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을 던진 한규식을 시작으로, 방청객들은 어디서 들고 왔는지 모를 달걀과 쓰레기들이 로제를 향해 던졌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이 쓰레기 같은 년!"


"이 악마 년!"


"네가 사람이냐!"


"죽여! 당장 매달아!"


툭- 투욱-


로제에게 던진 쓰레기들이 피고인석 옆 변호사석에 앉은 유진의 얼굴마저 세차게 때렸다.


"로제. 괜찮아?"


유진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물에 젖은 생쥐 꼴로 망부석이라도 된 것 마냥 가만히 앉아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니야... 난 죽이지 않았어요. 엄마를... 내가 어떻게... 믿어줘요. 난 엄마를 죽이지 않았어..."


천만다행으로 과호흡 증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유진은 로제가 패닉에 빠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흥분했어.'


유진은 검은 블레이저를 벗어 로제의 머리에 씌웠다. 달걀물이 조금 묻긴 했지만, 쓰레기 범벅이 된 그녀의 모습보다는 훨씬 나았다. 


"존경하는 판사님! 폐정, 폐정을 요청합니다!"


"..."


허나 판사석에 앉아 있는 이상엽은 유진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검사석을 쳐다보았다. 


로제 아트모스피어 재판의 검사는 마탑의 8서클 마법사이자 유진의 한 기수 선배인 진소이.


어떻게 보면 마법소녀와 비슷한 능력을 쓰는 마법사인만큼, 소이는 현재 로제의 마력을 읽으며 그녀의 감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로제의 반응을 통해 여죄를 물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했다.


끄덕.


소이가 고개를 끄덕여 폐정에 동의하자, 그제야 판사석에 앉아 있던 이상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공섭물."


그의 단전에서 시작해 내공이 온 법정에 퍼졌다. 


현경의 고수가 펼치는 허공섭물에 로제를 향한 물건들이 멈췄다. 


노고수의 눈은 난동을 피운 사람들을 잡고, 그들을 법정 밖으로 날려보냈다.


"방청객의 난동이 심해 1차 공판의 폐정을 선언한다."


땅, 땅, 땅!


법봉이 나무 판을 두드리자, 허공섭물에 법정에 둥둥 떠 있던 사람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저 눈을 보라지! 제 어미를 죽이고 어떻게 저리 뻔뻔할 수 있어!"


한규식은 법정 경위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로제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외쳤다. 


여기서 재판을 끝내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냐며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을 마법사들이 텔레포트 마법으로 죄다 쫓아내자, 드디어 법정은 정적을 찾았다. 


[유진아, 자정에 한강 공원에서 만나.]


소이는 유진에게 텔레포트를 보내고 유유히 법정에서 나갔다. 


정신을 잃다시피 한 로제는 법정 경위들에게 호송되었고, 유진은 멍하니 오물로 범벅이 된 피고인석을 바라보았다.


'로제가 자기 엄마를 죽였다고?'


부모를 살해하는 행위는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큰 이유가 있는 이상 결코 용서받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로제의 친부 한규식은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 주장하고 있었다.


그 주장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한동안 세간이 시끄러워질 것은 분명했다. 


유진은 인간 로제를 믿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로제가 정말 모친을 죽였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유진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려 보았다. 


전쟁이 끝난 지 겨우 3년이 지났다. 


전쟁에서 누군가가 죽임당했다는 것은 시체 한 구를 처분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는 것 뿐이었지만, 평화로운 세상에서 누군가가 살해당했다는 것은 호숫가에 던져진 돌처럼 큰 파장을 일으킬 터였다.


로제의 친모, 전 마탑주 레이첼 아스토리아는 세계 3차 대전 중 전사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무리 전쟁 중에 로제와 그의 어머니인 레이첼이 서로 적이었다고 해도, 평화가 찾아온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녀의 행위를 용납하지 못할 터였다. 


한규식의 한 마디로 로제의 죽음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등을 돌릴 지 모르는 상황.


유진은 바닥에 쭈그려 앉아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었다. 


*


 마지막 전범재판의 담당 검사 진소이.


그녀는 마법 아카데미와 로스쿨을 동시에 졸업한 불세출의 천재였다. 


전쟁 중에는 국제 능력자 협회에 징병되어 마법소녀들을 상대했지만, 지금은 본업인 검사로 돌아가 일하고 있었다. 


'설마 그 애가 변호사로 지명될 줄이야.'


소이는 마력 카페인 음료를 들이키며 유진의 얼굴을 떠올렸다. 


로스쿨에서 성적은 중하위권이었지만 밝고 정의감 넘치는 아이였다. 


'마법소녀 소질이 있었던 만큼 마법소녀 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고.'


마지막 전범 로제 아트모스피어를 변호하기에는 그녀밖에 전임자가 없었다. 


하지만 소이의 눈에 그녀는 약했다. 


로제를 지키려다 자신을 상처 입히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들려오고 한참이 지나서야 유진은 소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소이 선배."


"괜찮아?"


그녀는 몇 시간 만에 초라해진 유진의 모습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 


로스쿨 시절부터 깔끔하게 머리망에 넣었던 머리카락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고, 블레이저는 잃어버린 데다 블라우스와 치마에는 쓰레기가 붙어 있었다. 


"왜 안 피했어."


"의뢰인이 쓰레기를 맞고 있는데 변호인이 피하는 건 비겁하잖아요."


하하.


유진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 선배."


"응."


"로제의 마음을 읽으신 거죠? 혹시 저한테만 몰래 알려 주시려고..."


그녀의 눈에 잠깐이나마 기대가 깃들었다. 


하지만 소이는 유진의 기대를 짓밟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건 기밀 사항이야. 아무리 변호인이라 해도 알려줄 수 없어."


