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서울 전범 수용소 독방.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이곳에 수감되어 있는 유일한 죄수였다. 


그녀는 오늘 다녀간 변호사를 떠올렸다. 


[내가 흥분했어. 미, 미안해!]


'그냥 때려도 괜찮은데.'


로제는 팔에 난 흉터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새끼 발가락을 책상 모서리에 찧는다든지, 밥을 먹다가 혀를 깨물 때 같은 사소한 고통이 부를 변신에 대비해 전범 수용소에 수감되었을 때부터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마법소녀가 된 날부터 오늘까지 인간 취급 받아 본 적이 있었나?


순간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매지컬리즘의 창시자이자 자신의 구원자, 화이트 암브로시아를 유진과 겹쳐 보았다.


[유진아, 우리는 살아남을 자격이 있어.]


[로제. 우리 마법소녀들은 더러운 비능력자들을 청소하고 능력자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해.]


화이트 암브롤시아가 로제를 처음 만났을 때 한 말과 마지막에 만났을 때 건넨 말.


로제는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비교를 해도 그런 쓰레기하고."


그녀는 양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떨궜다. 


이불 위에 편히 누워서 자면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마법소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을 꿈꿨는데, 어느새 마법소녀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로제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속죄해 봤자, 죽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긍지 높은 최후의 마법소녀로서 살아남아. 더럽고 쓸모 없는 비능력자들을 죄다 죽여. 네가 속죄할 이유는 없어. 먼저 마법소녀를 미워한 건 그들이었잖아.]


화이트 암브로시아의 망령이 로제의 어깨에 손을 얹고 속삭였다.


마법을 쓰지 않는다면 정신계 최강 능력도 쓸모가 없었다. 


로제는 흉터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빨리 재판이 끝났으면 좋겠어."


*


 국제 능력자 연합 국선변호인 사무실.


"죽겠네, 진짜."


유진은 세계 3차 대전 당시의 수많은 자료들 중에서 로제의 자료를 찾느라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마법소녀의 소질을 가지고 있어서 육체적으로는 멀쩡했지만, 정신력이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정보화 시대에 쌓인 자료는 너무나도 많았다.


그 중에서 재판에 써먹을 만한 것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어디 마법소녀들 커뮤니티라도 없나."


유진은 헌터 협회와 마탑에 사정사정해 가며 세계 3차 대전 시절의 기록을 얻었지만, 로제 아트모스피어에 대한 정보는 피상적인 것들 뿐이었다. 


로제 아트모스피어의 본명은 한유진이다.


그녀는 S급 헌터인 아버지와 전직 마탑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마법소녀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마법소녀에 대한 편견과 학대에 지쳐 어린 나이에 가출, 화이트 암브로시아가 살던 대치동으로 이동.


그리고 뒷골목을 전전하다 화이트 암브로시아에게 거둬짐.


이후 매지컬리즘의 초기 멤버가 된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화이트 암브로시아의 명령을 따라 연합의 정보를 훔치고 간부들을 죽였다.


'어린 시절 쪽을 파 보면 뭔가 나올 것 같은데.'


로제 아트모스피어의 모친인 전 마탑주 레이첼 아스토리아는 세계 3차 대전 중 전사.


부친인 S급 헌터 한규식은 전쟁에서 사지와 성좌의 후원을 잃고 폐인으로 전락.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학대당했다는 증거를 확보하면 심신 미약으로 형량을 줄여볼 수 있을 지도 몰라. 절대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형량을 줄이는 것은 로제나 유진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일단 접견 신청은 해 뒀는데 만나 줄지는 모르겠네."


전범재판 최고의 골칫거리 로제 아트모스피어, 한유진의 친아버지.


관심을 갖지 않는 자들이 많지 않을 리 없었다. 


현재 한규식은 모든 면회를 거절하고 국제 능력자 협회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로제가 어렸을 때 가진 결핍이 뭔지 알아낸다면 자수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로제한테 관심도 없던 작자에게 뭘 바란담. 차라리 로제한테 물어보고 말지.'


