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네비아는 말끝을 흐리는 라이라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크시아의 가슴팍에 목걸이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정욕을 끌어당기는 체질을 억눌러준다고 해서 수십 년 동안이나 애지중지하는 보물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어딘가에 놓고 온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을 어딘가에서 실수로 놓고 왔다고 하기에는 크시아의 몸놀림이 너무 여유로운 것 같기도 했다. 마치 이제는 그런 것에 의지하지 않아도 조금은 마음의 평안을 도모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 중요하다는 게 설마…”


라네비아도 그 점이 영 수상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고, 라이라를 따라 크시아를 훑어보았다. 그렇게 하니, 크시아도 아직 이올레네에게는 그 점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다만 아직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게, 지금은 이게 정말로 나아졌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한 번 그거 없이 찾아와본 거고?”

“그런 셈이에요. 오늘 하루 동안 아무 일이 없으면 정말로 잘 된 거겠죠.”


그 대목에서 라이라의 눈빛이 부드럽게 풀렸다. 아마 조금 전 라이라가 라네비아에게 말하려고 했던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상황을 알려주는 일인 듯했다. 그리고 방금 오갔던 짧은 대화를 통해, 적어도 라네비아 한 명에게는 그것이 제대로 전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다음으로 넘어갈 차례인 것 같았다.


“지금쯤 이올레 님이 화를 내기 시작할 것 같은데 말이죠?”

“아, 그랬지.”


다행히 이올레 쪽 상황은 라네비아가 ‘조금’ 늦은 것 가지고 화를 낼 만큼 급박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심각한 얘기는 없었나 보네.”

“당장 주의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어. 아마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것 같아.”

“뭐가?”


라네비아의 답은 사전 지식이 없다면 다소 생뚱맞게 들릴 수밖에 없었기에, 이올레 입에서는 절로 반문이 튀어나왔다. 다만 케스티에게는 그 말에 담긴 의미가 빠르게 떠올라서, 이올레의 의문을 금방 진정시켜주었다.


“아무래도 크시아 씨에게 무슨 좋은 일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는 듯해요.”

“그래?”


기억해둘 만큼 특별한 감정이 생기기에는 조금 짧은, 하지만 라네비아에게는 짧은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던 사람의 이름이 이올레의 길고 예리한 귀를 살며시 간지럽혔다. 그 이름을 듣고 떠오르는 기억을 되새겨보니, 케스티가 라네비아의 말에서 읽어낸 ‘좋은 일’이라는 게 자신에게도 분명히 좋은 일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좋은 느낌이 이올레의 입꼬리를 끌어올린 게 다른 둘의 눈에 띄었는지, 이올레는 케스티와 라네비아가 서로를 흘깃 보며 가벼운 미소를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흠, 지금은 당신들 둘이 실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머, 그게 보였어요?”

“그래, 아주 선명하게 보이더라고? 그러고 보니, 성주 당신도 한 번 눈이 돌아갔던 적이 있었지?”


라네비아까지 케스티를 거들며 자신을 놀리듯이 말하자, 이올레의 눈빛이 조금 차가워졌다.


“맞아, 그랬었지. 그때 당신에게 신세를 진 것도 기억하고 있고. 아무튼 그건 나중 일이고, 이만 위로 돌아가자고.”

“알았어. 여기는 나중에 또 올 일이 생기겠지.”


-


그 날 저녁, 이올레의 침실.


“그 사람들, 지금도 잘 있겠죠?”


잠옷으로 갈아입은 케스티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이올레를 돌아보았다. 올라나 마을 한가운데의 여관에서 만났던 라이라와 아키카를 떠올리며, 그들과 크시아가 앞으로도 무사히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꺼낸 말도 곁들였다.


“라네비아님도 당장은 확신하지 못하던 걸 보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이기는 한데…”

“그렇겠지. 그래도 그 시간이 그렇게 길 것 같지는 않아.”


조금 먼저 침대에 몸을 묻고 있던 이올레는 그때 라네비아가 보였던 묘한 미소를 떠올리며 자신도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떠난 크시아에게 라이라라는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처럼 보였기에, 라네비아로서는 크시아가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기만 할 수는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별다른 경쟁자가 생기지 않고 있는 자신들 둘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이올레도 케스티도 서로 이외의 사람에게 우정 이상의 마음을 쏟을 정도로 가벼운 인성도 아니고, 그럴 만큼 상황에 여유가 있다고 보기도 힘드니 말이었다.


“뭐, 이쪽 일이 잘 풀리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이쪽이라… 어느 쪽을 말한 건지는 안 물어봐도 되겠죠?”


케스티는 싱긋 웃으면서 이올레의 옆에 누워, 살며시 눈을 감은 채 손목에 손을 얹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졸음과 함께, 왠지 앞으로 있을 일들도 잘 될 것 같다는 포근한 예감이 이올레의 손목에서 케스티의 손가락으로 스며들었다.