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랑 휴대폰 가져가십쇼."


교도관이 유진에게 영치되었던 물품들을 돌려주었다.


증거불충분으로 석방.


그녀는 체포되자마자 하루만에 풀려났다. 


일 처리가 어이 없을 정도로 빨랐다. 


유진의 선배인 소이까지 동원해 그녀를 감옥에 집어넣었어야 하나, 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럼 처음부터 잡아가지를 말지.'


유진은 구치소에 갇힌 하룻동안 수많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왜 한규식 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렸는지, 왜 소이가 로제의 변호에서 발을 빼라고 했는지.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니 한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그녀를 맞아 주었다. 


'전쟁이 끝났던 날도 이랬던 것 같은데.'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녀를 체포할 때 국제 능력자 협회 소속인 소이가 들이닥쳤으니, 그곳에 계속 있는 것은 위험했다. 전쟁 때 보호해 준 것은 고마웠지만 이제 독립할 시간이었다. 


유진은 침낭을 구매해 옆구리에 꼈다.


변호사인 유진의 해임 시도가 있었던 것은, 로제에 대한 대중의 여론이 상당히 좋지 않음을 의미했다. 


누가 한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을 좋아하겠는가. 


그것도 그 사람이 전범에 양심있는 척-대중의 관점에서- 자수했는데. 


"..."


[쓰레기 변호사 사무실]


[죽어]


[같이 사형시켜라!]


애써 얼굴을 가리며 사무실로 가니 붉은 페인트로 쓴 낙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재판에서 로제가 맞았던 음식물 쓰레기가 던져진 것은 덤이었다. 

 

유진은 사무실도 안전하지 않음을 짐작했다. 


'차라리 나보다 로제가 안전하겠다.'


유진은 뒷통수에 쓰레기가 날아올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아파오는 것만 같았다. 


띠리링-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도어락이 울렸다. 


*


 같은 시각. 마탑 안 마법소녀 연구소.


진소이는 한규식 살인사건 현장에서 검출된 약간의 마나를 보고 자신의 손으로 마나를 끌어담앗다. 


쉬이이익-


그리고 자신의 스태프 안으로 마력을 완전히 흡수했다. 


"이 일은 함구해."


"네, 검사님."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생체 마나는, 마법소녀 한유진의 마나가 확실했다.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재판은 여기서 끝나야 했다. 


우웅- 우웅-


소이의 손목 디바이스가 울리기 시작했다. 


'젠장.'


소이는 연구소 안의 사람들을 물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소이 선배, 오랜만이네요.]


"용건만 말하고 끝내."


[시간이 많지 않으니 뭐, 이 정도만 물어볼게요.]


"..."


[제 '그거' 어디 갔어요?]


"네가 하라는 대로 했잖아. 차라리 걔를 노려.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그냥 죽게 내버려 두라고."


[난 로제도 그 아이도 갖고 싶은데?]


"한규식도 너지?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육체는 필멸이지만 마음은 영원하다.]


"한유진!"


[아니, 당신네들 진짜 웃겨. 내가 도망갔다고 유전자를 훔쳐서 클론을 만들고. 거기에 뭐? 변호인? 나는 법대도 로스쿨도 나온 적이 없는데. 지금 나 멍청하다고 놀리는 거죠?]


빠드득.


소이는 이를 갈았다. 


그녀가 화를 내든 말든, 디바이스 너머에 있는 복면 마법소녀는 소이를 비웃으며 가면을 벗었다. 


머리카락은 회색으로 샌 갈색이었지만, 눈동자만은 녹음의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법소녀는 커터칼로 손목에 피를 낸 채 싱그러운 바람을 느끼며 소이에게 말했다. 


"우리 로제를 죽이려면 재판 같은 건 열지 말았어야지."


[너...]


뚜우- 뚜우-


복면 마법소녀, 진짜 한유진은 소이의 말을 끊고 통화를 끝내 버렸다. 


그녀는 가면을 다시 쓰고 망토를 두른 채 하늘을 날았다. 


자신의 클론, 변호사 한유진을 맞으러 가기 위해.


*


 진짜 한유진은 마법소녀였다.


마법소녀의 능력을 가진 소녀가 변신 한 번 하지 않고 살 리가 없었다. 


적어도 진짜 한유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거대한 힘을 가지고 안 쓰는 머저리가 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녀를 비능력자로 살게 하려는 부모의 기대를 어기고, 기어이 몸에 상처를 냈다. 


힘이 있으면 사용해야 하는데 왜 자신은 그렇지 못하는가. 


[우리 집에 놀러오지 않을래?]


그때 유진에게 다가왔던 마법소녀가 바로 화이트 암브로시아였다. 


비밀로 마법소녀 활동을 지원하느라 항상 짜증이 나 있었던 그녀. 