유진은 한규식에 대한 서류를 밀쳐 두고 다음 파일을 열었다. 


[화이트 암브로시아]


매지컬리즘의 선봉이자 능력자 중에서 가장 나쁜 취급을 받던 마법소녀들을 하나로 모아 마법소녀의 세계 지배를 위한 광전사들로 만든 것이 바로 그녀였다. 


불사의 능력과 흡인력 있는 입담으로 마법소녀들의 마음 속 한 구석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그 상처를 세상 바깥으로 분출시킨 마법소녀 화이트 암브로시아. 


로제와 달리 그녀에게서는 어떤 결핍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다못해 미대에 떨어진 것도 아닌데.'


유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로제가 화이트 암브로시아에게 구출된 시기는 마탑에서 마법소녀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던 때였다. 


어머니가 마탑주였으니 부친의 학대에서 더 수월하게 보호받을 수 있었을 터.


그런데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왜 화이트 암브로시아를 택했을까.


'그때 화이트 암브로시아가 마법소녀 중 유일하게 인정받아서?'


자신이 죽음을 택하지 않았다면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었던 소녀.


훌륭한 부모에 좋은 머리, 아름다운 외모까지 타고 나 한때 성녀라 불렸던 소녀.


"참 재수없네."


유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화이트 암브로시아의 면상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렸다. 


공판 전까지 로제 아트모스피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번이었다. 


'시간이 빡빡해.'


2년 동안 미뤄졌던 재판을 한 번에 처리하는 지라 유진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말로 로제를 변호해야 할 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아무리 죄를 인정했다고 해도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전범이자 살인자였다. 


유진은 차라리 로제가 뻔뻔하게 무죄를 주장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떤 죄책감 없이 그녀의 죽음을 방관할 수 있었다.


허나 대중이 원하는 것은 결과가 정해진 정의의 심판이 아니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한 전범의 처우를 둘러싼 치열한 법정 싸움이었다.


그리고 유진은 이 싸움터에 몸을 들이밀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해. 변호인이니까.'


그녀는 자료를 정리한 뒤 질문 목록을 손에 들었다.


*


 공판 1일 전.


서울 전범 수용소 면회실.


"안녕하세요."


로제는 오늘도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해 왔다. 


잠을 잘 자지 못했는지 지난 면회 때는 비단결 같았던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해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보다 어린 걸로 알고 있는데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네."


유진의 질문에 로제는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저번 면회 마지막에 반말을 해서인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 같았다.


"로제, 아니 한유진."


"로제로 괜찮아요."


"오늘만큼은 이렇게 부르고 싶어."


그녀에게는 한유진이라는 이름보다 로제 아트모스피어라는 이명이 더 익숙한 듯 했다. 


"..."


로제는 '한유진'이라는 이름을 잠시 입에 되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유진아. 나는 네 죄에 알맞는 벌을 받길 바라. 부족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은 벌."


"저도요."


"모두가 납득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로제는 질문지를 보자마자 숨을 들이쉬었다. 


화이트 암브로시아 이후로 이렇게 많은 질문을 쏟아내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화이트 암브로시아를 선택했어?"


화이트 암브로시아.


그 이름이 나오자 로제는 흠칫 놀랐다.


하지만 곧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대답을 내놓았다. 


"어른이 싫어서요."


순간 유진은 로제의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뻔 했다.


자신을 학대하는 부친을 피해 나이가 비슷한 화이트 암브로시아를 찾아간 건가.


마법소녀는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전부 만 8세에서 만 19세의 소녀들이었다. 


'로제가 오늘로 딱 만 19세네.'


19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것은, 마법소녀의 힘을 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유진은 생일 축하한다는 말이라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하필이면 첫 공판 날이 로제의 생일 다음 날이라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유진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때는 무엇을 가장 이루고 싶었니?"


마법소녀가 마법소녀와 함께 이루고 싶은 것.


