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이올레와 케스티는 약속대로 사원을 다시 찾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인파가 많이 모이지는 않은 편이었던 덕분에, 꽤나 이른 시각에 신의 샘을 모시는 사제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미리 약속을 잡아 둔 만남이었기에 양보를 받을 수 있어서, 두 사람은 사뭇 홀가분한 기분으로 사제들의 길 안내를 받으며 사원 한가운데 광장을 거닐었다.


“뭔가 알아낸 게 있으신 것 같네요.”

“네. 여러분이 다녀오기 전에도 몇 가지 단서가 더 있었답니다.”

“한 가지만 먼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케스티가 예상한 대로, 이 사원에서도 요새 올라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사건들이 고작 며칠 전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 시점도 이올레랑 케스티가 계산한 것과 거의 일치했기에, 케스티는 사제의 말을 듣자마자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면 저희 쪽에서 생각하고 있는 사람과도 한 번 더 얘기해보셔야겠네요.”

“어떤 분인가요? 그 날도 워낙 많은 분들이 저희 샘에 다녀가셔서 일일이 신원을 알아내지는 못하는지라, 저희는 아직 어떤 분과 엮인 일인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게, 저희와도 짧게 인연이 닿은 사람이라…”


그렇게 해서, 신의 샘을 돌보는 사제가 오랜만에 산 아래로 직접 내려온다는 소식이 산 아래 마을에 퍼졌다.


“꽤 드문 일인가 보네요?”

“네. 저 사원이 고행자들이 번잡한 시장을 피해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꼭 필요한 때에만 외부인을 불러 대신 오가게 하던 게 어느 새 전통이 됐다나 봐요.”

“그렇구나…”


크시아는 라이라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라도 아직은 사제들이 무슨 일로 샘을 떠나 아랫마을로 내려왔는지 모르고 있었기에, 크시아도 그들이 자신을 보러 오는 것이라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그 사원에 방문하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기는 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제가 이 여관에 머물게 된 날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일이라… 그 열병 비슷한 거요?”


라이라는 며칠 전부터 주변 야생 동물들이 미쳐 날뛰어 사냥꾼들을 고생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크시아도 이올레 일행이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짐승 몇 마리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라이라가 계속 꺼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라이라가 막 서쪽의 버려진 유적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종이 울려서, 두 사람은 한숨을 쉬며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어서오세요.”

“여, 라이라!”

“아, 오랜만이네요.”


그 손님은 라이라의 목소리를 듣고, 라이라가 자신에게 보여준 것만큼이나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구겼다. 크시아가 옆에서 가만히 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올라나에 오기 전에는 둘이 꽤 살갑게 대화하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자신과의 대화가 끊긴 것 때문에 라이라기 심통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열흘도 안 됐는데 말이야. 아무리 요즘 새 친구가 생겼다고는 해도 그렇지, 너무 야박한 거 아냐?”

“그 새 친구하고 잘 될 것 같았던 때에 끼어들어서라는 생각은 안 해 봤고요?”

“아.”


반쯤은 농담으로 던진 말에 라이라가 날린 반박이 워낙 날카로운 정론이었기에 그 손님의 말문이 짧게 막혔고, 그 틈을 타 크시아가 살며시 끼어들어 둘 사이의 관계를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럴 수도 있죠. 두 분도 꽤 친해 보이시네요?”

“아, 네. 단골이거든요.”

“맞아요. ‘그냥’ 단골.”


라이라가 손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말에서 ‘그냥’이라는 말에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말을 듣는 손님은 물론 말하는 라이라의 미간도 찌푸려진 것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된 게 혹시 자신 때문인가 싶어, 크시아는 헛기침으로 두 명의 주의를 돌리면서 슬그머니 거리를 벌리고 입을 열었다.


“흠, 오늘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둘 사이의 상황이 적당히 수습되어 그 손님이 자리에 앉은 뒤, 크시아는 이 여관에서 자신이 늘 머무르는 자리인 여관 정문 옆 기둥에 기대 팔짱을 꼈다.

닷새 전 마을 한가운데에 쓰러졌다가 라이라랑 아키카에게 구해진 뒤부터, 크시아는 이 여관에 머물며 곤란한 상황을 대신 풀어주는 것으로 두 사람의 호의에 답해주고 있었다.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는 여관에서 그들 사이에 끼어드는 일은 여전히 진땀을 빼게 만들었지만, 어째선지 이 여관에 머무르게 된 뒤부터는 그런 불편함이 한결 줄어든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이제는 온몸을 가볍게 달구고 있는 열통과 정말로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시 크시아의 머리에 들어오기 무섭게, 문이 열리며 종이 가볍게 울렸다.


“어서오세요.”

“직접 내려와서 보니, 제법 마음에 드는군요.”

“의외로 평이 좋네. 역사가 있다 보니 그 정도로 만족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문 너머에서는 낯선 목소리와 낯익은 목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그런 거야 시대에 따라 변하는 법이니까요. 따지고 보면 당신네도 그렇잖습니까?”

“뭐가.”


조금 전 라이라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냉기가 익숙한 쪽 목소리에 짙게 서려서, 크시아의 귀를 간지럽혔다.


“흠흠, 그건 안에 들어와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이 여관의 점원하고도 주고받아야 할…”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크시아의 몸까지 움직였다.


“어떤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