굳이 변호하시지 않아도 돼요."


"네?"


애써 분노를 누르는 유진을 본 로제가 입을 열었다. 


유진은 마법소녀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일은 별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변호인이고, 아무리 의뢰인이 천인공노할 범죄자라 해도 최선을 다해 변호해야 하니까.


"제가 얼마나 나쁜 마법소녀인지는 알고 있어요."


유진은 로제에 대한 생각을 정정했다.


그녀에게는 죄책감도, 양심이 남아 있지 않았다.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자살희망자다.


죽고 싶어서 잡혀왔을 뿐이었다.


"너!"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저 못된 계집애의 뺨이라도 날려 줘야 시원할 것 같아서.


[아니야.]


하지만 그녀는 로제의 뺨을 때리지 못했다. 


로제가 '고통'을 느끼면 마법을 쓸 테니까.


마법소녀 로제 아트모스피어의 고유 마법은 [환각과 조종].


그녀의 마법에 걸리면 장미 꽃잎이 눈 앞에 휘날리며 몸의 주도권을 빼앗긴다.


그리고 눈 앞의 모든 것을 그녀가 조작한 현실로 인식하게 된다.


'저 애의 마법으로 고위 능력자들과 연합의 간부들이 자살했어.'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전투원이 아니었다. 첩보원이나 암살자에 가까웠지.


'때렸다면 나도.'


유진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떨리는 손을 잡았다.


'그리고 로제 아트모스피어가 진짜 자살 희망자였다면 자수하지 않았을 거야. 더 깔끔한 방법이 있었으니까.'


세계 3차 대전 중 능력자들이 판매한 진통제는 그동안 인류가 만들었던 약들보다 많은 효과를 냈다.


고급품은 모든 고통을 없앨 수 있을 정도로.


전쟁 때문에 평화로울 때라면 풀리지 않았을 약들이 시중에 돌아다녀, 마법소녀들도 쉽게 진통제를 구매할 수 있었다.


특히 정신계 최강자인 로제 아트모스피어라면 마법소녀들 중 가장 먼저 진통제를 구해 자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로제의 어깨를 감싸고 외쳤다.


"내가 흥분했어요. 미, 미안해요!"


"네?"


그녀는 유진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눈을 깜빡였다. 


마법소녀는 혐오스러운 존재였다. 


허나 그녀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내재된 인간성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유진이 사과한 것도 로제가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 믿어서였다.


로제 아트모스피어가 자수한 이유를 알아내야 했다.


그것이 재판의 열쇠가 될 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앞에 있는 마법소녀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했다. 


물론 로제 아트모스피어가 무죄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고, 그 증거도 많았으니까.


이번 재판은 마법소녀 로제 아트모스피어의 생과 사를 가를 무대가 될 터였다. 


유진은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녀가 죽어야 할 이유.


혹은 살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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