화이트 암브로시아에게 물었다면 비능력자가 없는 세상을 답으로 내놓았겠지.


하지만 유진은 확신하고 있었다.


로제가 화이트 암브로시아와 함께 이루고 싶었던 것은 분명 다른 소망이었을 것이라고.


갑자기 로제가 유진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변호사님처럼 사는 거요."


"나처럼?"


"유명하셨잖아요. 그토록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비능력자로 살아갔다는 거."


그녀의 대답에 유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부모님의 선택에 감사하고 있지만, 한때는 마법소녀의 힘을 갈망했던 때가 있었다.


전쟁 중, 마법소녀가 도시 하나의 비능력자들을 선별해 학살했던 때.


그렇게 분노했던 때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은 부모님이 마법소녀에게 죽임당했을 때.


전국에 시체가 넘쳐나 묻을 곳도 없어서 화장했었지.


활활 타는 부모님의 시선에 대고 오열했다. 


이럴 거면 그냥 마법소녀로 키우지 그랬냐고.


그랬다면 강한 힘을 가지고도 매지컬리즘에 물들지 않은 착한 마법소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알렸을 텐데.


"힘이 있으면 좋지 않아?"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화이트 암브로시아를 위해 마법을 쓴 책임을 지려 하고 있고요."


저게 갓 열아홉이 된 아이의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올 수 있는 말일까.


하지만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면 자수하는 일도 없었겠지.


"정리해 보자면 이렇네. 마법소녀가 되었다는 이유로 학대당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고. 그리고 이건 내 추측이지만... 화이트 암브로시아가 그 소망을 이뤄줄 것 같아서 그녀에게 협력한 거야?"


로제는 답하지 않았다.


허나 부정하지도 않았다. 


'로제의 말은 화이트 암브로시아가 선했다가 타락한 걸로 들리는데.'


화이트 암브로시아는 전쟁을 일으키기 전부터 마법소녀의 우수함과 그 능력에 따를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린 로제는 그 말에 매료되었을 것이었다.


'한참 선을 넘고 말았지만...'


유진은 화이트 암브로시아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법소녀 권리 증진 운동으로 끝냈으면 전쟁은 없었을 것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비겁해.'


하지만 화이트 암브로시아는 자살로 도망치고 말았다. 


*


 다음 날.


대한민국 서울시 전범재판장.


"서기 2154년 8월 3일. 국제 능력자 연합 특별 전범재판부는 피고인 한유진, 이명 로제 아트모스피어의 이에 개정한다."


판사는 국제 능력자 연합 회장인 귀환자 이상엽이었다. 국제 능력자 연합의 헌터 협회 파벌도, 마탑 파벌도 아닌 이질적인 능력자.


무림세계에서 현경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인 그는 능력자들이 난동을 부리면 쉽게 제압할 수 있고, 로제 아트모스피어에게 피해 입지 않은 유일한 전쟁 시기 간부라 분노에 의한 판단 없이 연합 간부들 중 객관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


땅,땅,땅.


유진에게 그다지 좋은 인선은 아니었다. 


전범재판이라는 이유로 판결을 법적 지식이 부족한 이상엽에게 떠넘겨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녀는 국제 능력자 연합이 원하는 바를 읽어냈다. 판사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개싸움을 할 것.


그런 의미에서 이상엽은 판사가 아닌 심판에 가까웠다. 


변호사와 검사가 선을 넘는다면 제지하기 위한 심판.


'이 재판은 여론전이야. 휘말려서는 안 돼.'


퍼억-


유진이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순간, 국제 능력자 연합 마크가 박힌 수액 팩이 로제의 머리로 날아왔다. 


은은한 식염수 냄새가 나는 수액이 터져 유진 옆에 앉아 있는 로제의 머리에 쏟아졌다. 


"재판은 무슨! 저것은 제 어미를 죽인 패륜아야! 죽여! 당장!"


수액 팩을 던진 이는 의수를 달고 휠체어에 앉은 로제의 친부, 한규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