"그렇군요."


유진은 의외로 빠르게 납득했다. 


로제의 변호인으로 수임되기 전의 그녀라면 자신의 지식과 논리력을 동원해 소이가 로제를 위해 기밀을 누출해야 하는 이유를 캐냈을 것이었다.


"그럼 왜 부르신 건가요."


유진은 소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 괴롭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그녀는 유진에게 말해야 했다. 


그래야 국제 능력자 연합의 압박과 세간의 따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에서 후배를 지킬 수 있으니까.


소이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내뱉었다.


"로제 아트모스피어의 변호, 그만 둬. 그게 너와 그 아이에게 최선이야."


"네?"


유진은 환청이라도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허나 소이는 단호하게 자신이 한 말을 반복했다. 


"변호인 그만 하라고."


"어째서요? 이제야... 이제야 유진이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데요?"


"유진이? 설마 로제 아트모스피어를 인간 취급하는 거야?"


"그 애가 인간이 아니면 뭔데요? 언제부터 마법소녀가 짐승이 되었냐고요!"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마법소녀를 금수로 몰아갈 것이라면 마법사와 헌터, 귀환자도 그 잣대를 피할 수 없었다.


그들도 마법소녀처럼 '인간답지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유진아. 마법소녀들은 자기 손으로 짐승이 되길 택한 거야." 


"로제는 달라요."


"아니, 같아. 매지컬리즘에 동조해 무고한 사람을 죽였어. 인간의 길을 포기했는데, 네가 굳이 로제 아트모스피어를 인간으로 대해 줘야 할까?"


"설령 선배의 말이 맞다 해도 법적으로는 로제는 인간이에요!"


"국제 능력자 협회에서 마법소녀 인권박탈법이 제의되었어."


"마법소녀 인권박탈법이라뇨? 전쟁 전에도 그 애들에게 인권은 없다시피 했잖아요."


소이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로제 아트모스피어가 법적으로 인간이 아니게 되면, 재판받을 권리도 잃어. 그럼 그 애를 살처분해도 법적으로는 죄가 아니야."


"선배는 찬성하시나요? 그런 법에?"


"한유진. 아까 말했지. 마법소녀들은 비능력자들을 학살해서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했어. 다른 사람들이 어째서 그들에게 사람의 권리를 줘야 하니?"


"적어도 로제는 달라요!"


"아니, 같아. 로제만 아니었다면 그 비인간적인 전쟁, 한 두해는 빨리 더 끝낼 수 있었어."


"..."


유진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로제는 자신의 마법으로 국제 능력자 협회의 핵심 간부와 고위 능력자들을 죽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소이의 말대로 인류는 더 빨리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로제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어요.'


유진의 입술이 들썩였지만, 그녀는 도저히 그 한 마디를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자신이 범죄자인 것을 인정한 사람이 계속 범죄를 저지른다면, 죄를 뉘우쳤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로제에게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가?


툭, 툭.


소이는 덜덜떨리는 유진의 어깨를 두드린 뒤 캔을 마법으로 소멸시켰다. 


"그럼 잘 생각해 봐."


소이는 절망에 빠진 유진을 내버려 두고 그대로 공원을 떠났다. 


그녀는 소이가 떠나자마자 편의점에 들어가 소주를 구매했다. 


"흐읍!"


생체 마나로 강화된 몸은 아무리 유진이 술을 퍼마신다 한들 멀쩡하겠지만, 씁쓸한 알코올 맛과 목구멍이 타는 듯한 느낌은 없애주지 못했다. 


유진은 소주 한 병을 물 마시듯 들이켰다. 


이제야 조금 취기가 도는 듯 했다. 


그녀는 로제가 옆에 있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로제... 내가 널 믿게 해줘..."


*


 국제 능력자 연합 VIP 병실.


똑, 똑.


누군가가 병실 창문을 두드렸다. 


"..."


병실의 입주민, 한규식은 주위를 둘러보고 마나를 차단했다. 


상태창이 없어져도 이 정도는 감으로 할 수 있었다. 


드르륵-


한규식이 침대 옆 버튼을 눌러 창문을 열었다. 


문을 두드린 복면인은 디바이스를 작동시켜 한규식이 고래고래 소리치는 장면을 보여 주었다.


[재판은 무슨! 저것은 제 어미를 죽인 패륜아야! 죽여! 당장!]


"뭐 하는 짓거리야!"


한규식이 복면인의 멱살을 잡았다. 


그녀는 가면 아래로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이 얼마나 일을 잘 했는지 확인하고 있었지."


"들키면 어쩌려고?"


"들킬 거라고 생각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마법소녀인 내가?"


"지랄... 돈이나 내놔."


"현금으로 5억. 세 봐."


한규식은 복면인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현찰을 꺼내 셌다. 


전자 결제가 일상화된 시대였지만 현찰은 자금 세탁용으로 요긴히 쓰이고 있었다.


"수는 맞네."


그는 비열한 미소를 짓고 의수를 조작해 현찰 봉투를 숨겼다. 


"그럼..."


복면을 쓴 마법소녀는 한규식을 들고 등 뒤에서 양 손을 교차해 그의 목을 잡았다. 


"커헉!"


"알량한 돈에 제 자식도 팔아넘기는 쓰레기 새끼. 로제에게 네놈 같은 아비는 필요 없어."


"너... 이년..."


"지옥에서 참회하라고."


복면 마법소녀는 교차한 손으로 한규식의 목에 힘을 가했다. 


"끄르륵..." 


그녀는 마법으로 그의 의수를 조작해 양 손을 교차시킨 모양으로 만들었다. 


마치 한규식이 로제의 마법으로 자신의 목을 졸라 죽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