언제까지 그림자 마법소녀 노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출을 할 수도 없고.


화이트 암브로시아는 그런 유진에게 좋은 상대였다. 


자신의 마법을 개발해 주고 마법소녀 활동을 마음껏 지원해 준다니.


유진보다 먼저 화이트 암브로시아와 만난 마법소녀들은 꽤 있었다. 


당장 자신이 구하려는 로제만 해도 마법소녀파의 창립 멤버나 다름없었으니.


허나 유진은 꽤나 빨리 마법소녀파의 중심이 되었다. 당연했다. 마법소녀들이 추종하는 매지컬리즘은 강한 자를 대우했고, 화이트 암브로시아는 작은 고통에도 큰 마법을 쓸 수 있는 유진을 아꼈다. 


그러다가 마법소녀 활동을 들켰다. 


부모는 노발대발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더 강했다. 


그들은 딸이 어떻게든 매지컬리즘과 화이트 암브로시아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모든 힘을 다했지만, 유진은 집을 부수고 나가 버렸다. 


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이었다. 


로제를 통해 국제 능력자 협회에서 자신의 클론을 만든다는 정보를 얻은 것은 불과 전쟁 후 2년일 뿐이었다. 


솔직히 흥미가 돋긴 했다. 


마법소녀가 아닌 2등 인류가 어떻게 가장 강한 마법소녀를 구현해 낼까 궁금하기도 했고.


화이트 암브로시아는 유진의 클론에 큰 관심을 가졌다. 


마법소녀가 마법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다른 능력자에 비해 짧았다.


5년 전, 전쟁 2년 차. 


유진은 18세 생일을 맞았다. 


마법소녀로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시간은 1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


그녀는 자신의 클론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클론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 능력자 연합으로 처들어갔다. 


자신 대신 그녀를 딸 삼아 가족놀이를 즐기고 있는 부모와, 앞을 막는 모든 능력자들을 죽이고.


굳이 패인을 꼽자면 국제 능력자 연합이 너무나 자신을 잘 구현해 놓았다는 것이었다. 


클론은 보존액에 찬 수조에 들어있는 그대로 유진에게 부상을 입혔다. 


전성기 때의 자신을 그대로 구현해 놓은 듯한 마법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부상은 부상이라 유진은 요양을 위해 숨어들었고, 마력을 상당히 잃어버린 덕분에 추적도 피할 수 있었다 .

 

그런데 국제 능력자 협회가 로제 아트모스피어를 재판장에 새운댄다. 


무려 변호인은 자신의 클론이었고. 


유진은 연합의 누군가를 통해 매지컬리즘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메신저는 진소이였다.


원본인 자신과 친했던 만큼, 클론과도 친분이 있었으니까.


멍청한 마탑 놈들이 진짜 한유진의 자리를 클론에게 준 바람에 마법소녀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클론에게 누명을 씌운 채로 계속 활동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한 두번이었다. 


클론이 갇혀 있는데 진짜가 마법을 쓰며 돌아다니면 들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 마음만은 영원하지.'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자신의 친우이자 주군인 화이트 암브로시아를 죽였지만, 그녀가 로제의 마음 쏙에 심은 씨앗은 영원할 터였다. 

 

진실을 알고 있는 유진의 눈에는 모든 것이 갖잖아 보일 뿐이었다. 


'진실된 것은 매지컬리즘밖에 없어.'


이런 거짓말쟁이들이 로제 아트모스피어를 재판장에 세우는 것부터 어불성설이었다.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었다.


진실은 언제나 드러나는 법이었다. 


그래서 더욱 빨리 움직여야 했다.


자신의 생체 마나가 다 떨어지기 전까지 모든 것을 밝혀야 했기 때문이었다.


끝끝내 웃는 이는 자신이 될 것이었다.


*


 그날 밤. 서울 전범 수용소.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이틀째 방치되고 있었다. 


변호인이 체포되어 재판이 중지되었고, 어제는 마법소녀 인권 박탈법이 정식으로 국회에 제의되었다 한다.


국민투표가 바로 다음 주였다. 


일주일만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나고, 로제는 살처분당하듯이 죽을 터.


'내가 한 일은 전부 헛된 일이었어.'


살고 싶다면 화이트 암브로시아를 죽인 대가를 치뤄야 해야 했다. 


매지컬리즘의 부활도 함께.


살아감으로서 화이트 암브로시아의 마음을 존속시킬 것이냐, 죽어서 짐승으로 남을 것이냐.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방치된 이틀 동안 받고 먹지 않았던 진통제를 죄다 꺼냈다.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결말을 내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마법소녀들의 마력을 억누르는 진통제는 마약이나 다름없었다. 


마약을 한 번에 다량으로 복용한다면, 그 결과는 죽음이다.


로제 아트모스피어는 조용히 손바닥 위에 있는 진통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